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식작전' 주지훈의 타고난 재치 [인터뷰]
능청스럽고 뻔뻔스러운데도 도무지 밉질 않고 도리어 매력적인 인물, 주지훈의 전매특허 캐릭터 아닐까 싶다. 다시 만난 김성훈 감독의 신작 '비공식작전'에서 제 장기를 십분 발휘한 주지훈이다.
최초 한국인 외교관 피랍 사건을 모티브로 완성된 '비공식작전'은 말 그대로 어떤 도움 없이 비공식으로 사람을 구해야 하는 사람들의 위험천만한 구출 작전을 그린 이야기다. 주지훈이 연기한 판수는 의도치 않게 얼떨결에 '구하는 사람'이 된 레바논 현지 유일하게 남은 한국인 택시기사다. 현지인도 쓰지 않는 전통 모자에 눈에 띄는 화려한 옷차림으로 공항에서 호객 행위를 하는 판수의 첫 등장, 그 특유의 능청&껄렁스러움 때문인지 사기꾼 냄새가 절로 가득 풍긴다. 주지훈은 "판수의 전사가 대사로도 간단히 나오는데 월남전 갔다 한국에 들어가서 뭐 사고를 쳤을 것 같다. 의도한 게 아니라, 무지에서 나온 잘못이 아닐까. 예를 들면 나는 믿었던 회사에 취직했는데 다단계 회사였고 나쁘단 생각을 못하고 물건을 팔기 시작하면 잘못이 되는? 그런 범죄를 저지르고 가진 돈 다 잃고 해외 전전하며 살다 레바논에서 자리 잡은 택시기사"란 설정이었단다.
그는 판수 캐릭터를 "손님에게 '굿럭'이란 시그니처 동전을 줄 정도로 호객 행위를 잘하고, 생활력 강하고 열심히 사는" 인물로 봤다. "촬영 당시 몸도 일부러 좀 키웠다. 문명화된 사회 살고 있지만 여전히 인간은 동물적이지 않나. 위협을 느끼면 상대보다 더 거대하게 몸집을 부풀리고 힘을 과시하려고 하는 성향들이 남아있을 것 같다. 시대상도 보면 80년대 후반이다. 다른 인종을 봤을 때 서로 두려워하고 이질감이 생길거다. 판수도 그곳에서 생존하기 위해 지지 않으려고 몸을 키웠을 것 같다"는 설명이다. 멋진 몸을 만드는게 아니라 사이즈를 키우는데 주력한 운동을 한 탓에 촬영하는 동안 갈수록 몸이 커졌다는 설명도 덧붙인 그는 "영화적으로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지만, 배우로서 저의 디테일"이었다고 했다. 이름 감독 또한 재밌겠다며 받아들여줬다고.
주지훈의 연기 디테일은 곳곳에 살아난다. 대표적으로 사기꾼 같지만 미워할 수 없는 매력과 연민을 갖춘 캐릭터의 구현이 그렇다. 그는 "제가 살아온 삶에 빗대 연기했다. 이를테면 제가 어릴 때는 동네 아이들이 다 뛰놀다가 저녁 먹을 시간에도 혼자 있으면 '얘, 이리와, 밥 먹고 가'하는 시대였다. 지금이라면 '아니, 왜 우리 애한테? 야라고 하지 마세요'' 이랬을 거다"라고 실감 나는 연기를 곁들여 웃음을 유발했다. "요즘은 선의라고 해도 시대가 변했기에 받아들이는 상대에 따라 질타를 받을 수 있다. 80년대 후반의 시대상, 친구가 없어도 친구 집에 들어가서 수박을 꺼내 숟가락으로 퍼먹어도 오히려 친구 엄마가 '많이 먹어라' 했던 그 시절의 윤리와 도덕의 분위기를 담으려 했다"는 찰진 비유다. 이어 "캐릭터 분석할 때 판수가 나쁜 사람이라 생각지 않았고, 판수가 하는 행동들이 너무 못돼 보이지 않게 나름의 이유를 찾아 연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름의 정당성을 줄거라고 믿었다"며 "물론 돈을 훔친 건 나쁜 짓이지만, 이내 반성하고 다시 돌려주려 물병과 돈가방을 들고 찾아간다"고 못 말리는 판수를 웃으며 두둔했다.
감독 역시, 주지훈에게 바란 점이다. 어떤 경우도 재치 있고 유머러스하게 상황을 만드는 그가 약간의 사기꾼 기질이 있는 판수 역할을 했을 때도 동정과 연민으로 관객의 마음을 얻어내는 데 큰 역할을 해줄 거라 믿은 것이다. 믿음에 부응한 주지훈의 판수 연기는 능청스러움과 약간의 '하찮음', 그리고 하정우와 오랜 '케미'로 쌓은 '동생미'까지 발현되며 입체적인 캐릭터로 살아났다.
