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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희의 '앵커' 변신 키워드 '냉기, 열기, 광기'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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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2-04-19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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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여성 앵커, 그 이면에 도사린 욕망과 불안 심리를 예민하고 정교하게 담아낸다. 빈틈없는 외양과 더불어 이 지독하고 치밀한 심리 묘사를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을지는 뻔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배우 천우희다.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 영화 '앵커'(감독 정지연)를 통해 장르물로 컴백한 천우희를 보는 것은 꽤 반갑다. 그가 연기한 방송국 간판 앵커 세라는 수려한 용모를 갖춘 이지적이고 자존심 강한 여성이다. 누가 봐도 완벽하게 성공한 여성이지만, 그 이면엔 좀처럼 믿기 어려운 온갖 욕망과 불안감, 그리고 자격지심이 이글거린다. 


기자 출신 앵커가 아니라는 꼬리표, 그의 불안과 강박을 부추기는 엄마의 집착 어린 애정까지 세라의 실체는 위태롭고 예민하다. 이 같은 불안 심리와 강박을 지닌 세라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천우희는 세 가지 키워드를 잡았다. "냉기, 열기, 광기"다. 이유는 "이야기적으로도, 사건적으로도 흐름이 그렇게 가고 있었고 제가 표현하는 내면 심리 또한 딱딱 들어맞길 바랐다. 마지막 정점에 이르렀을 때 세라란 인물의 모든 게 파멸되고 재탄생되는 거라 광기라는 정점에 이르기까지 그래프가 명확하게 보였으면 좋겠단 생각"에서 비롯됐다. 


천우희는 "오랜만에 처음부터 끝까지 서사를 끌고 갈 수 있고, 내면적인 감정 분출을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이라 흥미로웠다"고 했다. 특히 세라 캐릭터는 더욱 매력적이었다. "외부적으로 봤을 땐 당당하고 이지적이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으로 보이지만, 내면에는 굉장한 소용돌이가 치고 있다. 불안감과 유약함을 지닌 이중적인 면이 재밌었다"는 그는 "그 모습을 최대한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 마치 철갑을 두른 듯 행동하는 게 재밌었고, 연기가 아니면 겪어볼 수 없는 앵커라는 직업군을 가진 점도 끌렸다"고 했다. 


물론 특정 직업군을 연기한다는게 쉽지 않았단 그는 "아무리 연기라 해도 그 직업군 분들이 보실 때 아쉬움을 느끼시면 영화적 몰입도가 떨어지지 않겠나. 그래서 최대한 완벽하게 하려고 연습했다. 앵커마다 특성이 있고 매력이 있는데 세라로서의 다른 특색을 드러내려 했다"며 "발성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극의 흐름에 맞춰 심리 표현을 하는 것도 중요해서 이 두 가지를 적절하게 융합하는 게 제일 중요했다"는 설명이다. 덧붙여 "예전에 사회 초년생을 연기할 땐 어리바리한 모습이라도 캐릭터적인 매력으로 보였는데 여기선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처럼 냉철하고 자로 잰듯한 느낌으로 보이고 싶었다"고 희망했다.   


그의 바람대로 천우희는 또렷한 발성과 딕션을 넘어 자세마저 자신감과 당당함을 발산하는 앵커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이에 실제 앵커를 했어도 잘했을 거라며 너스레를 떤 그는 "제가 이렇게 당당하게 얘기하는 이유는 책임감이 강해서다. 스스로 열심히 안 하면 용납을 못한다. 제가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이다. 시작 하기 전엔 정말 게으른데, 일을 계속해나갈 수 있는 건 그만큼 애정도 중요하지만 책임감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실제 앵커를 했어도 스스로 괴로움에 빠지고 강박감을 만들어내면서도 최선을 다해 직업에 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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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는 분명 쉽지 않은 캐릭터다. 장르물에 특화된 연기도 이미 전작들을 통해 충분히 입증한 천우희지만 세라는 앵커라는 특정 직업의 외양을 넘어서 표현해야 할 내면 심리가 가장 압권인 캐릭터다. 이를 천우희는 언제 메인 앵커에서 밀려날지 모른다는 근원적인 불안, 이를 부추기고 자극하는 엄마 소정과의 관계, 그리고 미스터리한 모녀 죽음 사건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며 겪는 다채로운 감정의 등고선으로 드러낸다. "연기적으로 어려운 배역일수록 끌리는 건 아니"라는 그는 "어렸을 땐 경험해보지 못한 인간 구성과 삶에 대해 연기적으로 탐구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다 보니 좀 더 밀도 있고 깊이 참고할 수 있는 작품들을 선택하고 어려운 배역을 맡게 됐다. 지금은 나이를 먹다 보니 내가 정말 잘 알아서 표현해보고 싶은 것, 관객과 팬 분들께 즐거움과 행복감을 선사하고 싶은 것 등 기준점이 확대됐다"고 털어놨다. 


