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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크리트 유토피아' 박서준, 평범함을 연기하는 것 [인터뷰]

    배우 박서준이 아비규환 속에서 아내를 지키며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고, 극한 생존 위기 속에 고민하고 갈등하는 인물로써 현실적인 공감대를 불어넣었다.  엄태화 감독의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 유일하게 남은 황궁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모든 것이 무너진 가운데 강추위까지 덮친 끔찍한 재난 상황 속, 황궁 아파트 602호 주민 민성(박서준)은 사랑하는 아내 명화(박보영)와 함께 생존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다.  전직 축구선수 캐릭터로 출연한 영화 '드림' 이후 바로 '콘크리트 유토피아' 촬영을 시작한 터라 박서준은 민성 역을 위해 7kg을 급히 감량했다. "영화 배경도 그렇고 민성의 직업이나 살아온 과정을 보면 집 한 채를 구해 행복한 가정을 꾸려 사는 게 목표이기에 취미로 웨이트 운동을 하기보단 아내와 함께 퇴근 후 보내는 일상을 중요하게 생각했을 것 같다. 외투를 입고 촬영해 바디 실루엣이 나오는 건 별로 없지만 제가 그런 상태가 돼야 할 것 같았다"는 이유에서다. 극에선 재난 이후 기후 변화로 강추위가 덮친 상황이지만, 실제론 더위와 맞서며 찍다 보니 체중을 감량한 상태에서 컨디션을 조절하는 게 육체적으로 빨리 지쳐 꽤 힘들었단 그다.  하지만 "세상에 안 힘든 일이 어딨겠냐"며 이내 너스레인 긍정의 박서준이다. 시나리오를 보며 어떻게 구현될지 궁금했던 영화 속 모습들이 완벽하게 구현된 완성본을 보며 "이 작품에 출연했다는 자체가 뿌듯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그가 느끼는 진짜 행복이다.  "영화 완성도가 정말 좋았다. 음악도 훌륭하고, 편집도 매끄럽고, 입김 하나하나 디테일이 살아있더라. 이런 작은 것들까지도 몰입에 방해되는 것이 전혀 없어 놀라웠다"는 그는 엄태화 감독의 전작 '가려진 시간'을 봤을 때도 느낀 디테일함과 섬세함이 그대로 묻어났다고 했다. 이어 "비주얼적인 부분이 관객에게도 현실적으로 다가가야 이질감없이 설정을 믿게 되는데, 감독님께서도 현실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다 보니 실제로 아파트 세트를 지을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세트를 지어서 연기하는데도 도움이 많이 됐다"고 했다.  오롯이 캐릭터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된 셈이다. 박서준이 맡은 민성은 한없이 다정한 남편이다. 어렵게 구해온 황도를 아내에게 먹여주며 그 아비규환 재난 상황 속에서도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하지만 의경 출신에 공무원이라는 직업으로 본의 아니게 주목을 받게 된 민성이 입주민 대표이자 권력의 정점 영탁(이병헌)에 의해 방범대 반장을 맡게 되고, 그의 리더십에 매료되며 점차 동화된다.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아내 명화와 생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권력과 시스템을 따라야 하는 민성의 고민과 갈등, 일련의 사건을 통해 점차 변해가는 캐릭터의 내면을 차분히 설득력 있게 그려낸 박서준이다.  그는 "민성은 가족이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본인의 가치관과 맞든 아니든간에 무조건 가족을 위한 선택을 한다. 좀 모질더라도 가족을 지키려면 이게 맞다고 판단했을 거다. 