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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공식작전' 김성훈 감독의 휴머니즘 [인터뷰]

    비범한 사람의 뛰어난 이야기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범상치 않은 이야기에 끌린단 김성훈 감독. 그의 모든 작품엔 장르를 막론하고 진한 휴머니즘이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그가 지닌 바르고 인간다운 성정이 묻어나는 것이었다.  김성훈 감독은 2018년 체코행 비행기에서 '비공식작전' 영화의 초고를 열 페이지 가량 읽으며 생각했다. '책을 덮고 나면 나는 이 영화를 연출하게 되겠구나' 그토록 빨리 확신했던 건 시작부터 던져지는 소재와 이야기가 극한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솔직히 비행기 안에서 읽고 싶겠나. 그런데 대본 읽자마자 밑도 끝도 없이 외교관이 납치된다. 그가 잊혔다가 어느 순간 살아있단 연락이 온다. 뒤의 내용을 안 봤음에도 이 영화를 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감독은 영화적 "what"과 "how"가 궁금했다. 영화는 최초의 한국인 외교관 납치 사건이란 소재를 실화로 하지만, 이에 대한 과정은 알려진 바 없어 이 한줄의 팩트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픽션으로 채워야 했다. "그분이 어떻게 돌아왔을지가 너무 궁금했다. 한동안 납치 당해 잊혔던 사람을 누군가는 데리러 와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은 분명 있었을 거였다. 그 사람은 왜 그랬을까. 친인척도 아니라고 들었다. 분명 힘든 일이었을 텐데, '살아있으니 데려와야 한다'고 말한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런 인물과 영화적 장치들을 캐릭터에 이입시켰고, 이 과정에서 지금까지 해왔던 서스펜스와 유머 액션, 그리고 안 해봤던 새로운 것들까지 만들어 쾌감 있는 영화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영화는 명확한 버디무비다. 레바논에서 납치된 외교관의 신호를 받고 그를 구출해서 돌아오면 미국지사로 발령을 내달란 외교관 민준(하정우)과, 레바논에 사는 어쩐지 사기꾼처럼 수상한 한국인 택시 기사 판수(주지훈). 두 남자가 납치 사건에 휘말리며 사람을 구하는 이야기. 감독은 "개인이 겪는 상황은 각각의 재난이고, 그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행위는 액션이다. 그들이 심리적으로 겪는 서스펜스와 스릴, 이를 지켜보는 우리는 유머로 느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감독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가지를 명심했다. "납치된 사람의 고통을 다루기보다, 구하러 가는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실제 당사자인 분은 마땅히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하시다가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수십 개월을 갇혀 있었다. 그분이 영화를 볼 때 고통이 상기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는 확고한 결심이었다. 그랬기에 영화의 방향성은 "구하러 가는 사람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고 "그러다 보니 액션과 유머에 집중이 많이 됐다. 진지한 이야기고 무거운 실화다. 하지만 볼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였고, 그렇다면 무거운 이야기를 장르영화적인 쾌감으로 소화하자"는 것이었다.  "최초의 시작은 실화고, 그 실화 안에는 사람이 있다. 이를 되새기려 했고 가장 중요했다"는 감독의 확고한 진심에서 진한 인간성이 엿보인다.  각각 감독의 전작 '터널', '킹덤'에서 함께 작업했던 하정우, 주지훈과 다시 만났다. 감독은 "제가 아내와 산지 24년이 다 돼 가는데, 하정우 주지훈은 제 기분을 같이 산 아내보다 더 잘 안다"며 너스레다. 이어 "두 사람은 나를 확장시키는 사람들이다. 제가 극한의 체험을 해야 하는 위기 상황에서 또 다시 누군가를 택하라면 자신 있게 두 사람을 택할 것"이라고 확신을 보였다.  영화는 레바논 베이루트의 생경한 이국적 정취가 가득 묻어난다. 실제론 모로코에서 총 127회 촬영 중 70회를 촬영했다. 개월 수로는 5개월에 달하는 분량이다. 코로나 팬데믹 절정의 시기라 입국 불가, 국경 폐쇄 등 쉽지 않은 여정을 거쳐 무산될 뻔 한 위기를 넘기며 모로코 현지 스태프 150명까지 동원돼 동거동락했다. 덕분에 이색적 자연환경과 풍광, 여기에 총격, 카체이싱 액션까지 리얼하고 다이나믹하게 완성할 수 있었다.  특히 김성훈 감독의 집념과 집요함은 화면 곳곳에 묻어난다. 한국에선 쉽게 볼 수 없는 가시거리, 넓고 밝은 시야와 광선, 현지 공기의 느낌과 빛, 분위기 등을 담아내기 위해 얼마나 사투를 벌였을지 감히 짐작할 수 있을만큼 아름답고 독보적인 영상미가 돋보인다.   일례로 감독의 첫 도전인 카체이스 신 비하인드만 들어봐도 그렇다. 분량 상으론 불과 몇 분 되지 않는 장면이지만, 밤에 벌어지는 카 체이싱 장면에 조명 없이 하늘과 땅이 다 살아 보이는 시원한 밤 장면을 담기 위해 해질녘 시간에 촬영했고 무려 14회 차에 걸쳐 완성했단 것이다. "사실 그 시간을 놓치면 그만큼 손해를 보게 되니 가성비는 떨어진다"고 멋쩍어한 감독은 "그럼에도 영화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관객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치는 다 해서 보여 드리고 싶었다"는 집념의 이유를 설명했다. 덧붙여 "우리 스태프, 현지 스태프 300명 모두가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냈다"고 그들의 노고에 진심 어린 감사를 전했다.  오히려 이토록 아름다운 자연과 공간의 배경을 담았기에 그곳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내전 상황과 살기 어린 추격전 등은 더욱 상반된 공포와 긴장을 부각한다. 매우 효과적인 선택이다. 특히 80년대 말 군사정권이 차츰 몰락해가던 시기, 그러나 아직도 도사리고 있는 팽배한 위압을 '외교관 구출 사건'을 전면에 내세워 은연중에 담아내고 있는 점도 탁월하다. 국가와 정부기관의 존재 가치, 그리고 인간의 가치까지 현시대와도 맞물리는 의미 깊은 메시지를 간직한 영화다.  "어쩌면 '터널'과 궤를 같이 하는 이야기다. 사람이, 생명이 중요하단 말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나. 하지만 그 기본적인 것이 가장 무시당하기 쉽다. 사람이 사람에게 서로 예의를 갖춰주면 좋을텐데 생각했고, 결국 신뢰로 엮어진 사람들이 서로를 구하는 이야기"라고 정의한 김성훈 감독이다.  그리고 개인의 감정적 연대 의식이 모여 좀 더 좋은 사회가 될 수 있겠단 희망을 꿈꾼다. 저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감독의 바람이 참 따스한 온기를 지녔다.    사진=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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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문' 김용화 감독이 그린 경이로운 우주, 그 본질 [인터뷰]

