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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나희 순정' 정병각 감독, 긴 휴가를 마친 그의 특별한 진심 [인터뷰]

    긴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이가 소박하게 전하는 진심이 그리도 따뜻하고 다정할 수가 없다. 영화를 다시 찍기까지 무려 23년, 그 지난하고 지난한, 오랜 인고의 시간이 얼마나 다사다난했겠냐만, 그저 소모되고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욱 소중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로 돌아온 그가 그저 반갑디 반갑다. '싸나희 순정' 정병각 감독의 특별한 귀환이다. 1996년 한국영화사에 흔치 않은 여성 영화 '코르셋'을 첫 연출작으로 내놓고 2년 후 당대 최고의 아이돌 젝스키스를 배우로 기용해 화제가 된 청춘영화 '세븐틴'을 끝으로 정병각 감독의 작품 활동은 오랫동안 멈춰 있었다. 물론 영화 일은 꾸준히 해왔으나 새 작품으로 근황을 알리지 않은 탓에 대중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혔다. 그런 그가 23년 만에 신작 '싸나희 순정'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이라는 단어로도 모자란, 무려 23년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감회가 남달라도 한참은 다를테다. "매일 반응을 찾아보고 있다"며 너털웃음인 그는 "제가 의도했던대로 시골 사람들의 소박한 삶과 인물들의 이야기를 좋게 봐주셔서 정말 너무 고맙더라"고 했다. 그 한마디에 고마움과 안도감, 뿌듯함을 넘어 형언할 수 없는 만감이 담긴 듯했다. 류근 시인과 퍼엉 작가의 스토리툰 '주인집 아저씨'를 원작으로 한 '싸나희 순정'은 삶에 지친 시인 유 씨(전석호)가 도시를 떠나 어느 시골 동네 마가리에 뜻하지 않게 정착해 동화작가를 꿈꾸는 뽕밭 주인 농부 원보(박명훈)의 집에 머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담백하고 섬세하면서도 아련하고 따스한 향기가 물씬 풍기는, 소박하고 소중한 힐링 영화다. 오래도록 연출을 쉬는 동안 그는 솔직하게 "슬럼프를 겪었다"고 했다. "연출을 안 한 게 아니라, 못한 것"이라고 덤덤하게 말문을 연 감독은 "두 번째 작품 이후 영화와 제 자신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던 시기가 있었고, 그 고민이 길어질 때 상업영화의 흐름도 2000년대로 들어서며 많이 바뀌고 엄청난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그 흐름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당시 동료들을 만나면 올림픽처럼 4년에 한 번이라도 영화를 만들자며 자조적인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돌이켜보면 그렇게라도 작품을 내는 사람이 '행운아'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연스레 모두들 희미해지고, 퇴색되며 잊혀 갔을 테다. 이를 겪는 당사자의 마음이 어땠을지는 어쭙잖은 위로로도 감히 달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야속한 세월이 흐르던 차에 감독은 류근 시인의 원작을 보게됐다. "시인도 시인이지만, 시골 마을에서 만난 주인집 아저씨의 성품과 기질이 정말 좋았다. 류근 시인의 번쩍이는 재능이 곳곳에 스며든 이야기가 정말 매력적"이란 감상이 들었다. 처음엔 스스로 연출을 맡게 될 거란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고 기획에만 참여했다. 영진위 제작지원을 신청하는 단계에서 감독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결국 제 이름으로 냈는데 3수 끝에 선정이 됐다. 어떻게 보면 얼떨결에 덜컥 복귀를 하게 된 셈이다. 후배 작가들과 공동 작업으로 각색에 몰두할 때부터 설레기 시작하고 차츰 실감이 들더란다.     ▲ '싸나희 순정' 정병각 감독   원작은 시인 유씨와 원보가 나누는 이야기가 주다. 간혹 마을 사람들 몇몇의 이야기는 간접적으로 원보의 입을 통해서 전해진다. 