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트' 이정재 감독, '능력자' 발견 [인터뷰] >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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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트' 이정재 감독, '능력자' 발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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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2-08-11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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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상치 않다. '잘 빠진' 첫 연출작에 담아낸, 이토록 깊이 있는 함의가 놀랍다. 30년차 배우 타이틀과 더불어 준비된 연출가의 자질을 드러낸 이정재, 알고 보니 대단한 '능력자'였다.


"눈물로 지새운 밤이었다." 너스레 섞인 말이지만, 지난 4년간 첩보 액션 영화 '헌트'의 각본, 연출, 연기, 제작까지 모든 것을 감내했던 이정재의 치열했던 순간이 담긴 소회다.


'헌트'는 80년대 군부독재를 배경으로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직면한 스토리를 풀어가는 첩보 액션이다.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부터,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는 안기부 요원 박평호(이정재), 김정도(정우성) 세력의 치열한 심리전과 거듭되는 반전, 그리고 미국 일본 태국 등을 무대로 펼쳐지는 압도적 총격 액션과 작품 전반을 지배하는 감각적인 미장센. 이처럼 방대한 스토리와 스케일을 아우르며 궁극적으로 담아낸 영화적 메시지까지. 여느 감독의 첫 연출작이라 해도 놀라운데 무려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이라니 여러모로 허를 찌르고 감탄을 부른다.


'헌트'는 개봉 이전부터 칸 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고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그제야 한시름 놨을 이정재 감독이지만, 그동안의 마음고생과 부담은 이루 말할 수 없을 터였다. "제가 잘못 시도했다가 꽤 많은 비난을 받게 되면, 제 연기 커리어에도 크나큰 지장이 있지 않을까 그런 불안감이 많았다." '헌트'는 본래 배우로 출연 제의를 받은 작품이다. 대의를 위한 두 남자의 각기 다른 선택이 현시점에도 많은 공감대를 형성했기에 제작을 결심했다. 감독을 찾아나섰지만 모두 연출을 고사했다. 여러가지 이유에서였다. '남산'이란 이름의 초고를 구입할 당시만 해도 액션은 없었고 철저히 스파이 장르물에 집중된 시나리오였다. 액션도 등장해야 하고, 동시에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도 살려야 함은 물론 새로운 주제도 찾아야 했다. 그러다 결국 자신이 맡게 됐단 이정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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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자 출신의 연출이라는 리스크가 있기에 시나리오로 입증해야만 했다"는 그는 "스파이 장르물이 볼땐 좋았는데 막상 쓰다 보니 너무 지루했다. 이 템포론 안 되겠다 싶어 다양한 아이디어와 상황을 넣고 액션을 계속 배치했다. 서스펜스와 스릴러가 같이 혼용되는 스토리 안에서 뜬금없이 액션이 나오면 안 되니 그럴싸하게 짜 맞추는 과정이 매우 어려웠다. 원래는 원톱 시나리오에서 투톱 구조의 이야기와 캐릭터를 만든다는 것도 어려웠다. 발란스를 맞추는 과정이었다"고 했다. 꿈에선 풀릴까, 맨 정신에 안 풀린 땐 술도 마시면서 써보고, 봉준호 감독은 카페에서 시나리오를 쓴다던데, 그래서 카페도 가봤다.


