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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이의 양지' 윤찬영의 열아홉, 스물 [인터뷰]

    스무 살, 조금은 치기 어린 젊음을 만끽해도 좋을 나이건만 배우 윤찬영은 의젓하고 반듯하다. 신중한 언행엔 깊은 생각이 엿보인다. 그럼에도 간간히 엿보이는 수줍은 밝음이 괜히 보기 좋다.  윤찬영은 신수원 감독의 영화 '젊은이의 양지'에서 콜센터에서 일하는 19세 실습생 준 역할을 연기했다. 아버지는 반듯하게 자란 아들의 첫 출근을 기뻐하며 없는 살림에도 근사한 정장 한 벌을 선물했지만, 현실은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밀린 카드 빚 독촉을 하고, 온갖 폭언과 협박 등 감정 노동에 시달린다. 화장실 가는 시간조차 쉬는 시간에서 차감당하고 기계처럼 일해야만 하는 과도한 업무량에 방광염이 걸려 기저귀를 차고 있다. 믿고 의지할만한 어른이라 여겼던 이는 벼랑 끝에 몰린 그가 간절한 도움을 요청했을 때 냉정하고 잔혹하게 질책하며 외면한다. 결국 잔혹한 세상의 끔찍한 민낯을 보고 무너지고 마는 가엾은 청춘의 단면. 이를 지난해 실제 열아홉의 나이로 연기했던 윤찬영이다.  그는 준이의 내면과 고민을 깊이 연민하고 공감했다. "준이를 가장 괴롭히는 건 뭘까. 사진가가 되고 싶은 꿈이 있는 아이인데 취업전선에 나갈 수밖에 없었고, 콜센터 일을 하며 의미를 찾지 못하고 그럼에도 꿋꿋이 참고 내적으로 고통을 쌓아뒀지만, 충격적인 일을 겪으며 윽박지름과 수치심을 느끼는 감정들이 준이를 가장 크게 괴롭혔던 것 같다"고. 사진가를 꿈꾸는 아이라 실제 그도 카메라를 한 대 빌려서 지하철을 타고 홍대나 공원을 혼자 돌며 사진을 찍고 촬영도 했다. 실제로 자신이 녹화한 장면들이 영화에 쓰이기도 했다. "감독님이 나중에 카메라 감독해도 되겠다고 해주셨다"며 내심 기쁜 기색도 보인다.  극 중 준이 화장실에서 기저귀를 가는 장면은 안타깝고 가엾은 극적 감정을 일으킨다. 정작 찍을 때는 준으로 지내며 당연한 장면이라 여겼는데, 그 역시 1년 뒤 영화를 다시 보니 스스로 봐도 충격적이었단다. 꿈을 꾸는 것조차 불가능한 현실. 그리고 온갖 수치와 모멸의 말들이 날카롭게 파고들어 감정을 무너뜨리는 상황. 이를 겪어야만 했기에 그 역시도 감정이 울컥한 순간들이 더러 있었다. 그는 "형을 찾아가서 붙잡으며 애원하는 신에서, 나가라는 소리를 듣고 감정적으로도 확 무너지는 부분이 있었다"며 절박했던 준이 결국 좌절하고 체념하던 심정을 공감했다. 하지만 영화는 분명 실낱같을지라도 작은 희망과 위로의 틈을 건넨다. 윤찬영은 특히 마지막 센터장(김호정)의 변화가 크게 와 닿았다. "미묘하고 작은 변화일 수 있겠지만 그 하나로 관점이 달라진다. 일과 돈만 강조하던 사람이 '일이 뭐가 중요하겠나. 다 먹고살자고 하는 건데. 좀 쉬면서 하자'는 생각을 한단 느낌이 들었다. 그가 마지막에 불을 끄고 블라인드를 내릴 때 뭔가 감동적이면서도 울컥했다. 그걸 보며 저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며.  영화는 이처럼 정서적으로 파괴된 현대인들의 삶을 기민하고 통찰력 있게 그려내며 이 사회에 잠복해 있는 불안의 전모를 비춘다. 그리고 제 욕망을 차단하며 잃었던 본연의 인간성을 되찾는 사람을 통해 성찰과 위안을 건넨다. 그 깊은 이야기에 윤찬영도 공감하고 안도했다. 특히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한 관객이 건넨 말이 기억에 남는단다. 실제 콜센터에서 일한단 한 여성은 많이 공감하며 울었고, 이런 영화를 만들어줘 감사하다고 얘기했다. "그런 말씀을 들으니 정말 더 현실적으로 이야기가 와 닿았다. 그분이 영화를 보며 느낀 마음이 어땠을지 너무 궁금했다. 공감되면서도 의미가 있고 뜻깊은 일인 것 같아서 제 마음도 크게 울리더라." 열아홉 살의 나이로 로 준의 세계를 체험했던 그는 이제 스무살이 됐다. 열아홉 살과 스무 살의 차이는 고작 한 살이지만, 실제로 많은 차이를 느끼게 된단다. 저도 스무 살이면 어찌됐건 어른의 나이다. 좋은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그 역시도 고민하게 됐다. 