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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 역사적 미스터리를 풀이하는 효과적 방식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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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2-11-23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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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가 최초의 의문사, 그 역사적 미스터리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놀라운 개연성을 지닌 스토리를 완성했다. 작품에 녹여낸 메시지까지 시의적절하다. 생생하면서도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하는 스릴러 사극 '올빼미'(감독 안태진)의 탄생이다.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다 8년 만에 돌아온 소현세자는 3개월 만에 의문사를 당했다.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 같았다'. 인조실록에 쓰인 이 미스터리한 한 줄의 기록이 영화 '올빼미'의 시작이다. 


어둠 속에서는 희미하게 볼 수 있는 주맹증을 가진 맹인 침술사 경수는 뛰어난 침술 실력을 인정받아 궁에 들어갔다. 그 무렵, 청에 인질로 끌려갔던 소현세자가 귀국하고 인조는 아들을 향한 반가움도 잠시 정체 모를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러던 어느 밤, 경수는 소현세자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영화는 새로운 영화적 인물인 맹인 침술사를 통해 역사적 미스터리를 파헤친다.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맹인 침술사에 밤에만 희미하게 볼 수 있는 '주맹증'이란 흥미로운 설정을 부여해 당위성과 몰입감을 높였다. 


보고도 못 본척, 알아도 모른 척 살아가던 경수는 그저 아픈 동생 건사 위해 궁에서 조용히 지내며 돈을 많이 벌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이 화려한 왕실 속 사람들의 속내가 어쩐지 뒤틀리고 기묘하다. 오줌싸개 세손, 마음의 병을 앓는 세자 등, 이들 또한 저와 같은 한낱 사람인 것이다. 경수는 제 주맹증 증상을 알고도 이를 자애롭게 받아들이며, 오히려 더 크게 눈을 뜨고 세상을 보라고 독려하는 세자의 어질고 곧은 기품에 감격한다. 그렇게 감히 정을 쌓았다. 그런 세자가 독살을 당했다. 범인을 안다. 증거를 찾기 위해 애쓰고, 이를 알린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충격의 반전이 숨어있다. 제 목숨마저 위험해진다. 


영화는 세자의 죽음 이후 하룻밤이라는 시간적 제약을 둔다. 이것만으로도 긴박함과 속도감을 동시에 살린다. 가뜩이나 밤에만 볼 수 있는 침술사에게 주어진 한정적인 시간, 그 촉박함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이 같은 제한 속에 사건의 진실을 알리려는 목격자와 은폐하려는 자의 팽팽한 추적과 대립은 강렬한 서스펜스와 긴장감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게다가 진실에 접근할수록 드러나는 거대한 음모와 이를 마주한 인물의 갈등은 스릴러라는 장르적 특색을 극대화한다. 


그렇기에 '올빼미'는 역사적 실존 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했음에도 기존 사극의 통념을 깨며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장르물로써 서스펜스를 충족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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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는 이 하룻밤 사이 계속해서 선택의 갈등에 빠진다. 엄청난 딜레마다. 영화는 장르적 기능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인물의 심리를 놓치지 않는다. 결국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진실,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두려움에 맞서는 인물의 선택과 외침은 뜨거운 울림이 된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암울한 결말이 퍽 사실적이다.


한 개인의 목소리가 세상을 바꿀 순 없다. 하지만 부당함에 맞설 수 있는 인간의 용기와 정의의 가치는 분명 값지다. 영화는 600년 전 역사적 미스터리를 영리하고 그럴싸한 접근과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은 물론 현시점에도 일맥상통하는 메시지의 가치를 담으며 의미를 더한다.      


더욱 재밌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 인물들을 절묘하게 녹여낸 점이다. 세자의 죽음 이후 며느리와 손자에게 더욱 잔혹했던 실제 인조의 역사적 기록에 의거한 행위들이 합쳐져 매우 그럴싸한 몰입감을 준다. 


인조 역의 유해진은 오랑캐에 고개 숙인 굴욕과 치욕에 휩싸인 왕의 심리를 무서울 정도로 차분한 광기로 표현한다. 첫 등장부터 미묘하게 뒤틀린 인조의 등장은 시종일관 긴장감을 놓치지 못하게 하고 분노로 안면 근육이 마비되는 상황마저 분장 없이 감쪽같이 해내는 연기력은 절로 감탄을 부른다. 


류준열은 맹인 침술사라는 불리한 조건의 캐릭터를 믿음직스럽게 해냈다. 그의 시점에 따라 변화하는 초점을 구현한 촬영 방식도 조화롭다. 


무엇보다 소현세자 역의 김성철은 그저 비운의 세자로 역사 속에 잠든 인물에 완벽한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갖은 고초를 겪었을 것이 분명함에도 꼿꼿하게 풍겨나오는 고귀한 품위는 물론, 조선을 위해 변화를 열망하던 진취적인 사고와 아버지를 향한 애틋한 연민과 원망까지. 일렁이는 무수히 많은 감정의 파고를 그저 온화한 자태에 고요히 담아낸다. 영화에 더 깊은 감상과 몰입을 이끌어내는 탁월한 연기다. 러닝타임 118분.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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