물론 저를 향한 믿음과 신뢰가 도리어 심리적인 압박으로 다가올 때도 있었다고. "일을 그렇게 오래한 것도 아니고 제가 생각한 단계와 흐름이 있는데,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좋은 일을 겪고 평가를 받았다. 연기를 인정받는 게 감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하고 더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마음, 그 인정 욕구가 힘들 때가 있었다. 좋아해 주시는 대중분들의 사랑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정말 감정은 한순간이다. 결국 외부에서 오는 자극과 평가보다 나 스스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내 일을 해내야 하는지가 더 중요하더라. 결국은 나와의 싸움"이란 결론을 내렸다. "연기할 때 스스로 다그치는 압박감이 도리어 도움이 된다. 이 부담을 동력으로 이용했다"고. 매 순간, 매 작품마다 힘들지만 정진하는 것. 이는 천우희가 기꺼이 계속 부딪히며 겪고 싶은 힘듬이란다. 


이처럼 천우희는 야무지고 강단있다. 하지만 "제가 워낙 선이 굵고 어려운 역할들을 많이 하다 보니 제 인생 자체가 굴곡이 많을 거라고 생각을 하시는데 사실 저희 부모님이 애정이 넘치시고 항상 저를 온실 속의 화초처럼 키우셨다. 저도 부모님이 원하는 착한 딸로 살았지만 누구나 내면의 반항 심리는 있잖나. 이를 배우로서 연기로서 표출하는 것 같다"며 이내 짓궂은 미소를 짓는 모습은 해맑기 그지없다. 


'앵커'는 여성 감독이 만든 여성 서사, 무엇보다 전통적인 모녀 관계를 뒤튼 설정을 동력 삼아 신선하고 흥미로운 미스터리 심리극을 완성한다. 천우희가 이 작품을 택한 가장 결정적 계기이기도 했다. 그는 "감독님 연출 의도와 동의했다. 그동안 많은 매체나 이야기를 통해 항상 전통적인 모성애가 보여졌다. 엄마는 늘 모성애를 가져야 하고 헌신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 또한 주입과 강요가 아닐까. 이 부분에서 감독님의 생각들에 굉장히 공감했고, 외부적으로 말할 수 없는 애증과 부정적인 감정을 그려낸 심리적이고 내면적인 이야기에 위로감을 받았다"고 했다. 덧붙여 영화 속 모녀 관계가 결국 파멸로 가고 뒤틀린 모정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결국은 '사랑'이라는 설명까지, 영화의 의도를 정확히 헤아리고 공감했다.


작품에 애정을 갖고 캐릭터를 통해 체화하며, 그가 느낀 감정을 오롯이 연기로 관객에 전달하기까지. 그가 기울인 노력이 절로 엿보이는 '앵커'다.


그동안 연기가 워낙 즐거운 탓에 취미 생활을 갖지 못했단 그는 "평소엔 가만히 있고 하루종일 게으르게 있을 때도 있다. 일할 때 에너지와 집중도를 한 번에 쓰는 편이었는데, 요즘 좀 바뀌었다. 온전히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고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친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삶의 방식, 이에 따른 책임감의 무게까지 확실히 인지하고 있는 배우 천우희였다.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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