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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그데이즈' 김윤진, 이야기의 발견 [인터뷰]

    우연히 기내에서 보게 된 영화에 매료돼 일정 중에도 내내 작품에 대한 잔상이 강하게 남았던 기억. 김윤진은 이 기억을 기어코 실행에 옮겼다. 제가 느낀 좋은 작품에 대한 감상을 더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고픈 마음에서였다. 영화 '도그데이즈'의 시작이었다.  "기내에서 영화 보며 우신 적 있느냐. 세상 가장 창피한 일"이라며 말문을 연 김윤진은 "너무 유쾌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이런 수많은 감정을 느끼며 주체가 안 돼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펑펑 울었다. 이후 열흘의 여행 동안 머릿속에서 영화가 떠나질 않더라"고 당시의 감상을 생생히 전했다. 원작 원제는 '도그데이즈', 국내 개봉 명칭은 '해피 디 데이'.  그 길로 김윤진은 제작자인 남편과 함께 원작에 대한 판권을 구매하고 "천오백만 반려인 시대"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직접 원작의 자막 작업까지 할 정도로 열정을 보였고, 윤제균 감독의 JK필름과 CJ의 오케이 사인을 받게 됐다고 뿌듯하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는 김윤진이다.  그러나 제작 결정을 듣자마자 세계적인 팬데믹 시대로 접어들었다. 영화 완성본이 나오기까지 무려 4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닌데 잘 기억이 안 난다. 모든게 올스톱이 됐었고,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계속 작업을 해나갔다"고. 기약 없는 시기에도 영화에 대한 애정과 열의를 놓지 못했던 이유는 분명했다. "내가 느낀 감동을 다른 사람들도 느끼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좋은 제작자의 자세다.  그의 말로는 "뜬금없는 유머가 매력"인 원작의 감성을 한국식으로 적절하게 풀어내는 작업이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많은 인물이 유기적으로 얽히는 만큼 캐스팅 역시 중요했다. "제가 제일 먼저 캐스팅된 배우"라고 웃은 그는 "저는 사실 출연까지 생각이 없었다. 제가 출연하고 싶어 만들자고 한 영화가 아니었다. 진짜 좋은 이야기라서 친구한테 문자 날리듯 '이거 봐바'하는 마음으로 하고 싶었다. 그랬더니 윤제균 감독님이 '하는 거 아니었어?'라고 물으시더라"고 했다.  이후 캐스팅 과정에서 윤여정, 유해진, 김서형, 정성화 등 기라성같은 라인업이 완성됐다. 김윤진은 반가운 한편 "이렇게 몸짓이 커졌어?"라며 제작자로서의 염려와 걱정도 들더란다. 덧붙여 "툭하면 예산 얘기가 튀어나왔다. 모두가 해피하게 '잘했어'하며 헤어질 수 있는 해피엔딩이 되는 것이 작은 소망"이라고 간절한 바람이다. 이처럼 배우로서만 참여하는 작품이 아니다 보니 온전히 연기에 집중이 안 되더라고.    하지만 많은 등장인물의 갖가지 에피소드가 펼쳐짐에도 각 이야기 속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다. 특히 소담하고 작은 일상 속의 감정들을 표현하는 배우들의 모습은 '도그데이즈'의 또다른 볼거리다. 김윤진이 맡은 정아는 자상하고 유머러스한 남편 선용(정성화)과 행복한 결혼 생활 중이지만, 온갖 노력에도 임신이 되지 않아 마음 고생하는 인물이다. 그가 친구들을 만나 대수롭지 않은 가벼운 말들에 큰 상처를 받고 의연한 듯하면서도 결국 남편을 만나 덤덤하게 건네는 속마음과 자연스러운 대화의 호흡은 특히 좋다. 이에 김윤진은 "감독님이 두 사람의 모습을 실제 저와 남편을 생각하며 쓰셨다고 하더라. 우리 식의 유머가 있고, 재밌게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닮았다"고 했다.  입양을 결정하고, 이 또한 좌절돼 울고 있는 그에게 가만히 손을 내밀어준 의젓한 보육원 아이 지유를 마음에 품게 된 순간의 서사 역시 뭉클하고 따스한 감동을 준다. 김윤진은 "영화의 톤앤매너가 있어 너무 깊게 들어가도 안 되지만, 그 무게감은 희석하지 않아서 좋았다. 제가 좋아하는 류의 영화가 이런 식의 휴먼드라마다. 의식하지 않고 있는데 소리 없이 스며드는 이야기가 좋더라"고 했다.  