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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부대' 불편한 소재, 기막힌 활용법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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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4-03-27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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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유쾌한 현상의 민낯을 이리도 재치 있고 감각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건 확실한 특기다. 현대 사회에 잠식된 실체 없는 음모론, 그 속에 담긴 인간의 숨은 본능과 욕망까지. 온라인 여론조작이라는 소재를 통해 다시금 저만의 방식으로 깊이 있는 화두를 던진 안국진 감독의 신작 '댓글부대'다. 


영화는 시작부터 현실과의 경계에 모호하게 발을 걸친다. 국정농단으로 인한 전 대통령의 탄핵, 이와 관련된 대기업 총수의 대국민 사과 등 실제를 연상케하는 뉴스를 삽입하고 이에 따라 연상되는 이미지를 대놓고 의도한다. 그럼에도 그 결이 퍽 무겁거나 진중하진 않다. 가벼운 내레이션을 통해 읊어지는 지나간 이야기, 그리고 세상을 바꾼 촛불 집회에서 제일 먼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간 이는 누구였을지 등. 흥미롭지만 사실 알아도 크게 쓸데없는 시시콜콜한 잡담을 해대는 덕분이다. 여하튼 그 속에서 작지만 점차 발전해 온 여론의 역사를 인식시킨다. 


감독의 영리한 묘수는 시작부터 이렇듯 적절한 선과 경계를 지킨다. 교조적인 관점으로 현상을 강조하지 않고,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톤앤매너를 이어가겠단 감독의 의도가 엿보인다. 


영화의 등장 인물 구도는 여론 조작을 당하는 임상진 기자(손석구)와 여론 조작을 가하는 팀알렙 3인방 찡뻣킹(김성철) 찻탓캇(김동휘) 팹택(홍경)이다. 


임상진은 기자로서 딱히 사명감과 정의감이 넘치는 건 아니다. 적당히 허세 있고, 적당히 기자스럽다. 따분한 표정으로 제보자의 사연을 듣다가 대기업 만전의 비리와 연관돼 있음을 캐치한 뒤 번뜩이는 흥미로운 표정이 재밌다. 그렇게 작성한 기사가 오보에 휘말리고, 이로 인해 사람이 죽고 '사람 죽인 기레기'란 여론이 편성 돼서 정직 처분을 당하는데 사실상 업계 퇴출 통보나 다름없다. 꽤 우습게 그려지지만 대기업을 함부로 건드린 대가가 이토록 무서울 줄은 몰랐을 테다. 


그런 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온 새로운 제보자는 팀알렙의 글쟁이 찻탓캇이다. 찻탓캇은 그동안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를 통해 어떤 일들이 발생했는지를 점층적으로 풀어낸다. 사진 한 장으로 교묘하게 시작된 SNS 홍보글의 여파, 이로 인해 손쉽게 얻은 소득, 그리고 제대로 판을 키워 일을 벌이고 이에 도취되다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황과 맞닥뜨린 현시점의 팀알렙 이야기가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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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부대, 정치공작, 여론조작 등은 현실에서도 익히 들어왔고 의심해본 것들이다. 하지만 한 번도 그 실체가 적나라하고 명확하게 드러난 적은 없었다. 영화 역시 그 태도를 고수한다. 팀알렙이 벌이는 온갖 여론 조작과 어그로 행위들은 기발하고 참신하기도 해서 초반 흥미와 몰입을 높인다. 그러나 거듭될수록 어쩐지 불유쾌하고 께름칙하다. 끝까지 실체를 알 수 없고, 혼란함을 가중하는 팀알렙의 정체도 이 불쾌감을 가중하는데 한 몫한다. 인터넷과 SNS가 일상화된 사회에서 알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의 힘이 작용되고 그들의 의도대로 잠식되어가고 있음을 지켜보는 행위가 썩 유쾌할리 없잖은가. 


그 탓에 어딘가 계속 찝찝하고 불안하다. 이는 영리한 감독의 묘수이기도 하다. 가볍게 접근해서 적당한 자극과 흥미를 주며 시선을 돌려놓고, 종국엔 이 현상의 심각하고 무서운 문제점을 뇌리에 깊이 박아 넣는 셈이다. 전작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성실하게 살수록 이상해지는 사회의 민낯을 독특하고 기발한 코믹잔혹극으로 풀어낸 감독의 장기와 기조는 한결같다. 강박에 가까운 미디어 의존 시대, 온갖 정보와 실체 모를 썰들이 범람하는 와중에 저도 모르는 사이 누군간 피해자가 되고 때론 가해자가 된다. 모두가 인지하고 있지만 굳이 들여다보길 기피하는 이 심각성과 폐해, 잠재된 무의식의 공포를 교묘하게 자극하는 영화다. 


손석구 특유의 매력적인 연기 톤은 평범하고 튀지 않는 적당한 입장의 기자 역할에도 바람직하게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팀알렙 3인방의 발견은 '댓글부대'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낯설고 익숙한 청춘 배우 3인방은 각각의 개성을 발휘하면서도 자연스레 어우러지며 반갑고 신선한 시너지를 낸다. 이들의 번잡스러우면서도 감성적인 아지트 공간의 특색도 보는 재미가 있다. 그들의 집 앞에 시시각각 다른 조명을 받으며 돌아가는 거대한 회전목마의 비주얼과 쓰임새에도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놓은 감독의 미학적인 본능까지 놓칠 데가 없다.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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