그는 "무조건 강요하고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이해해주고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그런 어른이 좋은 어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렸을 때 TV를 보다가 '나도 저렇게 해보고 싶다'고 무심코 생각했고, 고민하던 부모님은 학원을 등록해줬다. 윤찬영은 연기를 하면 할수록, 연기를 접하고 배우면서 점점 더 배우란 직업이 멋지다고 느낀단다. "연기는 현실적인 부분도 있지만 이상에 가까운 작업 같기도 하다. 저도 평소에 낭만에 빠져 지내는 편이다. 혼자 예쁜 카페를 찾아다니고, 그곳에서 일기 쓰고, 대본 보고, 혼자 중얼거리고, 즉흥적으로 느낌대로 움직이는 기분이 좋다"며 꾸준히 제일 좋아하는 영화 '라라랜드' 속 낭만 예찬론에 빠진다. 그토록 점잖더니 눈을 빛내며 신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딱 그 또래 다운 젊음과 생기가 돈다. "저도 사실 축구를 하거나 볼 땐 업되서 소리도 엄청 지른다. 엄마 아빠가 왜 이렇게 시끄럽냐고 조용히 하라고 하실 정도"라며 "연기할 땐 저도 잘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조용해지고 차분해지고 진중하게 하려는 모습이 있는 것 같다"고 쑥스러워한다.  스무 살 된 기념, 게다가 돈을 벌고 있으니 중학교 친구들과 만나 십만 원이 안 나왔으면 밥을 사겠다고 했을 때 정말 딱, 9만 9500원이 나와 돈을 내면서 스스로 멋지다고 생각할 때. 술자리에서 깊은 얘기를 나누고 맛있는 것을 술과 곁들여 먹는 것도 좋아하게 됐다. 코로나19 때문에 캠퍼스 생활을 못하지만 언젠가는 캠퍼스의 낭만도 즐기고, 소개팅 기회가 들어온다면 마다하지 않을 거라고 진지하게 말하는데 퍽 귀여운 구석이 있는 윤찬영이다. 그래도 독백 모음집을 읽으며 하루 종일 연습하는 것이 재밌고, 현장에서 연기하는 게 즐겁고 재밌다고 말하는 그는 배우란 꿈을 꿀 수 있어 행복한 청춘이다.      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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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이의 양지' 김호정, 소신껏 살아간다는 것 [인터뷰]

    30년 차, 기라성 같은 배우지만 연기하며 느끼는 희열감은 늘 새롭다. 인물을 새롭게 창조한다는 것, 그 힘들지만 매력적인 작업을 할 수 있어 감사할 뿐이라는 배우 김호정이다.  신수원 감독의 '마돈나'로 인연을 맺은 김호정은 감독의 신작 '젊은이의 양지'에서 채권 추심 콜센터 센터장 이세연 역으로 다시 만났다. 카드 연체금을 받으러 갔다가 사라진 후 변사체로 발견된 실습생으로부터 매일같이 날아오는 의문의 단서를 통해, 인생 실습이 남긴 충격적인 사건의 전말을 그린 극현실 미스터리다. 사회적인 이야기를 현실적인 인물과 이야기들로 리얼한 감정을 갖고 풀어가는 감독 특유의 스타일을 좋아하며 '팬'이라고 밝힌 그지만, 세연이란 인물을 연기하는 건 마냥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계속 감정선을 유지하며 극을 끌고 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세연은 한 회사를 이끄는 센터장으로 프로페셔널하고 카리스마 넘치지만, 그의 실상 또한 파리 목숨 직장인과 같다. 계약직이란 꼬리표와 본사의 실적 압박을 견뎌야만 하고, 본인 또한 처절하고 냉정한 경쟁 사회의 소모품으로 살아가며 제가 데리고 있는 직원들을 무한 경쟁 세대로 내모는 인물이다.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인간의 감정마저 착취하는 신 냉혈 자본주의 시대의 시스템에 순응할 수밖에 없고, 스스로도 이를 강요하는 인물. 김호정은 그런 세연에 대해 "이 여자가 자유로운 인물이 아니다. 날이 섰고 예민하고 복합적인 모습이 있다"며 "까칠한 면이 잘 맞더라"고 너스레다. 세연을 연기하며 마치 음악으로 표현하면 "첼로 연주곡 같은 하나의 선율처럼, 크게 어긋나지 않고 미묘하고 섬세하게" 감정을 잡아야 했다고.  극 중 세연은 취준생 딸을 염려하면서도 "목숨 걸고 노력하면 다 된다"며 몰아세우고, 벼랑 끝에 내몰린 실습생을 다그치며 "월급은 네 알량한 자존감 팔아서 받는 돈"이란 비수를 꽂는다. 김호정 또한 그런 말들을 내뱉으며 괴로웠다. "제가 던진 말이 누군가에게 칼침처럼 꽂힌다. 