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나희 순정' 박명훈, 이런 앙증맞은 사랑스러움! [인터뷰] > 인터뷰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싸나희 순정' 박명훈, 이런 앙증맞은 사랑스러움! [인터뷰]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1-11-25 15:03

본문

박명훈1.png

어쩌면 큰 착각을 해버렸다. 괴상하고 독특한 지하실 속 남자, 보이스피싱 조직의 절대적 감시자, 그때 느낀 너무도 강렬한 섬찟함으로 이미지를 속단했다. 안일하고 어리석은 재단이다. 티 없이 맑은 동심을 간직한 엉뚱한 시골 농부의 순박함과 푸근함을 고스란히 투영한 그의 새로운 모습은 낯설긴커녕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앙증맞다. 다시 확신한다. 배우 박명훈은 천의 얼굴을 지녔다. 


류근 시인의 '주인집 아저씨'를 원작으로 한 '싸나희 순정'(감독 정병각)은 도시의 고단한 삶에서 탈출해 어느 시골 동네 마가리에 불시착한 시인 유씨(전석호)가 엉뚱 발랄한 농부 원보(박명훈)의 집에 머물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첫 등장부터 수더분한 시골 사람 그 자체로 등장한 원보는 도라지 꽃밭에서 뒹구는 유 씨를 구수한 사투리로 나무라더니, 묵을 방이 있느냐는 물음에 너그러이 제 집 방 한켠을 내준다. 낯선 이방인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동네 대소사를 꿰고 있으며, 마을 사람들을 일일이 챙기고 아끼는 오지랖이 마냥 선하고 순박한 이다. 게다가 말은 어찌나 잘하는지, 툭툭 별 뜻 없이 내뱉는 듯한 구수한 말들이 때로는 촌철살인이고 때로는 인생의 길라잡이 같은 명언이 되기도 한다.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영화가 품고있는 따뜻한 정서가 좋았다"는 박명훈은 원보의 마음을 읽기 위해 노력했다. "원보는 솔직히 말해 요즘 같이 각박한 세상에 보기 드문 아름다운 심성을 지닌 인물"이다. 두 달 동안 마을에 머물며 공간, 그 자체가 주는 느낌을 고스란히 받았고 원보의 마음도 곰곰이 생각했다. '과연 이 친구는 어떻게 이런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마을 사람들을 친가족처럼 도와주게 됐을까' '하는 일은 농업이지만 어떻게 동화 작가의 꿈을 갖게 됐을까' 숱한 생각과 고민 속에 차츰 원보를 이해하게 됐단 그다. "원보의 마음은 사람을 존중하는 것에 있다. 마을 사람들을 자신의 가족이라 여기는 마음으로 출발했더니 조금씩 원보가 제게 들어오더라."


원보는 타인의 고통과 고민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는 이타적이고 계산되지 않은 순수한 마음씨를 가진 인물이다. 한편으론 불필요한 고생을 굳이 사서 하는 그의 모습이 조금은 안쓰럽고 염려되기도 한다. 하지만 박명훈은 "현실과 동떨어진 인물일 수도 있지만, 인생을 살아오면서 돌이켜보면 원보같은 사람들은 분명 있었다. 정말 순하고 착한 사람들이 있었고, 저도 잊고 있던 느낌이 되살아났다"고 했다. 


그가 말하길 이번 영화는 촬영하면서 스스로 변하는 느낌을 갖게 하는 작품이었다. 원보를 연기하기 위해 그의 마음을 읽어보려 노력하는 시간, 마을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공간 속에 녹아든 시간들을 돌이켜보니 촬영 당시엔 막상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순수하고 따뜻한 충족감이 생기는 영화였다고. 


"'싸나희 순정'을 찍으며 모든 순간이 좋았다. 우리 영화는 풍랑 없이 잔잔하다. 정말 시골 마을에 있을법한 우리네 이야기라 특별한 굴곡은 없다. 하지만 찍을수록 재밌는 부분이 생겼다. 왜 그런가 생각해봤더니 서로가 느낀 공감때문인 것 같더라."

