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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 비로소 완성된 그날의 퍼즐 [인터뷰]

    열아홉 살 소년이 한밤 중에 숨죽여 들었던 두렵고 무시무시한 총성. 불안함을 뚫고 나오는 호기심과 그 후로 오래도록 가진 의문. 비로소 그날의 퍼즐 조각을 맞춘 이야기는 희대의 역작이자 수작이 되어 남았다. '서울의 봄' 김성수 감독이다.  12.12 군사 반란 실화를 모티브로 한 '서울의 봄'은 김성수 감독에겐 오랜 염원이자 영문 모를 부채감을 안긴 작품이었다. 계속 자신 없어하면서도 이 시나리오를 놓지 못하는 제게 스스로 반문하기를 수개월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집에서 큰 잔치가 벌어져 방도 뺏기고 나가 있으란 말에 신나서 집을 나왔던 열아홉의 그가 거리를 지나는 장갑차를 봤다. 너무 신기해서 쫓아가는데 멀리서 총성도 들렸다. 지나가던 아저씨들이 어서 집에 가라 했지만 호기심이 왕성할 그 나이, 친구 집 옥상으로 가서 어두워 보이지도 않는 그곳을 응시했다. "모두가 그렇지 않나. 많은 세월이 지나도 인생에서 선명한 날. 또렷한 건 밤하늘의 찬 공기와 총소리가 너무 컸고, 너무 무서워서 서있지 못하고 웅크리고 앉아서도 계속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훗날 영화 감독을 데뷔하던 90년대 중반에서야 그날의 의문이 풀렸다. 허망했고, 분개했다. 패배의 상실감과 매캐한 최루탄 연기에 갇혀 흘러간 그의 지난 20대가 이런 이유에서였다니, 오랜 의혹이 해소됨과 동시에 큰 충격과 속상함에 빠져 있던 그다. '서울의 봄'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그의 표현대로라면 "혈관 속 피가 역류하는 듯한 전율"을 느꼈고 "내 마음은 어느새 잔뜩 겁에 질린 열아홉 살이 맞닥뜨린, 숨 막히는 그 겨울밤 속으로 정신없이 내달리고 있었다." 어쩌면 '서울의 봄'은 김성수 감독의 운명이었다. 그는 "절대 다큐 같아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너무 영화 같아서도 안 됐다.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면 안 되는 영화였고, 그런 걱정과 염려. 마음의 긴장 상태로 이 영화에 임했던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웠다는 감독이다. 역사적인 기록에서 출발한 사건이지만 그 빈틈을 메꾸고 영화적으로 창작해 표현하는 것은 감독의 특별한 권한이자 누릴 수 있는 묘미다. "영화광으로서 어떤 사건과 직면했을 때 인간이 내린 결정과 판단, 이런 신념과 야망, 욕심에 관심이 많다. 역사 속 인물들을 제가 잘 모르니 저는 그들이라 여겨지는 인물을 제가 만든 세계로 불러들여 상황극을 만들어준 것"이란 김성수 감독은 "왜 이름을 바꿨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전 실존인물에 대해 그렇게 관심이 없다. 안 좋아는 사람들이라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쿨하게 답했다.  그는 단순히 역사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느낀 바를 제 생각으로 표현하는 것이 감독의 몫이라 여겼다. "실제 사건과 인물에서 출발했지만 건방지게 말하면 김성수 세계 안에서 움직이는 아바타였으면 했다"는 것이다. 다만 전두환을 모티브로 한 전두광을 연기한 황정민이 대머리까지 닮은꼴 분장을 한 것에 대해서는 "실존인물이든, 영화 속 인물이든 그 사람이 모든 원흉이고 모든 걸 주도했고 결국 승리의 과일을 모두 따먹은 사람이라 가장 중요했다. 역사가 영화로 전향되는 스위치, 그런 징검다리 도약대 역할을 정민 씨가 해줘야 했기에 외피를 덮어씌운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극화 시켜서 풀어낸 영화지만, 실화가 주는 무게감과 결국 오래도록 빼앗긴 '봄'이 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보긴 힘든 작품이다. 의기양양하게 웃는 최후의 반란군들 모습과 대비되는 진압군의 갖은 고초는 허망함과 탄식, 분노를 유발한다. 감독은 영화란 명분으로 통쾌한 결말을 바꿔치기할 수도 있지만 "그런 쉬운 선택은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감독이 사실 자기 영화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지만, 이야기의 맥락을 보고 과연 이런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힘을 합치는 탐욕의 무리들이 어느 도처에서나 벌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런 일이 늘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벌어질 수 있다. 