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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의 '유령' 찬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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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3-01-18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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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압도적인 무게감이 있다. 복잡한 내면 심리를 가진 인물의 철저한 이중성으로 끊임없이 관객을 교란시킨다. 영화 '유령'(감독 이해영) 속 설경구다. 


1933년, 경성. 명문 무라야마 가문 7대손으로 조선말과 사정에 능통해 성공 가도를 달리던 엘리트 군인이었으나 불미스러운 가정사로 좌천돼 경무국 소속 총독부 통신과 감독관으로 파견된 무라야마 준지. 그의 냉철하고 차가운 눈빛 이면에는 들끓는 분노와 수치, 욕망이 꿈틀거린다. 그런 복합적인 속내를 반영한 듯한 도마뱀 같은 초록색 의상,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각 잡힌 제복 차림은 설경구의 또다른 모습을 예고한다. 늘 한계에 갇히지 않고 매번 새로운 얼굴을 탁월하게 그려내는 이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는 많았지만, 감독은 장르물로 접근하고 싶다고 했다. 장르적인 색감과 결이 다른 작품이라 관심이 갔고, 그 시대를 착장한 것만으로도 새로운 캐릭터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이 작품을 하게 됐다"고 말문을 연 설경구다. 꽤 날카로워진 얼굴은 "군인 캐릭터 설정이기에 얼굴에 각이 살아났으면 해서 살을 뺐다. 아무래도 군인인데 두리뭉실해 보이면 안 되잖나"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조선총독부에 심어진 항일조직 스파이 단원 '유령'으로 의심받는 다섯 명의 용의자들. 그 중 하나가 설경구가 맡은 일본인 준지다. 그는 유력한 용의자임에도 '유령'의 혐의를 벗고 진짜 '유령'을 찾아내 다시 화려하게 일선의 지휘부로 복귀하고 싶어 한다. 이에 악랄하고 지독하게 '유령'을 찾아낸다. 하지만 그의 출신 성분이 의심과 혼란을 거듭하게 한다. 설경구는 마치 안개 같은 캐릭터다. 그의 헤아릴 수 없는 속내와 표정은 관객의 긴장과 혼돈을 극도로 끌어올린다. 


설경구는 제가 맡은 준지가 이 영화 속에서 가장 기능적인 역할을 맡은 캐릭터라고 했다. 이에 충실하게 연기하는 것이 '유령'이 시작이었다. "혼선을 주고, 알듯 모를 듯한 표정을 하고, 정확한 꼭지점을 주지 않고 계속해서 의심하고 의심받는 캐릭터"로서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접근이었다. "준지의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를 지우려고 하는 준지의 모습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또한 준지의 치욕이자 콤플렉스가 된 비극의 가정사는 그를 더 강압적이고 집착적으로 매달리게 했을거란 설명이다. "군인 명문가 7대손으로 굉장한 자부심을 갖는 반면 계속해서 혈통이 부딪혀 속은 콤플렉스 덩어리다. 그가 버티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집착적인 성공이다. 그가 끝없이 올라가려는 것은 야망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해서 하는 행위였다. 그래서 꽤 연민이 갔다"고. 인물의 감정을 단정 짓기가 퍽 어려웠다. "한 가지 감정으로 설명이 안 된다. 치욕과 분노도 있을 거고, 참 복합적이다. 엄마를 저주하진 않았을 거다. 분명 애정했을 거다. 그런 감정들을 나열하기 참 어렵다. 저도 모르겠다. 준지의 속을 이해 못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탁월한 소화력을 자랑한 설경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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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영 감독과의 작업은 처음이었다. "과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색감에 대해선 굉장히 다른 눈을 가진 것 같다. 과감한 색감을 쓰고, 꼼꼼하고, 정확하게 딱 떨어지길 바란다. 저도 애드립을 안 좋아하는 편인데 계산적인 연출을 하는 감독이란 생각이 들었다"는 설명이다. 다만 확고한 디테일 때문에 나름 애를 먹기도 했단다. "제복 입었을 때 모자 중심점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안 된다. '좌측 모자챙 1mm만 내려줘' 이런 식이다. 머리에 쥐 나고 하도 깃을 세워서 목에는 힘이 들어가고 그런 건 불편했다. 공화당 신은 특히 장시간 찍어야 하는데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차라리 모자를 쓰지 않겠다고 우겼다. 가죽 롱코트를 입으니 만만치가 않고 이걸 입고 액션을 하는 것도 육체적으로 힘들었다"는 볼멘소리다. 하지만 "의상 색감이 참 부담스러웠는데 입다 보니 익숙해지더라. 제가 초록색 코트를 언제 입어보겠나. 또 그 안에는 진한 자주색 베스트를 입는다. 참 멋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가 봐왔던 그 시절 흑백 사진에 과감한 색을 입히고, 모든 신을 마치 한컷한컷 구석구석 정성스럽게 닦아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말 큰 애정을 가졌구나 싶었다"고 감탄하는 그는 역시 '츤데레'의 전형이다. 


