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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만감이 교차하는 12.12 그날의 기록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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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3-11-2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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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를 장악한 군부 독재의 시발점은 불과 하룻밤 사이에 벌어진 군사 반란이었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운명을 바꾼 단 9시간의 기록. 김성수 감독의 영화 '서울의 봄'은 그 끔찍한 역사적 과오의 시간으로 돌아가 알려지지 않았던 그날의 퍼즐을 완성한다. 탐욕에 눈먼 자들의 만행을 적나라하게 담아내며 인간 본성에 대한 충격과 공포를 자아내고, 그럼에도 이에 맞선 자의 강직한 신념을 통해 이 시대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지를 여실히 깨닫게 한다. 단언컨대, 김성수 감독 희대의 역작이자 수작이다. 


17년간 장기 집권하던 독재자가 사망한 뒤, 야만과 억압의 시대에 억눌려 살던 국민들은 혼란과 불안 속에도 마침내, '서울의 봄'이 오리라 믿었다. 허나 그 희망은 머지않아 처참히 짓밟혔다. 1979년, 12월 12일 벌어진 반란군의 쿠데타는 단 9시간 만에 정권을 장악했고, 그 끔찍한 어둠은 오랫동안 빛을 삼켰다. 그렇게 '서울의 봄'은 피워보지도 못한 채 허망히 저물었다.  


영화 '서울의 봄'은 그날의 끔찍한 역사를 기록한 영화다. 반란군과 진압군의 처절한 대립과 공방, 일촉즉발 9시간의 기록을 영화적으로 생생히 재구성해 관객을 그날의 현장으로 빨려 들게 한다. 치밀한 현장감과 긴박감으로 141분이란 러닝타임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사건의 큰 틀은 사실에 맞게 구축하고, 구체적인 행적과 인물의 성격을 영화적으로 창작했다. 그럼에도 실화인만큼 자연스레 캐릭터를 보며 연상되는 실존 인물들이 더욱 실감 나게 몰입감을 높인다. 


영화의 중심 축은 탐욕에 눈이 멀어 권력을 손에 쥐려는 반란군 우두머리 전두광(황정민). 그리고 이에 맞서 군인으로서 책임과 사명을 다하는 강직한 진압군 사령관 이태신(정우성)이다. 이들을 필두로 반란군과 진압군의 일촉즉발 대치와 전시 상황을 오가며 숨 가쁜 그날의 기록을 써 내려간다. 


영화는 사건적 접근보다 인물적 접근으로 점층적인 몰입감을 높인다. 보안사령관 전두광은 전 대통령 암살 사건의 수사를 책임하며 세간의 이목을 받고, 모든 정보를 보고 받는 알량한 권력을 손에 틀어쥔 후 세상을 다 가진 듯 우쭐하며 더 큰 욕망에 휩싸인다. 육군참모총장 정상호(이성민)는 절대 권력이 갑자기 사라져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점차 폭주하는 권력욕에 휩싸이는 전두광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이를 끊임없이 억누른다. 전두광은 정상호 특유의 위엄과 품격에 잠시 주춤하지만, 동시에 모욕감과 압박감을 느끼며 꿈틀대는 탐욕을 끝내 누르지 못하고 기어이 '국가 장악'이란 반역죄를 도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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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한 인간이 폭주하며 변모하는 과정을 통해 사소하고 평범하게 시작된 악의 근원을 깨닫게 하는 건 엄청난 공포다. 전작 '아수라'에서도 인간의 적나라한 악인 본성을 탁월하게 그린 바 있는 감독 특유의 장기가 훨씬 교묘하고 섬세하게 발휘된다. 


반란군 무리들의 면면도 마찬가지다. 우유부단하고 겁먹은 나약한 인간들이 전두광의 권력욕에 편승해 시시각각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우스꽝스러운 촌극이 따로 없다. 게다가 비겁하고 얄밉기 짝이 없는 국방장관을 비롯해 어리석은 군 수뇌부 권력자들의 모습은 탄식과 분노 그 자체다.  


그나마 위안을 주는 것은 본분을 지키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올바름의 가치다. 끝까지 반란군을 막기 위해 애쓰는 이들의 사투는 이미 끝이 명확히 보이는 실화 사건의 끔찍한 공포와 허망함 속에서도 관객을 지탱하게 하는 힘을 가진다. 특히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은 전두광과는 정반대 지점에 서 있는 자로서 인간 본연의 강직함과 투철한 사명을 넘어선 고귀한 신념까지 갖춘 인물이다. 그가 수적인 열세에 몰려서도 맨 몸으로 탱크를 막고, 때로는 울컥하고 호소하며 사력을 다하는 그 순간의 의지와 정신은 진한 감응을 일으킨다. 결국 패잔 했음에도 끝까지 우직한 성정으로 고결함을 지키는 그의 모습은 존엄하고 거룩하다. 이후 갖은 수모와 고초를 겪는 그 모습에 착잡하고 비통한 한이 맺힐지라도, 이 일차원적인 감정의 파고를 견뎌내면 종국엔 그 희생의 견고한 가치를 일깨운다. 욕망과 탐욕의 얼굴을 한 무리들이 정의와 옳음을 짓밟을지라도 끝까지 저항한 자들의 올바른 가치와 자부심은 결코 꺾이지 않는다는 것. 


그렇기에 최후의 대치에서 이태신을 마주한 전두광이 주춤하는 찰나의 눈빛은, 영화의 가장 압도적이고 상징적인 장면이다. 그 고결함 앞에 떳떳하지 못한 전두광이 결국 더러운 화장실에 숨어서야 승리를 만끽하며 웃는 추접스러운 모습, 감독의 이같은 상징적 연출이 감탄스럽다. 이후 승리의 순간을 만끽하며 반란군 무리들이 찍은 기념 사진이 실존 인물들과 그들의 행적에 대한 기록으로 오버랩될 때, 영화는 끝까지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다. 과연, 그들은 역사 속에서 그날의 기록을 진정한 승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서울의 봄'은 그야말로 대단한 역작이다. 대규모 등장인물이 나옴에도 면면이 각인될만큼 빈틈이 없다.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들의 박람회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다. 여기에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중에서도 이토록 영화적이면서 사실적인 면을 모두 충족시키는 탄탄하고 흥미로운 내러티브는 44년 전의 숨겨진 이야기의 퍼즐을 비로소 맞춘 듯한 느낌이다. 당시엔 허망하기 짝이 없는 암흑의 시절이었을지라도, 결국 '서울의 봄'은 언제든 다시 피어나길 마련이다. 깊고 벅찬 만감과 여운이 교차하는, 희대의 수작이다.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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