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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꽃' 안성기가 그린 인간의 품격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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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0-10-22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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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름다운 사람은 아니오. 하지만 추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는 싫소." 이는 영화 '종이꽃'을 관통하는 메시지다. 삶은 차곡차곡 쌓여서 죽음이 된다. 좋은 삶은 좋은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산다는 것의 의미, 죽음을 다루며 그린 아름답고 찬란한 모든 삶의 역설을 담은 영화 '종이꽃'(감독 고훈)이다. 


어느 장례식장. 검은 정장을 입은 노년의 남자는 조문을 하고 나와 담배를 꺼내 문다. 뒤따라 나온 상복 차림의 남자가 말한다. "미안하다. 너한테 해야 되는데. 아내가 상조 보험을 들었더라고." 노년의 남자는 그 말을 들으며 그저 대꾸 없이 담배만 태운다. 그 주름진 얼굴과 허망하게 부서지는 하얀 연기만으로 세월의 무게가 여실히 느껴진다. 

 

상조회사의 등장으로 일거리가 줄어든 장의사 성길은 녹록지 않은 삶이 막막하다. 일은 끊기고, 월세는 밀렸고,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아들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아들을 돌보는 간병인들마저 수차례 바뀌고 그마저도 구해지질 않는다. 건조하고 메마른 삶, 그 고통의 무게를 짊어진 성길은 결국 대규모 상조회사와 계약하고 새롭게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돈으로 죽음의 가치를 평가하는 회사의 방식과 그의 신념이 충돌하고, 결국 순응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분노와 자책이 이어진다. 


영화는 그런 성길의 변화와 성찰을 찬찬히 그려낸다. 죽음마저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의 세태는 거북스럽다. 하지만 돈이란 곧 강력한 명분이다. 그 주도권을 집단이 갖고 있다. 집단에 매몰된 개인의 신념과 정의는 사소하고 쓸모없는 사사로운 감정일 뿐이다. 결국 개인은 그 집단 안에서 자신을 합리화시키며 순응하게 된다. 


사람의 마지막을 돌봐주는 장의사로서의 품위와 고귀함을 지닌 성길이 장사꾼이란 족속으로 치부될 때의 무력과 상실감에 젖은 모습은 그렇기에 더 여파가 크다. 


하지만, 옆집에 이사 온 은숙-노을 모녀로 인해 절망과 죽음의 늪에 빠져 있던 아들 지혁이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성길은 성찰하고 본연의 가치를 되찾는다. 노을이 돌보던 길고양이의 장례를 돕는 성길의 행위가 경건하고 아름다운 건 그래서다.  


영화 속에 수없이 피워지는 종이꽃은 그 자체로 존귀한 의미를 내포한다. 꽃이 귀하던 시절, 소외되거나 가난한 이들의 죽음에도 숭고함을 표현하고 예의를 표하기 위해 접힌 종이꽃. 이를 통해 죽음 앞에서 모두 평등한 인간의 존엄한 가치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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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평생을 장의사로 살아온 성길이 주인공인 만큼 쉽게 접해보지 못한 장례 문화와 절차가 사실적으로 담긴다. 실제로 염을 하고 수의를 입히는 경건하고 엄숙한 절차와 종이꽃을 만드는 과정까지 생소하고 낯선 감상이다. 그 와중에도 죽음 앞에서 지급하는 돈에 따라 부유한 장례, 가난한 장례로 나뉘는 현실은 씁쓸하기 그지없다. 


안성기는 오랜 연륜으로 다져진 섬세하고 진실된 표정과 눈빛으로 성길의 내면을 완벽하게 드러낸다. 그야말로 품격 있는 연기다. 특히 마지막 장례 행렬에서 비가 걷히고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햇살을 바라보며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짓는 그의 절제된 표정 연기는 단연 압도적이다. 신념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인간의 고귀한 품위와 희망이란 빛이 드리워진 그의 미소는 그 어떤 말보다 강한 의미와 여운을 남긴다. 


진정한 삶과 죽음의 의미와 인간의 존엄. 이를 아주 보통의 사람들로 그려낸 따뜻하고 진실된 이야기 '종이꽃', 그 아름다운 향기가 풍기는 영화다. 10월 22일 개봉.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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