남편 역의 정성화와 호흡을 맞춰 가는 것도 즐거운 작업이었다. "다양한 캐릭터가 많이 나오는 영화라서 우리 이야기에만 할애할 수 없고 시간적인 한계가 있는데, 우리끼리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가는게 재밌었다. 특히 성화 씨는 아이디어 뱅크다. 즉흥적으로 연기하고 스스로 자신의 장면을 보며 크게 웃는다"고 웃은 김윤진은 "다시 한번 길게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영화가 있다면 함께 하고 싶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늘 반려견과 함께 해왔다는 김윤진은 "할아버지 집에 키우던 강아지를 맡기고 이민을 할때 손수건에 강아지털을 싸서 간직해서 왔다. 그걸 아직도 갖고 있다"며 "미국 집은 흙을 털고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머드룸이 있는데 거기 좁은 문이 굉장히 비밀스러웠다. 문 열면 벽 뒤에 한국과 연결되는 문이 있어서 내 강아지를 보러 다시 갈 거야 그런 생각도 하고 그랬다"며 어린 시절의 작고 소중한 기억을 털어놨다.  이어 "예전엔 반려견을 집 지키는 동물이라 생각했던 사회인데, 사회가 성숙해지며 여러 인식도 바뀌고 반려 동물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저는 강아지 말을 번역하는 제품이 나온다면 전재산을 다 걸고 투자할 것"이라고 남다른 포부(?)를 전하기도 했다.  배우로써 어느덧 28년의 연기 인생을 지나온 김윤진은 "어제는 역사고 내일은 미스터리 혹은 비밀이며 오늘은 선물이란 말이 있다. 지금 이 순간은 선물 같은 시간"이라고 말한다. 배우의 영역을 확장해 제작자로서의 역량을 새롭게 발휘하며 소중한 오늘을 알차게 살아가는 그였다.  사진=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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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그데이즈' 윤여정, '이슬의 명예' [인터뷰]

    꼿꼿하고 멋진 여인, 배우 윤여정에 대한 감상이다. 조감독 출신과 19년의 인연으로, '사람' 하나만 보고 영화에 출연했다고 확고하게 단언하는 그에게서 입바른 말과 미사여구로 감히 꾸밀 수 없는 진심이 느껴진다.  '그것만이 내 세상'으로 인연을 맺은 김덕민 감독의 첫 연출작 '도그데이즈'의 출연 제안을 받고 기꺼이 응해준 윤여정은 "사람이 참 간사하다. 전 쭉 활동하고 있었는데 '미나리'로 상을 탔다고 주인공으로 섭외가 들어오더라. 그걸 보며 참 씁쓸했다. 이번 영화는 아무것도 안 따지고 감독님만 보고 했다. 우린 오래전에 만났는데 둘 다 취급 못 받을 때였다. 19년 동안 조감독을 하고 있다는데, 감독이 입봉 하면 꼭 하리라 전우애를 느꼈다"고 거침없이 얘기했다.  '도그데이즈'는 반려견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이 예기치 못한 인연을 맺게 되며 시작되는 새로운 관계와 변화를 따스하고 유쾌하게 그린 영화다. 윤여정은 극 중 세계적으로 성공한 건축가 민서 역을 맡았다. 감독은 처음엔 캐릭터 이름까지 윤여정으로 할 만큼 예의와 존경을 비췄으나 윤여정은 오히려 너무 전형적인 자신처럼 보여질 것이 "싫다"고 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의상과 신발을 모두 제 것으로 준비할 만큼 감독의 의도를 파악한 윤여정이다. 감독이 윤여정을 통해 담아내고 싶은 캐릭터의 모습을 헤아려 캐치한 것이다.  슬림한 핏의 기품있는 드레스 차림으로 우아하게 등장해, 건축인으로서 강단에 서서 자연스러운 입담과 성공한 자의 여유를 보여주는 윤여정의 모습은 첫 신부터 세계적인 건축가 민서의 모습을 고스란히 느끼게 했다. 윤여정은 "캐릭터도 나하게 비슷하게 써놨더라. 그래서 나같이 하면 될 것 같아 전부 내 옷, 내 신발을 착용한 것"이라며 "다른 작품 할 땐 이렇게까지 하지 않는다. 이번에 의상값도 안 들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덧붙여 "감독이 뭘 원하는지를 알고, 내가 해야 될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 때 가장 편안하다"고 했다.  민서는 덕망 높고 성공한 여성의 모습 이면에 사람들과 함께 식사 하는 것도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라 말하고, 나 홀로 넓고 고요한 집에서 반려견 완다만을 의지하며 지낸다. 인물의 고독함과 쓸쓸함을 그저 덤덤히 담아내는 그의 모습에서 깊은 연륜이 느껴진다. 하지만 윤여정은 "늙어가는 건 외로운 거다. 외로운 연습을 해야 한다. 