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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았다' 극사실주의가 빚어낸 심리적 압박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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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0-01-29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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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직끝나지않았다 포스터

시작은 의심이다. 극이 고조될수록 위태롭고 불안한 긴장이 감돌고, 종국엔 끔찍하게 현실적인 공포감에 지배된다.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감독 자비에 르그랑)는 평범한 프랑스 가정 법원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저는 엄마가 걱정돼요. '그 사람'은 엄마 괴롭히는 일만 일삼으니까요." 11세 소년 줄리앙(토마 지오리아)의 편지를 읽는 판사에 이어 각 변호사 측의 변론이 펼쳐진다.

영화는 극 초반 무려 15분의 분량을 양육권 분쟁에 놓인 아빠 앙투안(드니 메노셰)과 엄마 미리암(레아 드루케), 그리고 이를 관찰하는 판사의 3자 구도를 감정없이 담아낸다.

엄마는 현재 실업급여를 타고 있어 재정 상태가 파산 직전이다. 또한 아빠의 폭력성으로부터 자녀들을 격리하기 위해 휴대폰 번호를 바꾸고 집을 옮긴 상태다. 반면 고수입자이며 사회적으로 평판이 좋은 아빠는 어린 아들에 대한 양육의 권리를 찾고자 한다. 아들의 편지는 누군가 불러준 내용임을 의심할 수밖에 없고 부모와 자식 관계를 끊는 건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피력한다. 판사는 자녀들이 엄마 편만 드는게 문제의 일면이라고 말하고 둘 중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의문을 품는다.

이처럼 영화는 양측 모두 결백하지 않은 상황을 보여주며, 이 분쟁을 지켜본 관객들의 심리에 자연스레 의심의 싹을 틔운다. 재판부는 아들과 아빠가 의무적으로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고, 그 이후 벌어지는 일상을 담아낸다. 극은 이들 과거에 대한 부연 설명이나 회상은 전부 배제하고, 오롯이 현재의 상황만을 철저한 관찰자의 입장에서 묘사한다.

그렇기에 초반 아들과 친해지려 노력하는 아빠, 그와 보내는 시간을 불편하게 여기는 줄리앙의 태도는 이 분열된 가족의 내막에 어떤 배경이 담겨져 있음을 인식하게 하고 끝없는 의심과 혼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점차 극이 고조될수록 폭력성을 드러내며 아들을 도구이자 수단으로 사용하는 아빠와, 엄마를 위해 위태로운 거짓말을 지속하는 줄리앙의 모습을 통해 점층적으로 본질적 실체에 도달하는 식이다. 이는 숨막히는 긴장과 불안감을 유발한다.

특히 적막감이 감도는 좁은 차 안의 구도만으로 잠재적 위협을 준다. 아빠의 작은 기척과 숨소리에도 극도의 예민함으로 두려워하는 줄리앙의 하얗게 질린 얼굴, 이때 울리는 안전벨트 미착용음은 그 어떤 사운드보다 효과적이다. 이처럼 지극히 정교하고 사실적인 묘사로 심리적인 압박을 가한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사건 전개는 세 편의 고전 영화를 절묘하게 레퍼런스 한 감독의 노련한 연출로 인해 몰입감을 높인다. 극은 부모의 권리에 대해 그린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1979)로 시작돼 찰스 로튼 감독의 '사냥꾼의 밤'(1955)을 거쳐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그려낸 광기와 고립, 공포의 절정인 '샤이닝'(1980)의 흐름으로 이어지는데 세 영화가 각각 지닌 감정선을 순차적으로 담아내며 감정적 고조를 일으킨다.

15분의 오프닝이 도출해낸 15분의 엔딩 신은 몹시 강렬하고 소름끼치는 공포의 전율을 일으킨다. 그 이후 이제 끝났다고 수없이 되뇌이는 줄리앙과 미리암의 모습은 과연 '끝'이 맞는지에 대한 의구심과 허무의 파고를 남긴다.

영화는 파괴된 한 가족의 모습을 통해 법의 모순과 허점을 꼬집는다. 현실은 법적 판결처럼 이분법적이지 않다. 가해자는 이 법의 속성을 교묘하게 이용했고, 이에 2차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의 고통은 누구도 보상해주지 않는다. 공포에 떨며 소리 죽인 눈물을 흘리는 가엾은 줄리앙의 잔상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는 이유다. 극한의 감정을 극도로 절제하며 표현한 토미 지오리아의 열연은 천재 아역의 탄생을 알리기엔 충분하다. 또한 자비에 르그랑 감독이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은 무서울 정도로 간결하며 완벽하다.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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