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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의 양지' 실낱같은 희망일지라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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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0-10-25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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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포기하면 만날 수 있는, '젊은이의 양지'. 씁쓸하고 잔혹하지만 딱히 반박할 수가 없다. 성과와 결과만으로 평가받는 잔인하고 치열한 자본주의 경쟁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많은 이들에게 영화는 말한다. 우린 모두 '사람이었네'라고. 더불어 깊은 성찰과 위로를 건네는 신수원 감독의 신작 '젊은이의 양지'다. 


깊은 호숫가 바닥에 석고상이 버려진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 행위는 계속됐음직하다. 수없이 쌓여있는 흉상들. 이름 모를 수많은 얼굴들이 그곳에 버려져있다. 영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어느 콜센터,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기계적인 사람들이 있다. 웃는 표정과 상냥한 말투지만, 전화 내용은 밀린 카드 빚 독촉이다. 이른바 '진상' 고객들 대상 매뉴얼도 있다. 가족의 정보를 읊으며 협박하는 식이다. 그곳에서 현장 실습 중인 19세 준(윤찬영)은 밀려드는 콜 수와 손님들의 폭언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한다. 노동자인 아버지는, 반듯하게 자란 아들의 첫 출근을 기뻐하며 없는 살림에도 자신이 꿈꾸던 근사한 정장 한 벌을 선물했다. 하지만 아들의 현실은 감정 노동과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려 생긴 방광염으로 기저귀를 차고 있다. 상사의 허락을 맡고 겨우 간 화장실에서의 5분 마저도 쉬는 시간에서 차감당해야 한다. 점심은 늘 컵라면과 삼각 김밥이다. 


준의 도피처는 옥상이다. 사진 전공인 그가 유일하게 숨통을 틔고 카메라를 꺼내볼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센터장 세연(김호정)과 우연히 대화를 나누게 된다. 사진으로 세상을 담듯이, 이곳의 업무가 고돼도 세상을 알고 경험하게 되는 '인생 실습'이라 여기라며 격려하는 따뜻하고 좋은 어른. 힘든 업무 속에서도 이런 뜻밖의 교감과 소통을 통해 다시 힘을 얻는 준이다. 


이어 채권 추심을 위해 한 가정집을 방문하면서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준은 세연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지만 차갑고 싸늘한 말이 비수가 되어 꽂힌다. 세상은, 그리고 사회와 조직은 한낱 정과 연민에 휘둘리는 곳이 아니다. 냉정하고 잔혹한 현실 앞에 준은 무너진다. 그리고 유서 한 장만 남긴 채 고시원을 나선 준은 얼마 후 변사체로 발견되고, 세연은 이미 죽은 이로부터 의문의 메시지들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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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암울하고 생존만으로도 버거운 세상에서 위태로운 삶을 사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리얼하게 담아낸다. 한 조직을 이끄는 센터장이지만, 현실은 파리 목숨 계약직으로 한낱 소모품에 불과한 세연도 살아 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인간이다. 그의 딸 미래(정하담)도 인턴 생활 중인 '취준생'이다. 늘 열심히 노력하지만, 더 큰 노력을 강요받고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져 경쟁 사회에서 스스로 낙오자의 낙인을 달게 된다. 사진이란 꿈이 있지만, 집안 사정으로 취업을 선택해 이 사회의 끔찍하고 추악한 민낯을 직시하게 되는 어린 준까지. 보통의 인물들, 그들의 일상에 내재된 비극은 적나라한 현실을 대변하며 숨 막히고 갑갑한 감상을 준다. 특히 "어린놈이 한심하게 그런 데서 일하냐"부터, "목숨 걸고 하면 안 되는 것이 어딨냐", "월급은 네 알량한 자존감을 팔아서 받는 돈"이라는 말까지. 갖은 모욕과 협박이 난무하고, 수치와 모멸의 말들이 날카롭게 박힌다. 듣기에 퍽 괴롭다.


세상은 삶의 가치관을 강조하지만, 실상은 무한 경쟁시대로 몰아넣어진 인간들이 마치 공산품처럼 차별화되고 분리되며 선택되고 버려지는 잔혹한 쳇바퀴다. 경쟁력이 결국 인간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시대가 된 지 오래다. 감독은 이를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들로 그려내며 이 사회에 잠복해 있는 불안의 전모를 적나라하게 비춘다. 정서적으로 파괴된 현대인들의 삶을 기민하고 통찰력 있게 고찰하지만, 가뜩이나 그 자체만으로도 무거운 비극을 다소 매끄럽지 않고 혼란스러운 전개의 미스터리와 결합해 불편과 불안감을 야기하는 건 사실이다. 


세연이 잃었던 본연의 인간성을 되찾는 모습에서 비로소 안도감을 준다. 제 욕망을 스스로 차단하며 변화하는 인간의 모습은 극명하게 담긴 비극적 현실 속에서도 실낱같은 희망의 틈을 내어준다. 이런 사회에서 꿈을 잃은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젊은이들의 좌절과 절망에 대해 감독이 느낀 '어른'으로서의 부채감과 자책은 물론 동시대를 힘겹게 버텨온 무뎌진 기성세대들에게도 작은 위로를 건네고픈 영화임은 틀림없다.  


영화의 테마곡인 루시드폴의 '사람이었네', 그 잔잔한 멜로디의 여운이 진하게 감긴다. 더불어 "애쓰지 마요"라는 대사는 작지만 따뜻한 마음의 위안을 남긴다. 10월 28일 개봉.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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