과거를 들여다보는 이유는 우리가 앞으로 닥쳐올 미래를 잘 해결해야겠단 생각 때문에 하는 거 아니겠느냐"고 했다. 또한 마지막 사진의 의미를 두고 "그들이 영광의 기록을 자랑스럽게 찍은 사진이다. 하지만 이를 본 사람들은 어떨까. 절대 그렇게 보지 않을 것"이라며 단언했다.  무엇보다 김성수 감독은 반란군을 막는 진압군의 이야기를 통해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닌, 본분에 책임을 다하는 사람과 본분을 망각한 채 지나친 욕망을 갖고 이를 충족시키려는 사람의 모습을 부각하려 했다. "숫자는 적었지만 실제 진압군의 이름으로, 그 명분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반란군을 제압한 분들이 있었다. 그분들의 시선으로 영화를 보게 만들면 이 탐욕의 무리들이 더 잘드러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결국 김성수 감독이 '서울의 봄'을 기어이 담아낸 것은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경험하지 못한 야만의 시대, 폭력의 시대를 상기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니었다. "개인의 어떤 결정과 판단이 큰 영향을 끼칠 때가 있다. 영화 속에도 반란군, 휩쓸린 사람들, 진압군, 구경하던 사람들 등 수많은 인간군상이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의 소용돌이로 빨려들어간다. 이런 순간에서 각각의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각자 삶을 살아온 방식으로 대답한다. 어떤 생각과 세계관을 갖고 인생을 살아가고 마무리 짓느냐가 삶의 과정이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인가 승리의 세계관만 부각한다. 이겨야 하고, 앞서야 하고, 압도해야만 한다고. 하지만 그게 과연 옳을까." 열아홉 소년의 기억을 오십 중년의 나이에 다시 꺼내본 감독 또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삶의 평생 난제이자 가장 가치로운 의문을 '서울의 봄'을 통해 되새기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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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봄' 정우성의 품격과 소신 [인터뷰]

    배우 본연의 성정이 이토록 자연스레 묻어나는 배역이 또 있을까. 영화 '서울의 봄'에서 너무도 고귀한 자부심과 사명을 지키는 인물로 분해, 충격적 사건을 목도한 관객들에 단 하나의 '희망'이 되어주는 정우성이다. 그 특유의 성품과 올바름이 고스란히 투영된 인물이었고, 누구도 이보다 더 완벽한 싱크로율을 발휘하긴 어려울테다.  정우성은 이미 '서울의 봄' 캐스팅 단계에서 김성수 감독이 제게 전화를 할 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김성수 감독이기에 일단 반은 마음이 기울지만 '헌트' 촬영이 끝난 시기였기에 잇단 두 작품에서 외피적으로 비슷한 캐릭터를 또 맡게 된다면 과연 관객이 이태신을 온전히 받아들일지 우려가 됐다. 그랬더니 "나 너 아니면 안 해"란 감독의 반 협박을 들었다. "당연히 같이 작업하는 즐거움과 신뢰는 있지만 이런 외부적 요소로 인해 우려를 말씀드린 건데 귀에도 안 먹힌 것 같다"며 웃으며 당시를 회상한 그다. 감독의 협박에 가까운 캐스팅 고집은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다. 감독이 정우성이기에 믿고 맡긴 캐릭터 이태신은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군의 사명에 충실한 인물이다. 내란 음모를 일으키는 전두광 무리들에 맞서 끝까지 대항하는 그의 신념과 사명감은 뜨거운 감명을 일으킨다. 특히 정우성이 연기하기에 익히 그의 평소 언행에서 읽히는 본연의 옳고 그른 성정과 맞물려 더 깊은 몰입을 이끌어낸다. 의외로 "많은 분들이 이태신 캐릭터에 호응해주셔서 놀라웠다. 상황에 대한 분노도 느끼고, 아주 징글징글한 황정민 형 연기도 보고,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기가 빨리는 느낌을 받았기에 '잘한 게 맞나' 반문을 여러 번 했다"는 정우성이다. 그는 "실제 인물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지만 이태신은 극 중 가장 허구성이 많이 이입된 인물이기에 캐릭터를 만들 땐 모든 걸 배척해야 했다. 막연함이 있었기에 더 많은 관찰과 고민을 했다. 감독님께서 참고 영상으로 제가 UN난민친선대사로 뉴스 인터뷰 했던 걸 보여주셨다. 그 영상의 의미는 인터뷰에 임하는 제 자세였던 것 같다. 