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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호자' 새롭고 짜릿한 '돌은 자' 김남길 [인터뷰]

    뻔하지 않고 늘 새롭다. 게다가 놀랍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함으로 유일무이한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 김남길이다.  정우성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 '보호자'에서 해결사 우진 역을 맡은 김남길은 첫 등장부터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풍긴다. 무작정 고해성사를 하러 들어간 교회에서 과거의 트라우마를 가엾게 털어놓더니 금세 그 교회를 폭파시키며 불길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는다. 듣기 싫은 소리는 개소리로 왈왈 대며 응수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돌은 자'의 정석이다.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과 그 양면의 잔인함을 무서울 만큼 감쪽같이 연기한 그다. 이토록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연기를 하는 그 모습이 새롭고 흥미롭다.  처음엔 이런 연기에 대한 우려가 컸단 김남길이다.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나 이야기가 묵직한데 너무 혼자 밸런스가 안 맞지 않을까 고민했다. 감독님과 많은 얘기를 하며 조율했다. 우성 형이 얘기한 것이 이런 장르에서 쉬어가는 인물이 있어야겠고, 이 얘기가 갖는 맥락은 명확하니 즐거움도 주고 쉬어갈 수 있는 인물을 만들어보자 했다. 처음엔 괜찮을까 싶었는데 배우로선 연기하기 정말 재밌고 즐거운 캐릭터였다"고.  '보호자'는 진작부터 해외 유수 영화제의 뜨거운 러브콜을 받았다. 김남길은 해외 영화제 공개 당시 사람들이 "빵빵 터지며 웃으며 보기에 다행히 거부반응이 있지 않구나"하며 안도했다는 비화다. 심지어 '긴머리 박성웅' 비주얼로도 사람들이 즐거워했다고.  처음엔 결코 범상치않은 우진 캐릭터를 위해 많은 참조를 하려 했으나 정우성 감독이 요구한 것은 "레퍼런스를 하지말라"는 것이었다. 김남길은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아이들을 관찰했다. "예전에 그런 얘길 들은 게 떠올랐다. 아이들은 원초적이고 본능적이라는 거다. 솔직하게 감정 표현을 하고 울기도 하고 떼를 쓰기도 한다. 우진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벽한 상태가 아니다. 아이들만의 언어나 표현 방식을 관찰해서 우진도 그렇게 행동하려 했고 오히려 편안해지더라."  과장된 우진의 행동 역시 자신의 결핍과 트라우마를 감추기 위한 방어기제가 작용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덧붙여 "우성 형이 연기할 때 그 특유의 왕자님 미소로 씩 웃으면서 '남길스러운거야? 레퍼런스야?라고 물으셨다. 귀신같이 알아내셨다"며 웃긴 김남길은 "그만큼 감독님은 감독을 믿고, 제가 할 수 있고 제가 갖고 있는 '나스러움'을 표현하길 바라셨다"고 했다.  이어 "사실 연기할 땐 불안감이 있었다. 특히 우진이 개소리를 낼 때도 스스로 어색해서 머뭇거렸다. 우성 형은 '저게 어색해하는구나' 이미 알고 가만히 기다려줬다. 그래서 제가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믿어주고 기다려줬다"며 "그래서 더 믿고 연기할 수 있었다"는 진심이다.    김남길이 느낀 우진의 표현 방식도 새로웠다. "우선 톤도 이렇게 인위적으로 하이톤일 수 있나 싶었다. 또 보통 연기할 땐 티키타카가 있는데 우진은 누가 뭐라하던말던 저 할 말만 얘기하고 일방통행적인 캐릭터다. 이런 연기는 처음 해본다"는 그는 연기하며 점점 우진의 매력에 빠져 들었다.  김남길은 아이 같은 천진함과 짐승 같은 잔혹함이 공존하는 인물로 웃음과 긴장을 동시에 책임지며 '보호자'의 재미를 확실히 담당한다. 특히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더 위험하고 재미있는 인물이다. 그는 극 중 수혁(정우성)을 제거해 달란 의뢰를 받고 그를 죽이기 위해 나서지만 의외로 허술하게(?) 제압당하고 인질이 돼 끌려다닌다. 게다가 도망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묶인 발로 힘겹게 편의점에 들어가 컵라면을 먹고 있다. 제대로 '돌은 자'다. 이런 예상치도 못한 반전미가 그를 더욱 새롭고 독특하게 만든다.  