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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몽' 아름답고 몽롱한 꿈의 여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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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0-01-2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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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춘몽 포스터

낡고 허름한 흑백 동네. 가난하고 서러운 사람들. 적막한 삶의 비애가 짙게 깔려 있을 것만 같지만, 오히려 반대편 미디어 도시의 삭막한 화려함보다도 더 아름답고 따스한 인간미를 갖춘 '사람들'의 이야기. 장률 감독의 '춘몽'이다.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장률 감독의 '춘몽'(제작 률필름)은 저예산 흑백영화다. '춘몽'은 장률 감독 특유의 작가주의적 관점의 접근이 아닌 그저 수색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따라 사실적인 감정을 전달한다. 이를테면 웃음과 뭉클함, 먹먹함과 아련함 따위의 것들이다. 


극의 중심축을 이루는 인물은 병든 아버지를 돌보는 예리다. 예리가 있어 세 남자가 존재한다. 동네에서 한물간 건달 익준, 밀린 월급도 못 받고 쫓겨난 탈북자 정범, 간질을 앓고 있는 어설픈 금수저 종빈. 이들은 예리가 운영하는 허름한 고향주막을 아지트로 삼고 모여든다. 이들은 예리와 함께 하는 시간들로 인해 때론 두근거림을, 때론 포근한 위안을 얻기도 한다. 


이들에게 예리란 그런 존재다. 보잘것 없고 모자란 세 남자에게도 아낌없는 애정을 나눠준다. 심지어 "누구랑 잤느냐"고 묻는 남자들에 꿈에서 세 사람 모두와 잤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발칙한 망상까지도 공평하다. 또 볼품없이 '찌질한' 세 남자를 놀림거리로 삼는 주막 손님들에게 몹시 차분한 어조로 돈 안 받을테니 나가달라 말하는 예리의 모습은 뭉클하기까지 하다. 


예리로 인해 모여든 이들은 차츰 함께 친구가 되어가며, 서로를 위해 마음을 써준다. 그런 세 남자와 예리의 우정은 유쾌하면서도 애틋하다. 매일 놀려먹기 일쑤던 어눌한 정범의 가방에서 칼을 발견한 뒤 그의 불안감과 분노가 얼마나 치달았는지 깨닫고는, 꿈쩍도 않는 악덕 사장을 찾아가 떼를 쓰거나 미인계를 쓰기도 하고 거짓 공갈 쇼를 하며 돈을 받아내는 에피소드가 특히 그렇다. 


여기서 악덕 사장의 존재는 사회적 약자를 멸시하는 '갑'의 행태를 따르지만 그 또한 편파적이거나 노골적으로 그려내지 않았다. 실제로 이들의 실체는 가난한 탈북자, 조선족, 건달 등이지만 이를 두드러지게 하는 장치는 딱히 없다. 말투와 억양 등도 평범하기 짝이 없다. 그랬기에 이들을 향한 동정과 연민, 혹은 편견보다는 그저 이들 또한 보통 사람들과 똑같은 행로를 걷고 있을 뿐이란 점에서 동질감을 준다. 


이들과 대비되는 반대편의 세계, 디지털 미디어시티(DMC)로 대변되는 장소가 네 사람에게 동경 혹은 경외의 감정으로 다가오는 신도 마찬가지다. 수색에서 바라본 세계적인 정보미디어 단지 DMC는 거대하고 화려하다. 조형적이고 독특한 건축물들이 즐비한 그 곳은 첨단 문화 도시의 모습을 보이지만 사람 냄새는 느껴지지 않는다. 단지 다채롭고 아름다운 도시의 경관을 가졌다고 해서 사람 사는 세상의 온정이 절로 형성될 수 없고, 삶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건 아님을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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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의 화려함을 동경하며 조금이라도 물들고 싶은 예리와, 질색하며 거부하는 익준의 대조적인 모습은 여러모로 공감대를 이끌어낸다. 또 이를 영화관 키스 신 에피소드로 그려 유쾌한 설렘을 주기도 한다.
이처럼 허름하고 곤궁스러워 보일지라도, 제 몸 붙일 공간과 서로 어깨를 비빌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들은 충분히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어느날 투깔스러운 세 남자를 섬세한 다정함으로 하나하나 부드럽고 의젓하게 챙기던 예리의 존재는 꿈처럼 바스러진다. 이 또한 이슬이 아침 햇살에 바스러지듯 고요하고 평온하게 그려냈다. 자연스러운 감정의 절제다. 


그래서 마치 꿈을 꾼듯한 느낌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지금이 아닌 언젠가, 혹은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 살았던 보통의 네 사람 이야기를 슬쩍 들여다본 몽롱한 여운만이 맴돌 뿐이다.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집착은 간혹 삶을 짓누르고 자신을 괴롭힌다. 하지만 '춘몽' 속 네 사람은 욕심없는 꿈을 꾸며 그렇게 그들만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듯하다. 


너무도 아름다운 한예리와 개성파 감독들의 관습을 탈피한 연기력은 홀린듯 몰입하게 한다. 장률 감독의 나른하고 파편적인 연출 기법 또한 매력적이다.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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