이같은 창작의 고통에 빠져 보낸 중에도 이정재 감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였다. 상업영화로서 장르적 재미도 충실해야 하지만, 관객이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를 같이 호흡하며 공감할 수 있도록 많은 고민을 했다. 이정재 감독이 궁극적으로 담고 싶은 주제는 대립과 갈등, 믿음과 신념이란 딜레마였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80년대는 물론이고 현재도 우리는 끊임없이 대립하고 갈등한다. 우리를 대립하게 만드는 개인의 신념이 어디에서 왔을지, 그것은 옳은 것인지 질문하고 싶었다." 이정재 감독의 주제 의식이 이토록 깊고 진지하다. "너무 전면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불편했다. 영화 제작 당시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기였다. 온 국민이 예능보다 정치 사회 뉴스에 더 관심이 높을 때였다. 너무나 양극화로 갈라져 서로 대립하고 분쟁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왜 싸우고 있을까. 우리의 가치관이나 이념이 과연 옳은 것인가' 많은 생각이 들더라. 이런 주제로 캐릭터를 잡아나갔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박평호와 김정도다. 각각 처해진 상황과 수단은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자신이 가진 이념이 정의롭지 않다는 걸 깨닫고 다시 올바른 신념을 찾아 행동하는 이들이다. "인물이 가진 목적이 중요했고, 그 목적은 주제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는 감독은 이런 인물을 부각한다면, 주제가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도 잘 드러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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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탄생한 두 인물의 팽팽한 대립과 치밀한 심리전은 정밀하고 사실적인 당시 시대상과 더해져 더욱 강한 몰입과 감상을 전한다. 실제 미얀마 아웅산 폭탄 테러, 이웅평 대위 귀순 사건 등, 80년대 전반의 시대적 분위기와 사건이 내포한 의미를 영화적으로 절묘하게 녹여낸 지점은 특히 놀랍다. 시대와 의미를 꿰뚫고 있는 감독의 시선과 영리한 장르적 활용까지 담긴 탓이다. 정작 감독은 "실제 사건이 연상되어질 수 있는 장면들을 어디까지 영화적 표현과 상상력으로 작업해야 하는지도 고민이 많았던 지점"이라고 했다.


칸 상영 당시 80년대 정치 상황과 군부정권의 악행을 모르는 외국인들이 어려워하는 반응을 보며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급히 수정과 편집에 돌입하기도 했다. 우리는 단어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대사나 표현과 장면들을 좀 더 상세히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찍어놓은 컷들의 이유와 목적이 다 있는데 이를 다시 편집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다. 그럼에도 관객이 더 이해하기 쉬운, 재밌는 영화를 선사하는 것이 각본가이자 연출자이자, 제작자로서의 책임이라고 여겼기에 물리적인 제약에도 집념을 발휘했던 그다. "삶에 책임감을 갖고 사는 것이 당연히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연기자로서만 살았을 때는 현장 안에서만 교류했지만, 연출을 하다보니 숨은 스태프들을 모두 만나게 된다. 그들은 영화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많고 단 한 컷의 변화로 인해 많은 노력이 들어도 작품이 좋아질 수 있다면 끝까지 해낸다. 그들이야말로 아티스트다."


영화판에서 흔히들 하는 얘기는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는 것이다. 이정재는 배우로서 현장을 겪을 때도 결코 동의하지 못했던 말이다. 그는 "제가 각본도 쓰고 연출도 하고 출연도 하고 제작도 참여했지만, 영화는 감독의 것이 아니다. 그건 결코 아니다. 이번에도 가장 많이 깨달은 것은 공동의 작업이기에 상대방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더욱 설득력을 가져야 된단 생각으로 임했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다가가려 했던 부분이 담긴 작품"이라고 했다.


4년동안 끝없는 고민 속에 드디어 세상 밖에 나온 '헌트'다. 제법 후련한 마음도 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내내 곁을 지켜준 정우성의 존재는 그에게 더없이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우성 씨와 제가 생각이 같다. '태양은 없다'처럼 유쾌한 영화는 당시 우리 나이와 어울리는 역할이고 이야기였다. 지금은 반백년을 살았는데, 영화 홍보차 예능에서 재롱은 피울지언정 '왜 이런 영화 만들었어요? 왜 이런 캐릭터 연기했어요?'라는 질문은 의미가 다르다. 죽을때까지 남는 영화에서 지금 우리 나이와 의미에 걸맞은 작품을 하고 싶었다"고 속 깊은 얘기를 털어놓는다.


'헌트'가 갖는 의미는 이처럼 진중하고 깊다. 이정재는 대한민국 대표 아티스트로서 대중에 끼치는 영향력을 어떻게 발휘해야 옳은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다. "다시는 연출 안 맡겠다"며 손사래를 치지만, 벌써부터 차기작이 기다려지는 이정재 감독이다.


사진=메가박스 중앙 플러스엠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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