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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비' 적나라하게 꿰뚫는 감춰진 진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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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3-03-0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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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영화적인 이야기의 끝은 지독한 절망과 낭패감이 감돈다. 적나라하게 그려낸 추악한 인간 본성과 권력의 본질이 무섭고 아프다. 영화 '대외비'(감독 이원태)다. 


빽도 족보도 없이 뚝심 하나로 20년을 정치판에서 구른 해웅(조진웅)은 밑바닥 정치 인생을 끝내고 국회의원이 되고 싶은 열망에 가득 차 있다. 1992년, 현행 헌법 사상 처음으로 총선과 대선이 같은 해에 치러지던 해. 드디어 기회를 잡았고 공천도 약속 됐다. 해운대 공천은 따놓은 당상이다. 재개발 구역 주민들에게 함께 끝까지 맞서 싸우자며 호기롭게 외치는 그는 제법 넉살도 좋고, 적당한 허세도 있다. 나름의 정의감과 사명도 있다. 하지만 부산 해운대구 개발 사업으로 특혜와 이권을 노리며 정치적으로도 이를 이용하는 이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해웅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부산의 숨은 권력 실세 순태(이성민)가 움직이고, '그들' 입맛에 맞게 정치판을 요리한다. 결국 해웅은 당내에서 버려져 공천에 탈락하고 정치 자금도 쪼들려 궁지에 몰린다. 그러나 악으로 깡으로 맞서는 해웅은 해운대 재개발 계획이 담긴 대외비 문서를 손에 쥐고 조폭 필도(김무열)의 돈과 힘을 빌려 무소속으로 출마하고 숨은 권력 실세라는 거대한 힘을 무너뜨릴 판을 짠다. 


영화 '대외비'는 정치인, 조폭, 숨은 권력이란 세 인물을 주축으로 맞물리며 권력의 추악한 속성과 이를 마주한 인간의 민낯과 욕망의 꿈틀거림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극의 중심이 되는 세 인물은 보편적이면서도 지극히 사실적인 묘사로 익숙한 듯 낯선 느낌을 준다. 이를테면 좌절을 거듭하면서도 거대 권력에 맞서 부딪히며 싸우는 캐릭터는 익숙하다. 하지만 영화는 이 단선적인 캐릭터의 깊은 폐부를 파고든다. 그런 면에서 해웅은 영화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가장 상징적인 인물이다. 초반 나름의 순수한 정의감을 가진 해웅이 부조리에 맞서는 것은 직업의식일 수 있고 도덕성의 발현일 수 있다. 이처럼 보편적이면서도 영화적인 캐릭터인 해웅의 서사는 익숙한 호감과 응원을 부른다. 하지만 서사가 계속될수록 숨 막히는 압박이 거듭되며 결국 해웅은 스스로 나락으로 떨어진다. 영화는 권력의 힘과 욕망이라는 환경적 요인에 무너져 본질적인 정당성을 잃고 타락한 인물을 안타깝고 지독하게 사실대로 묘사한다. 


그렇기에 영화는 조금도 통쾌하지 않다. 정치판을 배경으로 한 범죄 드라마에 으례히 기대하게 되는 쾌감과 희망이란 키워드는 모두 배제됐다. 선거 투표함 조작, 불법 안마 도박장에서 은밀하게 벌어지는 상납 접대, 심지어 살인 사주까지 온갖 부정부패가 끓어 넘치지만 맞설 길도, 막을 길도 없다. 그만큼 숨은 권력의 보이지 않는 힘이 너무 막강하다. 결국 그 끝은 지독한 절망과 낭패감으로 가득해, 가슴이 서늘해질 정도다. 


가장 영화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인물과 사건들은 이처럼 불편한 기시감과 낯선 공포를 동시에 자아낸다. 그 여파가 무섭도록 세고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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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전' '법쩐' 등의 전작들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는 다양한 방식과 인물을 통해 짜릿한 쾌감과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던 이원태 감독은, 이번만큼은 작정하고 냉정하다. 권력과 욕망의 속성을 날카롭고 적나라하게 파고들며 도리어 관객의 사유를 이끌어낸다. 드러나지 않고 검은 물 밑에 가라앉은 무수히 많은 사회적 병폐와 만악, 대중이 눈치채지 못한 불편한 진실을 밝히기 위한 감독의 의도가 '대외비'란 제목에 버젓이 담겼다.  


영화의 영제는 더욱 직접적이고 사실적인 'The Devil's Deal'(악마의 거래)다. 악마의 거래를 두고 가치 있는 판단을 내리는 건 결국 관객의 몫이다. 


조진웅, 이성민의 합이 매우 좋다. 특히 조진웅은 공천 탈락 이후 순태를 찾아가 무릎 꿇는 순간 순수한 희망이 사라진 남자의 좌절과 절망감, 악에 받친 울분을 대사 한 마디 없이 울그락불그락한 얼굴과 숨결로 표현한다. 이밖에도 얼굴을 절묘하게 타고 흐르는 식은땀으로 절대 권력의 공포에 압도된 인물의 심리를 표현한 지점은 그저 감탄을 부른다. 절뚝거리는 다리와 걸음걸이로 자칫 연민이 들거나 간과할 수 있는 노인의 모습을 한 이성민은 중절모 챙에 가려진 매서운 눈빛과 단단한 표정만으로 단숨에 보는 이를 압도한다. 둘의 관계성과 치열한 부딪힘은 영화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극 초반 해웅과 필도가 활기차게 무소속 선거에 나서며 의기투합하는 장면에서 쨍하게 극 전반을 감도는 '해운대 연가' OST 신 또한 인상적이다. 일렁이는 해운대의 낭만이 가득하지만, 결국 파도 거품처럼 하얗게 바스라지고 부서지는 이들의 씁쓸한 결말을 암시하는 효과적인 선곡이다.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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