감정의 과부하 때문에 무심코 한 말이 상대방에게 너무 치명적인 상처가 된다는 게 무섭고 정말 가슴이 아팠다"고. 이어 "이 작품을 하며 요즘 젊은이들이 얼마나 힘들지 그 분위기를 느꼈다. 힘들어도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자기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게 만든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토했다.  하지만 세연 역시도 본사 상사로부터 "살려고 발버둥을 친다"는 비아냥을 받고 수치스러움을 느낀다. 김호정은 이런 상황이나 대사들이 너무도 리얼하게 느껴졌다. "감독님이 어쩜 저리 리얼한 대사를 쓰시나 싶더라"고. 세연 또한 이 사회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다. 김호정은 "지금의 기성세대는 그저 열심히 살아왔는데 막막한 거다. 특별히 다른 사람이 아니라 위태로운 삶을 사는 리얼한 우리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고.    극 중 경쟁 사회로 몰린 아이들이 도움을 요청할 어른의 존재는 부재하다.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도 나약하다고 질책당하고 외면받는다. 김호정도 이를 보며 스스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어른인지를 돌이켜봤다. 연기하며 그냥 혼자 살아왔던 것만 같단다. 좋은 어른의 정의도 생각했다. 그는 "믿고 싶은 사람들, 그 사람의 인생이나 어떤 부분을 담고 싶다고 생각하는 롤모델이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일 때 실망하지 않나. 저한테도 실망할 후배들이 있을 거다. 잘 모르겠다. 어른이란 게 참 무섭다"고 속내를 밝혔다. 하지만 강요하지 않는 사람이고 싶단 생각은 강하다. "남한테 나의 어떤 것들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제 일에 대해 소신껏 잘 살아가는 게 다른 사람들한테 좋은 모습으로 보여진다면 그게 좋은 어른이 아닐까." 그 또한 한 길을 열정적으로 순수하게 걸으며 끊임없이 자신의 것들을 구현해나가는 선배들이 닮고 싶은 롤모델이라고.  김호정이 말하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 이 영화의 힘"이었다. "우리 모두가 다 힘들지 않나.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고, 서로에 대해 조금씩 마음의 손길을 건넨다면 자그마한 힘이지만 결국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지 않을까." 세연이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용기 있게 제 삶에 브레이크를 거는 모습은 그랬기에 그가 특히 좋아하는 신이다. "옳다고 생각한 게 옳은 게 아니었다. 인간 본연의 모습, 잃어버린 걸 다시 되찾은 것"이 좋더란다. 어른이 자신이 했던 행동들을 뒤집으며 많은 것들을 포기하는 게 결코 쉽지 않기에 그런 결정을 내린 세연을 응원하는 그였다.  어느덧 배우 인생 30년이다. 이 타이틀의 무게에 그는 그냥 웃음이 나오더란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30년을 매 순간 열심히 살지 않았고 놓친 부분, 쉬어간 부분도 있다. 어렸을 땐 오히려 제 연기에 대한 확신이 있었는데 갈수록 확신이 없다. 요즘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하지만 절망적인 순간, 끝이라고 생각했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다시 이를 극복하고 배우로서 가려고 노력했던 자신을 돌이켜보면 이제 와서 참 다행이란 생각을 한다. 그는 "외로움은 참 힘든 것 같다. 외로움을 갖기 시작하면 나 스스로에게 건강하지 못한, 많은 상처를 줄 수 있다. 우리가 고독은 가지고 있되 외로움이란 것은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단단해져야 한다"고 했다. 인생은 늘 그렇듯 한 치 앞도 볼 수 없기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한다. 다만 어떤 사람이 되겠냐 묻는다면, 생동감 있고 많은 사람에게 신선한 에너지를 주고 싶단 김호정이다.      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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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이의 양지' 신수원 감독이 건네고픈 위로 [인터뷰]