타인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전하는 만큼 단어 선택 하나도 신중하고 조심스럽고, 강요가 되어서도 안 된다. 그런 모습을 원하신 것 같다. 감정적이며 저돌적으로 불같이 달려드는 무리들을 대할 때, 본분을 지키기 위한 이성적 사고와 차분함 이런 모습을 이태신에게 얹길 원하셨던 것 같다"고 이해했다. 그가 말하길 "이태신은 어떤 사람일까를 막연함 속에서 찾아가는 첫 단추"가 처음 참모총장으로부터 수도경비사령관을 제안받는 신이었다. 이를 조용히 거절하는 모습에 이 사람이 담겨 있었다고. 우직하고 투철한 신념을 갖춘 인물이지만, 정우성은 이를 선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그저 맡은 본분과 직무에 책임을 다하는 소신있는 인물이라 여겼다. "올바름이란건 정의되기 힘들다. 누군가의 올바름이 다른 누군가에겐 올바르지 않을 수 있다. 감독님 전작 '아수라' 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안에 전두광도 있을 수 있고, 육본의 우유부단한 '똥별'들도 있을 수 있고, 이태신도 있을 수 있다. 내 안엔 다양한 내가 있다. 그러다 어떤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어떤 모습이 튀어나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큰 차이를 만드는 것 같다. 감독님은 그런 자세로 인물을 다루는 것 같다. 선택의 명분, 의미부여를 하기보다 본분을 지키는 그런 신념의 사람으로 이태신을 그리려 했다"는 그는 "감독님께서 이태신을 통해 그날의 사건을 함께 목격하길 바라신 것 같다. 명분과 정의를 강요하거나 선과 악의 대결이라기보다 인간 본성을 탐구하는 태도, 인간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고 해석했다. 대척점에 선 전두광 역의 황정민과 처음 리허설을 할 때, 만만찮은 캐릭터를 대하는 만큼 ''타 죽는 게 아닌가'하는 부담이 컸다고 엄살인 정우성은 "테이크가 끝나면 상대방 표정에서 느껴진다. 아, 형이 이태신을 느꼈구나"라며 웃었다. 해당 장면에서 극도의 긴장감이 도사리고 있음에도 반란군 무리들에게 "보기 안 좋다, 몰려다니지 말라"고 속시원히 일갈하는 이태신과 그로 인해 무안함과 분함을 풀 데 없는 전두광의 표정도 은근히 통쾌하고 유머러스한 장면이다. 정우성은 "이태신이 그렇게 원리원칙을 따지고 꼿꼿하고 딱딱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저 본분에 대한 책임을 지키려는 사람인데, 군인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으니까 한마디 하는 거고 군대라는 체계가 있는데 체계 없이 몰려다니니까 한 마디 했다"고 미소다.   극 중 전방부대까지 불러들이는 반란군의 조직적인 움직임에 손발이 묶였음에도 끝까지 홀로 맞서는 이태신의 사투는 안쓰럽고 비통하기 짝이 없다. 정우성은 "답답해서 스트레스가 쌓이지만 그걸 화로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다. 상황에 대해 부정하지 않으려다 보니 이를 극복하려 하지만, 외면 당하고 상황은 더 안 좋은 쪽으로 흐르며 혼자 고립되는 상황으로 내몰린다. 그럼에도 이를 온전히 다 받아들이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감정적 대처보다는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 이성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 여겼다"고 했다. 특히 희대의 명장면이라 꼽히는 최후의 바리케이드 신은 "7월에 찍느라 정말 힘들었다. 감독님이 농담으로 '정우성 키 크잖아.. 잘 넘어가겠지? 그래서 만들었어' 했다"고 전하며 웃겼다. 하지만 이내 "장애물이 있어도 느리지만 꿋꿋하게, 무거운 발걸음이 되고 넘어져도 일어나서 그렇게 가려고 하는 사람이 이태신이란 사람인 것 같더라. 자신의 소신을 위해 그가 길을 걷는 자세가 아니었나. 그 길에 철망이 찔리고 아픈 게 사실일지라도, 그렇게 가더라도 극적인 해결이 이뤄지지 않을걸 알고 있음에도 그냥 가야 하기 때문에 가는 것"이라고 의미를 전했다. 탐욕의 무리들에 철저히 짓밟힐지언정 마지막까지 그가 지킨 꼿꼿한 자부심과 올바름의 가치는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의미 깊은 질문을 던진다. 항간엔 '이태신 장군 앓이'가 일어날 정도로 멋진 사람을 연기한 정우성이다. 그리고 정우성이기에 더욱 진심으로 몰입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캐릭터 싱크로율 제로라고 손사레친 그는 "멋있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어떻게 보면 이태신은 자신의 본분을 지키려 부단히 노력한다. 