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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니싱: 미제사건' 배우 유연석의 세계는 넓다 [인터뷰]

    배우 유연석의 저변 확대다. 글로벌 프로젝트 영화 '배니싱: 미제사건'(감독 드니 데르쿠르)에서 묵묵히 제 몫을 해낸 그는 성실하고 덤덤하게 소회를 전했다.  영화 '배니싱: 미제사건'은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은 신원 미상의 변사체가 발견되고, 사건을 담당하게 된 형사 진호(유연석)와 국제 법의학자 알리스(올가 쿠릴렌코)의 공조 수사로 충격적인 사건의 전말을 마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서스펜스 범죄 스릴러다. 칸 국제 영화제에 두 차례 초청되며 독보적인 연출력을 전 세계에 입증한 드니 데르쿠르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외국 스태프들이 협업해 한국 올로케이션으로 진행된 글로벌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의 진행 단계부터 관심이 많았단 유연석은 3개 국어를 구사하는 유능한 엘리트 형사 진호 역을 맡았다. 드니 데르쿠르 감독은 19년 전 유연석이 출연한 영화 '올드보이'를 기억했다. 또한 그를 캐스팅한 이유로 "잘 생겨서 잊을 수 없었고, 흥미로운 건 잘생김에만 머무르는 걸 거부한다. 무엇보다 성격이 좋고, 자기가 맡은 역할에 몰입해 충실히 노력한다"고 전한 바 있다. 외국인 감독을 사로잡은 비결이다. 유연석은 "감독님과 처음 미팅할 때도 대화가 잘 통했다. 어떤 스타일로 연기하고 싶은지, 진호 캐릭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셨고 서툰 영어지만 대화가 잘 통했다. 그런 모습을 마음에 들어 하신 것 같고, 촬영하면서 아무래도 한국 배우에 대한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어 부단히 열심히 노력했다"며 "성실하고 연기 잘하는 배우라고 칭찬해주신 것을 봤는데 정말 감사했다"고 수줍어하면서도 내심 뿌듯한 미소다.  진호는 기존에 익숙하게 봐왔던 형사 이미지와는 달리 깔끔하고 엘리트적이다. 충격적인 범죄 사건을 앞두고도 감정의 고조가 딱히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자문을 구하기 위해 찾은 알리스의 세미나에서 졸고 있는 모습이나, 긴박한 수사 중에도 조카 생일 선물인 금붕어를 사려고 뛰쳐 나가는 모습, 용의자를 체포하는 과정에서도 여유롭게 마술을 펼치고 있는 등 종잡을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 아쉽게도 88분의 러닝타임과 빠른 속도감을 지닌 영화에서 그의 전사는 미처 풀리지도 못하지만 유연석은 확실히 무언가가 있음 직한 뉘앙스를 계속해서 풍긴다. 유연석은 이제야 "진호는 원래부터 형사를 꿈꿨던 인물은 아니고 과거의 사연을 통해 형사란 직업을 갖게 됐다. 친형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형사가 되어야겠다 다짐했고, 그렇기에 조카에게 무한 사랑을 퍼붓고 모든 걸 다 줄 수 있는 따뜻한 모습이 보였음 했다"고 비로소 전사를 털어놓는다.  그는 "이 영화는 알리스의 시선으로 시작된다고 본다. 한국에 오면서 보게 된 시점으로 시작되기에 제 과거사를 풀어서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며 배우로서 아쉬울법한 캐릭터의 생략도 "아쉽지 않다"며 단호한 소신을 전했다. 기존에 익숙하게 그려진 거칠고 고된 형사의 모습보다는,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다양하고 새로운 수사기법을 적용해 해결하려는 진호의 모습이 흥미로웠고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적용해 집요하게 풀어내는 모습이 비슷했다"는 설명이다.  3개 국어를 구사하는 형사 설정답게 영어와 불어를 마스터하는 것 역시 공을 들였다. 마술은 오히려 쉬웠다. 대학 입시 때 마술을 준비한 적 있었고, 어릴 때부터 취미가 있어서 간단한 트릭들은 구사할 수 있었다고. 함께 연기한 최무성은 "연기하랴, 마술 하랴, 영어 하랴, 불어하랴, 이것저것 할게 많아서 힘들어 보인다"고 살가운 응원을 해주기도 했다지만,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캠핑을 즐기는 등 '취미 부자'로 익히 알려진 유연석에겐 도리어 즐거운 배움의 과정이었다.    