    좋은 어른은 못 돼도, 생각하는 어른은 되고 싶었다. 그러면 이 세상이 좀 더 좋아지지 않을까 그런 마음 때문이었다. 신수원 감독이 느낀 어른으로서의 부채감과 책임감이 영화 '젊은이의 양지'를 만들게 했다. 여기엔 작은 위로라도 건네고픈 감독의 사려 깊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  카드 연체금을 받으러 갔다가 사라진 후 변사체로 발견된 실습생으로부터 매일 같이 날아오는 의문의 단서를 받게 되는 콜센터 센터장 세연의 이야기를 그린 극현실 미스터리 '젊은이의 양지'.  시작은 '구의역 김 군 사망 사고'였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2년 뒤였다. 19세란 어린 나이에 직업전선에 내몰린 아이가 스크린도어 수리 중 전동차에 치여 숨진 끔찍한 사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러다 뉴스에서 그가 지닌 가방 안의 소지품들이 나왔다. 고작 컵라면, 나무젓가락, 그리고 공구들. "감정이 너무 짠하게 왔다. 이 이야기를 너무 하고 싶단 생각이었다." 이후 방송에서 한 특집 기획을 봤다. 스무 살을 앞둔 19세 실습생들의 이야기였다. 무한한 경쟁과 냉혈한 자본주의 시스템에 내몰린 아이들의 비극적인 현실을 접하고 신수원 감독은 결국 '젊은이의 양지'를 써 내려갔다. 영화 촬영 바로 직전, 산재로 숨진 청년 노동자 김용균 씨의 사건을 접했다. 첫 출근을 앞두고 마련한 정장을 입어보며 수줍어하던 청년의 모습이 그토록 가슴에 사무칠 수가 없었다. 영화를 완성해야 될 이유는 더 확고해졌다.  "나이를 먹다 보니 저절로 어른이 됐다. 아니 어른이라고 말한다. 살다 보니 나이는 먹었지만, 좋은 어른은 못됐단 생각이 들었다.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도 좋은 어른은 없다. 다만, 생각하며 사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먹고살기 힘들다며 모든 것에 문을 닫고 귀를 닫고 입을 막는 어른이고 싶지 않았다"는 감독은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아진다면 조금은 이 어두운 세계가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세연을 중심으로 가는 이야기지만, 19세 실습생 준과 20대 취준생 미래 세 인물을 모두 담으며 감독 또한 모든 인물의 감정에 이입했다. 특히 감정을 섞어 오래된 젊은 날의 기억을 끄집어내려고 했다. "고3 때, 스무 살이 되기 두려웠던 기억들. 대학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모든 게 허무하고 가기 싫은 기분. 세상 밖에 나가서도 새로운 울타리가 있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에 대한 귀찮음과 도망치고 싶은 기억들."  자신 또한 지금에 이르러서는 어쩔 수 없는 기성세대의 모습을 갖고 있을게 분명했기에, 이번 작품을 준비하며 특히 더 젊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이 직면해 있는 어려운 장애가, 내가 겪었던 것들과 또 다르더라. 더 힘든 상황에 놓여있고 출구가 막혀 있었다"고. 하지만 많은 기성세대들은 자신들이 겪은 경험의 가치만을 논하고, 흔히들 '라떼는 말야'라며 훈수를 두곤 한다. 감독 역시 "세대 차이는 어쩔 수 없이 있다"고 했다. 분명 그들도 불안한 시작을 겪었지만, 오래돼 까먹기도 한다고. 하지만 중요한 건 태도의 문제라고 했다. "저도 인간이다 보니 왜 저러나 이해를 못할 때도 있다. 그럴 땐 '나도 어쩔 수 없는 꼰대구나. 내 나이가 그렇게 만들었구나' 싶다. 하지만 결국 들여다보면 이해가 된다. 결국 공감하려는 태도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는 것이다.    