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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건' 잔혹하고 처염한, 마지막 울버린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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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0-01-29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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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건 포스터

모든 능력을 잃어가고, 삶의 의지조차 사라진 늙고 병든 영웅이라니. 그 자체만으로도 가엾고 서글픈 느낌이 물밀듯 밀려들게 하지만, 그 대상이 울버린이라면 그 감상은 결단코 다르다. 갖은 풍상을 꿋꿋이 견뎌 온 울버린의 마지막 모습은 애잔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엄위하고 우람스럽다. 영화 '로건'이다.


영화 '로건'(감독 제임스 맨골드)은 휴 잭맨의 마지막 울버린 연기를 담은 영화다. 지난 17년 동안 9편의 영화에서 울버린으로 존재했던 그는 능력을 잃어가는, 더 이상 영웅이 아닌 한낱 인간으로 전락한 로건의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반대로 이는 그의 근원을 나타내기도 한다.


희끗희끗하고 덥수룩한 수염과 머리, 잔주름이 가득하고 노쇠했다. 술에 쩔고 다리를 절며 간간히 리무진 기사 노릇을 하고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보노라면 세월의 무상함에 애달파질 따름이다. 한때 엑스맨의 정신적 지주이자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두뇌를 인정받았던 프로페서X 역시 퇴행설 질환을 앓으며 약물이 없으면 정상적 생활을 영위하기 어렵다.


한때 돌연변이들을 모아 그들이 가진 능력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하고, 그 힘을 인류를 위해 사용하는 엑스맨이 되도록 지도했던 스승은 발작증세로 대참사를 일으켜 오히려 인명을 위협하는 존재가 됐으니 통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스승을, 그리고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발적 고립을 택한 로건이다. 이처럼 처량하고 쓸모없어진 두 사람은 더 이상 돌연변이가 나오지 않는 2029년에서 살아가며, 특별한 능력을 지닌 전설적 '뮤턴트'의 존재가 아닌 '신의 실수'로 매도당한 지 오래다.


삶의 생동감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황량하고 척박한 황무지에서 살아가는 로건에게선 지난 세월 한결같이 자신의 능력 때문에 방황하며 살아온 그의 씁쓸한 회한과 고독감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프로페서X는 여전히 그런 로건에게 아직 선한 마음이 남아있으며, 대안적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수없이 일깨워주려 한다. 그리고 이 실체적 변화는 로라라는 소녀의 등장으로 이뤄진다. 제약회사 연구소에서 돌연변이 DNA를 결합해 만들어진 돌연변이 소녀 로라는 이미 염세적 허무주의에 빠진 로건을 변화시키고 이들 세대를 이어가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살상무기로 키워졌지만 증오심이 없어 싸우지 못하기에 존재 가치가 사라졌고, 연구 폐기를 목적으로 살해당할 위기에 처해진 로라의 모습 또한 로건과 다를바 없다. 그리고 이들 뒤를 쫓는 사이보그 용병집단에 원초적 본능으로 맹수처럼 달려드는 로라의 두 손과 발에서 솟아나는 클로는 이들의 연대를 나타내는 상징적 의미다.


탈출한 돌연변이 아이들이 다시 모인 곳 에덴을 향해 가는 이들의 여정은 광대하고 험난하다. 이 흐름에 '용서받지 못한자'(1992), '더 레슬러'(2008), '셰인'(1953) 세 편의 영화를 절묘하게 레퍼런스했다. 과거에 잔혹한 살인자로 악명 높았지만 이제는 지난 날의 살육과 죄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서부의 늙은 총잡이, 나락으로 추락한 한 레슬러가 역경을 딛고 구원을 찾는 과정. 그리고 과거를 잊고 정착하려 했지만 마을을 지키기 위해 총을 쓸 수밖에 없었고 그랬기에 떠날 수밖에 없었던 처연하고 따스한 감성의 총잡이 셰인에 이르기까지. '로건'은 이 클래식한 서부영화 특유의 누아르를 풍기며 인간 로건의 고뇌와 변화를 담아낸 셈이다. 그렇기에 여기서 펼쳐지는 핏빛 선혈 낭자한 액션 신은 잔혹하면서도 처염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의지가 아님에도 제가 지닌 특성 때문에 철저히 이용당해 싸워야만 했고 많은 이들을 학살했단 자책과 괴로움. 아끼는 모든 사람들이 결국 험한 일을 당하게 된 상실과 고통. 그리고 혼자가 된 고독함과 처절한 외로움. 이 모든 인간 본성을 드러낸 로건이지만 그는 결코 나약하지 않다. 그저 묵묵히 절망적 삶을 살아가던 로건이 다시 자신의 자아를 찾고 다음 세대의 연계를 위해 극한 고통과 희생을 감내하는 모습은 그의 변질되지 않는 영웅 기질과 헌신성을 말하기 때문. "넌 이제 싸우지 않아도 돼. 놈들의 뜻대로 살지마"라며 로라를 향한 당부를 전하는 로건의 마지막은 더없이 애잔하다. 사나운 클로를 드러내며 통제되지 않는 맹수의 습성을 보여왔던 소녀 로라가 그런 로건에 구슬픈 "Daddy"를 외치며 감정적 유대를 나누는 모습 또한 그렇다.


한 시대의 창조적 소수자였던 영웅적 인물 울버린, 그러나 지극히 인간적인 고뇌를 했던 로건의 상처와 치유를 담은 영화 '로건'이다. 그리고 마지막 울버린 휴잭맨에 단 하나의 존경과 애정을 바치고자 함은 틀림없다.


영화 로건 스틸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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