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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선언' 임시완, 해사한 얼굴에 광기가 서릴 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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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2-08-09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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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해사한 얼굴 이면에 섬찟한 광기가 어릴 때, 그 충격의 여파는 더욱 거세다. 배우 임시완의 놀라운 '변신'이다.


인천공항을 배회하며 승객이 가장 많은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문의를 하는 남자. 탑승객의 개인 정보 때문에 알려줄 수 없다는 승무원의 말에 싸늘한 눈빛으로 욕설을 내뱉는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비밀스러운 행동을 하던 그는 자신을 지켜본 아이를 발견하고 불쾌감을 표현하고, 결국 아이가 탑승한 비행기의 편명을 알아내 비로소 행선지를 정한다. 천진한 얼굴로 마치 한 판 게임을 즐기듯 이유와 목적 없이, 기내에 생화학 테러를 일으키는 사상 초유의 테러범. 배우 임시완이 항공 재난 영화 '비상선언'(감독 한재림)에서 연기한 진석이다.


대담하고 유연한 연기다. 특히 그 맑고 고운 얼굴이 급발진 분노를 일으키며 순간적으로 돌변하고, 선량한 사람들에게 피해의식이 발동돼 집요하게 시비를 걸면서도 태연한 그 모습은 실로 어디선가 존재할법한 인물처럼 여겨졌기에 더 소름 끼쳤다.. 관객들은 물론이고, 함께 연기한 송강호 이병헌 등 기라성 같은 대배우들도 극찬을 보낼 정도였다.


이에 임시완은 "전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선배님들께 연기에 대해 칭찬을 받는다는 건 정말 저로서는 굉장히 기분 좋고 감사하고 뿌듯한 일이었다. 팬들 반응 중에 '눈이 돌아있다'고 표현해주신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연기를 잘 봐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어딘가에 실존하고 있을 것만 같은 인물이라는 평가는 그만큼 현실감이 있다는 거라서 제게는 너무 큰 칭찬"이라고 해맑은 미소를 짓는다.


진석은 서사가 배제된 '빌런'이다. 엄청난 생화학 테러를 일으키면서도 이유와 목적이 없다. 자신마저 위험할 걸 알면서도 자폭을 감내하고 미친듯이 폭주한다. 임시완은 서사가 없는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반면, 일종의 해방감도 느꼈다. "대본을 보며 처음 접했던 진석의 인상은 절대악이었다. 악역인데 서사가 아예 없었다. 일말의 정서적인 교감의 여지조차 없는 악역이란 점이 기존의 악역과는 달랐다. 연기할 땐 좀 더 다양하고 자유롭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는 그는 "악역은 비교적 표현 방식과 폭이 넓다. 중점을 둔 건 '어떻게 해서 나쁘게 보일까, 돌은 연기를 할까'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이미 정상적인 범주의 사람이기에 아예 왜곡된 가치관에 의해 만들어진 신념에 따라 행동했다"고 말했다.


임시완이 좋아하는 빌런의 형태는 '어벤져스'의 타노스, '킹스맨'의 발렌타인이다.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가진 신념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임시완 또한 진석만의 명확한 서사와 신념을 스스로 갖추려 했다. 그가 말하길 아마도 시작은 왜곡된 가치관이다. "그럴듯한 헛소리를 한다. 본인의 가치관에선 인과관계가 형성돼 있는데 그 자체에 모순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임시완이 쌓아 내려간 인물의 서사는 꽤 흥미롭고, 세밀하며, 그럴싸했다.


