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선언' 한재림 감독이 본 희망 [인터뷰] >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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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선언' 한재림 감독이 본 희망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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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2-08-09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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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림 감독은 희망의 연대를 꿈꾸는 사람이다. 사람 사는 세상의 따뜻함, 그 가치를 안다. 


한재림 감독이 10년간 준비한 작품, '비상선언'은 사상 초유의 생화학 테러가 벌어진 비행기 안에서 재난에 맞서는 지상과 상공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재난 영화다. 감독은 오래도록 준비한 '비상선언'을 선보이기 전, "재난에 마주한 사람들, 재난에 맞서 싸운 사람들, 그리고 지쳐 있던 우리 모두에게 자그만 위로와 희망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선보이는 작품"이라는 진심의 말로 영화를 소개했다. 영화는 테러 그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재난 앞에 선 사람들 각각의 감정과 드라마에 집중한다. 누군가는 재난의 씨앗이 되고, 누군가는 재난 앞에 나약해지지만, 그 누군가는 용기 있는 결정을 내린다. 선량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 그리고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숭고한 선택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비상선언'이다.  


한재림 감독이 10년 전 시나리오를 받았을 당시, '우아한 세계'를 끝내고 '관상'을 찍기도 전이었다. 당시 항공기 테러 사건 설정이란 큰 틀은 재미있었지만, 뒷부분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또 무슨 말을 전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의 재난 상황을 지켜보며 이 작품을 통해 관객에 어떤 의미를 전해줘야 할지 감이 잡혔다. 막상 작품을 세상에 내놓을 때쯤 실제로도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재난이 전 세계를 지배하고 마비시킨 현실은 새삼 놀라웠다. "어떻게 영화적 상상이 현실이 되나 기막힌 감정도 들었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하지만 제가 작품을 통해 담고자 했던 의미가 실제로도 이뤄지고 있다는 것에 안도하기도 했다." 비록 어쩔 수 없는 재난을 맞닥뜨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고 의미 있게 잘 이겨내고 있는 사람들, 그 속에서 피어난 희망을 담고 싶었고 실제 상황에서도 이를 발견했던 감독이다. 이를테면 "가장 인상 깊었던 게 이탈리아에서 격리 중인 사람들이 방에 갇혔지만 창밖으로 나와서 노래를 합창하는 장면"이다. 감독은 "이런 조금의 따뜻함, 연대감이 이 세상이 주는 재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라고 봤다.


항간엔 '더킹' 때부터 지금의 '비상선언'까지 감독의 예지력이 실로 놀랍단 반응도 있다. 이에 한재림 감독은 억울하단다. "법이라는 것이 절대적으로 보여지지만 그걸 다루는 건 사람이고, 그렇기에 사람이 중요하다는 걸 말하는 게 '더킹'이었는데 하나의 예언, 예고처럼 돼버려서 정말 싫었다. 그래서 장르영화를 하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나겠지 했는데, 또 코로나가 벌어졌다. 이미 그때는 캐스팅이 완료됐고 촬영 들어가기 일보직전이라 안 할 수도 없었다. 또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관객에 새로움을 주고 싶은데 억울했다. 다음 작품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감독은 재난 영화란 장르를 취하며 윤리적 문제에 부딪히기도 했다. '공포심을 줘야 하는 것인가, 공포란 것은 어디서 기인하는가'란 고민이었다. 감독은 "고어하거나 하드한 장면을 담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심리적 공포로 점점 인간성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런 생각에 비롯된 것이 빌런의 기능이다. 대개의 항공 테러 영화가 범인의 목적, 대치, 갈등을 그려내고 여기서 긴장감을 더욱 유발하는 형식이라면 '비상선언'에선 초반 생화학테러를 일으키는 인물로서만 기능할 뿐이고 영화는 이후 이 재난을 맞닥뜨린 다양한 인간군상에 온전히 초점을 맞춘다. 이는 한재림 감독의 의도였다. "빌런은 재난 영화로 보느냐, 테러 영화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 작품은 재난영화로 봤고 임시완은 재난의 상징이다. 그래서 빌런은 재난일 뿐이지,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다. 그저 재난으로 바라봤을 뿐"이라고. "보통의 재해는 왔다 가면 끝이다. 저는 이 재난 이후 남겨진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 것이냐에 집중했다. 점점 확장되는 재난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이라 생각했다. 두려움이 만든 인간성 훼손, 증오심, 이기심. 그렇기에 이런 재난에 흐트러지는 인간의 모습과 더불어 사람의 아주 작은 용기, 인간성이 이런 재난에 버티고 서로 연대할 수 있는 힘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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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 '더킹' 등의 전작에서도 그렇듯, 사회적 시선과 함의가 담긴 감독 특유의 기조는 '비상선언'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특히 정체모를 생화학 물질이 가득찬 항공기에 대한 불안감에 봉쇄정책을 펼치고 심지어 민간기 공격을 감행하는 다른 국가들의 자국 이기주의나, 국내에서 펼쳐지는 극렬한 양분화 현상이 적나라하게 묘사됐다. 감독은 이에 대해 "직접적인 묘사라고 생각하진 않았다"며 "저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우리한테 피해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 저는 이 두려움도 나쁘다고 생각지 않는다.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두려움과 무서움을 우리는 어떻게 극복해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재난 앞에 두렵고 힘들다.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 성실할 수 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두렵고 도망가고 싶으니까.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조금의 성실함들이 모인다면 재난을 극복해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그런 희망을 갖고 싶었다."


