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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야' 언제나 히어로, 마동석 [인터뷰]

    마동석은 상냥하고, 위트 있고, 영리하다. 관객이 마동석에 기대하고 바라는 따스하고 유쾌한 히어로의 모습이 본연의 성정에서 묻어나는 지점은 그에게 더욱 호감을 갖게 한다.  세기말, 사냥꾼이라 불리우는 남자가 미치광이 의사와 합세한 군인 집단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는 넷플릭스 액션 영화 '황야'(감독 허명행). 개봉 이후 글로벌 시청률 1위를 기록할 만큼 배우 마동석 파워를 여실히 느끼게 한다. "문자를 천 개 정도는 받은 것 같다"는 마동석은 "특히 할리우드에서 많이 왔다. 같이 일하는 분들, 배우들, 감독, 스튜디오 등에서 제일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 '게임을 액션처럼 찍어서 너무 좋다'고 하더라. 그걸 포인트로 두고 찍은 영화"라고 후기를 전했다.  하지만 이처럼 뜨거운 반응보다 더 마동석을 뿌듯하게 했던 건 허명행 감독이 화려한 데뷔 신고식을 치른 것에 있다. "워낙 좋아하는 동생이고, 오랫동안 작품도 많이 했다. 제가 힘든 액션을 하고, 다쳐서 고생할 때도 옆에 있어줬고 오랜 시간 지켜보며 이전부터 감독 입봉을 바랐고 시나리오도 여러개 준비해 뒀는데 마침 '황야'가 타이밍이 맞았다. 데뷔작으로 세계 1위를 해서 정말 축하한다"고 기뻐하는 마동석이다.  아포칼립스 장르물, 게다가 먼저 개봉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세계관을 공유하며 동시에 기획된 작품이다보니 득과 실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액션적 서사는 보는 순간의 강렬함은 세지만, 드라마 서사의 여운에 비해선 쉽게 휘발된다. 그래서 더 저평가되는 지점도 분명 있다. 하지만 마동석은 이 또한 "액션 하는 사람들의 숙명"이라고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는 "강박 갖지 말고 재밌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그 안에서도 많은 변화를 주려고 한다. 자꾸 고민하니까 머리가 아픈데, 그 고통도 즐기면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같은 세계관 안에 여러 가지 카테고리가 있다. 우리는 처음부터 드라마보다 액션을 선택했다. 이 영화가 뭘 가져가야 하는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각 캐릭터들마다 과거사와 드라마가 있었지만, 철저하게 기획 의도대로 '오락 액션물처럼 게임처럼 만들자'고 결정하고 조금 불친절하더라도 주저 없이 걷어냈다"는 확고함이다.  다만 "현실적인 배경이 아닌데 여기서 제가 안 했던 캐릭터를 새로이 하는 게 맞을지 마동석스러운 모습으로 나오는 게 좋을지"를 놓고 고민했고 고민 끝에 가장 '마동석스러운' 남산 캐릭터가 나온 것이었다. 이에 아포칼립스라는 자유롭고 독창적인 세계관을 무기 삼아 이제껏 본 적 없는 마동석의 액션 퍼레이드를 경험하는 것은 신선함을 넘어 짜릿한 충격을 준다. 마동석이 샷건을 날리고, 마테체를 휘두르며 '파충류 인간'으로 변모된 빌런들의 목을 댕강 잘라 버릴 때의 낯설고 기묘한 쾌감이란.  이에 웃어 보인 마동석은 "사실 사람이 팔 다리가 두 개라 최대한 다르게 액션을 해도 잘 모르면 다 비슷하게 보인다. 예를 들어 '범죄도시' 2편과 3편의 액션이 많이 다르다. 복싱 기술을 잘 모르면 '그냥 두 사람이 싸운다'로 보이는 거다. 이처럼 현실적인 장르에서는 액션의 한계가 있다. 액션을 잘 몰라도 확 다르게 보이려면 장르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허명행 감독은 이미 세계적인 팬덤이 있는 영화 '부산행' '범죄도시' 등에서 마동석이 맨 주먹으로 좀비와 싸우고, 범죄자들을 제압하는 액션을 선보였지만 더 과격하고 수위가 센 액션을 소화하는 그를 전세계에 보여주고 싶어 했다고. 마동석 역시 이에 기꺼이 찬성했다는 비화다.  다만 마동석이 워낙 압도적인 피지컬과 한 방 액션의 히어로다보니, 파충류 인간들과 싸워도 데미지가 전혀 없어 긴장감이 안 생긴단 평가도 간혹 존재한다. 