이처럼 진호 캐릭터는 다양한 재능을 갖춘 흥미로운 인물이었지만 무엇보다 수사를 하면서도 알리스와 미묘한 감정선이 피어나는 지점이 재밌었단 그다. "사체에서 지문 채취하는 장면을 리얼하게 그리면서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보여줌과 동시에 알리스와 진호가 그 안에서 무언가 교감을 나누는 장면이 흥미로웠다"고. 워낙 의학드라마를 많이 찍은 탓에 익숙하기도 했단 너스레도 덧붙인다. 이어 "제가 원래 감독님이 연출한 전작들을 보며 우리가 흔히 스쳐 지나가는 것들에 섬세한 시선을 주는 것을 좋아했다. 이 영화가 스릴러지만 그 안에서 진호와 알리스의 미묘한 감정선을 너무 지나치거나 과하지 않게, 아름답게 표현하신 것이 좋았다"고 밝혔다.  특히 엔딩 신에 대해 그가 내린 견해도 제법 깊이 있었다. "알리스를 데려다주겠다고 하면서 막다른 길에 내린다. 그 허허벌판을 내려서 길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래서 트렁크도 같이 내리지 않았을까. 애초 진호가 내비게이션을 따라가지 않고 항상 자신이 원래 생각하는 길로만 가던 성격을 보여 주기도 하고, 많은 생각을 하며 끝낼 수 있는 열린 결말이었다. 그게 감독님 연출의 재미 중 하나이기도 했다"는 설명이다.  외국인 감독으로 담은, 익숙한 한국의 색다르고 이질적인 풍경 역시 새로웠단 그다. "동작대교에서 알리스가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말하는 신은 정말 아름답게 연출된 신"이라며 강조한다. 그 역시도 한국 로케이션이 진행되는 만큼 감독과 배우, 스태프들에 틈틈이 '한국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했단다. "촬영 틈틈이 우리나라 문화나 로케이션지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가이드 역할을 하며 소통하려 했다"고. 더불어 "한국 배우로서 해외에서 K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이 자랑스러웠고, 이번 글로벌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더욱 재미를 느꼈다"는 유연석은 "사실 촬영 당시 다른 나라는 이런 콘텐츠 제작이 모두 올 스톱됐던 시기였다. 한국은 모든 걸 극복해나가는 나라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이런 코로나 상황에서도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영화, 드라마, 무대 공연까지 예술 문화계가 멈추지 않고 계속 돌아갔다는 것에 대해 굉장히 큰 자부심도 느꼈다"고 뿌듯함을 드러냈다.  그가 정의한 '배니싱: 미제사건'은 "익숙한 듯 낯선 영화"다. "뭔가 익숙한 얼굴의 배우들, 익숙한 공간이지만 낯선 시선을 통해 바라보는 영화라서 낯섦과 익숙함이 공존한다. 그 자체인 영화"라는 설명이다.  요즘은 하루하루 다르게 시간이 가는 것을 실감한단 유연석은 "'올드보이'도 어느새 20년이 다 되어간다. 해가 다르게 달라진다. 정말 열심히 살았던 것 같고, 처음부터 변함없이 연기를 꿈꾸는 제 자신을 토닥여주고 싶다. 만족하냐 물어보면 그렇진 않지만, 세월을 잘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고 더 넓은 시장, 더 많은 기회들에 도전하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내비친다. 아직도 못해본 캐릭터, 장르들도 많다며 갈 길이 멀다는 그다. 여전히 무궁무진한 유연석은 꾸준히 제 세계를 넓혀가는 중이다.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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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김동휘가 간직한 섬세한 소년미 [인터뷰]