그 모습을 많은 분들이 바람직한 성향이라고 느끼고 공감하기 때문에 이태신을 응원해 주시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너무 많이들 좋아해 주셔서 저에게 부담스러운 캐릭터로 남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보게 됐을 때, '서울의 봄' 이태신이 저에게 어떤 의미의 캐릭터인지 알게 될 것 같다"고. "사람이 살면서 소신이란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제가 추구했던 건 어느 캐릭터에도 머물러 있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비트'로 청춘의 아이콘이란 수식어가 쓰인 순간, 빨리 이걸 벗어나야지 했다. 아이콘이 되고 싶지 않았고 아이콘일 수 없었다. 그저 어떤 청춘의 외로움을 보인 것 뿐이고, 많은 분들이 동시성을 느껴주신 것뿐이다. 배우로서 제가 여러 가지 선택을 해왔다. 흥행만을 좆지 않고 무모한 도전도 하고, 다양한 시도도 했다. 그게 주류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낼 수 있는 작은 씨앗을 품은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됐다. 그게 배우 정우성의 소신이었던 것 같다. 지나온 제30년을 돌이켜보면 그런 소신으로 임한 저를 발견하게 되는 것 같다." 이런 품격과 소신을 지킨 정우성이다. 그가 연기한 올곧은 캐릭터에서 그의 성정이 자연스레 묻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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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봄' 박해준, 이인자의 존재감 [인터뷰]

    박해준은 상황에 맞게 자신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배우다. 적재적소 자신을 더하고 덜어내는 그의 연기는 어느 때라도 이질감 없이 다가온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이인자의 존재감을 그만의 방식으로 발휘한 것만 봐도 그렇다.   권력을 향한 욕망의 기차에 탑승한 후 돌진하는 탐욕의 2인자. 배우 박해준이 영화 '서울의 봄'에서 연기한 노태건에 대한 설명이다. 그는 전두광의 오랜 친구이자 같은 군대 사조직 하나회의 일원이다. 전두광의 반란 계획에 처음엔 겁을 먹고 반신반의하는 모습으로 언뜻 우유부단하고 소심해 보였으나, 이후 전두광의 권력욕에 편승해 숨겨진 욕망을 드러내며 군사반란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일인자 앞에선 다소 위축되지만 그가 사소하게 신경 써야 할 부분을 제 선에서 해결하는 이인자 특유의 면모를 실감 나게 연기한 박해준이다. 노태우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인 데다 내외적 싱크로율도 상당해 어떤 이는 '죽은 노태우 영혼을 강령술로 불러내 고증 자문받고 빙의시켜 연기한 듯하다'는 관람평을 남겼을 정도다.  이에 멋쩍게 웃은 박해준은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하다. 하지만 실존 인물에 대한 캐릭터적 고민은 안 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부담이 됐는데 감독님을 만나고 촬영에 들어간 이후에는 상황에 집중하다 보니 캐릭터적인 면에 부각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2인자로 그려진 인물적 내면에 더 집중했다. 반란을 도모하고 결정은 전두광이 내리지만, 노태건은 이를 다시 검토하는 사람이다. 그런 것들이 표현되기를 바랐다. 다만 듬직한 풍채는 의도했다. "개인적으로 좀 더 나이 들어 보였으면 했고, 그전에 살을 좀 찌웠었는데 군복을 입었을 때 편견이긴 하지만 호리호리한 모습보다 풍채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이를 유지했다. 전두광과 친구 관계로 나오기에 그런 밸런스를 맞춰주면 좋겠단 생각"에서다.  노태건은 초반 자신에게만 은밀히 털어놓은 전두광의 내란 음모를 듣고 기겁하며 이를 만류한다. 선뜻 지지하지 않고 주저하는 모습이 자칫 소심해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박해준은 이를 두고 "제 스스로 노태건 역할을 연기하며 염두한 것은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단 생각이다. 물론 전두광이 엄청난 힘으로 나를 당기고 있지만, 이 인물은 선택을 내리기까지 생각이 깊고 고민이 많은 인물"이라며 "전두광은 자신이 사람을 좌지우지하며 주무른다고 생각하지만 노태건은 마냥 따라가지 않고 의문을 품는다. 센 압력으로 감정을 유지하지 않고 내면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인물의 감정을 표현했다. 