주인공을 동세대 사람인 중년 여성으로 설정한 것도, 더 진정성이 느껴질 것 같아서였다. 세연은 50세 여성이다. 그 역시도 한쪽 귀는 열려 있고 한쪽 귀는 막혀 있는 양가적인 인물이다. 겉으론 유리천장을 뚫고 한 조직을 이끄는 유능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지만 현실은 그 또한 "살려고 발버둥 치는" 한낱 소모품이기도 하다. 신수원 감독은 세연 역에 반드시 김호정이어야 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연기는 의심할 바도 없고, 한 직장을 이끄는 인물이기에 카리스마 있는 여성이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여러 가지 얼굴이 있다. 나이스하고 친절한 모습, 부드러움과 강함,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감정 등 여러 가지가 섞여있는 인물이길 바랐고 제가 호정 씨 얼굴을 참 좋아한다"고.  암울하고 생존만으로도 버거운 세상. 세연도 마냥 가해자가 아닌, 악착같이 그 삶을 버티려 한 피해자이기도 하다. 충격적인 사건의 전말을 미스터리하게 풀어나가며, 이 사회에 잠복한 불안한 전모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감독이다. 너무 리얼해서 도리어 잔혹하고 씁쓸한 사회의 단면이 적나라하게 담겼다. 꿈을 포기하면 만날 수 있는 '젊은이의 양지'라는 카피 문구도 너무 가엾지 않나. 하지만 감독은 "희망을 준다는 건 오만인 것 같다. 영화에서 억지스러운 희망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어색하고 정직하지 못하단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다만,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차단하는 인물의 엔딩은 중요했다. 이를 통해 작은 사과와 위로를 건네고 싶은 마음이었을 테다.  "애쓰지 마요." 극 중 대사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신수원 감독이 가장 좋아했던 말이다. 콜센터에서 홀로 남아 야근 중인 아이가 채무자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뜬금없이 저 말을 한 뒤 노래를 튼다. 루시드폴의 '난 사람이었네'. "저도 대본을 쓰며 뭉클했다. 저 힘든 아이가 그런 전화를 받았을 때 감정이 어떨까 싶었다"는 감독이다. 노래 또한 마찬가지다. 옛날부터 좋아했다. 10년 전에 처음 듣고 정말 멍해지더라. 그땐 입봉도 못하던 감독 지망생 시절이었다. 나중에 언젠가 이 곡을 영화에 써야겠단 생각을 했는데 드디어 이뤘다. 절더러 "성공한 덕후"라며 웃는다.  실제 부산국제영화제의 초청을 받아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질 때, 한 콜센터 직원이 와서 보고는 '내 얘기 같아 많이 울었다'며 이런 영화를 만들어줘 감사하다고 했던 말이 감독은 늘 생각이 난단다. "단 한 사람이라도 그렇게 말해주니 고생하며 영화를 찍은 것에 대한 대답을 받는 느낌"이었다고. 영화를 찍는 보람은 바로 여기 있다. "순간순간, 관객들로부터 이렇게 위안을 받는다. 대단한 극찬이 아니어도 '당신 영화를 보며 공감했어요' 하는 순간, 그간의 노력들을 보상받는 느낌이고 이상하게 힐링이 된다"고.  그렇기에 항상 영화를 만들 때 시나리오를 쓰던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한다.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썼던 신들을, 여러 상황적 변수나 여건 등을 이유로 포기하거나 타협하지 않는 것이 감독으로서의 고집이다. 영화를 만드는 작업은 힘들고 어렵다. 결과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뭔가를 만들어나가고 해 나가는 행위 자체가 주는 기쁨이 있다. 이는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고. 앞으로도 거짓말 없이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고 싶단 감독의 바람이다.  사진=리틀빅픽처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