    감히 누구도 손댈 수 없던 방대한 원작의 웹툰을 영화화해 무려 시리즈로 쌍천만 관객이라는 전대미문의 역사를 쓴 김용화 감독의 배포는 남다르다. 아직까지 국내에선 불모지라 여겨지고, 흥행이 보장되지 않은 우주 SF '더 문'. 그가 그린 경이로운 우주 세계 이면에는 감독의 굳은 뚝심과 끈기가 있었다. 왜 달이었을까. 왜 또 이런 큰 도전을 감행했을까. 감독에게 영광을 안겨준 전작 '신과함께'는 동양의 사후세계 판타지를 신비롭게 구현하며 해외에서도 뜨거운 호평을 받았다. 기발하고 창의적인 한국형 판타지 세계를 구축하며 한국 영화의 기술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하지만 우주 SF로 세계에 도전장을 내기엔 너무 뒤처진 후발주자이며, 국내 시장만 놓고 보더라도 우주 SF 소재는 극히 드물거니와 성공 사례도 찾아볼 수 없다. 왜, 무모한 도전을 벌이는 걸까. 물론 김용화 감독의 지난 행보만 봐도 그의 강인한 뚝심과 집념을 알 수 있지만, '달'이란 소재는 실로 의문이었다.  감독은 "사실 저도 제가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든다. '신과함께' 하면서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야 하고, 이를 말이 되게 해야 하다 보니 좀 지쳤었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조금 더 밀접한 사람 이야기를 하지만, 소재는 제가 보고 싶었던 공간으로 무대를 옮겨서 해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외국 영화들이 좋은 선례가 많은 것, 국내에선 호불호가 있고 사실 리스크가 더 크다는 것 등은 누구보다 더 잘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가 변변치 않지만 그래도 이제는 해볼 때가 되지 않았나. 한국 영화도 이런 부분에 도전장을 내도 될 시기가 되지 않았나" 싶었다고.  이어 "며칠 전 세시간을 자고 집에서 나오는데 아내가 저를 쳐다보더니 '여보, 도전은 이제 그만'이라고 하더라. 사실 잘 모르겠다. 보시는 분들의 취향을 모두 맞출 수 없고, 제가 살아온 경험이 모든 사람을 대변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나름 제 삶에 열정을 다하고 살았다. 우주 이야기를 하더라도 우주란 소재를 가져왔지, 사람의 이야기를 한 것이라 심리적 부담은 없었다"고 털어놨다.  여기에 감독을 매료시킨 우주에 대한 동경은 또 있었다. 우연히 본 영상 속에 천문우주연구원 박사가 EBS 강의를 끝내고 한 질문을 받았다. '박사님은 인간과 갈등, 오해가 있고 미움이 생길때 어떻게 해결하세요?' 이에 박사는 "그 사람에게 소주 한 잔 하자 한 후 별이 막 쏟아지는 곳으로 가는 거다. 그 별과 밤하늘을 보면 절로 숭고해진다. 우주의 시점에서 보면 우리가 얼마나 마이크로 하겠나. 일전에 이런 일은 오해했다, 미안했다 할 수 있는 거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다"고 답했단다. 이를 보던 감독은 "그 얘길 듣는데 우주 소재 이야기가 떠오르더라. 개인의 트라우마가 됐든, 갈등이 됐든 우주를 배경으로 한 갈등 이야기는 색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달에 대한 모든 인간의 동경은 참으로 신묘하다. 이에 감독은 "지구인에게 달은 떼레야 뗄 수 없는, 인력이 적당히 작용해 지구를 끌고 당기는 별이자 위성이다. 지구인들은 달의 앞면만 보고 굉장히 로맨틱한 감정과 정서를 떠올리지만, 그 이면에 존재하는 공포의 섬찟함도 있다. 따듯함과 차가움, 안정된 느낌과 공포. 이런 아이러니를 다 가진 공간이라 영화적인 측면에서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신비로운 우주를 배경으로 공통분모의 상처가 있는 두 사람이 서로 교류하는 과정에서 상처가 회복되는, 용서와 구원의 이야기에 주안점을 둬 영화를 만들어간 김용화 감독이다.    실제 '더 문'은 스크린에 펼쳐지는 경이로운 우주 세계의 구현으로 시선을 사로잡지만, 그 본질은 달 탐사를 떠난 대한민국 우주 대원이 예기치 않은 사고로 달에서 조난을 당하고 지구의 사람들이 그를 무사귀환 시키기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드라마다. 