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10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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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웃사촌' 장르 활용의 좋은 예 [리뷰]

    전작 '7번방의 선물'로 1200만 관객을 웃고 울린 이환경 감독의 신작 '이웃사촌'. 역시 '휴먼 코미디의 대가' 이환경 감독답다. 다소 무겁고 민감한 소재일지라도 그가 다루면 거북스럽지 않다. 감독 특유의 독보적 장기인 코믹함과 휴머니즘의 정서 덕분이다. 사법제도의 치명적인 결함과 모순을 녹여낸 전작과, 암울하고 절망적인 군부 독재의 시절을 배경으로 한 '이웃사촌'까지 어두운 소재의 부담감, 과정의 피로함 따위는 좀처럼 느낄 수 없다. 그저 자연스러운,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에 웃고 울게 되는 건 그 속에 담긴 진정성 때문이다.  제 자식이 왼손으로 밥 먹는 것만 봐도 '빨갱이'냐 호통치고, '빨갱이' 잡는 일이라면 변소간에서 온몸에 오물을 뒤집어쓸지언정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남자 대권(정우). 그의 인생 모토는 아마도 '빨갱이 잡아 족쳐야 나라가 산다'는 것일 테다. 이는 모두 '애국심'에서 비롯된 것이란 강한 신념이 있었다. 강제 가택 연금당한 야당 총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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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죽던 날' 김혜수X이정은이 전하는 강력한 희망 [리뷰]

    제목부터 파격적이다. 그 과감하고 불안한 타이틀 이면에는 사실 가장 필요한 용기와 위로의 메시지가 담겼다. 살기 위해 '내가 죽던 날'. 그리고 삶은 다시 시작되었다.  '내가 죽던 날'(감독 박지완)은 아버지가 저지른 범죄 사건의 주요 증인으로 채택돼 외딴 섬마을에서 보호를 받던 소녀 세진이 사라진 이후의 상황을 그린다.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현수(김혜수)는 벼랑 끝에 서 있다. 믿었던 사람에 대한 배신, 완벽할 거라 믿었던 인생이 하루아침에 송두리째 무너진 상황. 절망과 허무가 도사린 그의 표정은 괴롭고 공허하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왜 몰랐을까. 몰랐다는 게 변명이 될까." 수없이 반문하지만 정답은 알 수 없고 고통만 더해진다. 매일 밤 잠을 뒤척이고, 겨우 잠든 꿈에선 자신이 죽어있는 모습을 스스로 본다. "누가 좀 치워주지" 싶을 정도로 이미 현수의 마음과 감정은 죽어있는 상태다. 그래도 '살기 위해' 복직을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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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뜻깊고 영리한 '도굴' 원정대의 탄생 [리뷰]

    여러 범죄자들이 사기극을 벌이는 과정을 그리는 범죄 영화는 이미 익숙한 장르다. 하지만 그 범죄의 대상이 나라의 특수한 재산인 귀중한 문화재라는 설정만으로 영화 '도굴'(감독 박종배)은 신선하고 뜻깊은 케이퍼 무비로 탈바꿈된다.  '도굴'은 오프닝부터 인상적이다. 산에 오른 한 남자가 쇠막대로 땅을 짚는데 아이의 신음 소리가 난다. 궁금증과 불안감이 고조되는 찰나, 도굴꾼들의 경쾌한 애니메이션 오프닝이 시작된다.  서울시 강동구에 사는 강동구(이제훈)라는 남자는 스님 분장을 한 뒤 황영사 9층 석탑 속 불상을 손쉽게 훔친다. 그리곤 대범하고 대담하게 고미술상가를 대놓고 휘젓고 다니며 속된 말로 간을 본다. 국가 문화재 관리소장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고가의 문화재들을 모으고 해외에 빼돌리는데 온갖 불법을 자행하고 있는 진회장(송영창)은 소문을 듣고 지시를 내린다. 저를 찾아온 깡패들 앞에서도 강동구는 겁내긴커녕 깐족거리며 도발하기 일쑤다. 여차여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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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이의 양지' 실낱같은 희망일지라도 [리뷰]

    꿈을 포기하면 만날 수 있는, '젊은이의 양지'. 씁쓸하고 잔혹하지만 딱히 반박할 수가 없다. 성과와 결과만으로 평가받는 잔인하고 치열한 자본주의 경쟁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많은 이들에게 영화는 말한다. 우린 모두 '사람이었네'라고. 더불어 깊은 성찰과 위로를 건네는 신수원 감독의 신작 '젊은이의 양지'다.  깊은 호숫가 바닥에 석고상이 버려진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 행위는 계속됐음직하다. 수없이 쌓여있는 흉상들. 이름 모를 수많은 얼굴들이 그곳에 버려져있다. 영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어느 콜센터,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기계적인 사람들이 있다. 웃는 표정과 상냥한 말투지만, 전화 내용은 밀린 카드 빚 독촉이다. 이른바 '진상' 고객들 대상 매뉴얼도 있다. 가족의 정보를 읊으며 협박하는 식이다. 그곳에서 현장 실습 중인 19세 준(윤찬영)은 밀려드는 콜 수와 손님들의 폭언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한다. 노동자인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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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이꽃' 안성기가 그린 인간의 품격 [리뷰]

