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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깊고 영리한 '도굴' 원정대의 탄생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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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0-11-0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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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범죄자들이 사기극을 벌이는 과정을 그리는 범죄 영화는 이미 익숙한 장르다. 하지만 그 범죄의 대상이 나라의 특수한 재산인 귀중한 문화재라는 설정만으로 영화 '도굴'(감독 박종배)은 신선하고 뜻깊은 케이퍼 무비로 탈바꿈된다. 


'도굴'은 오프닝부터 인상적이다. 산에 오른 한 남자가 쇠막대로 땅을 짚는데 아이의 신음 소리가 난다. 궁금증과 불안감이 고조되는 찰나, 도굴꾼들의 경쾌한 애니메이션 오프닝이 시작된다. 


서울시 강동구에 사는 강동구(이제훈)라는 남자는 스님 분장을 한 뒤 황영사 9층 석탑 속 불상을 손쉽게 훔친다. 그리곤 대범하고 대담하게 고미술상가를 대놓고 휘젓고 다니며 속된 말로 간을 본다. 국가 문화재 관리소장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고가의 문화재들을 모으고 해외에 빼돌리는데 온갖 불법을 자행하고 있는 진회장(송영창)은 소문을 듣고 지시를 내린다. 저를 찾아온 깡패들 앞에서도 강동구는 겁내긴커녕 깐족거리며 도발하기 일쑤다. 여차여차 진회장 측에 2억을 받고 불상을 팔아넘겼으나, 바로 그 자리에서 카지노로 탕진한다. 그의 대담한 배포를 눈여겨본 진회장의 비서 윤실장(신혜선)은 그에게 위험한 거래를 제안한다. 기다렸다는 듯, 사람을 모으고 판을 짜는 강동구다. 이렇게 모여든 이들이 도굴 전문가 존스 박사(조우진), 전설의 삽질 달인 삽다리(임원희)다. 


자, 이제 판이 시작됐다. 위험천만한 도굴의 세계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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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퍼 무비는 범죄자들이 무언가를 훔치기로 모의하고 이를 실행하는 과정을 복잡한 플롯,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흐름으로 풀어낼수록 수작으로 평가된다. 그런 의미에서 '도굴'은 도리어 평이하고 단순하다. 중국 지안에 위치한 고구려 벽화, 강남 한복판 선릉에 묻혀있는 조선 최고의 검이란 '훔칠 대상'은 분명 기상천외하고 흥미롭다. 그러나 이를 손에 넣는 과정이 퍽 쉽다. 다소 작은 위기는 있으나 이마저도 쉽게 벗어난다. 범죄를 계획하고 설계하며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이 허술한 탓에 장르적 특성을 기대한 이들에겐 자칫 밋밋하고 아쉬운 감상을 자아내기 쉽다. 


그러나 '도굴'은 사건 자체보다 인물에 초점을 맞췄다. 케이퍼 무비의 특성을 띄고 있지만, 사실 통쾌한 복수극에 가깝다. 이를 교묘히 장르를 가장해 숨겨둔 셈이다. 어린 시절 끔찍한 사건을 겪은 강동구의 전사가 풀어지는 지점, 이는 다시 오프닝과 연결돼 순식간에 몰입도와 공감을 배가한다. 다소 의아하고 뜬금없던 오프닝은 강동구가 도굴 판을 벌이며 진회장을 목적으로 삼은 이유로 연결돼 충분한 납득을 준다.  


특히 이 대결 구도는 뜻깊은 설정이다. 영화에서 언급하는 오구라 컬렉션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에는 윤실장의 강의 장면을 통해 일제강점기 때 1100여 점에 달하는 문화재를 갈취해간 일본인 오구라의 '오구라 컬렉션'이 스치듯 언급되는데 이는 엔딩과 직결된다. 수없이 약탈된 문화재를 되찾아야 하는 의미는 분명하다. 한 나라의 문화재는 그 나라의 자부심의 결정체다. 문화재에는 고유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사상이 담겼다. 문화재 반환의 필요성은 한 때 무너졌던 한 국가의 자존심과 근간을 세우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강동구와 진회장의 대결 구도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 비롯되기에 익숙한 권선징악 구도마저도 통쾌한 쾌감으로 고조된다. 게다가 또다시 판을 벌이며 "뺏긴 것 되찾으러 가야지"라고 말하는 강동구의 마지막 유쾌한 대사는 기대감과 설렘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민족주의적 메시지를 교조적인 관점에서 설파하는 것이 아닌, 코믹한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몹시도 영리하고 시의적절하게 담아낸 '도굴'이다. 


그렇기에 뜻깊다. 게다가 문화재 반환을 목적으로 한 '도굴'이라니,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도 무궁무진할 테다. 마치 이를 위해 시리즈의 전초전을 깔아 둔 듯한 영화다. 게다가 잔망스럽기 짝이 없는 이제훈, 허세 가득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순수와 낭만을 지닌 조우진, 고상함을 한 꺼풀 벗겨내니 이토록 흥미로워지는 신혜선, 그리고 이번 활약은 다소 미미하지만 존재감만으로도 코믹 그 자체인 임원희의 제대로 된 팀 플레이라면 기꺼이 다시 봐도 좋다. 11월 4일 개봉.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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