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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박사 퇴마 연구소' 김성식 감독, 떡잎부터 남다르다 [인터뷰]

    봉준호, 박찬욱. 한국 영화사의 상징적인 두 거장을 거치며 될 성 부른 나무의 남다른 떡잎을 틔운, 준비된 신임 감독 김성식. 오랜 영화 경력으로 단단히 쌓은 내공과 열망을 군더더기 없이 풀어낼 줄 아는 비범한 신인의 등장이다. 이제 꽃 피울 일만 남았다. 오컬트 판타지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은 익숙한 듯 참신하다. 기존 퇴마 소재 영화에서 봐왔던 설정과 캐릭터를 비튼 신선한 시도, 간결하면서도 능수능란하게 장르적 거부감을 상쇄하고 극적인 효과를 이끌어내는 연출이 탁월하다. 낯선 이름 김성식 감독의 첫 연출작이지만, 그의 필모그래피는 몹시 화려하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홍원찬 감독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에서 조감독을 했고 장준환, 연상호 감독도 거치며 단단한 영화 경력을 쌓은 이다. 애니메이터 출신이기도 한 감독은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에서 "원작에서의 빙의 설정이 재밌었다. 하지만 추석 개봉을 목표로 전 세대가 즐길 수 있는 액션물을 만들기 위해 오컬트 판타지는 외피이고, 현실과 너무 동떨어지면 리얼리티가 떨어질 것 같아 이 부분을 조율하며 염두했다"고 했다. 덕분에 영화는 유쾌하고 간결한 기조를 유지한다. 귀신 잡는 유튜브를 운영하며, 의뢰인의 심리 상태를 간파해 이를 화려한 말빨로 홀려놓고 첨단 장비를 이용해 블록버스터급(?) 가짜 퇴마쇼를 벌이는 천박사(강동원), 인배(이동휘) 콤비. 엉뚱한 퇴마 콤비의 모습이 전형적인 장르의 범주를 벗어난 탓에, 이후 신비한 토속 신앙과 오컬트적 세계관에 돌입해서도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영리한 전략이다. 감독은 "제일 중요했던 건 천박사 캐릭터다.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맛이 있는 캐릭터를 좋아하한다. 마치 '카우보이 비밥'의 스파이크 스피겔 같은 쿨하면서도 헐렁한, 매력적인 캐릭터를 그려보고 싶었는데 그런 지점을 천박사에 접목시키려 했다"고 설명했다. 강동원이 아니었다면 연출을 포기했을 것이라고 말할 만큼 그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그는 "동원 선배님이 인트로에서 내비게이션 소리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이미 모공과 동공까지 보이는 디테일에 희열감을 느꼈다"고 너스레다. "평소 생각했던 영화적 이미지가 있었다. 눈을 보며 쌍꺼풀이 없는 쪽은 복수심과 결의가 느껴지고, 있는 쪽은 사슴 같기도 하고 약간 슬퍼 보이기도 한다. 그런 부분을 따로 부각하며 찍을 때 역시 '맞았구나' 하며 쾌감이 느껴지고 재밌게 찍었다"고. 비단 강동원뿐만 아니다. 영화 속 모든 출연진들이 조화를 이루는 것도 감독의 탁월한 캐스팅 안목을 엿보게 하는 요소다. 특히 이런 장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빌런 역할은 배우 허준호가 맡았다. 신의 한 수다. "애초부터 범천 역은 선배님을 생각했다. 주름만으로도 무서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범천의 첫 등장도 생각해 둔 이미지가 있었다. 마치 '지옥의 묵시록'에서 말란 브론드가 연기했던 역할처럼, 햇빛이 반만 비치고 있는 어둠 속에서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섬뜩함을 중점적으로 표현하려 했다"는 감독이다. 애니메이터 출신 감독답게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과정이 퍽 훌륭하다. 사실, 웹툰 원작의 기본적인 캐릭터 설정과 '빙의' 소재만 따와서 이를 자신만의 영화적 해석과 상상력으로 풀어낸 지점도 꽤 놀라웠다. 특히 천박사와 유경의 기본 설정을 제외하곤 전부 새롭게 창조된 캐릭터와 스토리다. 감독은 "원작의 빙의 소재가 재밌었다. 