하지만 이 또한 마동석 액션 특유의 매력 아니겠는가. 그는 "사실 제가 많이 맞는다. 머리를 벽에 부딪혀서 벽도 깨지고 기절도 한다. 크리티컬 데미지가 있는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마동석이 데미지를 입는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더라"는 엄살로 너스레다. 이어 "사실 액션의 방향이 다양하게 있는데 서로 비등비등하게 싸울 수도 있지만, 저는 빌런들이 벌였던 모든 일에 대한 응징을 하는 의미에서 전체를 힘으로 밀어붙였다. 위기감이 안 보이더라도 밀어붙이자는 파괴의 의미"라고 했다.    마동석 특유의 위트가 곳곳에 묻어난 지점도 의도한 바다. "마동석스러운 캐릭터로 결정했기에 중간중간 쉬어가는 유머를 줘야 한다는 게 잡혀 있었다"고.  '장르가 마동석'이라는 고유 수식어가 생길만큼, 한 배우를 떠올렸을 때 명확한 이미지가 있고 이를 고수할 때 더 많은 열광과 호감을 사는 이는 드물다. 이번 캐릭터 남산만 봐도 그렇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세상에 살면서도 쉽게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 따스한 인간미와 온정, 그리고 눈앞에 어떤 적들이 와도 확실하게 해치우는 파워와 타격감. 이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유쾌하고 따스한 히어로 마동석의 모습이다. 그는 "'장르가 마동석'이란 말을 들으면 부담이 되기보다 감사하다. 그 말을 붙여준 자체가 관심 있게 지켜봐 주셨다는 것이기에, 그래서 더 제게 원하는 걸 보여 드리고 충족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래서 더 엔터테이닝적이고 재밌는 걸 만들어 드려야겠단 생각"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그를 향해 쏟아지는 대중의 호감과 지지에 마동석은 감사해하면서도 초연한 자세다. "인기는 메뚜기 한철"이라며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여기에 안주하거나 크게 염두하지 않고 계속해서 확장하고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 배우이자 제작자로서의 책임이라 말하는 듬직한 그다. 마동석은 "'압꾸정'이란 영화가 흥행이 안 됐다. 그런데 압구정 사람들은 너무 피부에 와닿는다며 재밌다고 하더라. 이게 재밌는 영화인지 아닌지는 이처럼 뷰어의 관점이 달라서 평가할 수 없다. 저는 최대한 보편적인 재미를 찾으려고 노력해서 만드는 거고, '범죄도시' 시리즈 하면서도 재미없는 편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전 이길 싸움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복싱에서도 링에서 경험이 많아야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제가 완성형이라고 생각하지 않기에 계속 노력하고 그 과정에 있는 것이라고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그 또한 마냥 완벽한 히어로는 아니다. 실패도 겪고, 흥행 부진도 겪고, 때론 혹평도 받는다. 그럼에도 대중이 여전히 '마동석'이란 석자에 무한한 기대감을 갖는 건 바로 이런 마음가짐 덕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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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야' 허명행 감독, 그저 액션 '멋'에 취하지 않은 [인터뷰]