이에 감독은 정겨운 마가리 마을 사람들과 그들 각각의 사연을 그려내며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인생의 길잡이 같은 원보를 비롯해,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고 연대하며 살아가는 마가리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다정하고 풍만한 소속감을 느끼게 하고, 각박하고 메마른 감성의 유 씨도 이들을 통해 삶의 무력에서 벗어나 위안과 정을 나눈다. 어쩌면 별 거 없는 소박한 이야기가 그리도 따뜻하고 소중할 수가 없다. 감독은 이들을 통해 동질감을 많이 느꼈고 그가 느낀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유씨는 시를 쓸 수 없는 시인으로 나온다. 알다시피 오랫동안 영화를 못 만드는 감독으로서 저하고 많이 겹쳐져 보였고 교감이 많이 됐다. 원보는 제가 닮고 싶었던 인물이었다. 제가 받는 힐링과 위안은 우리 주변에서 보는 아름다운 사람들 때문이다. 작게는 선뜻 자리를 양보하거나,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준다거나 하는 선의의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이 아름답다. 아직은 쉽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들이라 이를 보면 아직 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이 말하길 우리는 '개인'으로 살 수 없다. 다 같이 더불어 사는 삶에서 서로 도움이 되는 관계를 맺으며, 또 그 도움에 감사할 줄 아는 삶을 살고 싶었다. 이런 작지만 소소한 관계가 삶을 지탱하는 힘을 주고 행복을 얻게 한다고. 이런 마음이 잘 녹아난 이야기였기에 그 역시도 두렵지만 다시 카메라를 들 수 있었을 테고, '싸나희 순정'엔 그런 감독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 진심은 실제로 많은 이들을 움직였다. 박명훈 전석호를 비롯해 크고 작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활약하던 반가운 배우들이 마가리 주민들로 등장한다. 그래서 보는 재미가 더하다. 이들은 서로의 인연이 닿고 닿아 한 자리에 모였고, 출연료를 자진 삭감하며 영화에 대한 진심을 모았다. 이에 대해 깊은 고마움을 전한 감독은 "결과적으로 하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 처음엔 두렵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해서 자신감이 없었는데 막상 끝내고 나니, 작품을 좋게 봐주신 관객들의 반응을 보며 정말 큰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특히 어릴 땐 실감을 못하던 자녀들이 성인이 돼 23년 만에 아빠가 만든 영화를 보고 "아빠가 영화감독이 맞긴 맞네"라고 이야기했단다. 가족들의 인정만큼 더 큰 기쁨은 또 없을 테다.   그렇게 감독에게도 '싸나희 순정'은 특별하고 소중한 작품이다. 막상 촬영 당시엔 저예산 영화의 한정적 스케줄, 계속되는 태풍과 장마 그리고 찌는 듯한 무더위로 애를 먹었지만 고생 끝에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마을 풍경들을 담을 수 있었고, 더욱 리얼한 배우들의 열연을 담아낼 수 있었다. 감독에겐 이 모든 것이 돌이켜보니 그저 '행복'이었다. "동료나 선배들도 다들 힘들어한다. 저도 마찬가지다. 비단 영화뿐만 아니라 창작을 업으로 삼는 아티스트들은 다 그럴 거다. 성공하고 잘 나가는 사람은 소수다. 하지만 힘들어도 살아진다. 물론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 모든걸 견디며 삶을 배우는 거다. 세상은 항상 변화하고, 삶도 변화하고, 그렇게 견디며 배우며 살다 보면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제가 이렇게 운 좋게 멋진 작품을 만나 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듯, 그 믿음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거다." 