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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끔찍한 계층 공포, 봉준호 감독의 진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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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0-03-02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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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한 4인 가족이 부유한 4인 가족의 삶에 기생충처럼 파고든다. 이 빈곤 가족, 몹시 뻔뻔하고 영악하다. 갈수록 기가 막히고 주제넘은 꼴들이 참을 수 없는 불편함을 유발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다. 이들의 막장 행동이 극에 달한 시점, 미친 듯이 절망의 홍수가 덮쳐온다. 똥물 튀기는 변기에 앉아 젖은 담배를 태우는 우스꽝스럽고 저급한 모양새가 그토록 애달플 수가 없다. 영화 '기생충'이다.

봉준호 감독은 7번째 장편 영화 '기생충'(제작 바른손이앤에이)을 통해 한층 진화된 역량과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평범한 듯 예측 불가한 스토리로 풀어내고 종국엔 전복된 시선으로 극단을 드러내면서도 시종일관 그 특유의 위트로 기조를 잃지 않는다. 대비되는 빛과 공간만으로 명확한 의도를 담아내는 디테일한 설정과 연출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설정은 오히려 단순하다. 빈곤하지만 무사 태평한 4인 가족 기택네와 완벽하고 부유한 4인 가족 박사장네가 얽혀들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친구의 소개를 받아 학력을 위조하고 박사장네 집에 고액 과외 선생으로 들어간 기택네 장남. 기름때가 덕지덕지하고 곱등이가 튀어나오고 곰팡내가 풍겨져 나오는 듯한 반지하 방에 네 식구가 욱여져 사는 기택네와는 달리 고고하고 아름다운 건축가가 빚어 만든 '작품'에서 사는 박사장네다. 이 두 가족은 삶의 환경, 이동 반경, 생활 태도와 방식 그리고 가치관 등 모든 것이 판이하게 다르다. 그리고 동경하며 감탄하던 박사장네에 영악하고 뻔뻔한 계획들을 차츰차츰 실행시키며 점차 잠식해나가는 기택네다.

생존을 넘어 행복과 욕망을 추구하며 이를 부유하게 만끽하던 기택네는 우연히 한 사건을 접하고 충돌과 파면에 부딪힌다. 모두가 같은 공간에 있지만 절대 공생할 수 없는 암묵적이고 지배적인 계층의 분리가 눈에 드러나는 순간 비수를 넘어 끔찍한 절망과 공포감에 휩싸이게 된다.

영화는 이같은 계층의 차이를 시공간적 특성을 미학적으로 활용해 담아낸다. 반지하 집에서 나와 언덕과 계단을 오르고 올라 도달하는 박사장네, 이 지형적 높낮이는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자본주의 사회의 수직적 질서에 대한 메타포를 내포한다. 아무리 갖은 꾀를 쓰고 꼼수를 부려도 혹은 억척스럽게 노력하며 발버둥 치고 벗어나려 해도 고착화된 계층 사회에 갇혀버린 밑의 사람들. 심지어 이 밑바닥 계층 사람들은 몹시 가엾게도 저들끼리 치고받고 아등바등한다. 그래도 결국 계단 위로 오르지 못할 거면서. 너무도 명확히 계층을 구분하는, 수없이 많은 계단과 계단과 계단과 계단. 아래로 아래로 계속해서 추락해 떨어지는 곳에서 벌어진 참변은 서글프고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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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지 거대 시스템과 맞붙는 혹은 이에 억압당하는 소시민들의 편에서 그들을 바라보던 봉준호 감독의 따스하고 구수한 시선은, 이번엔 너무도 냉담하고 객관적인 거리를 둔다. 그래서 더 암울하고 낙망적이다. 오르지 못할 계층 앞에서 무력하고 부질없이 무너지는 빈곤 가족의 상승 욕구, 이는 분명 이전까지 야유와 불쾌감을 자아냈음에도 결국 가엾고 서글픈 교감을 일으킨다.

고결한 엘리트로 묘사된 박사장네의 모습도 흥미롭다. 악한 의도가 없다. 대개 범접할 수 없는 부를 쌓은 자들은 탐욕스럽거나 추악하기 마련인데 이들은 몹시 '나이스'하다. 다만, 이들의 상식과 행동 패턴이 빈곤한 자들과는 너무 다른 게 죄라면 죄였다. 그들의 일상적인 상식과 감상이 빈곤한 자들의 모멸과 수치를 날카롭고 예민하게 파고들었을 뿐이다.

빈곤한 자는 아무리 씻어도 그 지독한 가난의 냄새를 지울 수 없다. 빈곤한 자는 무능력하고 게으르며 계획이 없다. 그들이 계획을 세워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기생충'은 이미 절대적인 간극을 띄고 있는 계층과 계급,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적인 현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유독 '기생충'은 공포스럽다.

인간이 존엄을 지키며 산다는 것, 사활을 걸어도 달라지지 않는 영원한 계층 사회의 폐풍. 비록 '시의적절'한 유머와 풍자가 가득할지라도 결국 허탈하면서도 비관적 카타르시스의 절정에 도달하게 하는 '기생충'이다. 빈곤의 악취까지 스크린에 옮겨 놓은 듯한 봉준호 감독의 치밀한 디테일, 송강호의 붉게 독 오른 얼굴과 멍한 눈빛의 여운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기생충'은 한국 영화 100년 사에 방점을 찍은 기념비적인 걸작이라 해도 좋다.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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