생명을 향한 굳은 의지와 사명감, 간절함과 휴머니즘 등이 뜨거운 드라마를 이루고 칠흑같이 어두운 우주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것은 결국 인류애라는 것을 증명한다.  이에 "너무 거창하다"며 웃어보인 감독은 "그저 상처를 회복하는 이야기, 위로가 되는 이야기로 느껴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저도 위로받고 관객에도 위로를 줄 수 있는 영화", 이를 만드는 것이 겸손하게 영화인으로 취해야 할 자세가 아닐까 싶다고 속내를 드러낸 감독이다. 그 역시도 삶이 허무해짐을 느끼는 순간이 있었다. 좌절과 실패도 겪으며 상업영화감독으로서 숱한 트로피를 받으며 인정받은 순간. 문득 허무해서 눈물이 엄청났단다. 정말 열심히 살아왔지만, 무언가를 이루고 났을 때 오히려 모든 것이 허무해지는 순간. 하지만 감독은 그 찰나, 삶에서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일까를 생각했다. "지금의 기조를 더 유지해야겠지만, 삶은 이래저래 부조리함이 가득하고 제가 강조하지 않아도 세상에는 많은 좌절과 비극이 존재하기에 영화적으로 계속 위로를 받고 싶었고 위로해 주는 영화가 좋았다. 앞으로도 그런 키워드를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감독의 진심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다. 자신의 인생에 치열하게 사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 저 또한 그렇다. 하지만, 남아있는 1퍼센트의 휴머니즘과 인간성이 작게 발현될 때, 이는 더 큰 결과물이 되고 그런 감동의 순간들을 영화적으로 발현해내고 싶다는 생각이다.  관객의 평가와 잣대는 감독으로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역시 '더 문'에 대한 우려는 누구보다 잘 인지하고 있다. 때론 이런 막대한 예산과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영화가 버겁기도 하다. 그의 말로 "당장 내일이라도 안 하고 싶은" 정도란다. "사실 마음 고생이 많다. 한국 시장에서 아직도 이런 버짓의 영화는 쉬운 게 아니다. 배우와 소통하고 연기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편집을 끝내고 나면 또 기술적 이슈에 대처해야 하고 한계에 봉착할 때도 있다. 지뢰밭을 걷는 요소들이다. 비난 요소를 더 많이 가진 일을 하고 있는 거다. 많은 부분 상처를 받기도 한다. 기술적인 도전을 무모하게 계속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고.  좌절하는 순간들도 많지만, 그럼에도 그는 시각효과와 드라마를 접목한 이야기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소명이다. 포기하지 않는 집념과 도전에 대한 용기를 지닌 사람, 그 노고는 인정받아 마땅하다. 자부심을 가져도 좋지만 감독은 고개를 내젓는다. 다만, 함께 일한 배우들에게 듣는 말들이 큰 위로가 된단다. "배우들이 '연기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는 부분이 생겼다'고 말해주는 것도 감사하고, 결국 감독은 배우의 연기를 끌어내는 직업이다. 그런 부분에서 배우들과 이런 소통과 교감을 나눴다면 그건 감독으로서 성공한 것"이라고 확고한 연출관을 드러냈다.    사진=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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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수' 류승완, 스타 감독의 품격 [인터뷰]