평소였다면 아내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주고, 아내의 선택에 더 손을 들어줬을 거다. 결국 마지막에 자신의 선택과 신념이 무너졌을 때, 후회되는 심정들. 그런 감정의 순간들을 매끄럽게 연결하기 위해 그 지점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했던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감독님께서 극의 구심점은 병헌 선배지만, 상황들이 보여주는 중심은 민성이 잡아줘야 한다고 하셨다. 저 역시도 튀거나 과하지 않게 노력하면서 캐릭터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연기를 하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이를테면 반상회에서 '공무원이니 한 마디 해보라'는 말에 매뉴얼을 알려줬을 때 '그런 건 나도 알겠다'고 말하는 주민의 말에 화는 나지만 어떻게 언짢지 않게 표현할 수 있을까 등에 대한 디테일이다.    박서준은 특히 이번 작품에서 평범한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어 더 좋았다고 했다. "그 전에도 평범함을 연기해야 했던 순간들이 있지만 결국 정의로워야 하고 사명감을 대변하는 역할들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 이번 역할은 조금 벗어난 느낌이 있었다"고.  평소 존경하던 선배 이병헌과 함께 연기한 것도 그에겐 소중한 기억이 됐다. "선배님과 같은 현장에서 서로 맡은 역할로 같이 호흡하며 연기할 수 있다는 게 즐거웠다.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고 작업하는 순간을 기다려왔고 그래서 더 즐기려 노력했다"는 그는 "선배님께 특정한 것을 배우기 위해 질문하기보단 그저 지켜봤다. 늘 유머러스하게 현장을 이끌어주시고 한컷한컷 다르게 연기하는 걸 보는 순간만으로도 소중했던 시간"이라는 소회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파트에 열광하는 현시대 사회적인 의미를 은유하지만, 생존자들의 광기를 통해 모든 것이 부질없고 허무한 것임을 말한다. 박서준은 "제게 소중한 것은 가족과 친구이고, 작품 활동할 때는 스태프와 동료들이다. 모든게 다 제 울타리가 되어준다.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이 집인 만큼 집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소중한 사람들이 함께 있어야 그 공간이 울타리가 되는 게 아닐까"라는 견해다.  어쩔 수 없는 생존을 이유로 민성이 행했던 모든 일들, 아마도 종국엔 너무 후회했을 것 같단 생각이다. "외부자들을 내쫓는 투표를 하는 것부터가 정말 잔인하단 느낌이었다. 무서웠다. 마지막 영화 대사에서 내가 어떤 집단에 있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많이 생각해 보게 되더라." 박서준은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다. 추운 설정 탓에 외투를 입고 촬영하기에 굳이 힘들게 감량하지 않아도 될 민성의 외형을 그토록 신경쓴 것만 봐도 그렇다. 스스로도 그런 성격이 싫고 피곤할 때가 있단다. 하지만 "준비가 안 돼 있으면 너무 불안하다. 민폐 끼치기도 너무 싫고, 이 불안함을 해소하려고 계속 노력하는 것"이란 그는 "처음엔 이런 성격이 싫었는데 지금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그냥 인정하고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잔 생각이다. 이 불안함이 저라는 인간을 만든 게 아닐까 싶고 앞으로도 계속 이래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고 했다. 덧붙여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여기서 받는 스트레스도 좋은 스트레스라고 생각한다. 하나하나 주어진 걸 열심히 즐기면서 하려고 노력한다"는 그였다.   사진=어썸이엔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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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공식작전' 하정우의 자부심과 성취감 [인터뷰]