한재림 감독의 작품에선 유독 사람이 먼저 돋보인다. 이번에도 수많은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각각의 위치에서 성실히 제 몫을 다할뿐더러 '있음직한' 사람들의 모습으로 사실감을 더한다. 감독이 요구한 디렉팅도 하나였다. 사실적인 연기다. 감독은 "장르영화지만 장르적으로 과장하지 말아 달라 했다. 자신의 역할이 무엇이다 해서 그 직업이 앞서지 말고 사람이 앞서 달라고 부탁드렸다. 다만 승무원은 그렇지 않다. 승무원은 승객들에 안심을 줘야 하는 태도가 중요하니 그런 태도를 요구했다. 정말 많은 배우들, 한국의 상징적인 배우님들이 나오셔서 모든 인물이 다 기억에 남는다. 모든 배우들이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연기, 사실적인 연기를 보여줄까 고민하셨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어 일일이 읊은 배우들에 대한 코멘터리에서 깊은 진심과 존경이 느껴진다. "도연 선배님도 정말 감사하게 그렇게 크지 않은 역할임에도 작품의 의미를 이해해주셔서 출연해주셨고, 강호 선배님도 익살 맞고 능구렁이같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조금은 지질하기도 한 소시민 역할을 해주셨다. 특히 마지막 장면을 참 좋아한다. 시완 씨도 과연 이런 사람이 있다고 생각 들 정도로 섬뜩한 연기를 해줬다. 특히 김소진 씨는 역을 제안할 때 약간 미안했다. 사무장이라 어떤 특별한 캐릭터가 있기보단 소진 씨가 하면 참 잘할 것 같단 생각에 '더킹' 때 인연으로 부탁했는데 흔쾌히 해주셨다. 그 연기를 보며 너무 놀랐다.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인간의 성실함이란 게 무엇인지 증명해줬다. 박해준 씨는 예전부터 좋아했다. 어떤 역할해도 분위기가 남다른 자신만의 바이브가 있다. 그리고 비행기 안의 모든 승객분들은 어렵게 오디션을 통해 뽑은 분들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다 기억난다. 이 영화는 배우들의 영화인 것 같다."


이처럼 사람에 대한 애정과 진정성이 있다. 한재림 감독은 퍽 '좋은 사람'이다. 따뜻한 사람들의 연대를 꿈꾸고 희망을 엿보는. 정작 본인은 스스로를 "뭐 하나만 제대로 잘했으면 좋겠는데 이것저것 자꾸 하는 감독 같아 죄송스럽다. 그냥 호기심이 많고 재밌는 걸 많이 하고 싶어하는 감독"이라며 별스럽지 않게 정의할 뿐이다.  

 

사진=쇼박스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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