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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듯 낯선 이질감 '배니싱: 미제사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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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2-03-30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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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하면서도 다르다.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외국인 감독의 시선으로 담아낸 한국의 충격적인 범죄 사건, '배니싱: 미제사건'(감독 드니 데르쿠르)이다. 


오프닝 시퀀스부터 강렬하다. 연고가 없는 외국인 노동자를 상대로 한 장기 밀매 범죄 과정이 상세하고 노골적으로 그려지는데 퍽 충격적이다. 영화는 이처럼 시작부터 범죄 조직의 실체와 과정을 버젓이 드러낸다는 점에서 과감하고 도발적이다. 이어 아이들이 해맑고 한가롭게 뛰노는 강가의 한편에 무심히 버려진 캐리어 가방 속 튀어나온 절단된 사체를 담아낸 시퀀스 또한 강렬하고 감각적이다. 


지문이 모두 사라진 사체. 계속된 연쇄 실종 살인 사건. 담당 형사 진호(유연석)는 마침 한국에 강연차 방문 중인 법의학자 알리스(올가 쿠릴렌코)의 도움을 받아 지문을 복원하고 사건의 거대하고 끔찍한 실마리를 파헤친다. 


영화는 88분의 러닝타임이 말해주듯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불필요하거나 관습적인 흐름은 모두 잘라내며 속도감과 긴장감을 유발한다. 다만, 이로 인해 각 인물들의 서사 역시 무언가 있음직하지만 모두 배제된 상태로 불친절함을 야기한다. 양날의 검이다. 


수사 중에도 조카 생일 선물을 사러 뛰쳐나갈만큼 헌신적이고, 범죄 현장에서도 태연하게 마술을 펼치는 진호는 꽤 흥미로운 인물이고, 캐릭터 전사에 대해 많은 수수께끼를 낳지만 이를 풀어내진 않는다. 알리스 역시 외과의로 활동하며 겪은 심리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인물이지만, 이에 대한 접근 역시 얄팍하다. 미스터리하고 의미심장한 알리스의 동시통역사 미숙(예지원) 또한 분명한 반전 카드임에도 너무나 쉽게 소비된다. 


이처럼 영화 속 스토리와 인물들은 내내 표면적이다. 특히 인물에 대한 이 같은 거리두기 화법은 관객이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거나 동화될 만큼의 서사를 쌓지 못한다. 게다가 장기밀매 범죄는 이미 국내 관객들에 익숙한 소재다. 영화는 애초부터 사건의 실체를 드러낸 터라 수사 과정에 대한 디테일함도 지나치게 생략된다. 그 탓에 장르적 특색이 약하고 이에 대한 만족감을 기대하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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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고 뻔한 사건과 배경, 인물들을 놓고 풀이하는 접근법이 낯설고 이질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의 묘미는 바로 이 이질적인 요소에 있다. 영화는 프랑스 감독의 시선으로 사건과 인물을 바라본다. 간결함, 절제와 생략. 그 빈 여백을 미묘한 심리와 이를 대변하는 우아하고 이질적인 음악들로 채운다. 이 부조화가 어색하면서도 은근히 멋스러운 구석이 있다. 


카메라 앵글 또한 낯선 클로즈업과 위치를 반복하며 새로운 감상을 준다. 특히 끔찍한 범죄 사건 수사 중에도 피어나는 진호와 알리스의 미묘하고 은은한 관계 변화가 어색한 듯하면서도 로맨틱하다. 이처럼 계속된 이질감이 허점이자 매력으로 반비례하는 영화 '배니싱: 미제사건'이다. 


글로벌 프로젝트로 진행된 이번 영화의 원작은 스코틀랜드 출신 작가 피터 메이가 쓴 중국 배경 스릴러 소설 '더 킬링 룸'이다. 비록 영화는 한국을 배경으로 했지만, 어느 나라에서나 가난하고 힘없는 이방인에 대한 멸시와 소외는 같다. 그렇기에 조선족으로 풀이된 영화 속 희생양이 흔하고 평범한 가정집 부엌에서 납치돼 벌건 대낮에 탈주를 시도하려 했으나 결국 대형 병원 지하실에서 장기를 적출당하는 과정은, 익숙한 풍경 이면에 담긴 추악하고 끔찍한 실체를 드러내며 상당한 충격을 전한다. 전달책 역을 맡은 최무성의 표정 변화 없는 무심하고 무감정한 연기는 단연 가장 압도적이다.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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