    "난 아름다운 사람은 아니오. 하지만 추한 사람으로 기억되기는 싫소." 이는 영화 '종이꽃'을 관통하는 메시지다. 삶은 차곡차곡 쌓여서 죽음이 된다. 좋은 삶은 좋은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산다는 것의 의미, 죽음을 다루며 그린 아름답고 찬란한 모든 삶의 역설을 담은 영화 '종이꽃'(감독 고훈)이다.  어느 장례식장. 검은 정장을 입은 노년의 남자는 조문을 하고 나와 담배를 꺼내 문다. 뒤따라 나온 상복 차림의 남자가 말한다. "미안하다. 너한테 해야 되는데. 아내가 상조 보험을 들었더라고." 노년의 남자는 그 말을 들으며 그저 대꾸 없이 담배만 태운다. 그 주름진 얼굴과 허망하게 부서지는 하얀 연기만으로 세월의 무게가 여실히 느껴진다.    상조회사의 등장으로 일거리가 줄어든 장의사 성길은 녹록지 않은 삶이 막막하다. 일은 끊기고, 월세는 밀렸고,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아들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아들을 돌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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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이게 바로 90년대 언니들의 '멋'이다 [리뷰]

    "I love My Self", "I can do it, you can do it, we can do it" 그야말로 자연스레 격앙된 에너지가 솟구치는 문구다. 이처럼 희망찬 메시지를 품은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감독 이종필)은 통쾌하고 당찬 기운이 넘친다.   영화는 1995년, 상고 출신 입사 8년 차, 업무 능력은 베테랑이지만 늘 보조업무에 머무는 만년 말단 사원들이 주인공이다. IMF 구제 금융의 한파가 몰아치기 직전, 거리에 컴퓨터 학원과 영어학원이 넘쳐나던 때. 상고 출신 고졸 사원들을 대상으로 개설된 토익반에서, 토익 점수 800점만 넘으면 대리가 될 수 있단 희망을 품고 오늘도 열심히 "마이 네임 이즈"를 외치며 부푼 꿈에 젖은 이들의 활기찬 모습을 시작으로 힘찬 출근길이 열린다.  막상 현실은 고졸 사원을 구분하는 자주색 유니폼 차림을 고수하고 커피 타기, 담배와 구두 닦기 심부름만 하는 신세다. 그러다 우연히 회사의 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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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도 없이' 아이러니의 미학 [리뷰]

    '소리도 없이 우리는 괴물이 된다'는 의미를 함축한 영화 '소리도 없이'(감독 홍의정).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하지 않고, 모순적이면서도 모순이 당혹스럽지 않다. 모호함과 모순됨이 뒤섞인, 아이러니의 미학이 여기 담겼다.  여기 두 남자가 있다. 다리가 불편한 창복, 말이 없는 태인. 많은 보통의 존재들이 풍기는 삶의 냄새가 가득한 시장통 골목 어귀에서 트럭을 대고 달걀을 파는 남루한 두 남자. 이 보잘것없는 두 남자는, 달걀 장사를 마치고 어디론가 향한다. 음습하고 불안감이 도사리는, 쾌쾌한 어둠의 냄새가 나는 폐공장. 그곳에서 다소 우스꽝스러운 비닐캡과 우비를 자연스럽게 착용한다. 그 와중에도 대꾸할리 없는 걸 알면서도 시답잖은 이야기를 쉼 없이 늘어놓는 창복과 말 없는 태인. 이들의 관계성은 시종일관 이렇다. 그리고 그들은 허공에 매달린 만신창이의 피투성이 인간이 죽기를 기다리며 한가로이 라면을 끓여먹는다. "사망하고 계시는 중인" 인간이 비로소 생을 마감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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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멩이' 편협한 믿음에 대한 경종 [리뷰]

    잔잔한 물결에 아주 작은 돌멩이가 던져진다. 거대한 파문이 일면서 물결이 퍼져 나간다. 다시 가지런하게 물결은 자리를 잡는다. 좀 전의 거세게 출렁이던 파문이 마치 없었던 일인 양. 하지만 물의 결은 출렁였다. 퍼지는 파동만큼이나 괴로움도 퍼졌다. 눈치채지 못할 찰나에 이미 보이지 않는 공간과 존재의 흐름은 균열됐고 흐트러졌다. 고작 '돌멩이' 하나 던진 것에 불과했다. 이 불완전한 고요함이 너무도 강렬하고 의구스럽다. 그래서 쉬이 잊히지 않는 잔상을 남기는 영화 '돌멩이'(감독 김정식)다.  세월이 느리게 흘러갈 것만 같은 평화로운 소농 마을. 8살 마음을 가진 어른 아이 석구는 오늘도 변함없는 일상을 맞는다. 밥과 함께 먹는 박카스, 건드려선 안 되는 파란 모자, 어수룩한 멜빵바지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나선다. 유치원 통학 버스를 기다리는 동네 꼬마들의 사과를 빼앗아 먹으며 장난을 치기도 하고, 동네 마트 시식 코너에서 고기가 익기만을 눈을 껌뻑이며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