"어렸을 때부터. 발랄한 성격도 아니니 혼자 주눅 들어 있을 거다.. 어느 집단을 가나 나쁜 류의 사람은 있다. 이런 사람을 괴롭히려는 유형, 괴롭힘 당하는 걸 보면서도 도와주지 않는 유형. 그런 집단들에 의해 놀림거리가 됐고 폭행도 당했을 거다.. 그런 것들이 계속 쌓이니 점점 사람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이에 대한 생각들이 건강하지 않게 흘러가는 거다. '저들이 나를 왜 괴롭히지', 방관하는 사람들에게 피해의식도 있었을 거다. '왜 내가 당하는데 도움 주지 않지'. 혼자 건강하지 않은 정신으로 고찰을 시작했을 거다.. 그러면서 '저런 것들은 인간적으로 미개해서, 발전하지 못해서, 퇴화된 감정이다' 이런 식으로 귀결됐을 거다. 저들이 미개해서 그런 거라며 본인 스스로 위로하며 버텼을 거고,, 그러는 동안 증오감도 쌓였을 거다.. 그 끝에 '이 미개한 사람들은 존재 자체가 필요 없다'라고 생각하고, 급기야 필요 없는 사람들을 본인이 스스로 신성한 정화작용을 해야겠다고 귀결됐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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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길고 세세하며 깊이 있는 인물 서사 과정을 단숨에 설명한 그는 "이렇게 좀 서사를 만들어봤습니다"라고 생긋 웃어보인다. 연기에 대한 진지한 열정은 물론, 절로 눈이 빛나는 그를 보면 얼마나 연기를 즐기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엿보인다.


"일관적인 당위성을 갖고 가야겠단 생각이었다. 서사 없는 악역을 맡는 것이 배우로서는 창의적인 일이었다"며 즐거워한 그는 ""어찌 됐건 저는 연기로서 대화하고 칭찬받고 인정받는 게 세상 제일 큰 기쁨이다. 그걸 위해 집요하게 하고 일부러 더 생각하고 고민하는거다. 잘했다는 칭찬을 들을 때 진심이 느껴진다. 이를 얻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라며 천진한 미소다.


사실 가장 신경쓴 건 영어 대사였다. "영어는 어떻게 보면 기술적인 거다.. 교포처럼 영어를 해야 하니까 발음 위주로 영어 연습을 많이 했다. 적어도 언어로 인해 연기에 발목 잡히면 안 되겠단 생각 때문에 더 많이 연습했다"고.


임시완은 학구파다. 이병헌도 말하길, 현장에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호기심이 많은 친구라 더 기특했다 한다. 임시완은 "제가 그렇게 질문을 많이 했는지 몰랐다"고 쑥스러워하면서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선배님들이기에 저는 선배님들의 가치관, 평상시 취미 생활 등도 궁금했다. 그런 일련의 가치관과 생각들이 결국은 훌륭한 연기를 할 수 있게끔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내가 찾는 정답과 비슷한 모습일 거라고 생각한 기대감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리고 같이 작업하며 호흡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발전하는 것이었다고 감사를 전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비상선언'이 제게 선물과도 같은 작품이라 말한다. "훌륭한 감독님과 선배님들이 모인 작품이다. 저는 오히려 작품의 메시지와 미덕까지 파고들 겨를이 없었다. 당장 눈앞의 진석이란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 것인가, 제가 적어도 피해가 되면 안 되니까 제 역할만 해내기에도 벅찼다. 감독님과 선배님들 덕분에 제가 연기를 잘한 것처럼 보인 것"이라고 겸손이다.


연기를 한 지 어느덧 10년이 됐다. 임시완은 세세하게 따져보면 짧고 굵은 터닝포인트가 있었다고 했다. "처음 연기 시작한 것이 '해를 품은 달'이었다. 그 작품으로 제가 연기를 계속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고, '변호인'은 연기 정점에 서 계신 선배님들과 같이 작업하며 제가 연기자로서 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미생'은 저에게 있어 굉장히 큰 긍정적인 이미지를 준 작품이다. 여기에 '불한당'은 저만의, 저 스스로의 어떤 이미지 속에 갇힐 수 있다는 위험에서 벗어나게끔 해준 결정적인 작품일 수도 있단 생각이다." 그는 앞으로도 계속 연기하고 싶다. "연기가 적성에 너무 맞다. 그리고 제가 이 직업을 선택한 이후, 그래도 처음으로 대중에게 인정받은 장르이기도 하다. 계속해서 자연스럽게 평상시에도 생각나는 것이 연기"라고. 연기가 즐겁고, 각별하다. 임시완이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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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쇼박스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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