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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문재인입니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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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3-05-10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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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으로 5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문재인 대통령은 평산마을에서 새 삶을 꾸린다. 수염은 덥수룩하고 편안한 옷차림에 낫과 호미질을 하며 텃밭을 가꾸는 모습이 영락없는 시골 할아버지다. 개와 고양이의 밥을 챙기고 털을 빗기며 산책을 가는 평범한 일상. 따스하고 편안한 한 사람의 한가로운 일상과 함께 오랜 시간 그의 곁에서 동고동락한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 문재인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영화 '문재인입니다'다. 


'문재인입니다'는 전작 '노무현입니다'를 만든 이창재 감독의 작품이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 재임시절 기획됐지만 오랜 여정을 거쳐 퇴임 이후의 모습을 담게 됐다.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생의 아이러니를 포착해내는 다큐멘터리스트 감독은 문재인이라는 한 사람을 고즈넉히 담아낸다. 마치 문재인을 연상케하는 고요함과 침착함이, 전작 '노무현입니다'의 격동적인 톤앤매너와는 사뭇 다르다. 


청와대 시절에도 점심시간 참모들과 산책을 즐기며 정원에 핀 들꽃들에 일일히 관심을 기울이던 대통령은 현재 평산마을에서 본격적으로 텃밭을 가꾸는 일에 한창 열중해있다. '야생화를 좋아하는 이상한 대통령' '할배' '잘 들어주는 사람' 등등 주변인들의 감상과 함께 "사실 노는게 더 좋다"고 허허실실 웃으며 말하는 문재인의 모습이 한없이 인간적이다. 


영화는 고요하고 한적함 속에서도 불현듯 평산마을 사저를 찾은 격렬한 극우세력 시위대들의 폭력적인 모습을 여과없이 다뤄내며 불안감을 엄습하게 한다. 온갖 모욕적인 언행이 난무하다. 그럼에도 문재인은 묵묵하다. 그저 밭을 일군다. 김정숙 여사가 발끈해서 시위대를 쫓아가 소리치는 모습도 포착된다. 


영화는 조금 더 세밀히 문재인이란 사람을 들여다본다. 정치가 싫었던 인권 변호사는 왜 대통령이 됐을까. "내가 그렇게 눈물이 많을 줄 몰랐다"는 문재인의 말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당시가 펼쳐진다. 평생의 친구이자 비서실장으로 곁을 지킨 이가 떠난 후, 정치가 싫어 고향에 칩거했던 문재인을 시대가 끌어냈다. 시대의 부름에 세상에 나왔지만 준비가 되지 않았고 첫 좌절을 겪을 당시 주저앉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결단을 내리면 포기하지 않는 강직함이 있다. 이윽고 촛불의 힘으로 정권을 바꿨고, 문재인의 재임 시절 일화도 좀 더 내밀히 담겼다. 트럼프의 방위비 증액 엄포에 단호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모습, 언론이 부추기고 대중은 답답함을 호소하며 불평을 쏟아내던 때도 문재인은 흔들리지 않고 대통령으로서 그가 지켜야 할 소신을 지켜낸다. 


문재인은 상대를 바라보고 기다려주고 들어준다. 그 태도에 상대를 존중하는 모습이 자연스레 배어나온다. 재임 시절 장관들의 보고서 역시 미리 보고받아 요지를 알고 있음에도 섣불리 결단하고 속단하기보다 그들의 말을 온전히 들어주는 사람이라 한다. 측근은 이를 두고 "때론 너무 고구마"라며 핀잔하기도 한다. 


영화가 보여주는 문재인은 선하고 올곧다. 때론 선한 의지가 화가 되기도 한다. 누구와 함께 소주 한잔을 하고 싶냐는 물음에 "조국"이라 답했다는 일화가 씁쓸하다. 


반려견 송강, 곰이의 반환 논란도 안쓰럽다. 정상회담 당시 북에서 선물받아 새끼까지 받아내며 길렀던 아이들이다. 제3자 위탁 관리 규정을 두기로 약속했건만 소식이 없고 대통령 기록물인 탓에 위법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 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가 자연스레 연상되는 부분이다. 결국 아이들을 떠나보내며 "그래도 같이 붙여놓겠지?"라고 결국 눈물을 보이는 김정숙 여사와 묵묵히 침묵을 지키는 문재인이다. 


영화는 모든 논란과 의문 속에서도 사람 문재인의 모습을 묵묵히 담아낸다. 수많은 평가와 호명 속에서 살아온 한 남자의 삶이 어렴풋이 보인다. 결국 극우 세력 시위대의 위치가 변경되는 순간까지, 직접 심은 당근을 수확해 캐내기까지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을 묵묵히 버티고 견뎌낸 한 사람의 뒷모습이 많은 감상을 느끼게 한다. 


한낱 들에 핀 이름모를 꽃과 잡초에도 애정과 온기를 기울이는 따스함이, 미련할만큼 우직한 그 모습이, 그저 문재인이다. 기교와 과장 없이 전직 대통령이었던 '사람 문재인'을 들여다보는 영화 '문재인입니다'는 조용하고 정직하다. 탐구한 그 대상을 쏙 빼닮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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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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