 

cats.jpg


'싸나희 순정' 속 시골 동네 마가리는 삶이 고되고 지친 이들에게 잊고 있던 따스한 정과 온기를 베푼다. 그 특별할 것 없지만 눈부시게 아름다운 시골의 풍경이, 그 곳에 머무르는 소소하지만 다정한 이웃들의 존재가, 절로 평온과 위안을 전해준다. 박명훈 역시 이를 제대로 만끽한 것이다. 특히 그는 '명대사 제조기'와 같던 원보의 숱한 말들 중 하나를 떠올렸다. 매서운 태풍으로 인해 원보가 경작하는 뽕나무밭이 처참하게 망가진 순간, 한참을 고군분투하다 돌아온 원보는 축 처진 어깨와 지친 모습으로 한줄기 빗물인지 모를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원보는 "껴안고 울어서 그 힘으로 뽕나무들이 다시 살게 해야지유"라며 좌절이 아닌 희망을 본다. 힘든 순간 끌어안고 함께 울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원보의 모습은 순수하고 감명깊다. 박명훈은 이를 두고 "원보가 동네 사람들을 품고 생각하는 마음도, 같이 껴안고 울어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원보는 볼수록 사랑스럽다. 특히 자전거를 탈 때 살짝 튀어나온 뱃살도, 원보가 연모하는 여자를 위해 예쁜 보자기에 싼 정성스러운 도시락을 들고 그야말로 '촌빨'날리는 어설픈 정장을 입은 모습도. 그 순수함과 따뜻함에 절로 동화된 탓이다. "저도 관객의 입장에서 봤을 때 원보가 뽕밭에 텐트를 치고 동화를 쓰며 앉아있는 모습이 특히 귀엽고 사랑스러웠다"는 그는 덧붙여 "그 텐트는 원보의 희망과 꿈에 대한 공간이다. 하지만 그 텐트를 친 장소는 뽕밭이라는 일터다. 현실과 꿈의 장소가 공존해있는 장소를 보며 '저 친구는 육체적인 일을 하며 현실을 살아가지만,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더욱 사랑스러웠다"고 설명했다. 원보에 대한 아낌없는 애정이 넘친다.


오랫동안 연극 무대에 서 왔던 그는 영화 '기생충'의 지하실 남자로 대중에게 압도적인 눈도장을 찍은 이후 최근작 '보이스'의 살벌한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 본부장까지 강렬한 이미지로 대중의 뇌리에 각인됐다. 하지만 '싸나희 순정' 원보를 통해 그의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이면을 발견한 것은 새롭고 흥분되는 일이다. 박명훈은 "모든 배우들이 그렇겠지만 계속해서 다양한 캐릭터를 하며 여러가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고, '저 배우가 박명훈이었어?'라며 관객들을 놀라게 하고 싶은 꿈이 있다"고 개구쟁이처럼 웃어 보인다. 실제론 수다떠는 것도, 노래하는 것도 좋아한다고. 


'싸나희 순정'에서 원보가 지킨 순수함처럼 배우 박명훈도 지키고 싶은 순정이 있다. 연기에 대한 순수한 애정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 영화에 대한 순정이 느껴지는 배우이고 싶은" 바람이다. 그는 동료나 선후배들의 좋은 연기를 보면 가슴이 떨리며 자극이 되기도 하고 힐링이 되기도 한단다. 무엇보다 계속 연기할 수 있는 이유는 언제나 저를 믿고 꾸준히 지지하며 응원하는 아내와 아들, 가족의 힘이다. "아내는 분장을 하던 사람으로 제가 연극할 때 함께 일하며 만났다. 이미 배우의 세계를 잘 알고 그때부터 늘 응원을 해준다. 아들은 작년까진 영 모르는 눈치더니 여덟 살이 되고부터는 아빠가 배우란 걸 아는 모양이다. 그래서 책임감도 생기고 희한한 느낌도 들고 그렇다"고 행복감이 가득 묻은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그다. 


'기생충'이란 작품은 그에게 있어 인생의 변곡점이 확실할테다. 하지만 이 기회를 충분한 확신으로 만든 것은 온전히 그가 이룬 몫이다. 그는 이미 '천의 얼굴'이란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데다 굵직한 차기작까지 연달아 기다리고 있다. "스스로 제 자신을 잘 못 보긴 하지만, 굳이 평가하자면 약간은 희한하고 독특한 색깔을 특이하게 봐주신 덕분 아닐까"라고 웃으며 너스레지만, 배우 박명훈은 관객에게도 소중한 발견이다. 

 

c.jpg

 

사진=(주)마노엔터테인먼트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공감 0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추천뉴스

게시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