    유쾌한 화술, 자만하지 않는 자의 여유와 깊이. 그리고 새로운 것에 대한 과감한 용기. 대중이 사랑하는 스타 감독 류승완의 품격이다. 지역 박물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70년대 해녀들이 밀수에 가담했다'는 자료 한 줄. 그리고, 미스테리 장르 잡지에서 줄곧 흥미로워했던 '부산 지역에서 벌어진 70년대 여성 밀수단 이야기'. 이 키워드는 '밀수'의 시작이다. 류승완 감독은 "해녀라는 직업군 자체가 전 세계적으로 몇 안 된다. 유럽 쪽에서는 남자들이 물질을 한다. 70년대 해녀 밀수단 얘기가 굉장히 흥미로워했던 차에 여성들이 바다를 배경으로 어떤 활극을 펼친다는 것이 참 새롭고 재밌는 시도일 것 같단 생각"에 '밀수'라는 거대한 판을 벌였다. '밀수'의 주무대는 군천이라는 가상의 어촌 마을이다. 감독이 주요 배경지를 가상의 도시로 설정한 것은 '짝패' 이후 처음이다. 이는 "가상 도시를 세운 건 장르의 세계라는 것을 말해주고, 이렇게 되면 더 익스트림하게 영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매혹됐던 영화적 요소들, 70년대 대중문화에 대한 기억, 음악과 패션 등의 밸런스를 자연스럽게 맞춰나가며 마치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할 듯한 장소를 구현해 냈다. 그리고 그토록 염원하던 김혜수, 염정아를 캐스팅하는 데 성공했다. 오래전부터 팬이었던 두 사람이 연기하는 것을 한 화면에 담아낼 수 있다니, 촬영하는 내내 흥분 상태였다고 팬심을 드러낸 감독은 "참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20여 년 전에 '피도눈물도없이'라는 두 여성 주인공이 활약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때도 배우의 조합을 생각했다. 일종의 버디 영화를 볼 때 조화가 중요하잖나. '밀수'에서 친구 관계의 두 사람이라고 설정했을 때 본능적으로 김혜수, 염정아가 떠올랐다. 제가 두 배우의 오랜 팬이기도 하고 의외로 두 배우가 동시에 나오는 작품이 없었다"고 했다. "마치 '히트'에서 드니로와 알파치노가 등장할 때 '이 두 사람이 처음 같이 연기한단 말이야?? 싶었던 마음 같다"고. 그랬기에 자신이 먼저 이 둘의 그림을 보고 싶단 욕심이 강해졌다. "연기라는 건 두 배우의 조화가 중요한데 김혜수 선배가 팔팔 끓는 용광로 같은 뜨거움을 지닌 불이면 정아 씨는 물 같았다. 극 중 춘자의 그래프가 왔다 갔다 하는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건 진숙이 내내 차갑게 쿨톤을 유지해 줬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이어 감독은 제가 감히 이들의 연기력을 논할 수 없다며, 이를 떠나 두 사람의 태도를 말하고 싶다며 수다 모드 발동이다. 이 정도면 '찐 팬심'이다. 감독은 "정말 이래서 사람들이 김혜수, 김혜수. 염정아, 염정아 하는구나를 알게 됐다. 너무나 팀워크를 잘 이끌어주고, 마치 두 사람의 주부 가요 교실 같은 분위기였다. 촬영 끝날 때까지 안 가고 서로 응원해주고, 현장에서 박수치고, 배우들 호흡이 정말 잘 맞았다. 누구 하나 기싸움을 벌이는 게 없었다. 두 사람이 진짜 이 영화 전체 현장의 분위기를 이끌어줬다"며 마르지 않는 칭찬과 감탄 세례였다. 이로 인해 그 또한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정말 특이했다. 촬영 끝나는 날 '아, 이 영화 안 끝났으면 좋겠다' 했다. 그런 적이 처음이었다. 전 현장이 항상 힘든 사람이다. 촬영 끝나고 숙소 오면 '왜 이렇게밖에 못했을까' 스스로 괴롭고 다음날 촬영을 준비하면서도 ''빠진 게 뭐지, 놓친게 뭐지'를 생각하느라 수면 장애에 시달렸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내가 관객들보다 더 즐거우면 안 되는데 정말 즐거웠다. 오랜 세월 같이 한 동료 스태프들과, 너무나 팀워크를 잘 이끌어준 배우들 덕분"이라고 고마움을 전한 감독이다. 물 공황 증상과 수영을 못하는 배우들이 완성한 수중 신 또한 감독에겐 그저 말 못 할 감동이었다. "배우들이 물 속에서 너무 아름답게 움직이더라. 