김남길은 "예고편만 보고 제 주변에서 엄청 강력한 빌런 아니냐고 하시는데 제가 말했다. '응 아냐, 모질라'"라며 재치있는 입담이다. 이어 "저도 오랜만에 누아르 하는데 멋스러움이라곤 없는 캐릭터라 '이게 뭐지?' 생각했다"며 웃은 김남길은 "그렇지만 정우성이란 배우랑 부딪혀서 이길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반대로 가는 게 맞다"며 능청이다.  어딘지 허술하고 맹해보이지만 순식간에 돌변하는 지점이 오히려 우진 캐릭터가 허를 찌르는 기습적 장면이다. 특히 수혁을 잡기 위해 아파트 난간을 뛰어 올라가는 신은 초인적인 모습이 느껴질 만큼 위협적이다. 이에 "처음엔 우진에게 어울리는 '뒤뚱뒤뚱' 걸음을 걸었다. 그랬더니 우성 형이 뛸 땐 '닌자'처럼 뛰라고 했다. 우진이가 순간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향해 집중한 것이고, 그걸 잡으러 갈 땐 닌자처럼 잽싸게 뛰어줬으면 좋겠다는 디렉션이었다"는 그는 해당 신도 스턴트 없이 직접 소화했다. 그럼에도 "우성 형이 워낙 직접 하시니까 대역을 쓸 수가 없었다. 형은 감독으로서 배우를 보호하는 입장에서 직접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형은 멋있는 걸 혼자 다하셔서"라고 눙을 친 그는 "카체이싱 액션도 직접 해내는 형을 보면서 도저히 제가 대역을 안 쓸 수가 없더라"고 했다. 이어 "역시 내 남자. 멋있어. 정우성"이라 말하는 못말리는 김남길이다.   "형이 입봉하는 영화에 저를 캐스팅한 믿음에 보답하고 싶었고 제가 나와서 더 영화에 미덕이 있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속내를 털어놓은 그는 후회 없이 즐겁게 연기할 수 있어 좋았다는 소회를 전했다. 이어 "형은 캐릭터의 외외성을 얘기하고 싶어 했고, 캐릭터적으로도 아주 좋은 영화였다"며 정우성 감독에 모든 공을 돌린다. 단언컨대, 감독의 요구를 이토록 완벽하게 부합하며 한국 영화계에 독보적인 캐릭터를 완성한 것은 배우 김남길의 독보적인 재능이다.  사진=길스토리이엔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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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크리트 유토피아' 아무리 봐도 특출난 엄태화 감독 [인터뷰]

    '찌질'하지만 사랑스러운 키보드 워리어의 현실 복수극(?)을 통해 이 시대 청춘들의 삶과 고민 등을 재기 발랄하게 그려낸 청춘물 '잉투기', 갑자기 달라진 시간 속에서 훌쩍 어른 남자가 돼 버린 소년을 믿어준 단 한 명의 소녀 이야기를 아련하고 따뜻한 판타지 '가려진 시간'. 전작들만 봐도 확실히 다르다. 기존 한국 영화에서 보지 못한 기발하고 신선한 이야기를 통해 특유의 특별난 정서를 드러냈던 엄태화 감독. 그가 7년만에 내놓은 신작은 더욱 놀랍고 진일보한 디스토피아 세계를 그린 '콘크리트 유토피아'다. 아무리 봐도 특출난 감독이다. 세상이 무너졌는데 아파트 한 채만 유일하게 홀로 우뚝 서 있다. 이 당황스럽고 기막힌 설정은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관통하는 본질이다.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침입과 아파트를 지키려는 입주민들의 방어, 극단적인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그럼에도 신념을 지키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결국엔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의미까지. 영화는 재난을 마주한 다양한 인간군상의 민낯을 그리면서도 독특한 블랙코미디 감성을 유지하는데 그럼에도 스멀스멀 스릴러적 불길함이 도사리고, 그 흔한 감정 과잉, 흔히 말하는 '신파' 없이도 재난의 끔찍함과 비탄을 느끼게 한다. 여기에 '아파트'를 주무대로 삼아 실제 사회 현상에 대한 뼈아픈 메시지와 공감을 전하는 엄청난 수작이다. 그야말로 영특한 엄태화 감독이다. 정작 본인은 주변의 평가에 들뜨지 않고 유난히 섬세하고 진중할 따름이다. 원작은 김숭늉 작가의 '유쾌한 왕따'이다. "왕따인 아이들이 학교가 무너져 집으로 돌아가보니 사람들이 이상해진 상태다. 원래 이런 디스토피물을 좋아하는데 영화화할 때 어디가 가장 효과적일까 생각했다. 아파트처럼 한국사회를 집약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더 좋은 장소는 없겠다 생각했다.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라면 괴롭고 슬프기도 한 정서와 애환이 있지 않나. 