    하정우가 전매특허 극한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인간미와 짠내 나는 유머를 발산한다. 익숙한 듯 다른 감상을 준다. 심층적인 인간 내면을 깊고 내밀하게 연기한 덕분이다.  김성훈 감독의 재난 블랙코미디 '터널'에서 생수 두 병과 케이크,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터널 속에서 나홀로 사투를 벌였던 하정우가 이번에도 김 감독을 만나 버라이어티 한 구조극에 뛰어든다. 이번엔 구하는 사람이다.  하정우가 연기한 외교관 이민준은 출세 코스와 거리가 먼 흙수저다. 중동과에서 5년째 근무 중이고 까마득한 후배가 먼저 미국 출세길에 오르자, 후배 자리에 수북이 쌓인 발령 축하 꽃다발에 살충제를 뿌려대며 질투심을 마구 발산해도 분이 안 풀린다. 그런 그가 레바논에서 실종된 지 20개월 만에 생존 소식을 알린 외교관의 신호를 받고 두뇌 회전을 한다. "이거 잘하면, 저 뉴욕 보내줘요."  미국 발령이란 조건을 걸고, 외교관을 구출하러 비공식 작전에 자원해 홀로 내전 중인 레바논으로 향한 배짱 좋고 다분히 속물적인 보편적 인간. 이같은 설정의 캐릭터만으로도 등장부터 소소한 웃음을 주는 하정우다. 그는 "처음엔 시나리오가 무거웠다"고 귀띔했다.  그가 말하길 외교관 납치 실화의 무게감이 전반에 깔린 시나리오였고, 당시 레바논의 내전 상황까지 전반부에 많은 설명이 돼 있었다. 또 납치된 서기관이 그동안 어떤 일을 당하고 고생을 감내했는지의 내용도 무거웠고, 각 인물의 서사도 각각 장황했다. 그럼에도 '비공식작전'을 택한 것은 김성훈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이 신뢰는 '터널'에서 비롯됐다. 원작 소설이 영화적 소재로 쓰기엔 정말 비극적이라 상업영화를 하기엔 분명한 약점이 있었다. 그때 감독님이 각색 작업을 하는 걸 보며 터널에 갇혀 별 할 일 없는 상황인데 그 안에서 영화적 재미, 작은 드라마, 캐릭터의 움직임을 찾아내고 확장하며 만들어가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는 그는 "'비공식작전'도 우리가 힘을 합치면 충분히 해낼 수 있겠단 생각으로 다양한 의견을 나눴고, 심플한 이야기 라인으로 시작해 많은 영화적 요소와 표현들을 넣는 작업을 거쳐 지금의 작품으로 완성됐다"고 설명했다. "좋은 의미로 관람하기 편해지고, 또렷해졌구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물론 실화의 무게감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기간 캐릭터 톤 앤 매너 잡는 게 어려웠다. 그렇다고 해서 실화의 무게감에 갇혀 버리면 우리가 이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목표점, 상업영화로서의 미덕인 재미와 감동을 주는 것이 어려워진다. 이 부담감을 떨치기 위해 감독님과 얘기를 나눴고 '터널'이 소환됐다"는 그는 "'터널'에 사람이 갇혔고 당장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도 눈물만 흘리거나 고통만 받다 끝나지 않는다. 김성훈 감독의 삶의 태도는 그 와중에서도 낭만을 찾으려는 모습에 있다. 살기 위해 여유를 갖고 숨을 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뢰하는 감독 덕분에 확신이 생긴 하정우는 비로소 무게감을 벗어났고, 이민준 캐릭터는 능청스럽게 살아 숨쉬기 시작했다.  