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 김무열, 짜릿한 빌런의 탄생 [인터뷰] >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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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 김무열, 짜릿한 빌런의 탄생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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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1-09-17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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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꺼풀 들춰내니 이런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배우에게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는 것만큼 짜릿하고 설레는 일이 어디 있을까. 영화 '보이스'에서 인생 캐릭터를 만난 배우 김무열이다. 


"보이스피싱은 공감이야. 상대방의 희망과 두려움을 파고드는 거지." 보이스피싱 범죄 피해자들이 들으면 천인공노할 말을 대단한 일장 연설하듯 거들먹거리며 늘어놓는 남자. "그냥 즐겨"라며 마치 놀이를 즐기듯 범죄 작전을 짜고, 이미 큰돈을 떼인 피해자들에 굳이 다시 전화해 조롱하며 희열을 느끼는 확인사살까지. 몸서리쳐질 만큼 잔인하고 무감정한 남자의 정체는 거대 보이스피싱 조직의 기획실 총책 곽프로다. 김무열은 대한민국 최초 보이스피싱 범죄의 실체를 고발한 영화 '보이스'(감독 김곡 김선)에서 희대의 악역 곽프로 역을 맡아 전에 없는 흥미를 일깨운다. 


김무열이 연기한 곽프로는 넘치게 매력적이다. 단순히 악역이란 이미지가 주는 강렬함 때문이 아니다. 그동안 본 적 없지만 어딘가에서 존재하고 있을 것만 같은 악역의 전형성을 벗어난 곽프로는, 대사 한 마디 한 마디 깊은 욕망과 서늘함이 깃들어 있다. 평범하면서도 정교한 악함을 갖췄다. 소름 끼치는 말을 내뱉으면서도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목소리, 말끔한 포마드 헤어와 몸에 딱 맞게 핏된 깔끔한 슬랙스와 폴라티 차림과는 언발란스한 맨발의 슬리퍼까지, 고상하면서도 변태적인 이중성을 드러낸다. 


대중에게 너무도 익숙한 보이스피싱 범죄자들, 그러나 그 실체는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만큼 제한된 미지의 영역을 이토록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구현해낸 김무열이다. 그는 끊임없이 상상하고 분석했다. '목소리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 뭘 하면서 전화를 할까. 오롯이 앉아서 전화만 하진 않을텐데.' 등등등. 끝없는 상상력으로 인물을 입체적으로 만들어갔다. 곽프로의 서사 또한 차용했다. 잘 나가던 금융맨이었지만, 주가 조작 사기 범죄를 저지르고 밑바닥까지 추락해서 마약까지 손대다 다시 정상에 오른 인물. 이를 적절히 섞은 끝에 지금의 곽프로가 탄생했다. "곽프로가 나름 철학도 있고, 단어 선택도 어떻게 보면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부부도 있었다. 때론 문학적이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밑바닥을 경험한 인물이기에 순간순간 나오는 저렴함이 있었다. 이런 것들을 담아내려고 했다"는 설명이다. 


언발란스한 의상과 유식하면서도 저렴한 어휘 선택, 사소한 제스처와 표정, 대사의 템포와 억양까지 철저하게 분석해 연기한 그의 디테일엔 새삼 놀랐다. 이를테면 "클라이막스 신에서 곽프로의 긴 대사를 어떻게 지루하지 않게 소화할 것인지, 그러면서도 캐릭터를 벗어나지 않고 극에 도움이 되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끝없이 고민한다. 악랄함을 담아낸 생소한 얼굴 변화 또한 "캐릭터에 대한 이해와 심경적 공감이 점점 얼굴 근육이나 말하는 모양을 자연스레 조금씩 바뀌게 한다"는, 의외로 성실한 노력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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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무열은 곽프로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힘들었단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나쁜 놈이라 연기를 위해 인물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나름의 자기 합리화도 해보려 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고. 가뜩이나 억장이 무너진 피해자를 집요하게 조롱하며 희열과 우월감을 느끼는 행위는 너무 화가 나서 "만나면 패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다. 김무열은 곽프로의 이런 행위들이 "인간이 이렇게까지 황폐하고 피폐해져 있는지를 보여준다"며 "세상엔 더 가치 있는 일들이 많은데 고작 그런 일로 재미를 느낄 정도로 망가져 있는 인간"이라 거침없이 비난했다. 


특히 그는 곽프로의 정신 상태에 대해 "소시오패스와 사이코패스가 다 섞여 있는 복합적인 상황"이라며, 그렇기에 인물에 대해 고민하면 고민할수록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결국엔 생각을 바꿨다. 이런 곽프로를 깨부수는 재미를 느끼게 하자고. "곽프로를 연기하며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매력을 느꼈다. 잘 쌓아놓고 결국엔 주인공한테 격파당하고 두들겨 맞는, 그걸 보며 대리 만족하는 것이 캐릭터의 매력이었다"며 이제야 호탕하게 웃는 그다. 


인상 깊은 건, 이처럼 김무열은 곽프로를 설명하며 수십 번씩 치를 떨고 진심으로 '욱'했다. 곽프로가 설계자이자 분석가로서의 스마트함이 있다고 말하다가 "이런 단어들조차 너무 아깝다"며 깊은 한숨을 쉬거나, 곽 프로의 "우린 직접 안 죽여"란 명대사(?)를 두고 "정말 죽이고 싶은 대사였다"며 분노하는 식이다. 그토록 감쪽같이 뻔뻔하고 소름 끼치는 곽프로를 소화했지만, 김무열 본연의 선함과 정의가 이런 인간 유형을 도무지 참을 수 없는 탓이겠다. 그 모습이 훈훈하고 호감 간다. 이에 쑥스러워하던 그는 "제가 분노하는 상황은 그냥 상식적인 선이다. 가장 쉽게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것들. 하지만 살아가며 먼저 분노하기 이전에 결과에 대한 과정, 상황, 입장, 이런 것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려 항상 노력하는 편"이라고 말한다.


그는 '보이스'가 현시대를 보여주는 시대정신과 공감적인 이야기가 있어 무엇보다 좋았단다. 그리고 관객들과 함께 소통하며 공감하길 바랐다. "이 영화를 찍으며 보이스피싱이 어떤 범죄고 얼마나 피해규모가 방대하고,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도 알게 됐다. 아는 만큼 덜 당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해 하나라도 더 알고 가셔서 한 분이라도 더 피해입질 않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진심을 전한다. 확실한 건, 김무열이 디테일한 고심과 노력 끝에 구축한 곽프로는 악역 계보에 당당히 오를 만큼 매력적인 인물이란 점이다. 또 배우로서의 색다른 변화는 물론 인간적인 호감까지 엿보게 하는 배우 김무열의 재발견은 기분 좋은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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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J ENM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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