이런 이야기를 장르영화를 통해 재밌게 보여줄 수 있겠단 자신감이 있었다"는 감독이다. 감독은 아파트를 더 알아야겠단 생각으로 공부를 했다. 그때 1960년대부터 아파트가 정치적, 사회적으로 어떻게 생기게 됐는지를 다룬 박해천 작가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란 책을 보게 됐고 이를 가제로 썼다가 그대로 영화 제목이 됐다고. 실제 영화의 오프닝은 현실 다큐로 시작되며 과거 한국전쟁 이후 '살 곳이 없어 만든 아파트'가 어떻게 점층적으로 변화하고 사회적인 과열 현상을 일으키게 됐는지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빠르고 효과적으로 담긴다. 이 또한 인상적이다. "공부를 하다보니 제가 어릴 때부터 나고 자란 아파트가 이런 맥락으로 지금의 형태가 됐구나를 알게 돼 좀 더 흥미로웠다"는 감독은 무조건 재밌는 영화를 만들자고 다짐했다. "전작들도 재밌게 찍으려 했지만 약간 날이 좀 서 있는 느낌이 있다. 이번 영화는 정말 재밌어야 관객이 주제나 의미도 찾고, 영화에 숨겨진 디테일도 찾아낼거라 생각했다. 재미가 없으면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느낌이 들어서 재미가 뭘까를 생각했다. 내가 몰입할 수 있는 인물이 있고 그 인물이 내린 선택을 같이 생각해 보고 그런 선택들도 인해 예측할 수 없는 뒷 상황들이 계속 벌어지면 그게 몰입이자 재미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최대한 그걸 놓치지 않는 방법으로 만들어야겠단 생각"이었다고.     다행히 이병헌이 흔쾌히 출연을 수락했다. 엄태화 감독은 "캐스팅 되는 순간부터 너무나 감사했고 확신이 있었다. 극 중 영탁의 회상 신 중 바둑알 신을 찍는데 제가 모니터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배우님도 모니터링을 하시면서 '내 얼굴이지만 처음 보는 얼굴'이라고 말씀 하셨다. '이렇게 30년을 수많은 작품을 하신 분인데도 새로운 얼굴이 나오는구나,, 그만큼 계속 시도하고 노력하는 배우구나' 감탄했다"는 감상이다. 극 중 이병헌이 맡은 영탁은 아파트의 화재를 진압하며 그 민첩성과 결단력, 희생정신으로 입주민들에 '추앙'을 받으며 단숨에 입주민 대표가 되는 인물이다. 그는 초반 어딘지 어리숙하고 맹해 보이는 모습에서 점차 권력의 힘과 무게에 도취돼 종국엔 집착과 광기를 일으키는 인물로 변모한다. 감독은 "이 영화의 초중반의 톤은 블랙코미디라 생각했다. 입주민들이 유토피아를 착각하는 모습은 더욱 풍자적으로 보이고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게끔 했다. 그러다 영탁이 '아파트'란 노래를 부르는 순간부터는 이 영화에서 빠져나갈 틈이 없게 하고 싶었고 그때부터 스릴러의 톤을 갖고 가다 그 응축된 에너지가 마지막에 터지듯이 하고 싶었다"고 극의 흐름과 상징성을 설명했다. 이를 위해 음악의 변주도 매우 중요했다. 재밌는 건 조수미의 '봄의 소리 왈츠'를 삽입한 비하인드다. "한국 사람이라면 조수미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으면 2002년 월드컵 당시의 환희가 떠오르지 않나. 그런 유토피아적인 기시감을 끌고 오잔 생각"이었다고. 이밖에도 후반 작업을 오래도 했는데 CG를 최대한 리얼하게 살리려 했고, 무려 2년 동안이나 음악 감독과 함께 영화 톤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놀아보려 애를 썼다는 감독이다. "황궁 아파트는 86년도에 지어진 아파트로 설정했다. 영광의 시대를 나타내는 것 같은, 그 시기의 신시사이저 악기들을 많이 사용했고 그러면서도 재난이 벌어져서 선사시대로 돌아간 느낌이니 뼈가 부딪히는 느낌의 타악기도 써보자 했다. 정말 여러가지 시도를 많이 했다"는 설명만 봐도 감독의 치밀한 작업 정신이 엿보인다. 특히 또 흥미로운 작업 비하인드는 실감 나는 미술이다. "미술에 정말 신경을 많이 썼다. 이 집들을 만들 때 사람이 한 명도 안 나와도 누가 사는지를 알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을 드렸다. '집의 시간들'이란 다큐를 보며 느낀건데 사람이 한 명도 안 나온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이 사는지 알겠더라. 우리 영화도 이 아파트, 집이라는게 인물들만큼이나 중요한 하나의 캐릭터로 보였으면 해서 정말 디테일하게 작업했다. 그런 재미도 찾아보셨으면 좋겠다." 이토록 세밀하고 섬세한 작업을 통해 완벽한 작품이 탄생되는 것이다. 요즘 국내 관객이 질색하는 '신파' 코드가 배제된 점 또한 감독의 답변이 매우 심플하다. "이 영화가 가진 무드를 깨지 않는게 중요했다. 모든 균형을 잡으려 하다보니 그런 코드가 왜 굳이 필요한가 싶었다. 