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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정답보다 중요한 삶에 대한 증명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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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2-03-0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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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일정한 공식을 대입해 풀이되는 수학 문제와도 같다면 그 '답'을 아는 이들은 모두 똑같은 삶의 방향으로 흘러갈 테다. 하지만 세상이 정해놓은 잣대와 공식을 따라가는 삶은 과연 행복할까. 그렇게 도출한 결과만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일까.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감독 박동훈)는 이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그리고 말한다. 잘못된 질문에서 옳은 대답이 나올 수 없다고. 그렇기에 삶의 옳고 그름은 스스로의 확신과 용기로 '증명'해내는 것이라고.  

북한의 천재 수학자가 있다. 이학성. 그가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 수학자로 전 세계의 경외를 받는 이유는 현존하는 수학계 최대 난제라는 리만 가설 증명을 마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현재 삶은 고작 탈북자 출신의 고등학교 경비원이다. 무뚝뚝하고 괴팍한 인상과 억센 북한 말씨 덕분에 학생들로부터 '인민군'으로 통용된다. 그 호칭 안에 은근한 멸시가 담겼다. 이토록 하찮은 취급을 받으면서도 정체를 드러내긴커녕 숨죽여 살아간다. 

사실 이 학교는 교복만으로도 선망의 대상이 되는 상위 1%의 '귀족학교'라 불리는 명문 자사고다. 여기에서 늘 겉돌며 적응을 못하는 학생이 있다. 한지우. 아이는 늘 주눅 들고 위축됐다. 다른 아이들이 특별히 그를 괴롭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사배자'라 불리는 사회 배려자 전형 학생으로서 스스로 기를 못 펴고, 무리에 합류하지 못할 따름이다. 

이학성과 한지우는 통념적 관점에서 이 사회에 흡수되지 못한, 볼품없는 부적응자들이다. 영화는 수학을 매개체로 삼아 교감하며 성장하는 두 인물의 이야기를 주축으로 한다. 

가난한 달동네 출신의 '사배자' 한지우는 도무지 사교육을 받을 형편이 아니다. 수학 점수는 점점 바닥을 치고 내신 또한 처참하게 떨어지는 수준이다. 담임은 일반고 전학을 권한다. '사배자'란 말이 무색하게 배려라곤 없는 처사다. 행여 뱁새가 황새 쫓다 가랑이 찢어질라 염려하는 차원이라지만 의지할 곳 없는 여린 지우에겐 매정한 방식이다. 게다가 사건에 휘말려 '인민군' 경비원에 발각되는 바람에 기숙사도 쫓겨날 마당에 처했다. 자비 없는 '인민군'의 처사가 야속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인민군'과 엮인 지우는 그가 범상치 않은 수학 능력을 가진 인물임을 알게 되고 그를 끊임없이 귀찮게 하며 가르침을 필요로 한다. 겨우 허락을 받아낸 지우지만, 정작 '인민군'의 가르침은 입시 교육에는 하등 쓸모없는 것들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학성은 숫자와 기호, 수량과 도형 이들의 관계를 다루는 학문 그 자체의 '수학'에 미친 듯이 매료된 이다. 그가 말하길 수학은 고귀하고 아름답다. 그가 사랑하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 그리고 원주율을 이용해 숫자로 습득한 피아노 연주까지 숫자는 음정이 되고 수학과 음악은 완벽한 협화음을 이룬다. 모든 물질의 본질은 수에 의해 변환되고, 심지어 이 모든 삶, 세상, 나아가 우주까지도 거대한 수의 하모니로 조화를 이루고 있단 것이다. 그러니 이 수의 법칙이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신비롭고 존엄한 수학의 가치는 그가 살던 북한에선 통용되지 않았다. 그저 화학 무기 개발을 위해 필요한 학문으로 치부되고 그것이 견딜 수 없어 모든 인생을 걸고 탈북했다. 하지만 남한의 수학 역시 그가 꿈꾼 이상과는 달랐다. 남한의 수학은 그저 좋은 대학에 가서 돈을 많이 벌기 위한 자본주의에 목적을 두고 있다. 진짜 '이상한 나라'는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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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상처와 결핍을 지닌 이 두 '부적응자'의 이색 조화와 이들의 교감을 통해 주체적인 삶의 가치를 전한다. 지우는 이학성이 추구하는 수학적 삶의 방식을 통해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이학성은 지우에게 스승이자, 유사 아버지의 존재로서 인생의 길잡이가 된다. 이학성 또한 지우를 통해 좌절하고 절망했던 삶에서 다시 희망의 가치를 찾는다. 

성공이 기준이 되고 정해진 정답만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진짜 삶의 가치를 찾아내는 것, 비록 이 풀이 과정이 틀린 것일지라도 다시 올바른 과정을 찾아 도전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아름답고 존엄한 삶의 방식임을 영화는 말한다. 

어려운 학문으로 치부되는 수학을 소재로 삼아 흥미롭고 친근하게 풀어낸 점이 색다른 묘미다. 다만, 작위적이고 갑작스러운 후반 전개로 인해 두 인물의 정서적 교감을 극대화하기보단 다소 오글거리는 감상을 전하는 것이 아쉽다. 

최민식은 내면 깊은 고통을 간직한 천재 수학자의 섬세한 감성부터, 절망과 분노. 그리고 수학을 향한 황홀한 눈빛과 무뚝뚝한 얼굴에 숨겨진 인간미까지 수려하게 소화해낸다. 특히 그가 늘어진 낡은 테이프로만 듣던 바흐의 선율을 직접 공연장에서 접할 때 짓는 표정은 그 어떤 단어로도 설명하기 힘들 만큼 감명 깊다. 최민식과 합을 맞춘 신예 김동휘는 새로운 발견이다. 때론 안쓰럽게 위축되기도 하지만 순수한 소년미를 간직하고 숨은 용기의 힘을 발휘하는 모습이 대차다. 러닝타임 117분.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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