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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촌' 장르 활용의 좋은 예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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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0-11-25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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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7번방의 선물'로 1200만 관객을 웃고 울린 이환경 감독의 신작 '이웃사촌'. 역시 '휴먼 코미디의 대가' 이환경 감독답다. 다소 무겁고 민감한 소재일지라도 그가 다루면 거북스럽지 않다. 감독 특유의 독보적 장기인 코믹함과 휴머니즘의 정서 덕분이다. 사법제도의 치명적인 결함과 모순을 녹여낸 전작과, 암울하고 절망적인 군부 독재의 시절을 배경으로 한 '이웃사촌'까지 어두운 소재의 부담감, 과정의 피로함 따위는 좀처럼 느낄 수 없다. 그저 자연스러운,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에 웃고 울게 되는 건 그 속에 담긴 진정성 때문이다. 


제 자식이 왼손으로 밥 먹는 것만 봐도 '빨갱이'냐 호통치고, '빨갱이' 잡는 일이라면 변소간에서 온몸에 오물을 뒤집어쓸지언정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남자 대권(정우). 그의 인생 모토는 아마도 '빨갱이 잡아 족쳐야 나라가 산다'는 것일 테다. 이는 모두 '애국심'에서 비롯된 것이란 강한 신념이 있었다. 강제 가택 연금당한 야당 총재 의식(오달수)의 이웃집에 잠입해 그와 가족의 일거수일투족을 밤낮으로 도청하기 전까진 말이다. 


대권은 찔린다. '빨갱이'가 분명해 북괴의 지령을 받고 '수작질'을 부려야 마땅한 남자가 이웃을 가장한 제게 담배 한 가치 줄 수 있겠느냐며 살갑게 말을 붙여 올 때, 아들과 함께 목욕탕 가는 게 소원이라고 씁쓸히 말할 때, 그 가족들이 평범하게 담소를 나누고 웃으며 라디오를 들을 때, 인심 좋게 음식을 나눠 줄 때. 스스로 그냥 찔렸다. 


하지만 제 가족의 안정된 삶, 계속된 지위를 누릴 수 있는 명분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불법 행위는 진정한 '애국'이어야만 한다는 '믿음'이 필요했다. 의식과 그들 가족의 자유와 안전, 행복을 착취하고 파괴할지라도 그게 옳은 것이어야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괴롭다. 다정하고 정겨운 이웃 가족을 보며 제 가족이 떠오르는 탓이다. 분명 저는 애국을 위한 행위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가 생각한 '애국심'은 당시 군부 독재가 추구하는 '애국심'과는 달랐다. 제거 대상을 가두고 죽이고 민주화를 짓밟고, 생명과 가치에 대한 존중은 무너지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일 뿐인 잔인한 '애국심'. 대권은 결국 변화한다. 아니 깨닫는다. 소스라치게 무섭고 두려운 공포가 엄습할지라도, '살기 위해서' 기꺼이 맨 몸으로 발가벗고 닭 봉투를 뒤집어쓴 채 촌극을 벌인다. 


영화는 타인에 의한 감화로 끊임없이 거듭나고 각성하며 변화하는 한 남자의 성장담이나 다름없다. 그의 각성과 변화는 꽤 비장하지만, 사실 이를 다루는 방식은 역시나 감독답게 유쾌하다. 행여나 수상한 시선을 거두게 하기 위한 다분한 행동들이 전부 코믹하게 그려진다. 이웃집 막내가 아빠 목소리가 난다며 집에 들어올 때 당황하는 도청팀의 모습이나, 묘하게 도청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한 이웃집의 행동들에 도리어 우왕좌왕하는 모습들이 시종일관 어설프고 웃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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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냥 마음 놓고 웃긴 확실히 어렵다. 분명히 존재했던 군부 독재 시절, 그 암울하고 절망적인 시대를 배경으로 한 탓이다. 갖은 억측과 억지로 의식의 애창곡인 나미의 '빙글빙글'을 의심하고 이후 둥글게를 연상케 하는 모든 곡들을 금지곡으로 삼는 장면은 웃기면서도 허탈하다. 그야말로 '웃프다'. 


자유를 박탈당하고 가족의 안전까지 위협받는 의식이 오죽하면 외롭고 괴로워 저를 도청하는 이에게 넋두리를 늘어놓을 때, 그리고 결국 같은 처지에 놓인 대권이 의식에 죄책감을 토로할 때 도리어 위로하고 위안받는 모습까지 두 사람의 감정적 연대는 진정성을 갖고 감동의 극대화를 이룬다. 그러다 극의 클라이맥스에 펼쳐지는 마포대교 맨 몸 촌극 에피소드는 유쾌하기 짝이 없다. 비장하고 감정적이었다가도, 금세 이를 환기하는 코미디로 잽싸게 극을 튼다. 감독의 탁월한 코믹과 휴머니즘의 분배는 치고 빠질 때를 확실히 안다. 다만 러닝타임 130분의 호흡은 다소 길다. 감정 과잉의 여지를 줄 수 있다. 


비극적인 현대사, 그리고 여전한 좌우 갈등의 벽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스토리 설정이지만 두 남자가 쌓아올린 끈끈하고 뜨거운 우정, 이로 인한 거대한 변화의 시작은 그야말로 가슴 벅찬 뭉클함, 희망적 판타지를 선사한다. 소재를 효과적으로 다루는 영리한 장르 활용이다. 


정우, 오달수의 연기 합은 특히 좋다. 오달수는 평범하고 다정한 가장의 모습부터, 두려움을 느끼는 인간적 고뇌. 그리고 많은 이들의 염원과 열망이 담긴 정치인의 남다른 사명감까지 고스란히 담아낸다. 정우는 감정의 진폭이 큰 인물의 변화를 순수하고 뜨겁게 그려내며 큰 울림을 이끌어낸다. 이 와중에 안기부 실장 역의 김희원은 그야말로 '악역계'의 독보적 인물이다.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웠다가도 찰나에 섬찟함을 불러일으키는 표정은 그저 놀랍다. 11월 25일 개봉.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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