이를 소재로 해서 귀신을 어떻게 가둘까 상상을 하니까 새로운 그림이 펼쳐지더라"며 "한국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어 설경을 찾아보게 됐고 이를 구체화하며 쇠사슬로 악귀를 잡아가두는 모습 등을 떠올렸다"고 귀띔했다. 귀신을 잡아 가두기 위해 경문과 문양을 한지에 조각한 설경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다. 게다가 빙의됐을 때 영혼이 시각적으로 날아다니는 모습 또한 감독이 스스로도 흡족하게 여기는 신이다. 놀라운 상상력의 산물이건만 "아무래도 이런 류의 만화를 좋아해서 그런가, 어렸을 때부터 이런 이미지들이 자연스레 축적됐다"고 쑥스러워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보며 애니메이션 감독을 꿈꿨던 그는,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을 보며 영화에 매료돼 군 제대 후 무작정 연출부 일을 시작했지만, 영화 전공이 아닌 데다 지방 출신인 탓에 작품 합류가 쉽지 않았다. 염원하던 봉준호 감독의 연출부에 들고 싶어 마침 '설국열차' 제작을 앞둔 감독의 소식을 듣곤 저 역시 원작을 각색한 시나리오를 들고 무작정 찾아가 "연출부가 하고 싶다"고 고백했단다. 실로 엄청난 패기다. 이에 멋쩍어하며 "너무 절박해서 그랬던 것 같다. 정말 영화 일이 하고 싶고 배우고 싶었다"는 감독이다. 이후 연락이 왔지만 흐지부지하게 됐고 비로소 '해무' 연출부로 일할 당시, 제작자인 봉준호 감독을 다시 만나게 됐다. 감독은 그를 기억했고 그때 제가 건넨 시나리오도 여즉 보관하고 있더란다. 그 인연으로 '기생충' 조감독을 맡게 됐다. 인연의 시작이다. "아마 불쌍해서 뽑아주신 게 아닐까 싶다. 지방에서 올라와 어렵게 살고 있다니까 딱하게 여기셨고 맡긴 일은 열심히 해내니까 그러신 것 같다"며 너스레인 그다. 아마도 서툴지만 절박하고 강렬했던 그의 진심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던 게 아닐까. 이후 박찬욱 감독까지 거친 그는 봉준호, 박찬욱 감독의 '키드'라는 애칭을 받고 모두의 기대 속에 데뷔하게 된 행운아다. "꿈만 같다.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살인의 추억'과 '올드보이'다. 어렸을 때 이 영화들을 볼 때의 희열감, 영화적 쾌감이 영화를 하고 싶단 꿈을 꾸게 했다. 전 성공한 '덕후'다. 돌이켜보면 영화감독의 꿈을 이루기까지 힘들었지만 버틸 수 있었던 건 운 좋게 쉬지 않고 일했기 때문인 것 같고, 이렇게 감독님들이 계속 영화를 만들어주신 덕분"이란다. 훌륭한 스승의 모습을 보고 얼마나 체화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느냐는 사실 개인의 몫이다. 감독은 맨 몸으로 부딪힌 영화 현장에서 차곡차곡 실력과 안목을 길렀다. "봉준호 감독님은 정말 꼼꼼하고 디테일하시다. 그런데 말씀하시는 것이 복잡하지 않고 간단명료하다. 그 안에 모든 게 포함돼 있다. 이를 많이 따라하려고 애썼다. 박찬욱 감독님께는 감독으로서 가져야 할 품위와 자세, 성실성과 근면함을 많이 배웠다. 두 감독님의 모습을 보고 많이 배우며 따라 하려고 애쓴 것 같다. 연출 하면서도 '감독님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고민 많이 했다"고. 그는 존경하는 멘토인 두 감독이 그러했듯 "재밌는 영화, 관객의 기대감을 배신할 수 없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 바람이다. 아주 잘 배운, 준비된 감독의 떡잎은 남다르다. 이미 천박사의 무궁무진한 시리즈도 머릿속에 그려져 있고, 유전적 변형을 일으킨 부엉이들이 서울 한복판에 섞여 살아가는 새로운 창작물에 대한 귀띔도 해준다. 몹시 흥미롭고 독창적인 설정이다. 보통내기가 아닌, 비범한 감독의 탄생. 지켜보기 즐거울 따름이다. 사진=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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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박사 퇴마 연구소' 허준호, 결코 군림하지 않는 [인터뷰]