    한국 영화 역사의 수많은 레전드 액션 신을 탄생시킨 명실상부 대한민국 액션 마스터 허명행 무술 감독. 그의 첫 연출작인 넷플릭스 영화 '황야'는 아포칼립스 장르라는 무한함 속에서 그동안 쌓아온 액션 노하우를 총망라한 작품으로, 공개 동시에 글로벌 1위를 기록하며 전세계 팬들을 사로잡았다. 준비된 감독의 화려한 신호탄이다.  모든 것이 폐허가 된 세상, 오직 힘이 지배하는 무법천지 속에서 주인공 남산(마동석)은 닥치는대로 사냥해 부족한 물과 식량을 얻고,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며 살아간다. 어느날 봉사단이라 자칭하는 인물들이 마을의 어린 소녀를 보호하겠단 명분으로 데려가지만, 여기엔 미치광이 의사 양기수(이희준)의 음모가 있다. 결국 남산은 수나를 구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허명행 감독과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마동석은 '황야'에서 만인이 그에게 바라는 유쾌하고 따스한 히어로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다만, 아포칼립스 장르를 빌어 그동안 쉬이 할 수 없었던 온갖 액션을 그야말로 미친듯이 선사한다. 마동석이 샷건을 날리고, 마테체를 휘두르며, 빌런들의 목을 따는 모습을 볼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이미 그 자체로 짜릿하고 신선하다. "마동석이 하는 청불 액션을 제대로 보여 드리고 싶었다"는 감독은 "동석 형이 보여준 메이커적인 액션은 '범죄도시' 시리즈인데 거기선 형사로 나오기에 제압하는 액션이 주라서, 직접적인 상해를 입히는 건 배제됐다. '황야'라는 아포칼립스 배경을 두고, 파충류화된 뱀 인간들을 세우면 이전까지 허용할 수 없던 액션들을 다 보여줄 수 있겠단 확신이 생겨 여기에 중점을 뒀고, 마동석의 액션을 좋아하고 기대하는 팬들은 너무 만족하실거란 생각에 신나게 액션 디자인을 했다"고 전했다.  마동석의 잔혹한 고어 액션은 괴기스러운 파충류 인간을 처단하며 더욱 통쾌한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하고, 매드 사이언티스트 면모를 지닌 캐릭터를 부각해 만화적이고 극적인 효과를 더한다. 감독은 이같은 양기수 캐릭터에 대해서도 "그 사람 입장만 보면 최선을 다한 사람이다. 자신의 신념으로는 이 배합만 성공하면 이 세기말에서 다들 신인류로 태어나 잘 살수 있는데 왜 나를 괴롭히느냐는 입장이다. 그런 방향성을 확실히 했고, 실질적인 선과 악의 구도이긴 하지만 양기수가 괴물화가 돼 남산과 대결하는 흐름은 피하고 싶었다"고 분명히 했다. 그렇기에 양기수가 생산한 뱀인간과의 최후의 대결이 펼쳐지고, 스스로 몰락한 괴물같은 의사 양기수의 결말이 더욱 뻔하지 않은 신선함을 야기한다.  파충류인간에 대한 설정도 꽤 디테일했다. 감독은 "영화 전반적으로 양기수 실험실에 토막난 도마뱀들이 있는 것은 잘못된 실험체를 나타낸다. 권상사가 쥐를 먹거나 최후 액션에서 얼굴 표피가 벗겨지는 것도 뱀을 차용한 것이다. 악어가 식량을 안 먹고도 최 2년을 살 수 있고, 뱀도 겨울잠을 자지 않나. 도마뱀 역시 꼬리가 잘려도 자생한다. 양기수 박사가 꿈꾸는 것이 식량과 물 섭취 없이 버틸 수 있는 인간의 변화란 설정이었다. 이런 파충류를 대상으로 과도한 실험을 해서 파충류 인간이란 부작용이 생긴 것"이라며 "남산이 초반에 악어를 사냥한 것도 결국 이를 처단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다만 아포칼립스 세기말 장르에서 으례히 관객이 기대하는 요소들을 깊게 다루지 않았다는 점에선 아쉽다는 평가도 더러 있다. 이런 장르물에서 심도 깊이 다루는 인간 본성과 내면의 모습, 탄탄히 쌓은 인물의 서사와 스토리적 갈등 없이 오로지 질주하는 마동석의 청불 액션만 내세웠다는 지적이다. 특히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같은 배경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영화인만큼 두 작품의 비교는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허명행 감독은 이 또한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는 "'황야'는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나온 이후 기획된 것이 아니라 동시에 시작했다. 아쉬워하는 분들의 반응도 충분히 공감한다. 특히 서사 이야기에 대한 불호가 작업 당시에도 있었다. 애초 기획한 각 캐릭터의 서사가 많았으나 이를 영상적으로 풀려다보니 너무 헤비해지더라"며 "액션 영화가 길어지면 개인적으로 지루함을 느껴서 선택을 해야 했다. 