정병각 감독은 평범한 사람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통해 아직 우리 사회가 살만한 세상이란 걸 보여주고 싶은'순정'이 있다. 주변의 모든 인물들이 돋보이고, 그들이 골고루 이뤄나가는 이야기들로 이뤄진 드라마. 그리고 대사나 연기만이 아닌 춤과 노래, 시. 일종의 문학적인 장르를 끌어들여 종합적인 예술을 담아내는 작품. 그가 추구하는 낭만적인 작품 세계다. "비록 큰 개성은 아니지만 제 작품의 특징이고 갖추고 싶었던 모습이다. 또 영화를 할 기회가 주어지면 이를 좀 더 좋게 다듬어서 보여 드리고 싶다"는 감독의 바람이다. 여전히 낭만을 꿈꾸고 진심을 전하는 정병각 감독의 작품 세계를 오래도록 보고 싶다.    사진=(주)마노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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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나희 순정' 박명훈, 이런 앙증맞은 사랑스러움! [인터뷰]

    어쩌면 큰 착각을 해버렸다. 괴상하고 독특한 지하실 속 남자, 보이스피싱 조직의 절대적 감시자, 그때 느낀 너무도 강렬한 섬찟함으로 이미지를 속단했다. 안일하고 어리석은 재단이다. 티 없이 맑은 동심을 간직한 엉뚱한 시골 농부의 순박함과 푸근함을 고스란히 투영한 그의 새로운 모습은 낯설긴커녕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앙증맞다. 다시 확신한다. 배우 박명훈은 천의 얼굴을 지녔다.  류근 시인의 '주인집 아저씨'를 원작으로 한 '싸나희 순정'(감독 정병각)은 도시의 고단한 삶에서 탈출해 어느 시골 동네 마가리에 불시착한 시인 유씨(전석호)가 엉뚱 발랄한 농부 원보(박명훈)의 집에 머물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첫 등장부터 수더분한 시골 사람 그 자체로 등장한 원보는 도라지 꽃밭에서 뒹구는 유 씨를 구수한 사투리로 나무라더니, 묵을 방이 있느냐는 물음에 너그러이 제 집 방 한켠을 내준다. 낯선 이방인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동네 대소사를 꿰고 있으며, 마을 사람들을 일일이 챙기고 아끼는 오지랖이 마냥 선하고 순박한 이다. 게다가 말은 어찌나 잘하는지, 툭툭 별 뜻 없이 내뱉는 듯한 구수한 말들이 때로는 촌철살인이고 때로는 인생의 길라잡이 같은 명언이 되기도 한다.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영화가 품고있는 따뜻한 정서가 좋았다"는 박명훈은 원보의 마음을 읽기 위해 노력했다. "원보는 솔직히 말해 요즘 같이 각박한 세상에 보기 드문 아름다운 심성을 지닌 인물"이다. 두 달 동안 마을에 머물며 공간, 그 자체가 주는 느낌을 고스란히 받았고 원보의 마음도 곰곰이 생각했다. '과연 이 친구는 어떻게 이런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마을 사람들을 친가족처럼 도와주게 됐을까' '하는 일은 농업이지만 어떻게 동화 작가의 꿈을 갖게 됐을까' 숱한 생각과 고민 속에 차츰 원보를 이해하게 됐단 그다. "원보의 마음은 사람을 존중하는 것에 있다. 마을 사람들을 자신의 가족이라 여기는 마음으로 출발했더니 조금씩 원보가 제게 들어오더라." 원보는 타인의 고통과 고민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는 이타적이고 계산되지 않은 순수한 마음씨를 가진 인물이다. 한편으론 불필요한 고생을 굳이 사서 하는 그의 모습이 조금은 안쓰럽고 염려되기도 한다. 하지만 박명훈은 "현실과 동떨어진 인물일 수도 있지만, 인생을 살아오면서 돌이켜보면 원보같은 사람들은 분명 있었다. 정말 순하고 착한 사람들이 있었고, 저도 잊고 있던 느낌이 되살아났다"고 했다.  그가 말하길 이번 영화는 촬영하면서 스스로 변하는 느낌을 갖게 하는 작품이었다. 원보를 연기하기 위해 그의 마음을 읽어보려 노력하는 시간, 마을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공간 속에 녹아든 시간들을 돌이켜보니 촬영 당시엔 막상 몰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순수하고 따뜻한 충족감이 생기는 영화였다고.  "'싸나희 순정'을 찍으며 모든 순간이 좋았다. 우리 영화는 풍랑 없이 잔잔하다. 정말 시골 마을에 있을법한 우리네 이야기라 특별한 굴곡은 없다. 