특히 민준과 판수가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누는 신부터 자유로워졌단 설명이다. "처음 시나리오는 단면적이었다. 굉장히 사무적인 공무원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관객은 두 주연 배우가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있을 거였다. 그때 무엇을 보고 싶어 할까 생각했다. 이전까지 무게감에 위축되고 부담스러워했는데 감독님이 '지금 상황에만 집중해서 양아치 같은 택시기사 사기꾼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 생각해 봅시다' 했다. 저를 대입하며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톤 앤 매너를 확실히 잡아갔던 것 같다"고.    출세를 목표로 온갖 능청과 잔꾀를 부리던 민준이 레바논에서 온갖 위기를 겪으며 소동에 휘말리다, 비로소 현실을 자각하며 생존과 구출을 목표로 진지한 자세가 될 때 인물의 미묘한 변화도 퍽 인상깊다. 이에 하정우는 "동료가 납치돼 협상하러 가는 마당에 아무리 그래도 미국으로 보내달라 하는 자체가 어떻게 보면 비인간적이다. 이를 협상가로 볼 수 있고 욕망 있는 사람이구나 할 수 있다. 처음엔 그런 감정으로 시작했다. 정작 이 사건에 관심이 없고 좋은 나라와 도시에 가서 사는 것만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쉽게 끝날 줄 알았던 일에 여러 난관을 만나 헤쳐나가다가 오 서기관님을 트렁크에서 발견했을 때 민준은 크게 깨달았던 것 같다. 내가 쉽게 생각한 와중에 이 사람은 20개월 동안 엄청난 시간을 버텨왔구나. 그때부터 감정이 차분해지고, 그 안에서 내적 성장을 이뤄낸 게 아닐까." 그렇기에 이 포인트를 염두하고 연기했다는 설명이다. 익숙한 모습이면서도 또 새로운 감상을 주는 건 그래서다.  하정우는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했다. 마치 장을 담그듯 오랜 시간 시나리오 작업을 거치고 캐릭터를 고민했다고. 그의 자부심은 자만의 발현이 아니다. 레바논의 실감나는 풍광을 담기 위해 5개월간 지속된 모로코 로케이션은 고된 만큼 보람찬 것이었다. 하정우는 당시를 회상하며 "잔인한 재미를 느꼈다"고 표현했다. 작위적인 화면을 지양하기 위해 해가 뜨길 혹은 저물길, 구름이 걷히길 기다리는 시간 오히려 낭만을 느끼기도 했다. "모든 장면이 감독님과 스태프의 피와 땀이 들어갔다. 모두가 해를 기다리는 게 일상이 됐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모든 스태프들이 한 명도 짜증을 내지 않고 똑같이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는데 너무 감동적이었다. 이 하늘을 담기 위해 모두가 하늘을 바라보는 장면, 그 자체가 영화 같았다.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는 인상적인 순간"이다.  '비공식작전'은 액션과 유머, 재미와 감동까지 상업영화의 덕목을 충실히 따른다. 그러면서 시대적 상황적 비극 속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휴머니즘이란 메시지를 갖춘다. 하정우는 "감독님의 시선인 것 같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었으면 하는 감독님의 바람이 담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믿음이 있는 김성훈 감독과 만나 한땀 한땀 이뤄낸 '비공식작전'은 그에게 뜨거운 성취감을 안겼다. 그는 그 마음이 잘 전달되길 바란단 진심을 전했다. 진심은 언제나 통하기 마련이다.    사진=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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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공식작전' 주지훈의 타고난 재치 [인터뷰]

