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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이해영 감독이 느낀 뜨거운 찬란함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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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3-01-18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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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안간 1933년 경성 거리, 그 비극과 낭만이 공존하는 시대의 일렁이는 온기가 휘감아 한껏 도취되게 한다. 치밀하고 섬세한 설계 아래 의심과 혼돈을 넘어, 마음이 달떠 애수와 환희에 젖어들기까지, 완벽한 133분의 황홀경이다. 


이해영 감독의 영화 '유령'은 일제강점기 시대, 항일 조직 흑색단 스파이 '유령'에 관한 이야기다. '유령'이라는 이름으로 의심받는 용의자들은 벼랑 끝 고립된 호텔에 갇혀 서로 의심하고 경계하며 혼란을 야기한다. 서로 다른 욕망을 가진 캐릭터들이 얽혀 진짜 속내를 드러내기까지 미스터리한 긴장감이 끊임없이 고조되지만, 이해영 감독은 애초부터 '유령'의 시점으로 과감하게 영화를 시작했다. 자신감 넘치는 도발이다. 위기에 빠진 '유령'이 어떻게 이 함정을 벗어나고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춘 영화는 암흑의 시대를 뚫고 나아가는 '유령'이 선사하는 전복의 쾌감은 물론, 강렬하게 뇌리에 박히는 색감과 우아한 미장센까지 어우러져 그저 넋을 놓고 빠져들게 한다. 그만의 유별난 감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이해영 감독이다. 


그는 "영화에 담기는 것들이 시각적으로 충만한 경험이 되길 바라는 기본적인 천성이 있고 이전 작품엔 강박적으로 아름다움에 집착했다면 '유령'은 조금 달랐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가 말하길 '유령'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관련 자료를 보면 그들의 희생과 투쟁이 너무도 찬란해서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그들의 절실함, 투철함이 대의를 위한 희생이란 메시지 이전에 이렇게 충만하고 찬란한 감상을 줬다. 저가 느낀 뉘앙스를 잘 담아내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 색감, 비주얼, 미장센 등이 모든 수단으로 동원되어야 한단 생각에 전작들보다 유달리 더 공을 들였다고. 


빗 속의 우아하고 쓸쓸한 경성 거리, 우산을 타고 떨어지는 눈물같은 빗방울, 하얗게 부서지는 담배 연기까지. 감독이 진심으로 빚어내고 정성스레 조각한 '유령'의 시퀀스는 그 어떤 사소한 신이라도 매 순간 눈 뗄 수 없이 황홀하고 매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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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과감하게 추리를 배제한 채 '유령'이 누구인지를 명시한 이유 역시 분명했다. "주인공이 어떻게 이 장소와 상황을 깨부수고 시원하게 폭주하는데까지 다다르게 될까를 선명하고 명쾌하게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이야기의 중반 이후부터는 복잡한 플롯이나 캐릭터들의 얽힘을 상대적으로 최소화하고 주인공이 달려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대의를 위해 희생하고 인생을 다 바칠 정도로 살았던 건 일제강점기가 아니면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역사 속에서 작은 힌트와 뿌리를 찾으려 했고 실제 흑색 공포단이란 독립운동단체를 모티브로 했다. 이들의 역사적 기록은 상해 육삼정 의거까지다. 누군가가 바톤을 이어받아 끝까지 투쟁하고 있다면 시사하는 바가 더 클 거라 여겼다"고 했다. 


결국 '유령'은 각자의 방식으로 비극과 야만의 시대에 맞선 뜨겁고 찬란한 사람들을 나타내는 단어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그들에 대한 존경과 예의를 표한다. 촘촘한 밀도의 디테일, 완벽한 미학적 추구가 그렇다. 