제가 생각하는 톤 안에서 완성도를 만들어가는 게 더 좋지 않을까 그런 판단을 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참 신기한 재난 영화다. 결국 안전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없다. 허무와 절망감을 동반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을 통해 희망을 말한다. 감독은 "희망으로도 보고 절망으로도 보고 그런 이야기를 관객 분들께서 서로 나눠주시면 좋겠단 생각이다. 그래도 이 영화의 톤과 무드 안에서 가장 현실적인 희망이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명화란 인물이 중요한 건 대안은 없지만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모두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기에 시도조차 안 할때 방법을 찾아보자고 얘기할 수 있는 것, 그것이 희망이 아닐까 생각했다"는 것이다. 감독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와 인간의 모습이다. "내가 배고프면, 상대도 배고프지 않을까. 내가 아프면 저 사람도 아프지 않을까. 이런 정도의 질문을 서로 가지고 살면 어떨까. 본인이 처한 현실이 극단적일수록 나만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어렵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그런 생각을 갖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감독의 '유토피아'다. 엄태화 감독, 은근히 따스한 심성의 사람이구나 싶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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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크리트 유토피아' 이병헌의 광기를 보았다 [인터뷰]

    온 세상을 집어삼킨 대지진, 모든 것이 폐허가 된 서울에서 기이하게 홀로 우뚝 솟아있는 아파트 한 채. 살기 위해 몰려드는 생존자들, 그리고 살기 위해 내쫓는 입주민들. 지옥 같은 아비규환 속, 살아남기 위해선 기존의 사회 규범과 도덕적 양심은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그렇게 점차 생존이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며 변모하는 인물의 민낯을 소름 끼치게 사실적으로 그려낸 이병헌. 그에게서 광기를 보았다.  모든 것이 무너졌는데 홀로 남은 아파트 한 채라니, 기이하고 장르 영화적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비현실적 상황이다. 하지만 이병헌은 바로 여기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재미를 느꼈다. "시나리오 받기 전에 이 설정을 들었을 때 정말 만화같지 않나. 오히려 이 안에 많은 이야기가 들어가고 벌어질 것 같았다"는 그는 "재밌겠다 싶어서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기대했던 것만큼이나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절대악도, 절대선도 없이 상식선 안에서 공존하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이야기. 그러나 극단적인 상황 탓에 갈등이 계속되는 지점들이 그의 취향을 저격한 것이다.  영탁은 아파트에 발생한 화재를 순식간에 해결하며 존재감을 떨치고 이로 인해 황궁 아파트 주민 대표로 발탁된다. M자 탈모가 부각되는 뻗친 머리와 어딘지 어리숙한 외양과는 달리 아파트를 지키겠단 마음으로 발휘된 리더십과 빠른 판단력, 희생 정신이 주민들의 환심을 단단히 샀고 이로 인해 공고한 권력을 얻게 된다.  이병헌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영탁의 감정이 시작됐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진 설명은 "영탁은 과거 여기저기서 당하고 그러면서 분노와 우울, 무기력을 느끼는 등 정말 많은 것들을 짊어진 소시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직업이 무엇이고, 과거가 어땠는지가 중요하지 않은 상황에서 입주민 대표가 되고 난생처음 권력을 쥐어보며 심경의 변화가 조금씩 생기는 시작점이 됐다"고. "처음엔 완장을 찼을 땐 그게 완장인줄도 몰랐을 거다. 