'밀수' 류승완, 스타 감독의 품격 [인터뷰]
유쾌한 화술, 자만하지 않는 자의 여유와 깊이. 그리고 새로운 것에 대한 과감한 용기. 대중이 사랑하는 스타 감독 류승완의 품격이다.
지역 박물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70년대 해녀들이 밀수에 가담했다'는 자료 한 줄. 그리고, 미스테리 장르 잡지에서 줄곧 흥미로워했던 '부산 지역에서 벌어진 70년대 여성 밀수단 이야기'. 이 키워드는 '밀수'의 시작이다. 류승완 감독은 "해녀라는 직업군 자체가 전 세계적으로 몇 안 된다. 유럽 쪽에서는 남자들이 물질을 한다. 70년대 해녀 밀수단 얘기가 굉장히 흥미로워했던 차에 여성들이 바다를 배경으로 어떤 활극을 펼친다는 것이 참 새롭고 재밌는 시도일 것 같단 생각"에 '밀수'라는 거대한 판을 벌였다.
'밀수'의 주무대는 군천이라는 가상의 어촌 마을이다. 감독이 주요 배경지를 가상의 도시로 설정한 것은 '짝패' 이후 처음이다. 이는 "가상 도시를 세운 건 장르의 세계라는 것을 말해주고, 이렇게 되면 더 익스트림하게 영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매혹됐던 영화적 요소들, 70년대 대중문화에 대한 기억, 음악과 패션 등의 밸런스를 자연스럽게 맞춰나가며 마치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할 듯한 장소를 구현해 냈다.
그리고 그토록 염원하던 김혜수, 염정아를 캐스팅하는 데 성공했다. 오래전부터 팬이었던 두 사람이 연기하는 것을 한 화면에 담아낼 수 있다니, 촬영하는 내내 흥분 상태였다고 팬심을 드러낸 감독은 "참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20여 년 전에 '피도눈물도없이'라는 두 여성 주인공이 활약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때도 배우의 조합을 생각했다. 일종의 버디 영화를 볼 때 조화가 중요하잖나. '밀수'에서 친구 관계의 두 사람이라고 설정했을 때 본능적으로 김혜수, 염정아가 떠올랐다. 제가 두 배우의 오랜 팬이기도 하고 의외로 두 배우가 동시에 나오는 작품이 없었다"고 했다. "마치 '히트'에서 드니로와 알파치노가 등장할 때 '이 두 사람이 처음 같이 연기한단 말이야?? 싶었던 마음 같다"고. 그랬기에 자신이 먼저 이 둘의 그림을 보고 싶단 욕심이 강해졌다. "연기라는 건 두 배우의 조화가 중요한데 김혜수 선배가 팔팔 끓는 용광로 같은 뜨거움을 지닌 불이면 정아 씨는 물 같았다. 극 중 춘자의 그래프가 왔다 갔다 하는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건 진숙이 내내 차갑게 쿨톤을 유지해 줬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이어 감독은 제가 감히 이들의 연기력을 논할 수 없다며, 이를 떠나 두 사람의 태도를 말하고 싶다며 수다 모드 발동이다. 이 정도면 '찐 팬심'이다. 감독은 "정말 이래서 사람들이 김혜수, 김혜수. 염정아, 염정아 하는구나를 알게 됐다. 너무나 팀워크를 잘 이끌어주고, 마치 두 사람의 주부 가요 교실 같은 분위기였다. 촬영 끝날 때까지 안 가고 서로 응원해주고, 현장에서 박수치고, 배우들 호흡이 정말 잘 맞았다. 누구 하나 기싸움을 벌이는 게 없었다. 두 사람이 진짜 이 영화 전체 현장의 분위기를 이끌어줬다"며 마르지 않는 칭찬과 감탄 세례였다.
이로 인해 그 또한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정말 특이했다. 촬영 끝나는 날 '아, 이 영화 안 끝났으면 좋겠다' 했다. 그런 적이 처음이었다. 전 현장이 항상 힘든 사람이다. 촬영 끝나고 숙소 오면 '왜 이렇게밖에 못했을까' 스스로 괴롭고 다음날 촬영을 준비하면서도 ''빠진 게 뭐지, 놓친게 뭐지'를 생각하느라 수면 장애에 시달렸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내가 관객들보다 더 즐거우면 안 되는데 정말 즐거웠다. 오랜 세월 같이 한 동료 스태프들과, 너무나 팀워크를 잘 이끌어준 배우들 덕분"이라고 고마움을 전한 감독이다.
