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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집' 송강호, 정답이 아닌 답을 찾는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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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3-09-28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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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배우 송강호는 '정답이 아닌 정답'을 찾는다. 모두가 익히 아는 정답을 내놨을 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순 있지만 감동을 줄 순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정답이 아닌 정답'을 찾으려 한다. 그것이 예술가의 본질이라 여긴다. 


수많은 감독들에게 영감을 주는 한국 영화계의 대표 배우 송강호가 영화 '거미집'(감독 김지운)에서 처음으로 감독을 연기한다. '거미집'은 기필코 걸작을 만들겠다는 열망을 품은 김열 감독의 광기가 응축된 70년대 영화 현장을 실감 나게 담은 영화다. 호평받은 데뷔작 이후 싸구려 치정극만 찍는단 악평에 시달리는 터라, 이젠 데뷔작조차 스승인 신감독의 유작이라는 의심을 받는 김열 감독. 열등감에 휩싸이는 그는 꿈속에서 영화의 새로운 결말을 보고, 근거 없는 확신에 사로잡혀 이미 다 찍은 영화를 다시 찍으려 한다. 하지만 제작자는 반대하고, 배우와 스태프들은 바뀐 대본을 이해하지 못하며, 심지어 검열 당국의 감시도 피해야 한다. "모두가 나를 괴롭히는" 상황에서 광기에 가까운 예술혼에 불타올라 재촬영을 강행하는 김열의 안간힘은 애처롭고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어쩐지 스산한 감상까지 젖게 한다. 


영화는 개봉 전 북미를 포함한 해외 187개국에 선판매됐고, 해외 유수 영화제에 초청되며 폭발적인 호평을 받았다. 송강호는 기뻤고 흐뭇했다. 영화인으로써의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작품을 만났고, 이를 인정받은 까닭이다. "여러 콘텐츠를 손쉽고 풍성하게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여전히 영화만이 가진 매력이 그리웠고 그런 작품을 만나기 쉽지 않다. 오랜만에 영화의 매력을 흠뻑 느끼게 하는 영화를 만나 기뻤다." 


'거미집'은 영화 제작 현장의 혼돈과 광기, 유머와 풍자가 다채롭게 어우러진 작품이다. 송강호는 "이런 장르의 영화는 처음이다. 저 또한 호기심과 매력을 느꼈다. 영화 촬영 현장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은 콩트 같은 느낌인데 또 영화 속 영화가 끝나고 나면 피상적으로 욕망 속에서 허우적대는 인간군상이 있다. 괴기스럽지만 종합 선물세트 같은, 이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강렬한 맛. 그런 상징성이 좋았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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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김열 캐릭터를 통해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담아냈다. "일류 감독이 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지만, 끊임없이 스스로의 능력을 의심하고 좌절하는 사람." 이는 주변에서도 그리고 스스로에게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저도 잘생기고 멋진 배우들 보면 움추러들고 열등감이 생긴다"고 능청을 떤 송강호는 "사람 누구나 그렇다. 더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자연스러운 열등감이 생긴다"고 했다. "모든 일이 내 마음 같지 않고, 실타래가 엉키기 시작하면 자기도 모르게 헤어 나올 수 없고, 본인의 야망을 위해 고군분투하다 부담과 책임감에 사람이 미치고, 결국 광기에 집착하게 되는." 김열의 모습을 특별한 영화적 인물과 해석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연스러운 인간의 희로애락으로 여긴 그다. 


그렇기에 혼돈과 광기에 휩싸인 그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연민을 일게도 하고, 그런 한편으로 서늘함을 주기도 하는 것일테다. 독특한 자신만의 리듬으로 희비극이 공존하는 얼굴을 만들어내는 것은 전매특허 송강호의 주특기다. 


특히 우여곡절 끝에 촬영을 마친 뒤 빈 세트장을 바라보며 앉은 김열의 모습은 묘하고 다채로운 감상을 준다. 송강호 역시 "그 장면이 키포인트"라고 무릎을 쳤다. "그 장면과 엔딩 장면이 영화적 상징의 극치가 아니었나 싶다. 과거를 딛고 정말 감독으로서의 존재 가치와 자아가 성립됐는가, 정말 원했던 영화를 완성한 것인지 아니면 야망 때문에 미진하다고 여기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다. 저 또한 볼 때마다 다 다르게 보이더라. 어떨 땐 행복해하는 느낌이고, 어떨 땐 불만스러운 표정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런 복잡다단한 인물의 내면을 담아내는 것도 놀라운 재주다.  


송강호는 김열 캐릭터를 보며 김지운 감독을 떠오르기도 했다. "참 집요하면서도 진중하다. 그런 부분에서 동일하더라. 그런 열정적인 집요함이 있기에 김지운만이 갖고 있는 스타일과 영화적 미장센이 완성된다고 생각한다"는 설명이다. 


'거미집' 촬영장은 여러모로 송강호를 즐겁게 했다. 많은 배우들과 이뤄낸 리듬감도 즐거웠고, 로케이션 없이 한 공간에서 정교하게 완성된 세트장도 훌륭했고 무엇보다 "한국 영화계의 풋풋하고 순수한 열정과 순수, 예술 혼을 불태웠던 예술가들을 향한 전체적인 오마주"였다고. 그렇기에 이런 작품에 참여하게 돼 영화인으로서 더욱 자랑스럽고 감사했다는 것이다. 


수많은 거장 감독들이 열렬히 사랑하는 대배우 송강호. 그가 연기한 캐릭터만으로도 한국 현대 영화사가 되는 배우지만, 그 역시도 늘 연기를 고뇌한다. 딜레마에 빠지기도 한다. 그는 이를 두고 정답을 찾는 과정이라 말한다. "후배들도 제게 많이 묻는다. 제가 해줄 수 있는 얘기는 '알고 있는 정답을 적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정답은 한정돼 있는데 무궁무진하게 다른 답을 내놓으란 것이 아니다. 똑같은 답을 내놔도 그 시선과 호흡이 달라질때 새로운 답이 된다는 말이다. 그 과정은 누가 가르쳐준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찾는 과정도 어렵다. 하지만 자신만의 정답을 찾아내는 것이 예술가의 본질"이란 연기론이다. 


박찬욱 감독은 20년 전 '송강호는 정답이 아닌 정답을 적었는데, 알고보니 정답보다 더한 정답'이라 말했다. 김지운 감독은 오래전 연극 무대에서 송강호의 연기를 처음 봤을 때 "저 사람 연기는 께름칙하다"고 말했었다. 아주 익숙한 얼굴로 결코 익숙하지 않은, 예상치 못한 것들을 그려내는 덕분이다. 수십 년간 정답을 찾아온 송강호, 그가 한국 영화의 자부심이 될 수 있던 이유다.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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