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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던 날' 김혜수X이정은이 전하는 강력한 희망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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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0-11-12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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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파격적이다. 그 과감하고 불안한 타이틀 이면에는 사실 가장 필요한 용기와 위로의 메시지가 담겼다. 살기 위해 '내가 죽던 날'. 그리고 삶은 다시 시작되었다. 


'내가 죽던 날'(감독 박지완)은 아버지가 저지른 범죄 사건의 주요 증인으로 채택돼 외딴 섬마을에서 보호를 받던 소녀 세진이 사라진 이후의 상황을 그린다.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현수(김혜수)는 벼랑 끝에 서 있다.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 완벽할 거라 믿었던 인생이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무너진 상황. 절망과 허무가 도사린 그의 표정은 괴롭고 공허하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왜 몰랐을까. 몰랐다는 게 변명이 될까." 수없이 반문하지만 정답은 알 수 없고 고통만 더해진다. 매일 밤 잠을 뒤척이고, 겨우 잠든 꿈에선 자신이 죽어있는 모습을 스스로 본다. "누가 좀 치워주지" 싶을 정도로 이미 현수의 마음과 감정은 죽어있는 상태다. 그래도 '살기 위해' 복직을 신청하고 맡은 사건이 세진의 자살 추정 실족사고를 마무리하는 것이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모든 정황이 자살로 추정되는 사고. 현수 역시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형사의 모습으로 의례적인 사건 수사에 나섰지만, 감성이 흔들린다. 


사건을 파헤칠수록 홀로 외로이 고립된 섬에서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세진의 모습을 보며 자신과 묘하게 연결된 감정의 사슬, 공통의 상황을 느끼며 동일시하게 된 탓이다. 하지만 세진의 주변인들, 세진이 믿었던 이들마저도 "그렇게 죽을 아이 아니"란 말을 하지 않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으려, 그리고 사건을 빨리 종결시키려고 안달이 난 상황이다.


현수는 이에 분노한다. 그의 결핍된 자아와 감정은 이 '분노'와 '연민'으로 다시 삶의 동력이 된다.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삶의 이유'를 찾아가는 현수는 사건의 키를 쥔 순천댁(이정은)을 만난다. 절벽 끝으로 사라진 소녀, 그 흔적을 추적하는 형사,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건넨 순천댁까지, 이들의 특별한 연대를 세밀하고 깊이 있게 담아낸 영화는 강력한 위안과 희망의 용기를 준다.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어딘가 수상한 마을 사람들, 탐문 수사하듯 펼쳐지는 이야기 구성. 극은 독특한 심리 스릴러 형식을 덧입혀놨지만, 사실 본질은 감성 드라마다. 감정의 정서를 따라가려 할 때, 이미 예측 가능한 반전을 위한 스릴러 코드의 접목이 꽤 지나치고 루즈하다. 이를테면 지나치게 사실적인, 그리고 지속되는 탐문 수사 형식은 초반엔 흥미롭지만 거듭되니 다큐다. 상업영화적 요소와 흐름을 좇기보단 나름 실험적인 풀이 방식이다. 하지만 러닝타임이 지날수록 몰입도를 더하는 건 범상치 않은 연기 내공으로 흡입력을 발휘하는 배우들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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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수는 차분하게 감정을 조절하며 상실감과 절망의 고통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점차 일어나는 내면의 변화까지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 무너진 삶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늘 도망치고 외면하던 그가, 전남편을 찾아가 최선을 다해 박살낼 것이라고 선언하며 강렬한 의지를 드러내는 순간은 짜릿한 쾌감이 일 정도다. 이후 엔딩 속 그가 짓는 안도의 미소와 따스함이 깃든 표정은 눈부실 만큼 아름답다. 


목소리를 잃어 말을 못 하는 순천댁을 연기한 이정은은 무뚝뚝한 표정과 어쩐지 수상쩍은 눈빛이 인상적이다. 그는 표정으로 많은 것을 숨기고 말한다. 그리고 그가 품고 있는 비밀이 드러날 때, 뜨겁고 뭉클한 희망과 삶의 연대가 피어오른다. 


김혜수, 이정은 두 배우의 놀라운 연기력이 영화의 목적을 분명히 전달한다. 각자 크기가 다를 뿐 누구나 상처와 고통을 안고, 그럼에도 살아간다. 타인의 삶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그렇게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용기와 위로를 건네는 '내가 죽던 날'이다. 11월 12일 개봉.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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