물 공황 증상과 수영을 못하는 배우들이 완성한 수중 신 또한 감독에겐 그저 말 못 할 감동이었다. "배우들이 물 속에서 너무 아름답게 움직이더라. 첫 테스트하는 날 '와, 이거 됐다' 싶었다. 오히려 나중에 배우들이 수영을 못했고, 공황이 있다는 걸 알고 놀랐다. 그걸 알고 더 감격스러웠다. 정말 기가 막히게 움직여주고 배우들의 헌신 때문에 수중 촬영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 감동 덕분에 갈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유일무이한 해녀들의 수중 액션은 그야말로 진풍경이다. 워낙 장르 영화, 그리고 액션에 특화된 감독이 새롭게 도전한 수중 액션은 특유의 호쾌함이 묻어나고, 예상치 못한 수중 액션의 묘미까지 더해져 쾌적한 감상을 준다. 류 감독은 "영화를 할 때마다 비슷비슷한 걸 하는 것 같지만, 그 안에서도 재탕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항상 새로운 걸 하고 싶은데 이번엔 수중 액션을 보여 주겠다는 것보다 막연히 물속에서의 새로운 움직임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중력의 작용이 지상에서보다 덜할 때 나올 수 있는 움직임들이다. 남성이 지상에서 아무리 빠르고 강력한 힘을 가졌다 한들, 물속 상황은 다르기에 더 자유로울 수 있고 현실적인 동시에 판타지적인 액션이 완성되지 않을까, 이를 찾는 과정이었다고.
"김희진 수영 코치와 싱크로나이즈 팀의 공이 굉장히 크다. 물 속에서 근접한 카메라의 움직임과 몸이 엉켜 움직이는 동선들의 가능성을 일일이 테스트했다. 할 수 있는 건, 해볼 수 있는 것들. 특히 극 중 진숙과 춘자가 물속에서 크로스를 하며 서로 올려주고 내려주는 장면은 원래 대본에선 하이파이브였다. 실제로 가능하다는 걸 제안해줬고 정말 멋진 동작이라 이를 사용했다"는 비하인드 설명도 흥미롭다. 류승완 감독은 "처음 하는 시도들이었기에 무모한 것도 있었지만 새로운 것을 계속 찾을 수 있게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자부했다.
또 공을 들인 것은 역시 류 감독의 주특기가 집대성한 지상 액션이다. 좁은 호텔 복도와 방을 오가며 펼쳐지는 떼거리 액션은 날것의 느낌을 강하게 발산하면서도 내밀하고 정교한 합으로 완벽한 타격감을 전달한다. 류승완 감독은 "장르의 세계 안에서 펼쳐지는 액션이기에 극한까지 가볼 수 있겠다 생각했다. 멋이 있는가, 없는가가 중요했다. 얼마나 격렬하고 멋있게,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여기에 의외성과 한 스푼의 유머가 첨가되면 더 좋다"고 설명했다. 해당 신은 긴박한 순간에 전혀 예상치 못한 조춘자 권상사의 의외의 멜로 감정이 포착돼 찰나의 여운이 상당하고 여기에 장도리의 '깐족거림' 유머가 하늘을 찌르는 등 온갖 고조된 감정의 소용돌이를 다채롭게 느낄 수 있다. 감독이 의도한 대로다. 류승완 감독은 "원래 두 사람의 '케미'는 대본에도 있었으나 이를 훨씬 더 풍부하게 만들어준 것이 배우들의 힘이다. 항상 예상을 벗어나는 지점들을 배우들이 완성해 줬고,, 음악의 효과도 컸다. 장도리가 혀를 내밀며 메롱을 할 때 정말 기가 막혔다"는 설명이다. "저 역시도 지금까지 많은 액션 장면을 찍어왔지만 스스로 만족도가 높은 장면"이라며 "액션 서스펜스가 유지되면서 관객을 어떠한 정서로 몰고 가는 것, 이를 배우들이 매력적으로 표현해 줘서 나름 자부하는 장면"이라고 만족한 감독이다.
내로라하는 대작들이 몰리는 여름 극장가 시기, 개봉 경쟁도 치열하다. 하지만 감독은 동생 류승범으로부터 "형, 재미있게 잘 찍었는데 왜 긴장을 해. 기다려봐"라는 든든한 응원을 받았다. 또 2년 전 영화 산업이 절망 그 자체였던 코로나 팬데믹 당시 '모가디슈' 개봉을 강행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그래, 그때보다 얼마나 더 나빠지겠나 싶다"며 호탕하게 웃어보인 감독이다. 여유있는 스타 감독의 '쿨함'. 폼난다.
사진=외유내강, NEW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