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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 편협한 믿음에 대한 경종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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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0-10-12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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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물결에 아주 작은 돌멩이가 던져진다. 거대한 파문이 일면서 물결이 퍼져 나간다. 다시 가지런하게 물결은 자리를 잡는다. 좀 전의 거세게 출렁이던 파문이 마치 없었던 일인 양. 하지만 물의 결은 출렁였다. 퍼지는 파동만큼이나 괴로움도 퍼졌다. 눈치채지 못할 찰나에 이미 보이지 않는 공간과 존재의 흐름은 균열됐고 흐트러졌다. 고작 '돌멩이' 하나 던진 것에 불과했다. 이 불완전한 고요함이 너무도 강렬하고 의구스럽다. 그래서 쉬이 잊히지 않는 잔상을 남기는 영화 '돌멩이'(감독 김정식)다. 


세월이 느리게 흘러갈 것만 같은 평화로운 소농 마을. 8살 마음을 가진 어른 아이 석구는 오늘도 변함없는 일상을 맞는다. 밥과 함께 먹는 박카스, 건드려선 안 되는 파란 모자, 어수룩한 멜빵바지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나선다. 유치원 통학 버스를 기다리는 동네 꼬마들의 사과를 빼앗아 먹으며 장난을 치기도 하고, 동네 마트 시식 코너에서 고기가 익기만을 눈을 껌뻑이며 지켜보다 부리나케 입에 넣기 바쁘다. 그런 석구에 누구도 구박 한 번 없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였던 훌쩍 자란 친구들의 술자리에도 함께 어울리고, 늘 저를 돌봐준 성당 신부님에겐 퍽 곰살맞게 구는 석구다. 


석구를 가족처럼 대하며 깊은 애정을 쏟는 다정한 이웃들이 있는 곳. 세월의 흐름이 자연스레 묻어나며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들로 인해 보는 이마저 따뜻한 유대와 정을 느끼게 하는 곳. 이 평온했던 공간에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아빠를 찾으러 온 가출 소녀 은지가 등장하면서부터다. 반항적이고 독특한 은지는 마을에서 겉도는 '이방인'이다. 하지만 소매치기로 몰린 은지와, 진짜 소매치기범을 잡은 석구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는 주변인들은 조금씩 불편한 기색을 풍기고, 그러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벌어진 뒤 모든 것이 변한다. 석구에게 잔인한 '돌멩이'가 내려 꽂힌다.  


영화는 괴로울 만큼 석구를 몰아붙이는 와중에도 평화롭고 고요한 톤을 유지한다. 그래서 더 이질적인 섬찟함을 일으킨다. 정작 석구는 제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그를 둘러싼 이들이 도리어 대립하고 충돌하며 석구의 세계를 사정없이 무너뜨린다. 지켜보기 영 불편한 감상이다. 심지어 관객들에게조차 믿음에 대한 확신을 주지 않는다. 이로 인한 거북함은 사건의 진실을 스스로 짐작할 수밖에 없는 관객들이 온전히 가져야 할 몫이다. 


애초에 영화는 진실의 여부를 밝힐 생각이 없다. 도리어 철저하게 진실은 내팽개쳐두고 각각 자신의 선택적 사고로 움직이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극대화한다. 대표적인 인물은 김 선생과 노 신부다. 사건이 일어난 날 유일한 목격자였던 김 선생은 자신이 본 것만을 믿고 신념에 따라 행동한다. 극이 진행될수록 자신의 믿음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지만, 이미 제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사소한 의심을 무시해버린다. 노 신부는 범죄자로 몰린 석구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정작 석구에게 죄가 없다는 믿음은 없다. 석구에 대해 온전한 믿음을 보이는 이는 유일하게 은지뿐이지만, 그 역시도 자신이 처한 상황이 괴롭고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약하고 어린 존재다. 


각자 자신이 '믿고 싶은' 편협한 믿음을 위해 사건을 편향적으로 해석하고 이에 대한 감정을 제각각 표출하는 동안 잔잔했던 석구의 세계는 처참하게 일그러지고 뒤틀리며 무너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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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극렬한 과정을 통해 영화는 이 사회 단면에 뿌리깊게 박힌 편견과 믿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불편한 진실은 직시하기 여간 괴로운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색안경을 끼고 있단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래서 맨눈으로 공정하게 사실만 보고 판단한다고 착각하며 오류를 범한다. 진실을 마주하기보다 자신의 신념을 확실히 증명해주는 것을 쉽게 찾아내 속단한다. 이같은 확증 편향이 어느새 무의식 깊은 곳에서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앞서 뒷모습과 측면을 부각하며 석구의 세계를 보여줬던 오프닝의 앵글은 엔딩에선 온전히 관객을 응시한다. 그 무너진 세계에서 위태롭게 돌멩이에 발을 올리고 서있는 석구의 겁에 질린 눈빛을 온전히 직시하노라면 거대한 감정의 파고가 밀려온다. 


김대명의 연기는 꽤 놀랍다. 큰 덩치를 하고도 친구와 노는 게 마냥 좋은 천진난만한 표정부터 치기 어린 분풀이를 하는 모습까지 그가 드러내는 온갖 감정은 놀라울 만큼 순수하고 맑은 아이의 것이다. 그렇기에 엔딩에서 마주한 그의 두려움과 당혹감은 더 격렬한 동요를 일으킨다. 


부드럽고 따뜻한 소농 마을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시종일관 잔잔하게 담아내면서도 인간의 충돌과 대립만으로 극적인 감상을 이끌어내는 감독의 연출은 효과적이다. 10월 15일 개봉.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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