    섬세한 소년의 이미지. 그 안에 다양한 감정이 숨겨져 있다. 순수함과 열망, 살가운 다정함과 딱 그 나이대 소년의 짓궂은 장난기, 때론 안쓰럽게 위축되기도 하지만 숨은 용기의 힘까지. 배우 김동휘가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서 연기한 캐릭터의 모습이다. 조금의 위화감도 없이 열여덟 고등학생 한지우의 모습을 담아낸 그다.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신분을 감추고 고등학교 경비원으로 일하는 탈북한 천재 수학자가 수학을 포기한 학생을 만나며 벌어지는 감동 드라마다. 김동휘는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단역을 맡아 연기했고, tvN 인기 드라마 시리즈 '비밀의 숲' 시즌2의 에피소드에서 주요 역할로 등장해 비로소 눈도장을 찍기 시작한 신인이다. 생애 첫 주연, 게다가 최민식과 호흡을 맞춘다니, 신인 배우에겐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다. 가뜩이나 오디션을 볼 당시엔 소속사도 없이 그야말로 혈혈단신으로 부딪혀 2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이 자리를 꿰찼다. "오디션 볼 기회가 많이 없었다. 막상 보러 갔을 때도 내가 올 수 없는 곳이구나 싶었다. 다만 최민식 선배님이 오디션을 봐주시니까 제 연기를 보여 드리고 피드백을 받았으면 좋겠단 마음이었다"던 그는 막상 합격한 뒤에도 의구심이 들었고 첫 촬영에 돌입한 그제야 실감을 했단다.  "지우랑 가장 잘 어울려서요." 이는 박동훈 감독이 아직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김동휘를 확신한 이유였다. 김동휘 역시 "지우를 보며 닮은 구석이 많다"고 했다.  한지우는 교복 착용만으로도 선망의 대상이 되는 상위 1% 명문 자사고에 재학 중이다. 하지만 어딘가 겉돈다. 수업 시간에도, 기숙 생활을 하면서도 지우는 어딘가 주눅 들고 위축된 모습이다. 달동네,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며 그 흔한 과외 한 번 없이 공부를 잘한 탓에 '사배자' 전형으로 '귀족학교'라 불리는 명문고에 들어갔고 이는 엄마의 큰 자랑이지만, 정작 지우는 자신감은커녕 기도 못 핀다. 사교육으로 학교 수업 진도는 우습게 추월하는 학교 분위기 속에서 질문할 용기를 갖기에 지우는 퍽 여린 소년이다. 특히 수학 성적이 점점 떨어지고 담임은 일반고로 적응을 권한다. 지우가 느끼는 '이상한 나라'에서 그는 무리에 합류할 수조차 없는 완전한 부적응자다.  김동휘 역시 제가 지우 나이였을 때 그처럼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학창시절을 보낸 만큼 더 공감이 갔다고.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 춤 동아리에 들며 능동적으로 변해가고 단체 생활이 오히려 즐거워졌다. 지우가 탈북한 천재 수학자 이학성을 만나 마음을 나누고 수학을 통해 세상을 알아갈수록 용기를 얻는 모습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고 느꼈을 테다.  "대본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해 분석을 열심히 했다"는 김동휘는 "매일 대본을 보며 도저히 더 생각 안날 만큼 극한의 극한으로 분석했다"고 했다. 이런 치열함 속에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외유내강적인 면, 혼자 고민하고 홀로 애쓰는 모습, 그 안타까움과 측은함" 등 마음으로 느낀 공감대를 형성하며 지우 캐릭터에 녹아든 그다. 의외로 20대 중반인 그가 고등학생 역할을 맡은 만큼,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도록 연기하는 것도 중요했다. "요즘은 너무 빨리 세상이 변하니까 10대 친구들이 쓰는 말투는 뭘지, 좋아하는 건 뭔지, 유행하는 건 뭔지 많이 묻고 배우려 했다"고.  이같은 노력 덕분에 김동휘는 때론 방황하면서도 아름답고 순수한 열여덟 소년의 섬세한 감성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었다. 작품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단 책임감도 컸다. "평생 내가 연기하며 이런 작품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굉장히 많은 의미가 담긴 작품"이라는 각별한 애정이 컸다. 특히 존경하는 최민식과의 연기 호흡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었다. "정말 너무너무 영광이었다"고 눈을 빛내는 그 모습이 순수하다. "매 순간이 에피소드였고, 믿기지 않았고, 한 번이라도 더 선배님과 말하고 싶어서 얘기를 건넸다. 