서사를 덜어내고 간단한 이야기 구조를 잡았다. 이 장르를 택한 건 영화를 풀기 위한 소재와, 판타지에 대한 주무대가 되는 설정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잔인한 액션을 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런 설정에서 충분히 존재할 법한 빌런을 설정하고 이를 처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덕분에 액션 수위를 높여 유연하게 보여줄 수 있을 거란 판단에서였다.  그는 "26년 동안 무술 감독으로 액션에 몸 담은 사람으로서, 제가 연출을 한다 했을 때 '얼마나 연출을 잘할까' 바라보는 기대치가 있으셨을 거다. 하지만 그 기대에 보답 못한 건 맞다"고 하면서도 "하지만 프로젝트 포커스 자체가 액션으로 설정했기에 만약 다른 부분에 욕심을 부렸다면 더 중심을 잡지 못하는 영화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제 스스로 아쉬운 건 없다. 그런 부분들은 조급해하지 않고 차차 연출하며 분명 다 보여드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서사 중심의 이야기를 한다면 그 또한 잘 풀수 있을 거란 자신이 있다"고 했다.  이는 이유있는 자신감이다. 실로 감독이 설정한 영화의 수많은 비하인드를 들으면 이토록 디테일하고 흥미로울 수가 없다. 또한 감독으로서의 확신과 역량도 분명했다. 이를테면 마동석의 위트를 더욱 부각하고 싶어 고집한 장면들이다. 감독은 "심각한 액션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마구 몰아붙이면 지칠 수 있으니까 피식피식 웃는 타이밍이 있길 바랐다. 남산이 등에 맨 칼을 못 잡는 것도 그렇고, 사랑꾼도 더 재밌는 게 없나 찾다가 나온 단어다. 워낙 호흡 잘맞는 크루들과 함께 하니까 절로 아이디어가 나오고 정말 즐겁게 작업했다"며 "톤앤매너가 심각하게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마 배우님의 액션과 코믹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종합선물세트처럼 드리고 싶었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처럼 허명행 감독은 속된 말로 그저 '액션 멋'에 취해 액션만 고집하는 이가 아니었다. 연출의 방향성을 명확하게 정하고 이에 대한 흔들림 없이 소신을 지키는 것이다. 그의 범상치않은 내공과 내면의 강직함도 느껴진다. 그가 단순히 선망받는 무술감독으로 안주하지 않고, 연출로 분야를 확장한 것도 "후배들 위해서 해야될 일이라고 여겼다. 저는 서울 액션 스쿨 소속의 무술 감독이고, 수장인 정두홍 감독님과 오래전부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목표가 스턴트 사업부도 있지만, 영화 제작 사업부에서의 성공을 바랐다. 시나리오 개발하고 작업하고 저도 계속 성장했고 이제는 후배들도 제작자로서 꿈을 꿀 수 있고, 감독으로 끌어줄 수 있는 그런 상황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사명감 덕분이었다.  감독은 "4월엔 '범죄도시 4'가 개봉된다. 그 전에 먼저 찍은 '황야'다. 이렇게 데뷔작으로 관객을 먼저 만날 수 있어 기분 좋고 만족스럽다. '범죄도시'는 이제 4편까지 나왔으니 마석도란 캐릭터가 어떤 변주를 줘야하고 관객이 뭘 기대할지에 포인트를 맞췄고, 원래 마석도가 지닌 유연함과 코믹함의 기조는 유지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 지, 명확히 알고 이를 실행하는 이의 자신감이 이처럼 보기 좋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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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드맨' 조진웅의 이름값 [인터뷰]