'유령'이 감금된 해안 벼랑 끝 호화로운 호텔이라는 이질적 공간도 매우 의미깊다. 보는 순간 압도될 만큼 고풍스러운 호텔은 높은 층고와 구조물, 가구 등 사소한 소품 디테일만 봐도 그 시절 사치를 즐긴 최고위층들의 장소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윽고 이 사치스러운 공간의 또 다른 이면이 드러나는 순간 음습하고 음산한 기운이 물씬 풍겨난다. 이에 대해 감독은 "처음엔 안락한 공간 안에서 캐릭터들이 부딪히고 교란하는 느낌이 반짝거리고 색감이 많은 공간이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장르 변주가 일어나면서는 확 달라져야 했다. 모든 인물과 공간의 민낯이 드러나며 어둡고 색도 없고 더럽고 질척대는 공간으로 탈바꿈하면 재밌겠단 생각에 그런 두 가지가 동시에 모여 있는 공간으로 이중적 설계를 했다"는 설명이다. 


실로 치밀한 디테일이다. 다만 준지 역의 설경구는 제복 모자가 1mm 라도 어긋나면 이를 바로잡는 이해영 감독의 디테일에 혀를 내둘렀다고 했지만, 이에 대한 감독의 항변(?)은 꽤 재밌다. "준지가 경무국에서 좌천됐다가 다시 복귀하는, 이 사람에겐 가장 큰 숙명같은 상징적인 상황이다. 각 잡고 가져온 제복과 모자를 다시 쓰는 것인데 한 번에 써야지 여러 번 고쳐 쓰면 없어 보이지 않나. 선배님이 쓰실 때 약간 마크가 돌아가 있었다. 멋있는 각도를 찾아야 하는데 웃기거나 귀여우면 안 되니까 일미리만 내릴게요, 올릴게요 한 거다. 저의 결벽 때문이 아니라 설경구 선배가 갖고 있는 멋짐을 일미리도 손상시키지 않고 고스란히 담기 위한 것"이라고. 저가 그리 유난을 떤 덕분에 짜증은 났을지 몰라도 멋지게 담긴 것 아니냐는 능청이다. 


비극과 애수, 허망함 속에서도 끊임없이 투쟁한 사람들의 가치를 온전히, 그리고 완벽하게 그려내고 싶던 감독의 열망이다. 주인공 차경(이하늬)이 조선 최고의 재력가 집안 딸임에도 독립운동을 하는 이유가 사랑하는 사람의 신념을 지켜주고 싶었기 때문이란 낭만적인 설정도 감독의 바람이다. "안온한 채로 살아도 될 만한 환경의 사람이 이런 희생을 각오할땐 아마 굉장히 사적으로 밀접하게 그녀를 움직일 수밖에 없게 만든 동기가 있었을 거다. 그 시대를 살아가던 이들의 결핍과 갈망이 어떻게 발현된다면 이는 짐작 가능한 정도의 규모가 아닌, 더 크고 거대한 느낌의 감상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저는 사랑이라는 이름 또한 어떤 찬란한 감정과 뉘앙스 안에 담겨서, 이 전체가 뭔가 가슴을 뜨겁게 만들면 좋겠단 맥락으로 묘사하고 집착했다." 감독은 실제 그 시절을 살았다면 "용감하게 살았을진 모르겠다. 최소한 비겁하게 살지 않으려, 용감하려 하지 않았을까"라고 상상해 본다. 


이해영 감독은 그만의 확실한 고유색이 있다. 또한 지향하는 바도 뚜렷하다. "매번 다른 이야기를 한 것처럼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본능적으로 하나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제게 중요한 건 매번 영화를 만들때 인물을 어떻게 담느냐다. 시나리오 쓸 때 캐릭터와 배우가 소화할 때의 캐릭터를 잘 응용해서 가장 매력적이고 정점의 연기를 소화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제가 좋아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해영 감독이 영화를 찍는 보람이다. 그렇기에 "1mm의 차이를 계속 결벽적으로 요구할 수밖에 없다"며 웃긴다. 어쨌든지 이 같은 진심과 고집으로 독보적인 연출과 감각적 미장센의 정점에 도달한 이해영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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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J ENM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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