오히려 더 친밀하게 다가와주셨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동경하고 애정 하는 대상을 떠올리는 기쁨이 묻어난다.  '정답'만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방황하던 지우가 이학성을 만나 올바른 '풀이 과정'을 통해 용기를 갖고 자신만의 정답을 찾아가고 확신하는 모습은 뭉클하고 대견한 감상을 준다. 김동휘는 "영화가 참 아기자기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틀렸다고 좌절하는게 아니라 내일 다시 또 풀어봐야지 하는 수학적인 용기가 필요하단 말이 참 기억에 남는다. 이 영화는 수학에 관련된 영화지만 수학이란 매개체를 통해 우리 인생을 보여주려는 영화"라고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정의한다. 그 말속에 제법 깊은 속내가 담겼다.    그 또한 멈추고 싶은 순간은 있었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다. '몸치'였지만 수련회 때 얼떨결에 춤을 추며 느낀 재미, 그리고 달라진 변화. 이를 보며 연기를 권유한 아버지. 막상 고등학교 2학년 때 배우가 되고자 도전했지만 친구들의 못 믿는 시선에 상처도 받았다. 실제 대학에 떨어지거나 오디션에 좌절을 맛볼 때 방황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가진 믿음은 "누구에게나 기회가 온다"는 확신이었다. 언젠가 기회가 왔을 때 이를 잡기 위해선 준비된 사람이어야겠단 생각을 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조바심이 사라지더라. "제 스스로 아는 게 많고 준비된 게 많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려면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연기 서적도 읽고, 영상 연습도 보고, 배우들 인터뷰와 연기도 봤다. 늘 삶 자체를 연기에 관련해서 봤다. 영화를 볼 때도 분석적으로 보고, 연출적으로도 미술, 음향, 소품, 의상, 분장 등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봤다. 내 연기가 늘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했다." 그저 몇 문장의 말이지만 그 안에는 그동안 그가 쌓아 올린 무수히 많은 노력들이 엿보인다. "계속한다면 반드시 기회는 온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다"며 사뭇 진지한 모습도 인상 깊다.  김동휘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 캐스팅 된 후, 제게 연기를 권했던 아버지께 그제야 왜 그랬냐고 물어봤더니 "그냥 잘 어울리니까 그런 거지"라는 말을 들었단다. "아버지가 요즘 말로 '츤데레' 같은 스타일이시다. 사실 요즘 정말 많이 좋아하시고 걱정도 많이 하시는데 제가 부담스러울까 봐 드러내지 않으신다. 늘 저를 먼저 생각해주시기에 제가 많이 의지하며 고민이나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털어놓고 이렇게 소통할 수 있는 아버지가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그다. "들떠보이지 않는, 사람이 먼저 된 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가짐". 김동휘가 가장 우선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중이 그를 떠올렸을 때 "연기 참 잘하고, 역할을 잘 수행하는 배우"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을 만큼 노력하는 건 제 몫이라는 건실한 청년이다. 20대의 버킷 리스트로는 코로나가 끝난 뒤 여행을 많이 다녀보고 싶은 바람이고, 춤은 그만둔 지 오래됐지만 가끔 혼자 집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꾸물대며 내적 댄스를 춘다고 웃어 보이는 그 모습이 해맑다.      사진=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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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메이커', '척'하지 않는 변성현 감독의 정의 [인터뷰]

