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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유토피아' 완벽한 디스토피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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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3-08-09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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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을 집어삼킨 대지진으로 모든 것이 폐허가 됐지만, 유일하게 끄떡없는 건물 황궁아파트.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 비현실적이며 독창적인 설정을 기발하게 풀어내며 세기말 상황의 다양한 인간군상을 통해 '웃픈' 현실과 공감대를 선사하는 영화다. 


과거 살 곳이 없어지었다는 아파트는 현재 자산의 격차를 극명히 드러내는 지표가 됐다. '아파트 팔면 난민 된다'는 말이 실감 날 만큼 아파트를 향한 과열 현상과 수십억 단위로 급등하는 미친 집값은 현시대 가장 심각한 사회 현상이기도 하다. 


영화는 시작부터 그런 아파트를 비롯한 모든 세상을 과감하게 때려부순다. 모든 걸 순식간에 폐허로 만든다. 오래되고 낡은 아파트지만, 유일하게 살아남은 황궁 아파트는 생존자들에게 꿈과 선망의 보금자리다. 


이상기온으로 강추위까지 덮치자 살아남은 사람들은 황궁 아파트를 찾아오고, 아파트 입주민들은 이들의 존재가 거대한 위협이다. 나름 민주적인 절차를 밟아 입주민 대표를 세우고, 투표를 통해 아파트를 침범하는 생존자 무리를 내쫓고 아파트 주민만을 위한 생존 규칙을 세운다. 


덕분에 지옥같은 바깥세상과는 달리 주민들에겐 더없이 안전하고 평화로운 유토피아가 된 황궁 아파트. 수확에 크게 성공한 날은 아파트 잔치를 벌일 정도다. 


하지만 끝없는 생존 위기 속, 각각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이 벌이는 예기치 못한 갈등과 밖의 생존자 무리들의 위협까지 더해지며 파국을 향해 치닫는 '콘크리트 유토피아'다. 


제목부터 기가 막힌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재난 상황을 토대로 하지만, 차츰 커져가는 입주민들의 욕망과 집단 이기주의를 통해 현 사회를 고스란히 담아내며 씁쓸한 감상을 준다. 입주민이 아닌 자들을 철저하게 배척하고 "아파트는 주민의 것"을 외치는 모습은 지극히 블랙 코미디이면서도 스릴러적인 불안감이 도사리는 이유는 이처럼 내재된 리얼리티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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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인 입주민 대표 영탁(이병헌)은 초반 아파트 화재 진압을 하는 모습에서 주민들의 신임을 받아 입주민 대표란 직책을 얻고 점차 권력의 맛에 휩싸이는 인물이다. 이병헌은 영탁의 변화를 디테일하고 치밀한 감정선으로 표현해 내고, 후반 완벽히 변모한 그의 표정은 살벌한 광기로 뒤덮여 몹시 인상적이다. 가족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민성(박서준)은, 모든 것이 무너진 현실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는 아내 명화(박보영)를 보며 안타까워하고 고민하며 갈등한다. 아파트 부녀회장 금애(김선영)는 적극적이고 현실적인 인물이다. 


이밖에도 황궁 아파트 규칙을 거스르는 비협조적인 주민, '밖'에서 살아 돌아와 위기를 야기하는 생존자, 기여도에 따른 배급 차등 분배에 불만을 터놓는 주민 등 생존이 걸린 극한의 상황 속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담아내며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또한 관객의 입장에서 다양하게 생각할 여지를 준다. 집단 의식을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 '내'가 살아남기 위해 권력을 따르고 이기심과 비도덕적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모두'가 살아남기 위한 희망과 바람을 꿈꾸는 신념의 사람들까지. 


생존을 위해 서로 다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이로 인해 야기되는 갈등은 씁쓸한 유머와 더불어 사실적인 공포감을 선사한다. 재난이 장기화됨에 따라 더욱 거칠어지고 심리적 핍박을 받는 인물들의 외양마저도 리얼하게 구현해 낸 점이 볼거리다. 


클라이맥스로 치달은 영화는 결국 부질없는 '콘크리트 유토피아' 세계마저 철저히 무너뜨리고, 그 허무한 공포감이 몰려든 끝에는 꽤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진정한 '유토피아'의 의미,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의 행복을 일깨운다. 


비현실적인 설정을 완벽한 완성도로 구현해내고, 오히려 사실적인 현 사회 현상을 엿보게 하며 강렬한 여운을 배가시키는 '콘크리트 유토피아'다. 독창적 상상력과 섬세한 연출로 호평을 받았던 전작 '잉투기' '가려진 시간'을 잇는 엄태화 감독의 잘 만든 수작이다. 아파트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강렬하고 밀도 높은 재난 드라마를 통해 삶의 진한 페이소스를 전한다. 절망과 허무를 딛고 곱씹게 되는 일말의 희망, 그 여운이 퍽 오래 감돈다.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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