그러다 대표로서 내 아파트,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뭔가 한번 해보려 하고 자신도 모르는 새 새롭게 시작된 두 번째 삶에서 권력의 맛을 느낀다. 그것이 아주 기형적인 형태로 커져 가는데 본인은 느끼지 못한다." 영탁은 극 중 가장 드라마틱하게 변모한다. 극한 상황에 마주한 인간의 극적인 변화와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인물로서 숨막히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엄태화 감독은 "캐릭터의 사연을 얼굴 표정으로 한 순간 다 표현해 내는 장면을 보며 '아 이게 진짜 영화구나'란 생각을 했다"고 감탄했을 정도다. 실제 극 중 영탁이 핏발 선 눈으로 아파트 지키기에 사활을 걸고, 기존 사회 규범에 어긋난 행위를 서슴지 않고 저지르며 정당성을 요구할 때 그의 차갑고 광기에 휩싸인 얼굴은 말로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서늘하고 충격적이다.  이에 이병헌은 "모든 인물이 변화가 있지만, 영탁의 변화는 캐릭터를 그리는 포인트라고 생각했다. 어느 순간부터 악역, 선역을 따지기보다 사람을 그리려 했던게 맞는 것 같다. 영탁은 굳이 따지면 악역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이 인물을 연기할 때 인물이 하는 행동과 말을 이해는 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영탁 입장에선 이게 최선이라 생각하며 해선 안 될 짓들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극 후반 광기로 폭주하는 영탁의 모습은 "리더였고, 나를 따르던 사람들이 도리어 나를 내몰려고 할 때 진짜 말도 안 되게 억울하겠구나 분노가 쌓였겠구나 그 상황에서 물불 안 가리고 아무것도 안 보이는 상태일 거라 생각했다"고 귀띔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신은 주민 잔치에서 '아파트'를 부르는 신이다. "애초에 콘티를 볼 때도 마을 파티가 열리고 여기서 술도 취하고 마지못해 떠밀려 아재 춤을 춰가며 노래를 흥얼흥얼 부르는데 프레시백이 나오고 이게 끝나면 극단적 클로즈업이 된다. 이 장면의 의도를 아니까 굉장히 좋은 시퀀스가 되겠구나 상상하며 촬영했고, 실제로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임팩트 있는 신이 됐다."  엄태화 감독은 박찬욱 감독의 '쓰리몬스터'를 찍을 당시 막내 연출부로 만나 인연이 있었다. 감독의 기발함과 연출력을 칭찬하던 이병헌은 "엄태화 감독이 정말 착하다. 배우에게 디렉션을 거의 안 주는데 신인 배우들은 막막할거다. 그래서 전 일부러 많이 말을 걸었다. '이 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뭘 보여주려 하느냐, 그 의도는 뭐냐' 그렇게 대화를 하며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하고 서로 많이 고쳐간 부분들이 많은 영화"라고 특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특히 "영화의 정서가 정말 좋았다. 피식피식 웃게 되는 블랙 코미디가 있지만 이상하게 웃을수록 긴장감이 커지는 것. 그게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자 색깔"이라고 자신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정식 개봉 전 이미 전세계 152개국 선판매를 시작으로 각종 해외 영화제 러브콜을 받으며 글로벌한 관심을 받고 있다. 이병헌은 "지진이 벌어진 상황을 그린 현대물이기에 외국에서도 공감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 특성을 담은 아파트라는 공간. 여기에 집착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사회적인 의미는 다른 문화처럼 생각될 것 같아 궁금하고 흥미롭다"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여전히 신비로운 배우이고 싶다는 이병헌은 늘 관객에 작품을 내보이기 전 그 역시도 긴장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옛날에는 언제쯤이면 연기에 대한 부담이 없어질까 생각했다. 문득 아직도 부담을 가져야 하나 싶을 때도 있지만 나름 확신을 갖고 자신있게 연기했는데 내 감정이 관객에 고스란히 전달 안 되면 어떡하나, 상식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면 어떡하나 하며 늘 떨리고 긴장된다"고. 관록의 대배우도 이 정도 엄살은 피울 때가 있다.  사진=BH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