    영 달변가는 아니다. 저를 꾸밀 줄 모른다. 하지만 화려한 언변으로 환심을 사기보다 묵묵한 진심으로 '척'하지 않고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그 모습이 도리어 시원스럽다. 변성현 감독이다.  변성현 감독의 신작 '킹메이커'는 故김대중 전 대통령과 한때 그의 선거 참모였던 엄창록을 모티브로 한 정치 영화다. 영화는 196~70년대 치열했던 한국 정치사를 배경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강하고 올곧은 의지를 가진 정직한 신념의 정치인 김운범(설경구)과 그를 기발한 전략으로 돕는 선거 메이커 서창대(이선균)의 관계와 갈등을 통해 수단과 목적, 그 정당함의 정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를 관통하는 이 주제는 변성현 감독이 스스로에게도 끊임없이 해답을 갈구하던 딜레마였다. "늘 평소에 생각하고 질문했던 것들이다. 내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을 향해 가는데, 그 목적을 위해 올바르지 않은 수단을 택해도 괜찮은 건가. 그렇게 선택을 했을 때 내가 느낀 죄책감, 이에 대한 합리화 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실존인물을 모티브로 한 정치 영화는 다소 민감한 소재일 수 있지만, 감독의 오랜 고민과 고찰을 풀어내기엔 적합한 인물이었다. 물론 감독 역시 고심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감독 역시도 존경하는 이다. "현대사의 가장 큰 인물이시고 성인, 거목이라고도 표현하는 분이다. 하지만 제 개인적인 존경심과는 별개로 그분을 우상화하거나 영웅화 시키고 싶지 않았다. 영화 배경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인동초라는 별명을 얻기 전, 촉망받는 젊은 정치인 시절을 그린다. 그래서 이 사람의 이데올로기를 파고들기보다 서창대가 바라보는 시선으로 굳은 신념을 지닌 젊은 정치인 김운범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는 설명이다.  감독은 김운범을 제가 생각하는 '어른'의 모습으로 봤다. "요새는 어른답지 못한 사람에 꼰대라는 말을 많이 쓰지 않나. 실존 인물의 정치적 업적을 미화하지 않되 그 성격은 너무도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으로 그리고 싶었다"고. 김운범은 그야말로 이상향에 가까운 사람이다. 정직한 대의명분을 가졌고, 치열하고 야비한 선거판에서도 "어떻게 이기는지보다 왜 이겨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말하는 꼿꼿하고 고결한 이다. 변성현 감독은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데 저랑은 너무도 다른 성격이라 전 아마 안 될 것 같다"는 너스레로 웃긴다.    반면 한국 정치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에도 대중에게 익히 알려진 바가 없는 엄창록은 오히려 접근이 쉬웠다. "김대중 대통령 자서전에 몇줄이 나와있다. 선거판의 귀재인데 상대 진영으로 넘어갔다고. 그런데 여기에 대한 원망도 크게 없었고 제가 느끼길 그 문장에서 애틋함이 읽혔다."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호기심에 여러 자료를 찾아봤다. 그 이름이 거론된 모든 자료를 다 뒤져봤고, 가족들 수소문도 해봤지만 찾지 못했다. 이처럼 알려진 정보가 없다는 게 오히려 신기했고 창작자로선 "끼어들 여지가 있어 마음에 들었다"는 감상이다.  그렇게 그려낸 서창대는 대의를 위해서 어떤 명분이라도 내세운다. 저들이 하는 마냥 더 비겁하고 야비한 수를 써서라도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김운범과 같은 이상을 꿈꾸지만 계속해서 충돌이 일어난다. 영화에서 특히 마음에 드는 점은 서창대를 마냥 미화하지 않는것이다. 한국 정치사의 무서운 폐해인 지역감정을 조장한 이가 바로 엄창록이라는 썰을 짚고 넘어간다. 이에 감독은 "처음부터 미화하지 않고 이를 짚어주려 했다. 초반 서창대의 선거 전략은 일부러 귀엽고 유쾌하게 그리며 '재치 있는 캐릭터'로 보이길 바랐다. 