    배우 조진웅. '이름값'의 무게를 여실히 아는 그가 선택한 '이름값'의 가치에 대한 영화 '데드맨'. 운명적인 만남이 아니었을까.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공동 집필한 하준원 감독의 입봉작 '데드맨'은 '바지 사장'이란 명의 거래 범죄를 소재로 이름값의 가치를 묻는 영화다. 조진웅이 맡은 이만재는 IMF 이후 파산해서 장기라도 떼어 팔아야 하나 고민하다 그보다 쉬운 이름 석자를 팔아 바지사장 세계에 발을 들인 인물이다. 탁월한 계산 능력으로 7년째 이 업계에 살아남아 '불사조'로 불리지만, 아내에게 '범죄자'라고 책망받고 곧 태어날 딸에게도 부끄러운 아빠가 되고 싶지 않아 마지막으로 업계에서 손을 떼려던 찰나 1천억 원 거액을 횡령했다는 누명을 쓰고 순식간에 이름도, 인생도 빼앗긴 채 죽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인물이다.  아버지 존함을 배우 예명으로 쓰며, 아버지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는 배우가 되고자 한다는 조진웅의 배우적, 인간적 신념은 익히 알려진 것이다. 그런 그가 이런 소재의 영화를 택했다니 흥미로운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조진웅은 이름값에 대한 영화적 주제와 메시지를 느끼기 앞서 "이런 이야기가 실제로 존재하나"란 호기심을 먼저 느꼈다. 명의 거래로 실제 끔찍한 범죄가 저질러진다는 것이 섬찟했다고. "일단 시나리오가 굉장히 재밌었고 이야기 구조들이 어려웠는데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 남자의 감정선만 잘 따라가면 충분히 목적지까지 갈 수 있겠구나 싶었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같은 호기심과 끌림 때문에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감독과의 만남을 요청했다. 당시엔 감독이 유명한 영화계 집안사람이고, '괴물'의 공동 집필자인 줄도 몰랐다. 그저 범상치 않은 신인 감독이란 생각이었다. "치밀함도 있었지만 집요함도 있었다. 연출로서 꼭 지녀야 할 덕목이라 생각한다. 말이 신인 감독이었지, 그동안의 내공이나 작품을 해온 공력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집필 과정 속에 그게 녹여져 있다는 게 느껴지는 감독"이었다는 평가다.  감독과 만나 대본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여러가지 것들을 서로 납득하고 상충하는 부분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조진웅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건 만재에 대한 감상이었다. "대본 보자마자 '이거 나쁜 놈이네'했다. 올바른 삶을 살지 않고, 떳떳하게 노동의 대가를 받는 것이 아니다. 누가 이런 사람을 응원하겠나. 만재로서 읽기에 어순에 안 맞는 부분들이 있었다. 그래서 범죄라는 부분을 명확히 하기 위해 극 중 아내가 치를 떠는 것처럼 '이건 범죄다'라고 무조건 지적을 해줘야 했다. 만재의 행동이 정상적인 게 아니다. 결국 관객이 이 캐릭터를 응원하며 볼 수 없으니, 이 친구가 가져가야 할 정체성과 본질적인 과정에서의 성장을 보여 주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다." 제가 연기한 캐릭터에 대한 연민과 공감보다 객관적인 옳고 그름을 먼저 따져 묻는 그 올곧음이 역시 조진웅답다.  이에 그는 "본업에 충실한거다. 그게 이름값 하는 거 아닌가. 배우란 직업을 하게 됐으니 제 이름을 갖고 선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거다. 이름값이란 본인이 살아가는 삶의 값이다. 이 이야기가 우리를 거치고 나면 이제 관객에게 가게 된다. 관객들에게 잘못된 이야기를 하면 이에 대한 영향을 받을 수도 있으니 상당히 많이 고민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바지사장으로 이용 당하다가 철저히 버려지고,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중국 사설 감옥에 갇혀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박탈당한 죽은 사람이 된 이만재. 