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들' 좋은 사람, 설경구 [인터뷰] > 인터뷰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소년들' 좋은 사람, 설경구 [인터뷰]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3-11-01 13:43

본문

c.jpg

배우 설경구는 무심한 듯한데, 참으로 속 깊은 정이 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민의 정이 넘치고 온 마음으로 공감한다. 곰살맞진 않아도, 알고 보면 이토록 좋은 사람이다. 


이른바 '삼례나라슈퍼 사건'으로 불리는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한 정지영 감독의 신작 '소년들'. 진범이 버젓이 있고 심지어 자백을 했음에도 경,검찰이 묵살하고 무고한 소년들을 살인강도로 몰아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만든 기막히고 어처구니없는 이야기. 


설경구 역시 이 사건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 사건의 중심에 직접 들어가보니 "안다고 착각했구나" 싶어 지더란다. '공공의 적' 시리즈 강철중의 이미지가 워낙 강렬했던 탓에, 이후 스스로도 형사 캐릭터는 지양해 왔던 그가 '소년들' 속 형사 황준철 반장 역을 기꺼이 맡은 이유는 분명했다. 실화 소재의 무거움을 회피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정지영 감독을 향한 마음 때문이었다. "사석에서 뵙고 알고 지냈다. 당시 '작품 한 번 하자'라고 하셔서 '영광이죠' 했는데, 일주일 뒤에 시나리오를 보내셨다. 당시엔 '고발'이란 제목이었다." 그가 평소 느낀 정지영 감독에 대한 단상은 남달랐다. "그분이 살아온 인생을 다는 모르지만, 남들이 안 하거나 조심스러워서 주저하는 말들, 사회적인 메시지도 서슴없이 던지시고 몸으로도 행동하시는 분이란 강렬함이 있었다. 이번에도 이미 분노에 차서 시나리오를 주시는데 정열적이었고, 그 눈을 회피할 수 없더라"고. 


이전에도 실화 소재 영화에 유독 자주 출연한 그다. '소원', '그놈 목소리', '생일' 등 안타까운 피해자들에 대한 연민과, 가해자에 대한 공분이 이는 사건들을 소재로 한 영화들. 설경구는 "실화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주시는 감독님들은 무언가 더 강렬함이 있다. 거기에 끌리기도 하고, 이걸 안 한다면 어쩐지 사건을 회피하는 건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든다"고 했다. 정작 본인은 다 찍은 영화를 차마 볼 수 없어 영화관에서 뛰쳐나가고 아직까지도 온전히 다시 볼 수 없을 만큼 감정의 파고에 흔들릴지언정. 이처럼 누군가는 주저하고 외면하는 이야기를 바라보며 온 마음으로 공감하는 이다. 


극 중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미친개'로 불리는 황 반장은, 사건의 조작된 실체를 알고 집요하게 이를 파헤치다 온갖 부조리를 겪고 좌천까지 당하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16년 만에 다시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해 재심을 벌이려는 '소년들'을 위해 필사적으로 돕는 인물이다. 그는 "이 이야기는 황 반장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다. 그는 도와주는 사람이다. 이 영화는 소년들의 이야기"라며 "그래서 소년들이 직접 본인의 목소리를 내는 법정 신이 좋았다. '나는 살인범이 아니다'라고 외치는데 촬영 때는 사실 너무 직설적이라 불편한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감독님은 이 아이들을 데리고 세상에 외치고 싶었나 보더라. 이 덜 배우고, 덜 가진 사람들이 용기를 내서 말하는 모습이 좋더라"고 했다. 실제 사건의 재심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 역시 영화 시사 이후 그 신을 두고 "너무 고맙다"고 했더란다. "실제 '소년들'이 재심받으러 가면서도 두려워했다고 하더라. 나이는 먹었지만 17년 전 과거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자기들이 당한 불의에 대해 말하지 못했고, 감정 표현도 미숙했던 사람들이 영화로나마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 줘서 정말 고마웠다고. 감독님이 하고 싶은 얘기도 그것이 아니었을까." 

 

cats.jpg


실제 전주 시사회 현장에는 박 변호사를 비롯해 사건 유가족, 실제 소년들과 가족들, 그리고 낙동강 살인사건과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 누명을 쓰고 억울한 피해를 입은 이들이 두루 참석했다. 설경구는 "어떤 분은 애가 돌일 때 감옥에 갔는데 나왔더니 딸이 스물넷이 돼 있더란다. 돈이나 보상이 중요한 게 아니다. 인생이 송두리째 날라간 거잖나. 그럼에도 이 분들은 다 웃고 계신다. 그걸 보며 마음이 이상하고, 기분이 정말 복잡해졌다"며 "피해자 분들이 다 해맑으시고 보상금 받은 걸로 보람찬 일을 하시려고 노력하며 장학재단을 한다고 하시더라. 박준영 변호사도 참 희한한 분이다. '뭐 먹고 사시냐' 물었는데 '요새 조금 받습니다' 하더라. 참 존경스럽다. 이들과 많은 대화는 못했지만 그 기억이 정말 강렬하고 복잡했다"는 심경이다. 심지어 이 사건의 진범까지 왔다. 재심에서 결정적 진술을 해준 이다. 설경구의 복잡한 감상이 이해가 된다. 


극 중 황 반장 캐릭터는 '약촌 오거리 사건'을 파헤친 실존 형사를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다. 그 역시도 직접 만나게 됐다. 파출소로 좌천되고 뇌경색까지 올 정도로 힘겨운 시간을 보냈음에도 마치 도인의 경지에 오른 듯 평온한 모습이었다고. 이처럼 당시의 잔상과 여운이 꽤 오래 남았다. "오히려 촬영 때보다 이런 순간들에 감정이 몇 배 더 온다. 이런 감정을 갖고 촬영했으면 큰일 날 뻔했구나 싶다. '생일' 때는 더 심했다. 무대 인사를 갈 때도 죄인 같고 마음을 짓누르는 감정이 커서 힘들었다"는 그다. 얼핏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이처럼 연민을 넘어선 공감의 정이 깊다. 


"나이 들며 현장에 있다는 게 행복하고 하루하루 고맙다. 요새 이런 마음으로 임하고 있는데 막상 찍을 영화가 없다"며 너스레를 떤 그는 영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진 않지만, 그럼에도 용기를 내고 회피하지 않는 이유는 "영화를 통해 얘기할 거리를 남기기 때문"이란다. 그는 관객이 이 영화를 본 뒤 이와 연관해서 여러 가지 사건을 찾아보게 되지 않겠느냐며, 자신들은 이처럼 이야깃거리를 던지는 최소한의 역할을 할 뿐이란 겸허한 마음이다. 

 

사진=CJ ENM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공감 0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label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추천뉴스

게시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