또 이를 통해 당시 선거 운동이 얼마나 조악했는지를 그리려 했다. 이후 창대가 한 행동은 똑같다. 하지만 그것이 무겁게 받아들여지길 바랐다. 그러면 우리가 초반에 재밌게 봤던 지점도 다시 돌아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감독이 실존인물에 느낀 감상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분의 개인적인 설계만으로 지역감정이 생기진 않았겠지만, 그 썰이 사실이라면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죄인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렇기에 엔딩에서도 이를 분명히 했다. 극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 '빛과 그림자'처럼 각자의 소신을 지킨 두 사람이 오랜 시간이 흘러 재회했을 때 더욱 밝아진 빛의 김운범과, 그런 빛을 똑바로 마주할 수 없는 그림자의 창대의 표정을 그려낸 것은 감독의 의도였다.  해당 신의 여운은 상당한데, 그동안 쌓아올린 두 사람의 만남, 갈등, 결별, 재회의 서사는 여느 멜로물 못지않게 애틋하고 절절한 까닭이다. 이에 감독은 "제가 늘 쓰는 작법에 멜로가 있는 것 같다. 이런 작법으로만 글을 써왔고 제 모든 영화가 독립영화 시절부터 이 방식을 선호했다. 어쩌면 다른 걸 못하는 걸 수도 있다. 의도하지 않은 의도였다고 보시면 된다"고 쿨한 답변이다.    감독의 의도에 따르면 영화는 크게 3막으로 나뉜다. 1막은 번번이 낙선하는 김운범과 서창대의 첫 만남 이후, 기발한 전략으로 선거에서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경쾌하고 가볍게 그린 선거 드라마다. 2막은 신민당 대선 후보 경선을 통해 치열한 선거판의 전략과 열기를 그리며 정치드라마의 장르적 방점을 찍는다. 3막은 달라진 관계를 맞이한 김운범 서창대의 각기 다른 길을 통해 어두운 드라마를 그린다.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3막에 달렸다. "가장 하고 싶은 질문을 던졌다. 옳은 목적을 위해 옳지 않은 수단도 정당한가. 내가 생각하는 정의가 과연 옳은 것인가. 한 번은 생각해봐야 될 것 같았다. 제가 어릴 때부터 살아오며 느꼈던, 옳다고 믿었던 것들에 대한 의심을 할 때가 있다. 이를 늘 고민하고 추구하는 것이 정의이지 않을까." 변성현 감독의 정의에 대한 변이다.  이토록 우아하고 세련된 정치 선거 영화의 완성은 변 감독 특유의 스타일리쉬한 연출력 덕분이다. 하지만 감독은 이런 평가가 부담스럽다. "제가 생각하는 스타일리시함은 이명세 감독님이다. 얼마 전에도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봤는데 전 아마 이렇게 못 찍을 거라고 얘기했다. 그냥 클래식한 걸 좋아하고 하나하나 공들여 찍을 뿐이다. 저는 제 작품에서 그저 배우들이 더 잘 돋보이길 바라고, 배우들에 더 공을 많이 들인다"고 손사래다. 결과론적으로 이런 평가는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 덕분이라고 덧붙인다. 과거 함께 작업한 스태프들이 감독의 신작을 위해 전부 다시 뭉치는 것만 봐도 얼마나 의리 있고 대단한 일이냐 싶은데 정작 변성현 감독은 "제 힘이라기보단 워낙 사적으로 자주 만나고 친해서 그렇다"고 저를 낮춘다. 괜한 겸손이 아니라 진심으로 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쿨함이다. 문득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지는 변 감독이다. 그러자 "솔직한 편인 것 같은데 그렇게 완전 솔직하진 않고, 놀기도 되게 좋아하는데 노는 것만큼 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고 잠깐의 궁리 끝에 내놓은 답변이 이렇다.  '킹메이커'를 완성한 후, 진심으로 영화 일을 하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단 그다. "진짜 백프로 진심"이라고. 이처럼 달변은 아니어도 말재주 없는 이 쿨한 말속에 다 전하지 못한 진심이 엿보이는 사람이다. "시대의 걸작은 안 되더라도 '저 사람 작품은 볼만하다'는 이야기는 들을 수 있도록 열심히 성의껏 영화를 찍고 싶은 바람"이라는 변성현 감독의 진심이다.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