전 늘 외로웠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런 민서가 반려견 완다를 잃고 이 과정에서 작은 인연을 맺게 된 배달부 진우(탕준상(와 함께 엮이는 과정은 유쾌하고 따스하며 적지 않은 감동을 준다. 특히 의외의 관계에서 나오는 "라면먹고 갈래요?"란 대사는 코믹하면서도 말랑하고 가슴 따뜻한 대사다. 넓고 좋은 집에서 살아도 홀로 쓸쓸히 의식적으로 끼니를 때우는 민서가 마음 쓰여 건네는 진우의 정이 느껴진다. 윤여정은 "그 아이가 그때 애드립을 넣고 싶어 하더라. 난 구식 배우라 느닷없이 애드립을 하면 곤란하고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디서 주워 들어와서 하고 싶다고 준비해 온 걸 해도 되느냐 하는데 그런 걸 보면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다"며 웃음이다.  그렇게 진우의 좁고 열악한 고시원 방에 발을 들인 민서가 짓는 표정도 퍽 인상적이다. 그곳에서도 작은 꿈을 좇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 연민과 대견함을 느낀 어른의 표정이다. 그렇기에 이후 아이를 걱정하고 염려하며 애정 어린 잔소리를 하고, 이로 인해 발끈하는 진우의 가시돋힌 말에 상처받는 모습까지 이 잔잔한 듯 일렁이는 감정의 서사를 윤여정은 그저 덤덤하게 무심하게 그려낸다.  윤여정 또한 "워낙 무심하고 오래 살아서 그런지 그렇게 감동받을 것도 없고 슬플 것도 없이 그러려니 하고 살아가면서도, 상처받을 때가 있다. 늙으니까 노여움도 많아지고 아직도 이 나이에 배신을 겪고 그런 상황일 때 정말 끝이 안 나는구나 싶을 때가 있다"며 "제가 무슨 도인도 아니고 저도 상처를 받는다"고 했다.    극 중 민서가 하는 무심한 듯 심금을 울리는 대사들은 특히 인상깊다. "넌 안 늙어봤지만 난 젊어봤잔니"란 대사는 갖은 풍파와 인생을 겪어온 어른이 진심으로 할 수 있는 마음 씀씀이다. 윤여정은 "제 역할에 충실해서 했다. 딱히 주옥같다는 생각은 안 해봤다"면서 "청춘이 안 됐어서 나름 충고를 하는데 작가가 잘 쓴 말이다. 전 젊은이들에 이야기를 안 한다. 나하고 다른 세상에 사는 이들에 내가 감 놔라 배 놔라 한다고 해서 들을 리가 없고 오지랖이 된다. 그런 충고의 말을 싫어한다. 저였다면 그런 말을 안 했을 것"이라고 했다.  간혹 많은 이들이 그를 인생의 롤모델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도 "우습다.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인생을 살면 되는거다. 당신이 살아야 하는 인생과 내가 살아야 할 인생이 다른데 갑자기 무슨 롤모델이냐"며 쿨한 답변이다.  이처럼 가식 없고 거침없는 그다. 그렇기에 어떤 미사여구나 입바른 소리가 없이 그가 보여준 말과 행동이 더욱 깊은 의미를 지니는 것일 테다. 그는 김덕민 감독에 대해 "현장에서 오랜 조감독 생활을 했기에 워낙 준비를 많이 해오고, 스태프나 배우나 곤란한 상황을 안 만들며 효율적으로 일하더라. 우리 쪽을 생각하며 일해주는 사람이었다. 어떤 때는 사람을 잘못 보기도 하는데 이번엔 정말 사람 잘 봤구나 싶었다"고 했다. 이 다정할 것 없는 직설적인 말이 그의 애정 표현 방식인 셈이다.  윤여정은 "현장에 일하러 왔으면 민폐를 끼치지 않고 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배우로서의 철칙을 전하기도 했다. "나는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반세기 전의 세계를 살았다. 그 사람들은 꼰대가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만 스스로 조심하고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 벌려고 알바로 시작한 배우였고, 우리 때는 시집 잘 가는게 중요했다. 결혼하면 은퇴가 당연시되는 시절이었다. 이혼하고 다시 돌아왔을 때, 아무도 다시 써주지 않았다. 김수현 작가가 저와 한 약속이 있었다. '넌 재능이 있다. 나의 도움 없이 자립할 수 있다. 내가 지금 드라마에 널 쓰는 순간 너는 혼자 자립할 수 없는 거다'라고 했다. 그렇게 2년 동안 아무도 써주질 않았다. 김수현 작가가 '촌스러운 놈들'이라 하며 그 약속을 깨고 저를 써줬다. 정말 고마웠다. 서른여덟에 다시 시작했다. 그때 느꼈다. 배우로 돌아오길 잘했구나." 이 무심한 속 얘기 속에 지난한 세월과 말 못 할 감정이 다 담겨있는 듯하다.   "전 다정다감한 사람은 아니다. 로망도 없고, 후회도, 낙담도, 변명도, 아양도 없이 한길을 살다보니 외진 길이 됐을 뿐." 