    헌칠하고 대인스러운 풍모, 서글서글한 성품에 붙접이 좋아 사람을 절로 따르게 한다. 매 작품 범접할 수 없는 특유의 기세로 보는 이들을 압도하지만, 실상의 모습은 대반전의 연속인 배우 허준호다.   허준호는 추석 극장가를 정조준한 퇴마 판타지 영화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감독 김성식)에서 강력한 악귀 범천 역을 맡아 특유의 비범한 연기로 극을 압도한다. 그는 음산한 토굴에 정좌를 틀고 앉아 첫 등장하는 신부터 남다른 위력과 파괴적인 힘을 드러내며 공포와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특히 검은 눈동자 없이 불투명한 막이 가득한 동공과 쩍쩍 갈라진 피부의 거친 질감은 절로 소름 끼치는 비주얼이다.  정작 허준호는 "솔직히 그 현장은 앉아서 무게만 잡고 있는 신이라 과연 무서워보일까 염려했다"며 "감독님께서 카메라 구도와 음악, 조명까지 어우러져 후반 작업을 해주신 덕분"이라고도 겸손이다. 그의 성품은 이처럼 내내 겸손했고, 살가웠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들뜬 감정을 솔직하게 비치는 모습도 의외였다. 개봉 전부터 예매율 1위를 달리는 데다, 주변의 평가도 호평일색이니 "진짜 그러느냐"고 신나서 되묻기도 여러 번일 정도였다.  그는 처음 대본을 읽고 순식간에 읽히는 속도감에 감탄했다. 하지만 만만치않은 액션을 수행해야 했기에 선뜻 역할이 내키진 않았다. "주변에서 다들 왜 안 하려 하느냐고 강력히 추천했었다. 하지만 제 몸은 제가 잘 알잖나. 과연 이 액션을 다 해낼 수 있을까, 내 동작이 너무 느려서 이 좋은 배우들과 작품에 방해가 되는 건 아닐까 솔직히 고민이 많았다"는 그는 "해낼 수 있을까 겁이 났다"고 당시의 심경을 털어놨다. 데뷔 38년 차, 관록의 배우가 이토록 폼 재는 법 없이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이 의외다. 결국 고민 끝에 도전을 택했으나 의외로 액션에 대한 자신감과 욕심이 생겼다는 그다. 매 신 한 동작을 열 번 이상 찍으며 많은 테이크를 연결해 소화해야 했던 과거의 촬영 방식과 달리, 디테일한 작업으로 끊어 찍는 현재의 촬영 기법에 놀랐다고 순수하게 감탄한다.  극 중 허준호는 묵직한 무게감과 파워가 느껴지면서도 탄탄한 내공이 엿보이는 노련한 검술 액션으로 천박사 역의 강동원을 압도하고 위기감을 고조로 치닫게 한다. 액션에 대한 걱정은 그의 괜한 기우이고 엄살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허준호는 허허 웃으며 "동원이는 팔만 뻗어도 선이 곱고 예쁘지 않나. 그런 친구들이 하는 액션 선은 남다르다"며 "저는 액션을 해냈다는 게 가장 기쁘다. 사실 현역에서 뛰는 이 나이대 액션 배우가 별로 없지 않나. 하지만 이번 작업처럼 촬영한다면 앞으로도 더 하고 싶다"고 했다.  오히려 영생을 향한 강력한 욕망을 지닌 악귀 캐릭터의 내면적 접근은 간단 명료했다. 이전에도 장르물은 익히 해봤기에 이에 대한 경계나 거부감이 없었단 그는 "저는 장르를 보지 않고, 스토리를 본다. 재밌는 대본을 선호했다"며 "어떤 작품이든 인물에 몰입할 땐 가장 쉽게 접근한다. 지금은 '설경을 뺏어야 해. 내 걸로 만들어야 해. 천박사를 죽이자. 이것들을 갈아 마셔버리자' 하는 마음으로 다가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의외로 간단하다. '동원이를 세상에서 제일 세게 때려보자' 하는 타격감으로 때렸다"는 너스레다.     쉽게 이야기하지만 연기에 대한 그의 진지한 고민과 태도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허준호는 대본에 집중하는 '대본파' 배우다. "대본을 정말 충실히 본다 현장에서도 보고 또 보고 끊임없이 본다. 될 수 있으면 많이 보고, 쉼표와 말줄임표의 의미까지 그 뜻을 찾는다. 그 대본 안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자꾸 더 보게 된다. 그러면 어느 순간 제 상상과 그림이 펼쳐지고, 여기에 녹아들게 된다. 그리고 감독님과 상의하며 보강할 것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연기 디테일이 놀라울 만큼 섬세했다. 영화 후반 쇠사슬에 묶여 설경에 빨려 들어가는 신을 두고 "CG 입힌 완성본을 보니 사슬에 불이 들어오더라. 촬영할 땐 압박감에 대한 리액션만 연기했기에 제 안에 뜨거움에 대한 표현이 없더라. 그 감정선이 너무 미흡해 계속 아쉽고 후회가 된다"고 했다. 이미 강력한 집착과 분노로 이글거리다 무섭게 소멸해 가는 모습이 충분히 인상 깊었음에도 배우는 이토록 깊은 아쉬움과 후회로 자책한다.  허준호는 "관객이 만원도 넘는 돈을 내서 영화 한편을 보고 집에 들어가기까지 최소 네다섯 시간이 걸린다. 