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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집' 김지운 감독이 지킨 영화적 자존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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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3-09-28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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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은 영화만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렬하고 매력적인 방식으로 그만의 격조를 갖춰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진심 어린 헌사를 전한다.


김지운 감독의 열 번째 장편 영화 '거미집'은 1970년대 한국 영화 현장, 걸작의 강박에 사로잡힌 영화 감독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둘러싼 인물들이 각자 충돌하는 개성과 욕망을 드러내는 드라마틱한 앙상블을 담은 영화다.


영화의 가치가 퇴색되는 이 시대에 가장 영화 다운 영화,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에 전하는 강렬한 러브레터인 '거미집'은 개봉 전 이미 수많은 영화제에서 엄청난 찬사를 받았고, 북미를 포함한 해외 187개국에 선판매되는 쾌거를 올렸다. 이에 김지운 감독은 "자부심이라기보단 '자존심은 지켰다' 정도가 제가 할 수 있는 자평인 것 같다"고 겸손이다. 영화를 만들 때마다 '영화란 무엇이고,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무엇인가'란 질문을 끊임없이 해왔지만, 세계적인 팬데믹 현상 이후 급격히 변화를 드러낸 영화계 양상은 감독에게 통렬함을 안겼다. "결국 이렇게 영화는 세상에 쓸쓸한 조언을 남기고 덧없이 사라지게 되는 걸까? 아니면 매번 위기 때마다 탈출구를 찾아냈듯 다시 새롭게 나타날까? 지난날 절체절명의 위기 때마다 나의 동료와 선배들은 어떻게 극복했을까?" 무수히 많은 고뇌와 불안 속에 내린 해답이 영화 '거미집'에 담겼다. 


"이 일을 하다보면, 정말 사랑하고 좋아서 하는 거지만 어느 순간 자기 환멸이 올 때도 있고 일에 대한 환멸이 들 때도 있다. 팬데믹 이후 영화 산업이 네거티브하고 다운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영화는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을 가장 근접한 형태로 묘사하는 강력한 매체다. 이렇게 영화가 덧없이 사라지는 걸까, 이게 정말 끝인가 그런 상념에 빠졌다. 세계적인 감독들도 팬데믹 이후 영화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하더라. 모든 영화인들이 같은 생각을 했겠구나. 그런 질문을 갖고 만든 영화가 '거미집'이다."


감독은 "영화계는 위기일수록 보수적이 된다. 실험적인 시도를 안 하려 하면서 상태가 더 나빠지는 거다. '거미집'도 처음에 기획했을 땐 펀딩이 어려웠다. 이젠 이런 영화도 기획이 안 되는 세상이 왔구나 좌절했다. 사실 '거미집'도 OTT로 풀어야 하나 했다. 하지만 영화 이야기인데 이건 제 자존심이었다. 이 어려운 상황에도 영화적 자존심을 지켰다는 것"이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그는 자신이 영화 현장에서 느낀 감동을, 관객에게도 제대로 전해주고 싶었다. "어쩌면 이 영화가 저도 모르게 영화에 대해 식었던 사랑을, 의기소침해졌던 부분을 다시 일깨우고 힘을 잃지 말라고 북돋아주는 나에 대한, 모든 창작자에 대한 격려의 의미로 만든 것 같기도 하다."


1970년대, 시대 자체가 코미디였던 시절. 대본 사전 심의는 물론 사후 심의로 압박과 제재가 가해지던 때. 배우들은 다작을 하고, 장비도 세트장도 돌려 쓰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걸작을 만들었던 그 시대로 눈을 돌렸다. 근거 없는 확신으로 걸작에 집착하는 김열(송강호)의 모습에는 제 모습을 투영했다. "박찬욱 감독이 이런 얘기를 하더라. 하루는 자기가 천재 같기도 하고, 또 하루는 스스로 쓰레기 같기도 하다고. 영화를 찍을 땐 정말 하루에도 그렇게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제 신조는 어떤 최악의 상황이 와도 쿨한 태도를 유지하고, 유머감각을 잃지 말자는 거다. 그런데 영화 현장만 가면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고 비탄에 빠지고 절망과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한다. 영화가 뭐길래. 평생을 평점심을 유지하며 살던 사람이 현장에선 왜 그리 비탄과 자학과 환희를 느낄까. 그래서 이 일을 하는 걸까?"


김열 감독은 아마 모든 감독들의 모습이 공통적으로 투영된 모습일거란 생각이다. 이밖에도 김열이 촬영장에서 배우들과 하는 얘기나 행동들은 실제 그가 느낀 현장에서의 크고 작은 감정들을 담아낸 것이었다. 


가장 공감했던 건, 김열이 광기의 클라이막스 신을 찍고 "잘 찍혔지?"라 묻는 대사다. 김지운 감독은 "실제 '놈놈놈' 촬영 때 제가 한 말이다. 대규모 폭발신을 찍고 나서 스태프들이 다 그쪽으로 뛰어가는데 저만 카메라가 있는 반대로 뛰어갔다"며 멋쩍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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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다섯번째 작품을 같이한 송강호에겐 다시금 감탄한 감독이다. "점점 훌륭한 배우가 된다는 것은 좋은 사람이 되는 거라 생각한다. 자신의 일에서 어떤 일과를 이루고 정상을 유지한다는 건 엄청난 자기 단련과 인내, 겸손함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늘 긴장하고 실수하지 않는 삶을 산다는 거다. 정상에 오른다는 건 어쩌면 기회가 오고 재능이 있으면 도달할 수 있지만 이를 유지한다는 건 굉장한 것"이라고. 송강호 덕분에 이번 현장의 기운도 남달랐다며 "이 사람이 주는 영향력이 있다. 그가 연기를 하면 다른 배우들이 다 지켜보며 뭔가 하나라도 더 배우고 얻으려고 한다. 그런 긍정적인 영향력이 작용된다"고 했다. 특히 "압도적인 순간은 어떨 땐 되게 친숙하고 서민적인 느낌을 주다가 느닷없이 얼어붙을 만큼 서늘한 느낌을 준다. 송강호만이 갖고 있는 유일무이한, 독보적인 장악력과 파괴력이 있다. 이건 그 사람의 천재성이다. 말 그대로 '쥐락펴락' 연기의 달인"이라는 찬사다. 


김지운 감독에게 인생은 영화와도 같았다. "무언가를 완성해낸다는 건 누군가의 고뇌와 열정, 그리고 용기가 필요하다. 현실이 힘들고 모든 것이 방해만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거미집'의 주인공처럼 자신을 믿고 열정을 가지는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는 마음으로 혼신을 다해 '거미집'을 완성했다. 


영화에 대한 그의 애정과 열정의 깊이를 도무지 헤아릴 수 없다. "영화를 왜 하냐 물어볼 때 좋은 영화를 보며 좋아지는 게 있다. 이를테면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영향력을 받는 것처럼, 저는 영화를 통해 느꼈다. 좋은 영화를 보고 '저런 영화를 만들려면 어떻게 살아야지?'란 질문을 했다. 현재의 모습이 내 10년 뒤를 결정하겠구나. 그 생각에 노는 것보다 책을 한 권 더 봤고 영화 한 편을 더 보며 나를 단련시켰다. 내 영화를 통해 그런 좋은 영향력을 받은 사람이 나온다면, 그게 바로 내가 영화를 하는 이유다."


자신은 늙어가도 자신의 영화는 늙지 않길 바라고,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것이 영화감독으로서의 제 몫이라 말하는 김지운 감독, 그에겐 천생 영화인의 강직한 자부심이 있다. 


사진=바른손이앤에이 제공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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