마종기 시인의 '이슬의 명예'라는 시를 인용하며 '이 사람도 나 같은 삶을 살았구나' 싶었다는 윤여정. 먹고살기 위해 배우를 했던 사람이 어느새 노배우가 되어 돌아본 인생에 대한 감상이다. "바라볼 일보다 반추하는 일 밖에 없다. 그래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오래 활동하고 싶다"는 그 한마디 속에 배우로서의 자부심과 애정이 깊이 묻어나는 건 당연했다.  사진=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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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량: 죽음의 바다' 김윤석, 성웅을 체화하다 [인터뷰]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 최종장에서 마지막 이순신이 된 김윤석. "이건 끝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마치 이순신 장군의 결기와 기개가 엿보인다. 그만큼 인물과 혼연일체 돼 깊은 정서적 공감과 사명을 다한 그였다. '노량: 죽음의 바다'를 참여한 소감에 대해 "빈말로 하는게 아니다. 2차 세계대전에 관한 영화만 봐도 수십 수백 편이다. 이순신 장군도 7년의 전쟁을 치렀다. 우리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이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더 뛰어난 작품이 나오길 기대한다"며 깊은 진심을 전한 김윤석. 그는 그저 "'노량'의 의미를 관객에게 잘 전달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 먹먹한 마음"이라고 했다. '노량' 속 이순신의 모습이 관객에 설득력을 갖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이라고.  처음 이순신 역을 제안 받았을 땐 이전 시리즈와 인물에 대한 부담보다는 "내가 이 배역을 할 나이가 됐구나"하는 감회에 젖었단 솔직한 감상이다. "30년이 넘게 연기를 하는데 연극에선 20대 때 '로미오와 줄리엣'을, 30대 때는 '햄릿'을, 40대에는 '맥베스' 그 이후 방점을 찍으면 리어왕을 한단 얘기가 있다. 제가 50대에 이순신 장군을 연기하게 됐구나." 계속 어려운 역할이 들어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이 들어가며 주어지는 역할이 다르고 이에 맞는 혜안을 기르고 있나,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는 건가 싶었다고.  이후 든 감상은 김한민 감독에 대한 감탄이었다. "이순신 장군에 관한 이야기를 세편으로 나눠 찍겠다 하고 그걸 실제로 완성시켰다는 건 진짜 대단한거다. 기발하지만 얄팍한 아이디어는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이 사람의 끈기와 집념, 성실성, 현장에서 흔들림없이 가는 기운이 대단했다"고. 김윤석도 그 못지않게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김한민 감독과 만나 시나리오를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겨가며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그 의미에 어떤 대사와 행동을 하는지를 집요하고 철저하게 파악했다. "'명량'에선 열두 척의 배로 기적적인 승리가 필요했고, 전쟁 양상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한산'에선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했다. '노량'에선 승리보다 이 전쟁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하루종일 이야기를 나눴다"고. 비단 자신뿐 아니라 감독은 모든 배우, 스태프들과 모든 장면에서 어마어마한 회의를 했다. 심지어 조명의 빛이 조금이라도 틀어져선 안 된단 완벽한 마음으로 임했다. 이렇게 10여 년을 넘게 이 시리즈를 임했을 감독을 보곤 "믿고 맡기겠다"는 생각뿐이었단 그다.  성웅 이순신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위인이다. 하지만 간접적으로나마 캐릭터로서 인물을 체화하니 김윤석이 느낀 감회는 더 깊고 애틋했다. "이순신 장군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명량'과 '노량' 사이라고 한다. 한양에 끌려가서 고문을 당한다. 