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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김지훈 감독이 느낀 분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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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2-04-27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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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히타시와 세이고가 쓴 동명의 희곡을 영화화한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학교 폭력 사건을 가해자 부모의 시선이라는 색다른 관점으로 그려낸다. 스스로 목숨을 던진 한 학생의 편지에 남겨진 4명의 이름, 가해자로 지목된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사건을 은폐하려는 부모들의 뻔뻔하고 추악한 민낯은 참을 수 없는 공분을 일으킨다.


김지훈 감독이 원작을 영화화하기로 결심하고, 무려 10년 넘게 이 영화에 매진할 수 있던 것도 그의 마음에 자리 잡은 '분노' 때문이었다. "우연히 이 원작을 접하고 엄청난 분노와 가슴속 소용돌이가 생겼다. 이 감정들이 연출적인 원동력이 됐다. 워낙 탄탄하고 완벽한 원작이었기에 영화로 옮긴다는 부담은 있었지만 최대한 원작을 손상하지 않는 선에서 한국적인 소재의 변형과 현재성들을 고려해 이야기가 입체화될 수 있게 하는 것에 주안점을 뒀다. 계속 작가님과 고민하며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오랜 시간이 걸쳐 마무리하게 됐을 때의 분노는 처음 느낀 분노와는 또 다른 결의 분노였다. 영혼이 파괴된 아이의 아픔을 세상이 어루만져주지 않고 은폐하고 등한시한다는 것에 분노가 생겼다. 또 저는 그 과정에서 무엇을 했으며 왜 눈을 감고 있었느냐에 대한 자책이 있었다. 이것이 이 영화를 이렇게 오랫동안 끌고 온 모멘텀이었다."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최근 '타워' '싱크홀' 등 굵직한 재난 영화 이후 김지훈 감독이 선택한 결이 다른 이야기다. 하지만 감독은 이번 영화 역시 또 다른 재난의 범주로 봤다. "결은 많이 바뀌었지만 이 영화는 마음의 재난 영화라고 생각하며 찍었다. 다른 재난은 회복되고 인간의 노력으로 치유될 수 있지만, 마음의 재난은 치유될 수 없다"는 마음에서다. 이어 "사실 감독이기 전에 인간이기에 '화려한 휴가'를 찍고 나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제가 행복하고 싶어서 재난을 극복하는 '타워' '싱크홀'을 찍은 것도 있다. 하지만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제 연출적인 능력이나 완성도를 떠나 한 아이 아빠로서 '우리 아이가, 세상의 아이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접근했다"고 밝혔다. 


병원 이사장, 전직 경찰청장, 국제 중학교 교사, 변호사. 극 중 가해자 부모들은 명확한 사실과 진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권력과 재력을 이용해 사건을 은폐한다. 영화는 자식 문제에 있어 부모가 얼마나 뻔뻔하고 이기적일 수 있는지를 낱낱이 그려낸다. 특히 가해자의 시선으로 이어지는 낯선 관점은 불편한 분노를 유발한다. 감독 또한 두려워하던 지점이다. "가해자의 시선으로 그 상황을 바라봐야한다는 것이 낯설고 그 마음에 온전히 들어가고 싶지 않아 계속 헤매고 두려웠다"고. 그 역시 감독이기 전에 아빠이기에 "스스로 내 아이가 가해자라면 난 어떤 판단을 할 수 있을까 두려웠고, 그 질문에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다"는 고백이다. 


감독은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이에게 영원한 아픔을 주고 영혼을 파괴하는 건 우리 모두의 책임이란 걸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 극 중 가해자 부모 강호창의 설정만 봐도 그렇다. "가해자의 탈도 썼지만 피해자의 탈도 쓴 평범한 우리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는 감독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선과 악의 이분법이 아니다. 선별적으로 정의가 달라지는 세상이다. 가해자가 얼마나 어떻게 자신을 합리화하는지, 그런 모습들이 가장 중요한 포커스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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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학교 폭력사건, 감독은 단순히 가해자 응징이나 피해자를 향한 연민과 위로라는 일차원적인 접근을 벗어나 근원에 닿길 바랐다. "단순히 아이들의 문제로 보면 계속 근절되지 않을 것 같다. 또 가해자의 문제로만 봐서도 안 된다. 해결하고 치료하기 위해선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왜 가해를 하느냐 물어보면 이유가 없다. 답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결국 그 아이들이 그렇게 놓이게 된 상황은 사회적 제도 여러 가지 환경, 요건을 만들어놓은 부모들과 기성세대 잘못이라고 한다. 왜 가해자가 됐나, 무조건적인 응징과 처벌보다 이런 과정까지 가지 않도록 해야 하는 우리의 노력이 절실할 것 같다."


감독은 극 중 피해 학생 이름인 건우를 계속해서 살갑고 애틋하게 입에 올렸다. "학교 폭력 사례들을 많이 봤는데 너무 두렵고 무섭고 끔찍했다. 아이의 영혼이 파괴되고 주저앉게 되는 과정이나 상황들을 보게 된 것이 제 인생에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이었다"는 그의 진심은 "건우의 아픔을 공감하고, 그 아픔을 오롯이 잘 전달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특히 마지막 호수 절벽 신에서의 건우 장면은 모든 촬영이 종료된 이후에도 3개월간 찍을 수 없을 정도였다. "건우에 대한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연출자로선 부끄럽지만 마지막 신을 결정하지 못했다. 일주일에 세네 번씩 그 절벽을 찾아가 호수를 내다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너무 감정 이입이 많이 돼서 정말 힘들었다. 건우는 왜 그 절벽에 서 있었을까. 여길 따라온 한결인 어떤 마음이었을까. 결국 건우의 아픔을 절벽 속으로 던지게 했는데 잘 표현됐는진 모르겠다. 절벽에서 건우의 아픔을 이해하려고 하는 최소한의 마음이었다." 건우의 마지막 눈빛이 관객에 잘 전달되길 바란단 간절한 당부를 건네는 떨리는 목소리에 그가 얼마나 선하고 다정한 사람인지 엿보인다. 


하지만 감독은 "사실 '화려한 휴가' 때는 촬영장에서 많이 울었다. 당시 30대 중반이라 어리기도 했지만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이번엔 제가 비겁하고 미안한 마음이 커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이를 키우기도 하지만 어른으로서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방관하고 외면했던 마음이 부끄럽고 미안했다"고 한다. 어른으로서 느낀 부채감, 이에 대한 분노와 자기반성을 통해 상처받은 아이들에 진심 어린 사과와 위안을 건네는 감독의 모습이 의미 깊다. 

 

사진=마인드마크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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