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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도 없이' 아이러니의 미학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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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0-10-1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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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도 없이 우리는 괴물이 된다'는 의미를 함축한 영화 '소리도 없이'(감독 홍의정).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지 않고, 모순적이면서도 모순이 당혹스럽지 않다. 모호함과 모순됨이 뒤섞인, 아이러니의 미학이 여기 담겼다. 


여기 두 남자가 있다. 다리가 불편한 창복, 말이 없는 태인. 많은 보통의 존재들이 풍기는 삶의 냄새가 가득한 시장통 골목 어귀에서 트럭을 대고 달걀을 파는 남루한 두 남자. 이 보잘것없는 두 남자는, 달걀 장사를 마치고 어디론가 향한다. 음습하고 불안감이 도사리는, 쾌쾌한 어둠의 냄새가 나는 폐공장. 그곳에서 다소 우스꽝스러운 비닐캡과 우비를 자연스럽게 착용한다. 그 와중에도 대꾸할리 없는 걸 알면서도 시답잖은 이야기를 쉼 없이 늘어놓는 창복과 말 없는 태인. 이들의 관계성은 시종일관 이렇다. 그리고 그들은 허공에 매달린 만신창이의 피투성이 인간이 죽기를 기다리며 한가로이 라면을 끓여먹는다. "사망하고 계시는 중인" 인간이 비로소 생을 마감했을 때 행동을 개시한다. 열심히 핏자국을 닦고, 비닐로 덮고, 자루로 묶고, 구덩이를 파고, 묻는 순간까지 풍수지리 위치를 따지고 성경 구절을 읊으며 명복을 빈다. 사체유기, 그 끔찍한 짓을 하면서도 정작 두 남자는 대수로울 것도 없이 평범하고 평온하다. 이들이 고단한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기까지, 각자의 기준으로 성실하게 일상을 사는 두 남자의 태연한 모습을 담았을 뿐인데 이것만으로도 형언할 수 없는 충격과 흥미로운 감상이 든다. 


영화는 각자의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변화하며, 그 변화에 익숙하고 무뎌진 사람들의 태도에 집중한다. 그 자체만으로도 역설의 향연이다. 


선과 악이 모호한 경계에서 익숙한 삶을 살아온 두 남자가 변화를 맞는 건, 의도치 않게 유괴된 아이를 맡게 되면서부터다. 영화는 아이러니의 미학을 추구하며 사체유기, 아동 유괴라는 섬찟한 범죄를 처참한 묘사 대신 편안하게 풀어낸다. 심지어 웃긴다. 창복과 태인이 쉽게 말해 '주인공 버프'를 받아 악한 짓을 해도 퍽 밉지 않고 도리어 연민을 느낄 순 있겠다. 하지만 두 남자뿐만 아닌, 살인과 아동유괴를 전문적으로 하는 이들을 그리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의 기조다. 잔혹한 상황을 모의하고 행하면서도 어쩐지 어설프고 도리어 친숙해 보이기까지 할 정도다. 이처럼 경계의 모호함, 역할의 모순이 계속되니 판단이 유보된다. 사회적, 보편적, 도덕적. 이 모든 관념을 통틀어서라도 엄연히 끔찍한 범죄 행위가 '아이러니하게' 무감각하고 우습게 여겨지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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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괴된 아이 초희는 극 중 인물에게도, 관객에게도 각성의 촉매제로 작용한다. 아이는 유괴된 동안 악취가 풍겨 나올 것 같은 태인의 쓰레기 더미 비닐하우스를 정돈한다. 마치 동물 길들이듯 태인의 여동생을 교육시킨다. 범죄를 묵인하거나 나서서 돕는다. 이 아이가 미친 영향력은 엄청나다. 늘 무기력하고 목적 없는 삶을 살던 태인이 주체적으로 변화할 수 있게 이끌어주는 동력이다. 이처럼 늘어놓은 둘의 관계성의 서사는 관객에 쉽고도 감정적인 몰입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영화는 그 결말에 확실히 선을 긋는다. 그렇기에 불현듯, 찰나의 섬찟함을 준다. 그게 바로 이 영화의 목적이다. 


끔찍한 사건 그 자체가 아닌, 이런 사건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사회의 태도, 여기에 무감각해진 사람들. 이를 통해 우리도 모르게 '소리도 없이' 괴물이 되어가고 있진 않느냐고 묻는다. 


홍의정 감독의 첫 장편이다. 아이러니한 역설을 통해 장르와 감상을 전복시키는, 유니크한 감독의 탄생이 설렘과 쾌감을 일으킨다. 유아인은 육덕진 몸만 봐도 새롭건만, 시종일관 뚱한 표정으로 '소리도 없이' 풍성한 감정을 전하며 더 놀라운 역량을 과시한다. 유재명은 지극히 평범한 인물을 비범하게 돋보이게 하는 탁월한 재주가 여전하다. 초희 역의 문승아는 신선한 충격이다. 살아남기 위해 낯선 상황도 동요 없이 차분하고 침착하게 받아들이는 초월한 표정이 아이의 것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10월 15일 개봉.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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