    능청스럽고 뻔뻔스러운데도 도무지 밉질 않고 도리어 매력적인 인물, 주지훈의 전매특허 캐릭터 아닐까 싶다. 다시 만난 김성훈 감독의 신작 '비공식작전'에서 제 장기를 십분 발휘한 주지훈이다. 최초 한국인 외교관 피랍 사건을 모티브로 완성된 '비공식작전'은 말 그대로 어떤 도움 없이 비공식으로 사람을 구해야 하는 사람들의 위험천만한 구출 작전을 그린 이야기다. 주지훈이 연기한 판수는 의도치 않게 얼떨결에 '구하는 사람'이 된 레바논 현지 유일하게 남은 한국인 택시기사다. 현지인도 쓰지 않는 전통 모자에 눈에 띄는 화려한 옷차림으로 공항에서 호객 행위를 하는 판수의 첫 등장, 그 특유의 능청&껄렁스러움 때문인지 사기꾼 냄새가 절로 가득 풍긴다. 주지훈은 "판수의 전사가 대사로도 간단히 나오는데 월남전 갔다 한국에 들어가서 뭐 사고를 쳤을 것 같다. 의도한 게 아니라, 무지에서 나온 잘못이 아닐까. 예를 들면 나는 믿었던 회사에 취직했는데 다단계 회사였고 나쁘단 생각을 못하고 물건을 팔기 시작하면 잘못이 되는? 그런 범죄를 저지르고 가진 돈 다 잃고 해외 전전하며 살다 레바논에서 자리 잡은 택시기사"란 설정이었단다. 그는 판수 캐릭터를 "손님에게 '굿럭'이란 시그니처 동전을 줄 정도로 호객 행위를 잘하고, 생활력 강하고 열심히 사는" 인물로 봤다. "촬영 당시 몸도 일부러 좀 키웠다. 문명화된 사회 살고 있지만 여전히 인간은 동물적이지 않나. 위협을 느끼면 상대보다 더 거대하게 몸집을 부풀리고 힘을 과시하려고 하는 성향들이 남아있을 것 같다. 시대상도 보면 80년대 후반이다. 다른 인종을 봤을 때 서로 두려워하고 이질감이 생길거다. 판수도 그곳에서 생존하기 위해 지지 않으려고 몸을 키웠을 것 같다"는 설명이다. 멋진 몸을 만드는게 아니라 사이즈를 키우는데 주력한 운동을 한 탓에 촬영하는 동안 갈수록 몸이 커졌다는 설명도 덧붙인 그는 "영화적으로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지만, 배우로서 저의 디테일"이었다고 했다. 이름 감독 또한 재밌겠다며 받아들여줬다고. 주지훈의 연기 디테일은 곳곳에 살아난다. 대표적으로 사기꾼 같지만 미워할 수 없는 매력과 연민을 갖춘 캐릭터의 구현이 그렇다. 그는 "제가 살아온 삶에 빗대 연기했다. 이를테면 제가 어릴 때는 동네 아이들이 다 뛰놀다가 저녁 먹을 시간에도 혼자 있으면 '얘, 이리와, 밥 먹고 가'하는 시대였다. 지금이라면 '아니, 왜 우리 애한테? 야라고 하지 마세요'' 이랬을 거다"라고 실감 나는 연기를 곁들여 웃음을 유발했다. "요즘은 선의라고 해도 시대가 변했기에 받아들이는 상대에 따라 질타를 받을 수 있다. 80년대 후반의 시대상, 친구가 없어도 친구 집에 들어가서 수박을 꺼내 숟가락으로 퍼먹어도 오히려 친구 엄마가 '많이 먹어라' 했던 그 시절의 윤리와 도덕의 분위기를 담으려 했다"는 찰진 비유다. 이어 "캐릭터 분석할 때 판수가 나쁜 사람이라 생각지 않았고, 판수가 하는 행동들이 너무 못돼 보이지 않게 나름의 이유를 찾아 연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름의 정당성을 줄거라고 믿었다"며 "물론 돈을 훔친 건 나쁜 짓이지만, 이내 반성하고 다시 돌려주려 물병과 돈가방을 들고 찾아간다"고 못 말리는 판수를 웃으며 두둔했다. 감독 역시, 주지훈에게 바란 점이다. 어떤 경우도 재치 있고 유머러스하게 상황을 만드는 그가 약간의 사기꾼 기질이 있는 판수 역할을 했을 때도 동정과 연민으로 관객의 마음을 얻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해줄 거라 믿은 것이다. 믿음에 부응한 주지훈의 판수 연기는 능청스러움과 약간의 '하찮음', 그리고 하정우와 오랜 '케미'로 쌓은 '동생미'까지 발현되며 입체적인 캐릭터로 살아났다. 특히 뻔뻔하게 민준의 달러를 뜯어내고, 형님 소리를 들으며 만족해하는 판수의 모습은 유머와 귀여움의 극치다. 