그 소중한 시간을 제게 써주시는 건데, 설렁설렁해선 안 된다. 지금 넷플릭스만 해도 제가 안 본 작품이 수십, 수백 개가 걸려있다. 이 와중에서 선택되려면 알찬 작품이어야 한다. 그 속에서 제가 배우로서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하고 이런 디테일함을 살려서 연기로 보답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래야 스스로에게 떳떳할 것 같단 확고한 생각이다. 이처럼 지독하고 철저한 연기관이 있기에 그의 연기는 매번 어느 작품에서도 유독 강렬한 잔상을 남기는 것일 테다.  그는 이번 영화 현장이 유독 즐거웠다. "토굴이랑 법당에만 갇혀 있어서 흙가루와 먼지가루를 엄청 먹느라 기관지가 굉장히 힘들었다"며 우스갯소리지만 "정말 좋은 팀을 만나 행복한 작업을 했다. 작품도 얻고, 사람도 얻은 현장이다. 영화에 대해 건강하고 치열한 논쟁을 하는 친구들을 뒤에서 지켜보며 여기에 함께 섞여 들어가 작업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또 문경의 겨울은 너무 좋았다"고 회상한다.  군림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단 그의 바람도 사람 됨됨이를 엿보게 한다. "사람들이 절더러 다가오기 힘든 얼굴이라 한다. 제 아내도 그런 말을 한다. 현장에 가면 어느덧 아저씨, 할아버지 뻘이다. 얼마나 불편하겠나"라며 사람 좋게 웃는 그는 "저는 한 번의 공백기가 있어서 지금의 삶이 좋다. 연기는 그냥 제 일이다. 일어나면 생각하는 해야 될 일. 행복하고 편안하고 감사하고 기적인 일이다. 물론 오래 했다고 편한 건 없다. 남에게 제가 들어가야 하는 작업이라 어렵다. 하지만 해내고 나서의 성취감과 좋은 평가들을 얻는 뿌듯함에 달리고 또 달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인정하고 탐내는 관록의 배우지만, "이런 역할을 믿고 주시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 말할 수 있는 그의 겸손한 성정이 따스한 인간미를 느끼게 한다. 앞으로도 그는 "언제나 필요한 배우"가 되고 싶단 바람이다.  사진=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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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7 보스톤' 임시완의 맑고 지독한 광기 [인터뷰]

    가난하고 무력한 시대의 울분을 온 힘을 다해 달리며 항거하고 민족의 긍지와 자긍심을 키운 국민 영웅, 모르고 잊힌 역사 속에 잠든 그를 생생한 숨결로 살아 숨 쉬게 한 배우 임시완이다.  강제규 감독의 신작 '1947 보스톤'은 광복 이후 손기정 감독, 남승룡 코치, 서윤복 선수가 태극마크를 달고 우리의 이름으로 국제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 금메달을 거머쥐기까지의 험난하고 뜨거웠던 여정을 담은 실화다.  가엾고 비참한 시대가 가장 큰 허들이자 빌런인 영화에서 불가능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끝까지 달리는 청년 서윤복의 모습은 뜨거운 감회에 젖게 한다. 실존 인물을 연기한 임시완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번 대본을 받고 서윤복 선수의 이야기를 처음 접했다. 이렇게 의미 있고 대단하신 역사적 인물인데, 왜 더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까. 이번 작품을 통해 손기정 선수뿐만 아니라 남승룡 선수, 서윤복 선수에 대해 많이 알고 자랑스러워해 주셨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임시완은 인물에 대한 역사적인 접근보다 외형적인 모습을 따라가고자 했다. 관객의 믿음을 얻기 위해 불굴의 마라토너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단 판단이었다. "이 작품에 임하기에 앞서 이런 대단한 실존 인물을 제가 분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책임감을 동반하는 작업이 될 것이란 마음가짐을 새겼다. 