첫 테스트하는 날 '와, 이거 됐다' 싶었다. 오히려 나중에 배우들이 수영을 못했고, 공황이 있다는 걸 알고 놀랐다. 그걸 알고 더 감격스러웠다. 정말 기가 막히게 움직여주고 배우들의 헌신 때문에 수중 촬영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 감동 덕분에 갈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유일무이한 해녀들의 수중 액션은 그야말로 진풍경이다. 워낙 장르 영화, 그리고 액션에 특화된 감독이 새롭게 도전한 수중 액션은 특유의 호쾌함이 묻어나고, 예상치 못한 수중 액션의 묘미까지 더해져 쾌적한 감상을 준다. 류 감독은 "영화를 할 때마다 비슷비슷한 걸 하는 것 같지만, 그 안에서도 재탕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항상 새로운 걸 하고 싶은데 이번엔 수중 액션을 보여 주겠다는 것보다 막연히 물속에서의 새로운 움직임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를테면 중력의 작용이 지상에서보다 덜할 때 나올 수 있는 움직임들이다. 남성이 지상에서 아무리 빠르고 강력한 힘을 가졌다 한들, 물속 상황은 다르기에 더 자유로울 수 있고 현실적인 동시에 판타지적인 액션이 완성되지 않을까, 이를 찾는 과정이었다고. "김희진 수영 코치와 싱크로나이즈 팀의 공이 굉장히 크다. 물 속에서 근접한 카메라의 움직임과 몸이 엉켜 움직이는 동선들의 가능성을 일일이 테스트했다. 할 수 있는 건, 해볼 수 있는 것들. 특히 극 중 진숙과 춘자가 물속에서 크로스를 하며 서로 올려주고 내려주는 장면은 원래 대본에선 하이파이브였다. 실제로 가능하다는 걸 제안해줬고 정말 멋진 동작이라 이를 사용했다"는 비하인드 설명도 흥미롭다. 류승완 감독은 "처음 하는 시도들이었기에 무모한 것도 있었지만 새로운 것을 계속 찾을 수 있게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자부했다. 또 공을 들인 것은 역시 류 감독의 주특기가 집대성한 지상 액션이다. 좁은 호텔 복도와 방을 오가며 펼쳐지는 떼거리 액션은 날것의 느낌을 강하게 발산하면서도 내밀하고 정교한 합으로 완벽한 타격감을 전달한다. 류승완 감독은 "장르의 세계 안에서 펼쳐지는 액션이기에 극한까지 가볼 수 있겠다 생각했다. 멋이 있는가, 없는가가 중요했다. 얼마나 격렬하고 멋있게,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여기에 의외성과 한 스푼의 유머가 첨가되면 더 좋다"고 설명했다. 해당 신은 긴박한 순간에 전혀 예상치 못한 조춘자 권상사의 의외의 멜로 감정이 포착돼 찰나의 여운이 상당하고 여기에 장도리의 '깐족거림' 유머가 하늘을 찌르는 등 온갖 고조된 감정의 소용돌이를 다채롭게 느낄 수 있다. 감독이 의도한 대로다. 류승완 감독은 "원래 두 사람의 '케미'는 대본에도 있었으나 이를 훨씬 더 풍부하게 만들어준 것이 배우들의 힘이다. 항상 예상을 벗어나는 지점들을 배우들이 완성해 줬고,, 음악의 효과도 컸다. 장도리가 혀를 내밀며 메롱을 할 때 정말 기가 막혔다"는 설명이다. "저 역시도 지금까지 많은 액션 장면을 찍어왔지만 스스로 만족도가 높은 장면"이라며 "액션 서스펜스가 유지되면서 관객을 어떠한 정서로 몰고 가는 것, 이를 배우들이 매력적으로 표현해 줘서 나름 자부하는 장면"이라고 만족한 감독이다. 내로라하는 대작들이 몰리는 여름 극장가 시기, 개봉 경쟁도 치열하다. 하지만 감독은 동생 류승범으로부터 "형, 재미있게 잘 찍었는데 왜 긴장을 해. 기다려봐"라는 든든한 응원을 받았다. 또 2년 전 영화 산업이 절망 그 자체였던 코로나 팬데믹 당시 '모가디슈' 개봉을 강행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그래, 그때보다 얼마나 더 나빠지겠나 싶다"며 호탕하게 웃어보인 감독이다. 여유있는 스타 감독의 '쿨함'. 폼난다.    사진=외유내강, NEW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