가정도 처참하게 파괴됐고 삶은 붕괴됐다. 한낱 이름값의 대가가 이리도 지독하고 무서울 줄은 몰랐을 테다. 조진웅은 이를 두고 "명의 거래 범죄를 저지를 때 자기 치욕인 걸 알면서도 그렇게 사는 사람이다. 감옥에 갔다고 나락이 아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모르는 것 자체가 나락이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정말 비참하고 더 지옥 같은 삶이 아니었을까"라며 "아무 생각 없이 살면 편하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이 아니"라고 확고한 견해를 밝혔다.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가. 이를 묻는 영화의 철학적 질문이 그를 깊은 상념에 빠지게 했다. "사실 '너 누구야, 너 잘 살고 있어?' 이런 질문은 평소엔 잘 안한다. 술에 만취했을 때나 하는 거지"라며 웃긴 그는 "한 번쯤은 이런 고민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했다.  다만 조진웅은 "이 주제를 위해 선택한 소재가 어려웠다. 맞닥뜨리고 인식하기까지가 쉽지 않다. 이런 질문을 할 때 충분히 많은 소재가 있었을텐데 이런 어려운 이야기를 해서 되겠나"라고 핀잔(?)도 해본다. 하지만 주제와 메시지에 대한 가치가 명확하기에 진심을 다해 연기와 작품에 임했다. "우리가 의도했던 대로 시퀀스가 흘러가나 매 순간 자문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좋은 시너지로 정확한 의도를 전달할까 치열하게 고민했다"고.  죽을 고비를 넘기고 갖은 고생 끝에 되찾은 이름. 조진웅은 극 중 만재가 이름을 다시 찾게 된 마지막 법정 신에 대한 여운이 꽤 셌다고 했다.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마냥 기뻐할 수도 없었고, 복잡 미묘했다. 단편적인 연기 표현으로 지금까지의 만재 인생을 설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정말 다채로운 감정을 표정과 호흡으로 나타내려 했다"는 그는 "영화는 여기까지 달려오기 위한 만재의 과정이었다. 만재가 대단한 걸 성취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악의 무리를 소탕한 것도 아니다. 자신의 순위에도 없었던,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름을 다시 되찾는 순간의 감정이 참 의미심장하더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런 복잡미묘한 감정 속에서 또다른 한줄기 희망을 봤다는 그다. "다시 찾은 아이디로 인해서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고 생각할 것 같다. 정정당당하게 내 이름을 꺼낼 수 있고, 삶의 정체성을 찾았다는 것이 희망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만재를 연기하며 자신과 이입되는 지점이 있는지를 돌아보게 되는 작품이었단 소회다. "저도 아버지 존함을 쓰고 있긴 한데 그 이유는 제가 그리 능동적인 사람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저를 가둬두기 위함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쓴 건데 이 영화를 찍으며 좀 더 가치 있게 생각하게 됐다"는 그는 "이름은 내가 존재한다는 완벽한 증거인데, 살면서 일순위는 이름이 아니지 않나. 이름은 세상에 존재하는 나의 아이디임에도 인생의 가치 순위에도 없고, 가치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며 산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고 상념에 젖어본다. 살면서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 그 삶의 가치를 누구보다 깊이 알고 이름값에 걸맞은 삶을 사는 배우 조진웅이다.  사진=콘텐츠 웨이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