서윤복 선생님만큼, 태극마크를 달고 뛰는 국가대표 선수들만큼은 안될지언정, 작품에 임하는 동안은 국가대표의 마음가짐으로 살자고 마음먹었다"는 그는 극한의 체력 조절에 들어갔다.  작품 선택 후 촬영에 임하기 전 3개월, 촬영 5개월, 총 8개월의 시간을 국가대표 훈련양에 맞먹는 체력단련과 식단 조절을 한 그다. 그 과정을 들어보니 혀를 내두를만큼 독하다. 심지어 잔근육을 더 도드라지게 보이도록 이틀간 물도 끊었을 정도다. "감독님께서도 요구하지 않으셨는데, 제 스스로 만족을 위해 극한까지 해보고 싶었다. 그래도 인생을 살며 한 번쯤은 이렇게 해보고 싶단 생각 때문"이라며 해맑게 웃는 '맑은 눈의 광인'이다.  "몸을 만드는데 제일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란 그는 "물을 끊었던 순간은 눈 앞이 흐려지고 안 보이는 등 너무 아찔한 경험이었다. 근육에 계속 자극을 줘서 탄탄하게 유지해야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계속 꺼져서 이 텐션을 유지하는 게 달리기보다 더 힘들었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 결과 체지방률 6%까지 도달했다. 지독한 광기다. "국가대표의 마음가짐으로 작품에 임한 거였는데, 만약 다시 하라 한다면 심도 있는 고민을 할 것 같긴 하다"며 그저 싱긋 웃는다.  이번 작품 덕분에 실제로 마라톤에 빠지기도 했다. "새로운 공간에 가면 뛰고 싶은 로망이 생기더라. 마라톤이 취미에 맞다"고. 완성된 영화를 볼 때도 마라톤에 심취해 경기 장면은 스스로 찍은 장면임에도 자신이 더 울컥하며 응원하게 되더란다. 그만큼 뜨거운 목표 의식을 담아내려 했다. "그들의 열정과 마음가짐이 얼마나 뜨거웠을까. 이를 극대화하는데 초점을 맞췄고, 각 분야의 서윤복 선생님 같은 분들이 일궈낸 결과들이 모여서 지금의 우리가 있겠단 생각이었다"고.    연기하며 감독과 선수로 호흡을 맞춘 하정우에게 영향을 받기도 했다. 임시완은 "제가 연기할 때 하나에 집중해서 몰입하면 시야가 좁아지는 느낌이 많이 든다. 그래서 다시 볼 때 '왜 저렇게 했을까. 다르게 했어도 좋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정우 형은 그런 긴장에 대한 완급 조절을 정말 잘하신다. 그런 모습을 배우려 했다"고 털어놨다.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단 그는 "원래도 궁금증이 많은데 가뜩이나 좋아하는 연기를 하다보니 더 파고들고 싶고, 저보다 더 뛰어나고 경험이 많은 분들은 어떤 노하우를 갖고 있는지 탐구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그만큼 연기가 좋다는 임시완이다. "왜 좋을까 생각해보면 연기의 과정 자체가 참 숭고한 작업 같다. 제가 혼자 오롯이 고민하고 풀어야 하는 숙제가 있고 이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어떤 감정과 과정을 거쳐 이런 공식을 만들었는데 이는 누가 됐던 틀렸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스스로 이런 내면의 세계를 만들고 그 고유영역에서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이 연기의 큰 매력 같다"는 심오한 설명이다.  이어 "연기자로서 어떤 작품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기에 기회가 왔을 때 이를 잡을 수 있도록 나를 만들어놓자는 생각"이라며 "이제껏 색다른 것들에 도전하는 과정이었고 점차점차 임시완이란 사람의 색깔과 방향성이 정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정해졌다면 더 집중하고 극대화해서 임시완이기에 해낼 수 있는 것들이란 목표를 이루고 싶다"는 포부를 전한다.  이토록 연기에 대한 열정이 뜨거운 임시완이다. 그 마음으로 '1947 보스톤'이라는 의미 깊은 레이스를 끝마칠 수 있었다. 그는 "저는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자세히 모르지만, 가슴 뭉클함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감독님께 정말 좋은 영화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며 만족과 존경을 표했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