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 부리다 본질 놓친 '젠틀맨' [리뷰] > 리뷰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멋 부리다 본질 놓친 '젠틀맨' [리뷰]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2-12-28 11:39

본문


c.jpg

'멋'은 살았으나, '맛은' 살리지 못했다. 스타일리시한 영상미와 감각은 황홀한데, 영 산만하고 허술한 스토리와 결합되니 그저 빛 좋은 개살구다. 영화 '젠틀맨'(감독 김경원)이다. 


시작은 흥미롭다. 볼펜으로 책상을 탁 치는 소리에 이어 또각대는 구두굽 소리가 리드미컬하게 반복되며 색다른 리듬감으로 몰입감을 올린다. 여검사와 마주한 깔끔한 슈트 차림의 멋들어진 남자. 그의 나지막하고 젠틀한 내레이션으로 연결되는 회상 신까지 감각적인 도입부다. 


검사 사칭범으로 취조를 당하고 있는 남자는 의뢰받은 사건은 100% 처리하는 흥신소 사장 지현수(주지훈)다. 불륜 사건 의뢰는 왠지 하기 싫던 어느날, 한 여성이 헤어진 전 남자 친구가 데려간 강아지를 되찾으러 가는 길에 동행해 달란 의뢰를 했다. 그렇게 찾아간 교외 한 고급 저택에서 여성은 갑자기 실종됐고, 자신은 습격당한 뒤 깨어보니 납치 용의범이 돼 현장에서 검사에게 검거된 상황. 엎친데 덮친 격, 검사와 동승하던 차량이 난데없는 교통사고를 당한다. 극 초반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 차량 전복 신은 스타일리시한 영상미의 절정이다. 탑승한 차량이 360도 회전하는 가운데, 유리 물병이 깨지며 흩날리는 파편들이 마치 크리스탈처럼 영롱하게 반짝인다. 이는 해당 사건이 '마약'과 연관돼 있음을 알리는 감각적인 장치다. 게다가 세계적인 명곡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 선율이 힘차게 흐른다. 정형화돼있지 않은, 독특하고 감각적인 영상미와 리듬감으로 기대감을 극대화하는 '젠틀맨'의 도입부다. 


그러나 잔뜩 달아오른 기대감은 갈수록 허무하게 바스러진다. 교통사고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만큼 심하게 훼손된 몰골의 검사를 대신해 누명을 벗기 위해 검사를 사칭한 흥신소 사장. 이를 제대로 된 신원확인 없이 동조하고 있는 경찰과 검사는 아무리 드라마틱하고 과장된 영화적 설정이라도 영 찝찝함을 남기는 개연성이다. 


지현수는 신원을 속인 채, 대검 검찰부에서 20억대 검사 스폰 사건으로 특수부 검사들마저 잡아들이다 좌천당한 독종 검사 김화진(최성은)과 함께 공동 수사를 벌인다. 사건을 수사해나가는 과정도, 풀이되는 과정도 개연성이 없거나 뜬금없긴 마찬가지다. 계속해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미스터리한 사건을 수습해나가는 스토리지만, 산만한 전개와 후반부 계속 꼬아놓은 복선들이 도리어 이야기의 힘을 잃게 한다. 주요 캐릭터들도 평면적이고 봤음직한 인물이다. 주지훈은 능청스럽고 뻔뻔한 특유의 매력을 과시하지만, 그의 전작들에서도 심심찮게 엿봤던 모습들이다. 또한 사건의 중심에서 극을 이끌기보다 회상 신을 거듭하고, 극의 화자가 계속해서 지현수와 김화진의 시점을 반복해서 오가기 때문에 오롯이 집중해서 빠져들기도 어렵다. 이런 탓에 강단 있는 여검사 역할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전남친이 가져간 개를 찾다 사라진 여성'이라는 몹시 흥미롭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건 설정도 결국 마약 성접대 사건이라는 흔하고 전형적인 사건으로 귀결된다. 또한 사건의 배후에 있는 극 중 빌런, 귀족 검사 출신 대형 로펌 대표 변호사 권도훈(박성웅)의 존재감 역시 미비하다. 테니스 경기에서 밀리자 상대 선수의 신체를 처참하게 훼손하란 지시를 내려놓고 정작 본인은 고상함을 유지하는 모습은 퍽 강렬하고 흥미로운 빌런의 등장을 알리는 듯했으나, 거기까지다.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스토리 전개에 도무지 캐릭터들의 서사나 성격이 제대로 드러날 틈이 없다.    


다만 흥신소 팀원 중 늘 해맑은 웃음을 실실 흘리는 어수룩해 보이는 미행 전문 조필용(이달)만이 짧고 강렬하게 인상을 남긴다. 다급하게 다리 기브스를 깨고 맨발로 도로 위를 질주하는 자동차를 빛의 속도로 따라가는 반전 면모가 돋보인다. 이 영화 속 유일하게 새로운 캐릭터적 발견이다. 


전체적으로 영상미는 공들인 티가 곳곳에 묻어난다. 빈티지한 거리, 색감, 리듬감까지 낯설면서도 감각적이다. 그러나 매끄럽지 못하고 갈수록 빈약한 스토리가 영 거슬린다. 특히 회상 신을 거듭할수록 심각하게 꼬아놓은 전개가 도리어 발목을 잡는다. 스토리적 안정을 찾지 못하고 더욱 뒤숭숭하게 얽혀드는 꼴이다. 영화는 결국 '젠틀맨'이란 콘셉트도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 왜 이 영화 제목이 '젠틀맨'이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그저 캐릭터 대사로 "젠틀"이나 "품위" 몇 번 운운한다고 '젠틀맨'의 의미까지 전해지는 건 아니다. 콘셉트만 거창했지, 실상은 겉만 번지르르하고 그에 맞는 알찬 내용이 없다. 주지훈, 박성웅. 이 좋은 배우를 활용해 나온 결과물이라니 더욱 아쉬울 뿐이다.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공감 0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label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추천뉴스

게시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