하지만 찍을수록 재밌는 부분이 생겼다. 왜 그런가 생각해봤더니 서로가 느낀 공감때문인 것 같더라."   '싸나희 순정' 속 시골 동네 마가리는 삶이 고되고 지친 이들에게 잊고 있던 따스한 정과 온기를 베푼다. 그 특별할 것 없지만 눈부시게 아름다운 시골의 풍경이, 그 곳에 머무르는 소소하지만 다정한 이웃들의 존재가, 절로 평온과 위안을 전해준다. 박명훈 역시 이를 제대로 만끽한 것이다. 특히 그는 '명대사 제조기'와 같던 원보의 숱한 말들 중 하나를 떠올렸다. 매서운 태풍으로 인해 원보가 경작하는 뽕나무밭이 처참하게 망가진 순간, 한참을 고군분투하다 돌아온 원보는 축 처진 어깨와 지친 모습으로 한줄기 빗물인지 모를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원보는 "껴안고 울어서 그 힘으로 뽕나무들이 다시 살게 해야지유"라며 좌절이 아닌 희망을 본다. 힘든 순간 끌어안고 함께 울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원보의 모습은 순수하고 감명깊다. 박명훈은 이를 두고 "원보가 동네 사람들을 품고 생각하는 마음도, 같이 껴안고 울어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원보는 볼수록 사랑스럽다. 특히 자전거를 탈 때 살짝 튀어나온 뱃살도, 원보가 연모하는 여자를 위해 예쁜 보자기에 싼 정성스러운 도시락을 들고 그야말로 '촌빨'날리는 어설픈 정장을 입은 모습도. 그 순수함과 따뜻함에 절로 동화된 탓이다. "저도 관객의 입장에서 봤을 때 원보가 뽕밭에 텐트를 치고 동화를 쓰며 앉아있는 모습이 특히 귀엽고 사랑스러웠다"는 그는 덧붙여 "그 텐트는 원보의 희망과 꿈에 대한 공간이다. 하지만 그 텐트를 친 장소는 뽕밭이라는 일터다. 현실과 꿈의 장소가 공존해있는 장소를 보며 '저 친구는 육체적인 일을 하며 현실을 살아가지만,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더욱 사랑스러웠다"고 설명했다. 원보에 대한 아낌없는 애정이 넘친다. 오랫동안 연극 무대에 서 왔던 그는 영화 '기생충'의 지하실 남자로 대중에게 압도적인 눈도장을 찍은 이후 최근작 '보이스'의 살벌한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 본부장까지 강렬한 이미지로 대중의 뇌리에 각인됐다. 하지만 '싸나희 순정' 원보를 통해 그의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이면을 발견한 것은 새롭고 흥분되는 일이다. 박명훈은 "모든 배우들이 그렇겠지만 계속해서 다양한 캐릭터를 하며 여러가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고, '저 배우가 박명훈이었어?'라며 관객들을 놀라게 하고 싶은 꿈이 있다"고 개구쟁이처럼 웃어 보인다. 실제론 수다떠는 것도, 노래하는 것도 좋아한다고.  '싸나희 순정'에서 원보가 지킨 순수함처럼 배우 박명훈도 지키고 싶은 순정이 있다. 연기에 대한 순수한 애정이다.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 영화에 대한 순정이 느껴지는 배우이고 싶은" 바람이다. 그는 동료나 선후배들의 좋은 연기를 보면 가슴이 떨리며 자극이 되기도 하고 힐링이 되기도 한단다. 무엇보다 계속 연기할 수 있는 이유는 언제나 저를 믿고 꾸준히 지지하며 응원하는 아내와 아들, 가족의 힘이다. "아내는 분장을 하던 사람으로 제가 연극할 때 함께 일하며 만났다. 이미 배우의 세계를 잘 알고 그때부터 늘 응원을 해준다. 아들은 작년까진 영 모르는 눈치더니 여덟 살이 되고부터는 아빠가 배우란 걸 아는 모양이다. 그래서 책임감도 생기고 희한한 느낌도 들고 그렇다"고 행복감이 가득 묻은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그다.  '기생충'이란 작품은 그에게 있어 인생의 변곡점이 확실할테다. 하지만 이 기회를 충분한 확신으로 만든 것은 온전히 그가 이룬 몫이다. 그는 이미 '천의 얼굴'이란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데다 굵직한 차기작까지 연달아 기다리고 있다. "스스로 제 자신을 잘 못 보긴 하지만, 굳이 평가하자면 약간은 희한하고 독특한 색깔을 특이하게 봐주신 덕분 아닐까"라고 웃으며 너스레지만, 배우 박명훈은 관객에게도 소중한 발견이다.      사진=(주)마노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