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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이게 바로 90년대 언니들의 '멋'이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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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0-10-20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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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love My Self", "I can do it, you can do it, we can do it" 그야말로 자연스레 격앙된 에너지가 솟구치는 문구다. 이처럼 희망찬 메시지를 품은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감독 이종필)은 통쾌하고 당찬 기운이 넘친다.  


영화는 1995년, 상고 출신 입사 8년 차, 업무 능력은 베테랑이지만 늘 보조업무에 머무는 만년 말단 사원들이 주인공이다. IMF 구제 금융의 한파가 몰아치기 직전, 거리에 컴퓨터 학원과 영어학원이 넘쳐나던 때. 상고 출신 고졸 사원들을 대상으로 개설된 토익반에서, 토익 점수 800점만 넘으면 대리가 될 수 있단 희망을 품고 오늘도 열심히 "마이 네임 이즈"를 외치며 부푼 꿈에 젖은 이들의 활기찬 모습을 시작으로 힘찬 출근길이 열린다. 


막상 현실은 고졸 사원을 구분하는 자주색 유니폼 차림을 고수하고 커피 타기, 담배와 구두 닦기 심부름만 하는 신세다. 그러다 우연히 회사의 폐수 무단방류 현장을 목격한 '오지랖' 이자영(고아성)은 회사가 덮으려는 이 사건을 파헤친다. 늘 초치는 소리만 하는 '싸가지'지만 알고 보면 의리파인 유나(이솜)는 추리소설 마니아 특기를 살려 수사를 돕고, 내성적이고 느릿느릿하지만 올림피아드 우승 출신 수학 천재 보람(박혜수)은 브레인으로 활약한다. 말단 고졸 사원 절친 3인방의 무모하고 용감한 추리극이 시작된다. 


여자 고졸 사원들에 대한 차별이 만연하고 당연했던 90년대. 계급 구조의 가장 하위권에 있는 말단 여사원들이 회사로 대변되는 거대 장벽을 뚫는 이야기 구조는 대담한 반란이자 투쟁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영화는 거창하기보단 세 친구의 각기 다른 개성과 우정을 살려 발랄하고 명랑한 기조를 이어간다. 


유출 사건을 덮으려는 자를 색출하는 과정은 미스터리 추적극의 호기심과 쫄깃한 긴장감을 가져가되, 탐정 놀이하듯 펼쳐지는 유머러스한 상황들이 코믹함을 배가한다. 특히 캐릭터성이 특화된 세 친구는 각기 다른 능력치로 완벽한 캐릭터 플레이를 펼친다. 이 과정에서 세 친구뿐만 아니라 모든 회사 구성원들의 캐릭터성이 워낙 강렬해 이를 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각 부서별로 현실감 풍기는 인물들이 포진돼 있는 점도 사실감을 더한다. 출세에 유리한 줄을 서기 위한 전형적 조직형 인간, 부장과 사원들 사이에서 실질적으로 업무를 관리하는 인간, 후배의 아이디어를 훔치는 인간, 부하 직원의 재능을 알아보고 격려하는 멘토와도 같은 인간 등 다양한 인간군상이 모여 구성된 '삼진그룹'이란 유기체는 그 자체로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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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처럼 코믹한 미스터리 탐정극을 펼치는 와중에 극이 품고 있는 많은 시사점을 착실히 드러낸다. 기업의 책임과 역할, 옳고 그름에 대한 개인의 도덕적 가치 판단, 차별과 부당함, 불평등이라는 부정의 등 사회적인 메시지도 결코 거북스럽지 않게 영리하게 담아낸다. 이를 다 차치하더라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와 삶의 태도를 희망차게 그려낸다. 


불확실한 미래에도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세 친구의 모습이 이를 대변한다. 누구보다 일과 직장을 사랑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올바른 길을 가고자 '내부고발자'가 되는 자영. 그 역시도 주저하고 고민하지만, 행동을 해야 세상이 바뀔 수 있단 대자보를 보고 '용기'를 얻는다. 매사 삐딱하지만 회사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친구가 가고자 하는 길을 함께 가는 진한 '우정'을 지닌 유나. 늘 반복되는 일상, 가짜 영수증 처리를 하며 무료하게 하루를 보내는 보람이 '멘토' 상사의 조언을 받고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지 고민하고 찾아가는 과정 등. 30년 전 청춘의 모습도 지금의 청춘들과 다를 바 없는 고민을 한다. 흔하고 평범한, 보편적인 모습을 한 이들이 고민하고 좌절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제 할 일과 옳은 일과 삶의 가치를 찾아간다. 이 연대와 성장을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정글 같은 사회' 속에서 보잘것없고 미미하게만 여겨지는 '나'라는 존재. 그렇지만 그런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당당하고 늠름하게 나아가는 세 친구의 유쾌한 반란을 응원하고 따뜻한 격려를 보내게 되는 이유다.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단 용기로 부딪히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지지 않느냐고 말하는 쿨하고 당당한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다. 


흠잡을 데 없는 디테일로 구현한 90년대의 거리, 건물, 사람들, 패션과 음악이 멋스럽기 짝이 없다. 그 시절의 향수와 낭만이 곳곳에 배어난다. 고아성, 이솜, 박혜수의 트리플 콤비 플레이는 완벽 그 자체다. 10월 21일 개봉.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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