왜군들이 점량한 육지로는 갈 수 없어 뱃길로 한양에 아들을 보러 가던 노모가 배에서 돌아가신다. 하늘이 무너지는데 그렇게 고문을 시키고 계급장을 뗀 백의종군이 된 상황에서 다시 '명량'의 전투에 나가라 한다. 이 사람 몸은 이미 반 죽었다. 손은 계속 떨고 각혈한다. 그럼에도 '명량'에서 기적에 가까운 승리를 거뒀다. 그 보복으로 왜군들이 아들 면이를 죽인다. 그 시절이 이순신 장군을 가장 피폐하고 반 시체로 만든 1년이라고 하더라. 그것을 알고 난 뒤에 이 사람은 더 이상 영웅과 성웅이 아니라 700년 전에 이 땅에 있었던, 7년간의 전쟁에서 군인의 신분을 다한 아주 불행한 남자란 생각이 들더라."  극 중 셋째 아들 면의 환영을 좇으며 정신적인 고통을 드러내는 이순신의 모습은 통탄스럽기 짝이 없다. 실제 김윤석 또한 그 장면을 연기하며 온 몸이 덜덜 떨리더란다. "부모가 살면서 받는 가장 무서운 천벌이 자식이 죽는 걸 보는 거라고 하지 않나. 저도 이 나이에 이 역을 맡아 몰입하며 연기하다 보니 정말 자식이 죽는 걸 내 눈으로 본 것처럼 몸이 떨리고 대사가 잘 안 나오는 경험을 했다"는 그였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심정이었음에도 최후의 전장을 결단하고 흔들림 없는 기개로 굳은 의지를 보이는 이순신 장군이다. 참혹한 전장 속에 고독하게 서 있던 그가 동이 틀 무렵 기묘하게 환상을 보는 신은 특히 인상깊다. 떠나보낸 동료들과 아들이 모두 돌아와 그의 곁을 지키는 신은 예견된 장군의 최후를 알기에 더욱 가슴 아프지만 그의 말 못 할 고단함을 위로하는 뭉클한 장면이기도 하다. 감독은 이 신을 두고 '장군님이 예지몽을 많이 꾸시는데 그 해를 보면서 본인에게 어떤 운명이 다가왔다고 느껴지시지 않을까요? 어려운 말인데, 어쩌면 이 해는 내가 인생에서 보는 마지막 해구나. 그런 운명을 느끼시지 않았을까요'라고 얘기했단다. "7년간의 전쟁에서 본인에게 가장 힘이 되어준 장군들이 환영이 되어 나타난다. 부산포 해전에서 대조총에 맞아 즉사했던 녹도만호 정운 장군, 물길을 가장 잘 아는 아름다울 향기로울 향이라 해서 향도란 별명이 있는 어영담 장군, 이순신이 자신보다 어리지만 훨씬 뛰어나다 했던 전라우수사 이억기. 이 친구는 칠천량 해전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스스로 바다에 뛰어들어 죽었다. 죽기 전 '우리는 질 겁니다. 집니다'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얼마나 분하고 억울했으면. 이 귀한 사람들을 다 앗아간 전쟁이구나. 그 장면에서 저도 무언가의 감정이 격하게 밀려들었다." 이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상세히 읊으며 충혈된 눈으로 안타까움을 표하는 김윤석이다.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도 말했듯 "파렴치한 임금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이토록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도 반드시 치러야 했던 이유, "올바른 끝을 내야만 진정한 새로운 시작이 된다. 멈추고 없던 일로 하자고 하며 잊혀버리면 그 억울함을 어떻게 달랠까"라는 그의 말이 깊이 사무친다.  이토록 인물과 혼연일체 된 그 모습이 낯설고 놀랍다. 이미 김윤석은 연기야 두말할 것 없는 배우지만, 그 어느때보다 더 깊고 강렬한 감상을 전한다. 실존 인물의 진심까지 헤아리고 공감하며 최대한으로 담아내고자 했던 그의 진정성 때문 아닐까.  모두가 기억하는 이순신 장군의 최후 유언을 찍는 시도 그는 "진실되게 표현하자"는 생각 뿐이었다. "슬프고 외로워도 그렇기에 더 절제하며 연기했다. 어떤 배우가 VIP 시사회를 보고 나서 '가슴에 칼을 담은 사람의 모습이 저런 모습이구나'라고 했다더라. 함께 연기한 정재영 씨도 '형님이 기적적인 승리도 거두어보고 압도적 승리도 거두어봤지만 더 피폐하고 고독해진 이순신의 모습으로 보였다'고 하더라." 그는 그저 김한민 감독이 그리고자 했던 '노량'에서의 이순신 모습을 "제가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잘했던 못했던 관계없이 최선을 다했다는 얘기를 드리고 싶다"고 담담하고 겸허한 자세다. "누가 뭐래도 소신껏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고, 7년 동안 난중일기를 쓸 만큼의 성실성, 본인이 맡은 책임감을 다하는 모습. 과연 또 누가 그렇게 할 수 있겠나." 그가 인물을 통해 체화하며 실로 마음에 새긴 이상이었다.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