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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은' 강렬하고 아름다운 비극의 재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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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0-02-03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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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너의 이름은 포스터

 

'너의 이름은'은 많은 것을 잊고 살며 점차 무감각해지는 이들에게 말한다. 아프고 고통스럽더라도 살아있는 한 절대 잊어선 안 된다고. 그것이 바로 또다시 삶을 살아가게 하는 이유가 된다고.

 

'너의 이름은'은 '초속5센티미터'(2007), '언어의 정원'(2013) 등으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가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3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감독이 유독 고수하는 평범한 10대들의 일상에 판타지를 결합한 설정이다. 이번엔 몸이 뒤바뀐 소년 소녀 얘기다. 남녀의 몸이 바뀐다는 소재는 숱한 드라마와 영화에 쓰이며 다소 진부한 소재로 치부될 수 있지만, 누구도 경험하지 못할 판타지이기에 언제나 궁금증이 일고 유쾌한 에피소드를 보장한다.

 

'너의 이름은'도 그렇다. 영화는 번화한 대도시 도쿄에 사는 소년 타키와 고즈넉한 시골 마을에 사는 소녀 미츠하가 잠들고 깨어나면 어느새 몸이 바뀌는 기묘한 사건을 겪으며 시작된다. 이 변화를 각각 한 인물의 초점에 맞춰 차근차근 설명하며 그들이 살고 있는 배경과 주변 인물들을 자연스레 소개한다. 이어 적응기다. 바뀐 신체 부위를 보며 "이건 너무 사실적이잖아"라고 울상짓는 미츠하와 놀라워하면서도 제 가슴을 주물럭 거리는 엉큼한 타키. 이후 종종 뒤바뀐 신체로 일상을 보내며 서로의 몸에 질세라 경쟁하듯 낙서를 하기도 하고, 하지 말라고 당부한 행동을 골라서 하며 골탕먹이는 등 딱 그 나이대 또래들의 유치함과 더불어 싱그러운 낭랑함을 보인다. 그리고 점차 두 사람은 스마트폰과 공책 등 메모를 통해 조금씩 소통하고 뒤바뀐 몸에서 공존하는 법을 알아간다.

 

이렇듯 점차 서로의 생활에 적응해 터프한 체육소녀가 되거나, 케이크에 황홀해하고 자수를 완벽하게 놓는 애교 만점의 꽃미남이 된 이들의 모습은 유쾌하고 사랑스럽다. 또 이 과정에서 아름답고 소박한 시골 마을의 전경과 도시의 활력과 화려함이 대비를 이루는 세밀하고 수려한 영상미가 돋보인다. 그리고 여기엔 나중을 대비한 복선이 곳곳에 깔린다.

 

이를테면 미츠하가 신사 의식을 준비하며 만드는 실로 정교하게 얽히고 얽힌 매듭, 씹어 뱉은 쌀을 발효시켜 만든 술, 수업 내용 중 작가 불명의 시집을 배우던 중 노을 질 때 만나게 된다는 이승과 저승의 의미 등이 종국에 하나로 모여질때가 압권이다. 감독의 치밀하고 섬세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영화는 두 사람이 서로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용기를 내 나설 때부터 점차 급변하는 흐름을 겪기 시작한다. 마냥 풋풋한 사춘기 소녀 소년들의 성장 로맨스 영화는, 서스펜스와 미스테리 장르를 띄기 시작하고 급기야 시공간이 뒤바뀐 거대한 이야기로 나아가며 예상치도 못했던 천재지변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 또한 세밀하고 장엄하면서도 순차적으로 감정이 고조돼 들끓게 한다.

 

특히 황혼의 문턱, 그 찰나에서 마주친 두 사람이 비로소 뒤바뀐 몸이 아닌 온전한 자신의 모습으로 서로를 마주하게 되는 그 진실된 순간. 이후 서로를 잊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처절하게 외치는 마음의 소리는 귓가에 애틋하고 아련하게 맴돈다.

 

이어 혜성 충돌이란 끔찍한 자연 재해 앞에서 사람들을 구하려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사람들, 조금의 위기의식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멀리서 이를 지켜보며 관조하는 사람들. 이는 감독이 영화를 통해 재현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비극이다. 무서울만큼 아름다운 현실적 작화로 그려낸 이 비극의 여파는 몹시 강렬하고 생생하다. 하지만 영화는 '살아 있고 행복하고 싶은 마음과 간절한 기도, 그리고 망각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저항하는 사람들'을 강조한다. 지난 비극과 정면으로 마주쳤을 때의 고통과 아픔, 그 너머엔 분명 기억해야 할 가치를 말하고자 한 것.

 

이처럼 아름다운 판타지 속에 깃든 사회적 메시지의 울림은 일본 관객들의 마음을 강렬하게 사로잡았고, 실제 '너의 이름은'은 현지 개봉 39일만에 천만 관객을 돌파했을만큼 경이로운 흥행 기록을 세웠다. 감독 조차 이같은 반응을 예상 못했다고 놀라워할 정도다. 그만큼 사회적 비극을 잊지 않고자 하는 이들의 간절한 바람이 통한 까닭일 터.

 

영화의 근본적 메시지는 국내 관객들에게도 충분히 공감대를 전할 것으로 예측된다. 경악할만한 사건 사고들로 비롯된 사회적 혹은 도덕적 해이에 대한 경종, 비단 이뿐만 아니더라도 잊고 지냈던 사람과 사랑에 대한 의미를 되찾는 촉매제로서 작용하기에도 손색이 없는 영화다. 여기에 매번 극단적 선택을 고수하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보기 드물게 나름의 낙관적 엔딩을 지어 다행스럽다. 극을 관통하고 연결하는 '무스비'라는 우주적 단어 또한 실제 일본 종교의 토지의 수호신에서 따온 단어라는 점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스스로 '성공한 덕후' 인증을 했을만큼, 본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록밴드 래드윔프스가 1년에 걸쳐 OST 22곡을 완성했다. 이중 주제가 4곡이 압권이다. 맑고 서늘한 가을바람과 닮은 특유의 멜로디는 적재적소 극을 휘감고, 항간엔 '너의 이름은'이 래드윔프스 뮤직비디오가 아니느냐고 할만큼 극적인 어울림의 조화를 완성했다.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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