특히 뻔뻔하게 민준의 달러를 뜯어내고, 형님 소리를 들으며 만족해하는 판수의 모습은 유머와 귀여움의 극치다. 주지훈은 이미 '신과함께'에서도 검증된 하정우와의 호흡에 대해 "형은 워낙 개인적으로도 자주 만나고 여행도 잘 다니고 그래서 '뉴'라는 느낌은 전혀 없지만"이란 익살과 함께 "'신과함께'와 '비공식작전'의 장르성이 다르지 않나. 예를 들어 제가 지금 입은 옷을 며칠 뒤 다시 입었을 때, 비 오는 날 입은 느낌과 맑고 쨍한 날 입은 느낌이 다르듯 장르도 다르고 이야기도 다른데 우리를 바라보는 연출가의 시선이 같은 걸 요구하진 않을 거란 생각에 부담은 없었다"고 또다시 찰진 비유로 설명했다.
주지훈을 '비공식작전'으로 이끈 또 다른 이유는 김성훈 감독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다. "저는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감독님과 함께 촬영하면 몸은 고생하는데 정서적으론 편하다"는 그는 "정말 좋아하는 감독님이고 동경하는 영화인이다. 매번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지?'란 생각을 하게 한다. 인서트 하나도 허투로 안 쓰신다. 정말 동경하고, 언젠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선망의 대상"이라고 애정과 존경을 표했다.
특히 3개월, 21회차에 걸쳐 모로코에서 찍은 카체이싱 액션은 "감독님의 집착과 영화에 대한 애정이 켜켜이 쌓여 나온 멋진 신"이라고 감탄했다. "87년도 상황에 가뜩이나 우리가 민간인으로 나오다보니 서스펜스를 줄 수 있는 장치가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차가 빠르길 하나, 정말 두려워하고 무서워서 빨리 도망가야 한다는 것 밖에 없는데 8분이란 긴 시퀀스를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심정이 요동치고 카체이싱이란 장르적 쾌감을 느끼게 하는 거다. 원래도 감독님을 신뢰하지만, 그 신을 보면서는 정말 박수를 쳤다"고. "87년 배경이라 옛날 작품 같지만 촬영 기법이나 배우들의 연기는 전혀 올드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강점이라고 생각한다"고 영화에 대한 아낌없는 애정을 드러낸다. 또한 작품이 담은 메시지에도 감탄한 그는 "처음에 찍을 땐 대본을 보고도 캐릭터가 잘 보이게 쓰여 있어서 여기에 집중해 연기하느라 몰랐는데 영화를 보며 놀랐다. 캐릭터 무비같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니 인물 중심 영화가 아니라 국가와 국가 간의 이야기, 정치적 시대상도 들어있고 단순한 것이 아니라 큰 이야기가 담긴, 이야기가 주인공이구나. 그래서 더 생각이 많아졌다"고 했다.
특유의 캐릭터성과 매력으로 이젠 엄연히 '믿고 보는' 배우가 된 지 오래인 주지훈이다. 특히 재치 있는 화술에 담긴 연기에 대한 애정의 깊이가 참 깊다. 그는 얼떨결에 연기를 시작하게 됐을 때, 연기에 부족함이 많아 무섭고 창피하기도 했단다. 그래서 '쪽팔리긴 싫다'는 마음에 무조건 공부하자며 미친 듯이 작품을 봤다. 보다보니 맛을 알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재미도 느꼈다. 나이를 먹고 인생이 쌓이고 작품도 쌓이다 보니,, 모든 작품엔 미덕이 있고 대본을 해석하거나 상대 배우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도 꽤 넓어진 것 같아 좋고 재밌다고. "다행히 저는 행운아라 멋진 역할도 많이 맡았고, 곤궁에 몰린 역할도 받고, 이렇게 다양하게 연기할 수 있는 게 연기하는 사람으로선 재밌다. 너무 신난다. 여전히 연기는 재밌고 굉장한 호기심을 준다. 어릴때 밖에서 땡볕에도 축구를 6시간씩 하고 그런 적이 있다. 육체적으론 힘들어도 얼마나 즐거우면 그렇게 뛰놀겠나. 제가 연기란 그런 개념인 것 같다." 재미를 만끽하는 주지훈의 여유가 보기 좋다.
사진=쇼박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