그렇게 신중하게 내린 선택이라면, 이후에는 중심을 잡고 계속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사람"으로 캐릭터를 해석했다. '꼭 너 때문이 아니고, 나도 이런 생각이 있기 때문에 내린 결론'이라는 모습을 보이려 했다고.  극 중 반란군들이 내란 음모를 도모하는 장면은 탐욕과 욕망이 한데 뭉친데다 극도의 긴장이 응축된 상징적인 신이다. 이때 쿠데타가 실패할 가능성을 두고 염려하는 이들에게 확신을 불어넣으며 칼로 잰 듯 완벽하게 주고받는 전두광과 노태건의 호흡은 굉장히 인상적인 신이다. 당시를 회상한 박해준은 "이번 영화는 리허설 현장이 굉장히 명확하고 집요했다. 아낌없이 리허설 시간을 쓰는 작품이었다. 많은 인물이 모여있음에도 굉장히 자연스럽고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마치 하나의 공연을 만드는 것 같았다. 아무 데나 카메라를 갖다 놓아도 흠잡을 수 없이 한 장면이 되는, 매 신마다 정말 준비가 완벽했다. 당시의 숨 쉴 수 없는 긴장감들이 실제 현장에서도 느껴질 만큼 분위기가 잡혀 있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상대 역인 황정민이 절로 집중과 긴장감을 만들어줬다며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몰입해서 만들어주시고 여기에 '드루와' 하시는 거다. 그래서 돌멩이 던지면 파장이 깨지듯, 선배님이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다"고 황정민의 유행어를 센스 있게 활용해 고마움을 표한 그다.  여기에 그토록 염원하던 김성수 감독과의 작업도 그에겐 영광이었다. "같이 작업해보고 싶었다고 말씀해주실 때 정말 기뻤다"는 그는 특히 '아수라'의 '찐팬'이었다. "감독님 얘기는 정말 침 마르도록 할 수 있다. 제가 감히 칭찬할 수 있는 분도 아니지만 진짜 좋고 멋있는 사람이다. 되게 매력이 넘치고 적당한 카리스마가 있다. 사람을 존중해 주는 모습, 인간적으로도 멋있고 현장에서도 정말 멋졌다. 제가 존경할 수 있는 분이 또 한 명 생기게 돼 기분 좋았던 만남"이라며 극찬을 이어가는 데다 "계속 보다 보니 정말 멋있고 잘생겨 보이시더라"라고 듣기 좋은 익살이다. 그만큼 동경하는 감독, 배우들과의 작업과 후회 없을 만큼 완벽한 결과물에 더할 나위 없이 흡족해 보이는 그다.    여기에 흥행 성적까지 탄탄대로다. 오랜만에 '서울의 봄' 덕분에 극장가도 봄을 되찾듯 활기를 띠고 있다. 박해준은 "영화가 잘 되니까 덩달아 기분이 좋다는 분들이 많으시더라. 이를 보며 '아, 진짜 한국 영화를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구나' 그런 생각만으로도 감동적이다. 너무 신기하고 참 기분이 좋다"고 했다.  현재 뜨거운 반응과 더불어 영화를 다 본 뒤 심박수가 얼마나 상승했는지를 확인하는 심박수 챌린지며, 항간엔 욕하며 볼 수 있는 '욕 상영관'이 나와야 된단 반응도 줄을 잇는다.  박해준은 "지금도 식당 가면 '김희애 남편 왔다'며 '부부의 세계'를 언급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때는 욕했는데 지금은 너무 좋아해'라고 하신다"고 욕을 들어도 배우로서는 이런 반응이 감사하단다. 비록 내란 음모를 벌인 반란군의 입장을 연기했지만, 인간적으론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끝까지 싸우는 진압군의 모습이 큰 감동이며 아름다웠단 감상이다. "연기하며 노태건의 심정으로 이태신(정우성)을 볼 때 참 두렵기도 하고 놀랍고 존경하면 안 되는데 존경스러운,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 단 한 명이 우리를 막기 위해 걸어오는데 압도되는 두려움도 있고 그런 감정이 자연스럽게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내가 좀 초라해진단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고. 이어 "개인적으로도 자신이 맡을 일과 사명을 위해 목숨 끝까지 지켜나간 이태신 장군이 정말 멋있단 생각이 들었다. 저 역시도 촬영에 임할 때 배우며, 스태프며 각자 맡은 역할에 대해 충실히 일을 해나갈 때 결과물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모습이 중요한 거라고 생각한다. 제가 아빠로서는 가정에 충실하고, 배우로서는 연기에 충실한 것. 당연하게 지키고 해야 할 것들을 못하는 때도 많으니 내 삶을 돌아볼 때 부끄럽지 않게 제게 주어진 일을 좀 더 집중해야겠단 교훈도 얻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놀라울만큼 재밌었고 참 좋은 경험을 했다"는 박해준은 '서울의 봄'의 여운을 기분 좋게 만끽하는 중이었다.    사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