이어 설경구의 '유령' 찬미는 계속됐다. "거친 것도 있지만 섬세함도 있다. 색감이 세게 입혀지니까 초반엔 보면서 정말 낭만적이고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약과 통쾌한 판타지를 녹여낸 스토리에 흡족함을 드러낸다. "정말 반가웠다. 그동안 너무 투톱 브로맨스만 많지 않았나. 시대적 장르 영화지만 여성 캐릭터의 전사로 시작되는 영화인데다 여성 액션의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줘서 정말 좋은 현상이라 생각했고, 더 강렬해도 괜찮단 생각을 했다. 정말 매력적이었다"는 그는 "초반의 이솜 씨는 짧은 분량에도 너무 강렬했다. 마지막 이주영 씨 착장도 강한가 싶지 않나 했는데 오히려 그 색깔이 강렬하게 각인되고 생각이 나더라. 이 영화는 이하늬와 박소담이 끌고 간다면, 시작은 이솜이 열고 끝은 이주영이 닫았다고 생각한다"며 여배우들에 대한 진심 어린 찬사를 보낸다. 


특히 함께 액션 합을 맞춘 박차경 역의 이하늬에 대해 "액션 상대로 정말 훌륭한 배우다. 상대와 액션 합이 안 맞을 때 짜증을 내면 아무리 선배라 해도 부담스럽고 신경쓰인다. 하지만 안 맞는 순간에도 전혀 티를 안 내고 촬영 내내 너무 밝은 에너지를 줬다. 하늬 씨 덕분에 즐겁게 촬영했다"고 고마워했다. 


반면 자신에겐 "호텔 내부에서 손 끝에도 긴장감이 있어야 하지 않았나, 왜 좀 더 촘촘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야박한 자평이다. 무려 31년 차 배우임에도 여전히 스스로의 연기엔 인색한 그다. 하지만 연기에 대한 행복감만은 확실히 자부할 수 있다. "초창기에는 매너리즘이라고 해야 되나. 그냥 연기를 하던 순간이 있었다. 이 촬영 끝나면 다음 작품 하고 있는 그런 날들, 어느 순간 '아 추락하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불한당'으로 구제, 아니 구원을 받으면서 소중함을 느꼈다. 감사해졌다. 현장에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자산어보' 찍을 때도 섬이란 특수성 때문인지 아침 일찍 촬영장에 가서 이정은 씨랑 바다 보면서 '정은아, 정말 행복하지 않냐' 이렇게 얘기했다. 스태프들은 분주하고 역동적으로 촬영을 준비하고 있고, 이 현장에서 숨을 쉰다는 것이 감사했다." 이 솔직 담백한 어느 날의 감상이 그가 깊이 간직한 진심이다. 


아직 그는 연기에 절실함을 느끼고 싶진 않다. 절실하면 괜히 오버할 것 같아서란다. "절실함보단 감사함을 느끼며" 연기하고 싶다. "현장에 있는 걸 계속 감사해라." 31년 차 배우가 늘 되뇌는 말이다. 그 안에 말로 다 못한 깊은 애정과 소중함이 깃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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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J ENM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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