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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폰' 끔찍하게 무섭고, 따뜻하게 뭉클한 영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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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2-09-07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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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러지는 콘크리트 벽, 먼지투성이의 어둡고 음습한 지하실, 선이 끊어진 낡은 검은색 전화기. 숨막히는 적막감을 뚫고 귀를 찢을 듯 맹렬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는 공포와 긴장, 나아가 안도를 느끼게 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공감과 따뜻함을 가진 무서운 호러 영화이자, 성장 영화 '블랙폰'이다. 


1970년대, 덴버의 평화롭고 작은 마을. 어느날 알 수 없이 아이들이 사라진다. 마을 아이들 사이에선 '그래버'라는 이름을 말하는 아이들이 잡혀간다는 소름끼치는 소문이 퍼진다. 


야구부에서 투수를 맡을 만큼 팔 힘이 좋지만, 자주 동네 불량배들의 표적이 되곤 하는 13세 소년 피니는 조금 소심하고 서툴지만 현명하고 마음이 따뜻하다. 그런 피니의 수호자이자 절친한 친구가 되어주는 11세 여동생 피니는 밝고 영리하며 거침없는 성격이다. 위압적인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 밑에서 서로가 서로를 챙기고 지켜주는 남매의 우애는 마음을 부드럽게 할 만큼 따뜻하다. 


영화의 초반은 조용하고 작은 동네의 전경을 담아내며 꽤 평화롭고 고요한 인상을 준다. 오래된 시대 배경만큼이나 낡고 색바랜 이미지들이 덴버 마을의 색을 드러내며 제법 운치있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실종된 아이들의 전단지, 아이들 사이에서 퍼진 흉흉한 소문과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 싸움과 괴롭힘이 난무하는 학교의 이면, 그리고 지배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언뜻언뜻 비추며 이질감을 드러내고 점층적인 불길함을 조성해나간다. 


자연스럽게 쌓인 전개는 기어코 피니가 납치되며 본격적인 불안과 공포심을 유발한다. 연쇄 아동 납치 살인마 그래버는 베일에 싸인 존재다. 얼굴을 단 한번도 온전히 드러내지 않고 가면을 쓴 그는 아이를 차례로 납치하고 시간을 들여 괴롭히는 의식과 같은 패턴, 이른바 '나쁜 아이 벌주기 놀이'를 즐긴다. 끔찍한 트라우마와 사연을 갖고 있는 인물임은 분명하지만, 영화는 이를 밝히지 않고 끝까지 미스터리로 남겨둔다. 수시로 바뀌는 그래버의 기괴한 가면은 그 자체만으로도 혐오스럽고 소름끼친다. 본질적인 공포를 유발하는 효과적인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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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기스러운 가면을 쓴 거구의 남자. 모든 소리가 차단된 낡고 무서운 잿빛의 지하실. 그곳에 놓인 선이 끊어진 검은 구식 전화기. 영화는 잔혹한 묘사 없이도 효과적인 미장센으로 장르를 부각한다. 그리고 전화기에서 맹렬하게 벨이 울리며 적막을 깰때, 이 끔찍하고 초자연적인 현상은 죽은 아이들과 연결되는 매개체로 작용되며 공포를 넘어 도리어 희망의 원천이 된다는 점이 '블랙폰'의 특별한 묘미다. 


피해 아동들은 이 '블랙폰'을 통해 피니와 연결되고, 피니가 그들의 도움으로 갖가지 도구를 획득하고 탈출 시도를 위해 사투를 벌이는 과정은 마치 방 탈출을 연상시키며 긴박함과 몰입감을 선사한다. 여기에 영적인 감각으로 납치 사건과 관련된 의미심장한 꿈을 꾸며, 이를 단서로 어른의 도움 없이 직접 오빠를 찾아 나서는 여동생까지. 그래버라는 압도적인 괴물에 맞서는 아이들의 연대감은 대견하고 뭉클한 감동을 준다. 


이 특별한 연대는 좌절과 공포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용기'와 '성장'이라는 키워드로 귀결돼 종국엔 짜릿한 희열을 준다. 또한 앞서 실패했던 탈출 도구와 방법을 영리하게 거둬들여 최후에 적용시키는 방식 또한 영리하다.  


'블랙폰'은 호러 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의 아들, 조 힐 작가의 베스트셀러 '20세기 고스트' 속 단편 '블랙폰'을 원작으로 확장된 영화다. 원작의 기본 설정에서 나아가 어른의 부재, 무지와 무관심 혹은 무능력 속에서 어린 아이들이 연대하며 두려움에 맞서 나아가는 이야기를 통해 뜻깊은 메시지와 감동을 전한다. 그렇기에 극 중 알코올중독 아버지가 비뚤어진 애정과 태도를 반성하고 남매에게 용서를 구하는 짧막한 시퀀스가 섬세하고 의미깊다.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잘못에 회피하지 않는 아이들과 어른의 모습을 통해 따뜻한 공감과 안도를 느끼게 한다. 이처럼 호러의 장르적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성장 영화로서의 역할도 충족시키는 '블랙폰'이다. 


호러 명가 블룸하우스와 호러 장르에 탁월한 감각을 지닌 스콧 데릭슨 감독의 만남도 탁월한 조화다. 단 한순간도 온전히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도 육중한 몸과 고갯짓, 소름끼치는 어투만으로 압도적인 공포감을 유발하는 그래버 역의 에단 호크는 절로 감탄을 부른다. 무엇보다 피니&그웬 남매를 연기한 메이슨 테임즈와 매들린 맥그로의 '남매 케미'는 엄마 미소를 유발할만큼 사랑스럽고 기특하다.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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