주지훈은 이미 '신과함께'에서도 검증된 하정우와의 호흡에 대해 "형은 워낙 개인적으로도 자주 만나고 여행도 잘 다니고 그래서 '뉴'라는 느낌은 전혀 없지만"이란 익살과 함께 "'신과함께'와 '비공식작전'의 장르성이 다르지 않나. 예를 들어 제가 지금 입은 옷을 며칠 뒤 다시 입었을 때, 비 오는 날 입은 느낌과 맑고 쨍한 날 입은 느낌이 다르듯 장르도 다르고 이야기도 다른데 우리를 바라보는 연출가의 시선이 같은 걸 요구하진 않을 거란 생각에 부담은 없었다"고 또다시 찰진 비유로 설명했다.   주지훈을 '비공식작전'으로 이끈 또 다른 이유는 김성훈 감독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다. "저는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감독님과 함께 촬영하면 몸은 고생하는데 정서적으론 편하다"는 그는 "정말 좋아하는 감독님이고 동경하는 영화인이다. 매번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지?'란 생각을 하게 한다. 인서트 하나도 허투로 안 쓰신다. 정말 동경하고, 언젠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선망의 대상"이라고 애정과 존경을 표했다. 특히 3개월, 21회차에 걸쳐 모로코에서 찍은 카체이싱 액션은 "감독님의 집착과 영화에 대한 애정이 켜켜이 쌓여 나온 멋진 신"이라고 감탄했다. "87년도 상황에 가뜩이나 우리가 민간인으로 나오다보니 서스펜스를 줄 수 있는 장치가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차가 빠르길 하나, 정말 두려워하고 무서워서 빨리 도망가야 한다는 것 밖에 없는데 8분이란 긴 시퀀스를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심정이 요동치고 카체이싱이란 장르적 쾌감을 느끼게 하는 거다. 원래도 감독님을 신뢰하지만, 그 신을 보면서는 정말 박수를 쳤다"고. "87년 배경이라 옛날 작품 같지만 촬영 기법이나 배우들의 연기는 전혀 올드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강점이라고 생각한다"고 영화에 대한 아낌없는 애정을 드러낸다. 또한 작품이 담은 메시지에도 감탄한 그는 "처음에 찍을 땐 대본을 보고도 캐릭터가 잘 보이게 쓰여 있어서 여기에 집중해 연기하느라 몰랐는데 영화를 보며 놀랐다. 캐릭터 무비같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니 인물 중심 영화가 아니라 국가와 국가 간의 이야기, 정치적 시대상도 들어있고 단순한 것이 아니라 큰 이야기가 담긴, 이야기가 주인공이구나. 그래서 더 생각이 많아졌다"고 했다. 특유의 캐릭터성과 매력으로 이젠 엄연히 '믿고 보는' 배우가 된 지 오래인 주지훈이다. 특히 재치 있는 화술에 담긴 연기에 대한 애정의 깊이가 참 깊다. 그는 얼떨결에 연기를 시작하게 됐을 때, 연기에 부족함이 많아 무섭고 창피하기도 했단다. 그래서 '쪽팔리긴 싫다'는 마음에 무조건 공부하자며 미친 듯이 작품을 봤다. 보다보니 맛을 알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재미도 느꼈다. 나이를 먹고 인생이 쌓이고 작품도 쌓이다 보니,, 모든 작품엔 미덕이 있고 대본을 해석하거나 상대 배우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도 꽤 넓어진 것 같아 좋고 재밌다고. "다행히 저는 행운아라 멋진 역할도 많이 맡았고, 곤궁에 몰린 역할도 받고, 이렇게 다양하게 연기할 수 있는 게 연기하는 사람으로선 재밌다. 너무 신난다. 여전히 연기는 재밌고 굉장한 호기심을 준다. 어릴때 밖에서 땡볕에도 축구를 6시간씩 하고 그런 적이 있다. 육체적으론 힘들어도 얼마나 즐거우면 그렇게 뛰놀겠나. 제가 연기란 그런 개념인 것 같다." 재미를 만끽하는 주지훈의 여유가 보기 좋다.   사진=쇼박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