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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놉' 차원이 다른 조던 필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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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2-08-17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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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우리 위에 있다. 거대하고, 주목받길 원하고, 미쳤다. 나쁜 기적이라는 것도 있을까? 


'겟 아웃' '어스'를 통해 인종차별과 사회적 메시지를 충격적인 스토리로 풀어내며 공포영화의 새 지평을 연 조던 필 감독의 신작 '놉'의 영화적 세계관은 전작들과 차원이 다르다. 장르를 규정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하고 기이하다. 더욱 거대해지고 확장된 영역 속에 특유의 놀라운 사회적 은유가 가득해 곱씹을수록 경이롭다. 조던 필, 그가 곧 하나의 장르임을 확고하게 증명한다.


영화의 시작은 독특하다. 영화사 로고가 떠오르는 순간부터 알 수 없는 TV 소리가 들린다. 간혹 방청객의 웃음소리도 섞여드는 것을 보아 시트콤이나 쇼 프로그램 같다. 그러나 뜬금없는 맥락에 영문을 알 수 없다. 비로소 화면에는 광활한 광야에 놓인 헤이우드 말 목장이 비친다. 기묘하고 불길한 분위기 속에 이상하고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순식간에 벌어지며 목장주 아버지가 죽고, 말 등엔 열쇠가 꽂힌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흐름 속에, 그렇게 '놉'의 막은 열린다. 


6개월 뒤. OJ 헤이우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장을 운영하고 있고 오랫동안 가문이 해왔던, 할리우드 쇼비지니스 사업에 말을 대는 일을 따내기 위해 오디션 중이다. 하지만 도통 말이 없고 어필할 줄 모른다. 그때 구세주처럼 등장한 여동생 에메랄드 헤이우드는 오빠와는 영 딴판이다. 주목받길 원하고 과하게 넘치는 에너지로 사람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하지만 말의 심기를 거스르는 무지한 촬영 스태프들의 요구로 결국 비즈니스는 실패한다. 목장 운영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말들도 종종 사라진다. 어린 시절 TV스타이자 현재 헤이우드 목장 근처에서 놀이동산 주피터 파크를 운영하는 리키 주프 박은 목장을 사겠단 제안이 아직 유효하다 말한다. 


이야기가 평이하게 흘러갈때도 종종 등장하는 '그것'은 두려움과 호기심이라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한다. 이를 UFO라 여긴 헤이우드 남매는 의기투합하며 카메라에 담기 위해 애쓴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 나갈 수 있으며, 떼 돈을 벌 수 있고, 덩달아 유명해질 거라며 기대에 잔뜩 부푼 동생과 목장을 지킬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 오빠의 상반된 성향은 소소한 웃음을 자아낸다. 여기에 방범카메라를 설치하다 남매의 계획에 합류하게 된 전자 마트 직원 엔젤도 간혹 유머를 담당하며 극을 환기시킨다. 아직까지만 해도 외계 생명체, 미지의 것에 대한 호기심과 스릴이 크다. 




영화 전반부는 본격적인 미스터리가 펼쳐지기 전인만큼,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씩 드러나고 연결되는 스토리를 좇다보면 아주 거대하고 독특한 '그것'에 닿게 된다. 특히 오프닝에 등장했던 TV쇼 사운드의 끔찍한 실체가 드러나는 것이 압권이다. 차츰 '그것'이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더 포악한 행위를 하며 존재감을 떨칠수록 극은 실존적인 공포 심리를 자극하기 시작한다. 그 무언가는 하늘에 있고 사람들과 동물들을 납치한다. 하지만 이것이 무엇인지 등장인물과 관객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도 알지 못한다. 광활한 광야와 하늘에서 나타나는 거대한 무언가. 이에 대한 시각적인 공포감도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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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우드 목장의 하늘에서 벌어지는 설명할 수 없는 기이현상들. 영화는 이를 통해 장르적인 공포심을 극대화하면서도 인간 심리와 더불어 영화 제작과 산업 자체에 대한 탐험과 비평을 교묘하게 담아낸다. 


명성과 부를 추구하며 주목받는 콘텐츠에 혈안돼 위험을 감수하고, 또 이를 소비하는 인간 심리. 영화 산업에서 이용 가치를 다해 버림받는 배우들과 사람들, 그들이 여전히 꿈꾸는 악몽과 환상. 수면 아래 가려진 동물 조련사, 기술 전문가 등 다양한 위치에서 종사하는 산업 전문가들. '놉'은 영화 산업에 항상 내재돼있는 본질적인 것들의 상징성을 다양한 인물과 상황을 통해 그려낸다.


특히 말을 탄 흑인 기수를 묘사한 16장의 연속 사진, 이는 영화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훗날 영화가 되고 영화 산업 전체의 기반이 된 사진이다. 그러나 역사에는 흑인 기수의 이름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던 필 감독은 그 특유의 방식으로 흑인 기수의 익명성을 상징적으로 담아낸다.


그리고 마침내, 경외와 두려움과 환상 그 무언가의 실체를 담아낸 한 장의 필름은 꽤 벅차면서도 갖가지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놉'은 새로운 소재, 확장된 스토리와 영화적 세계관으로 낯선 감상을 주면서도 본질적인 메시지는 완전히 조던 필 스럽다. 거대하고 기묘한 스펙트럼을 가진 콘텐츠와 이를 갈망하고 소비하고 만들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존경과 비난, 그 모든 감정이 점철됐다. '그것'은 범람하는 미디어 콘텐츠다. '그것'을 똑바로 바라보며 현혹되고 경외를 느끼거나, 혹은 외면하고 거부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담긴 의미도 인상 깊다.


헤이우드 남매의 상반된 '케미'는 무척 좋다. 각각의 트라우마와 삶의 방식이 있지만, 그들의 진심 어린 우애와 가족의 정은 따스하고 훈훈하다. 다니엘 칼루야는 특히 더 매력적이다. 적은 말수와 자주 조용히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지만, 그 조용한 순간에도 겹겹이 쌓인 눈빛과 표정으로 보는 이를 끌어당긴다. 그가 동생을 향해 취하는 제스처는 의외로 장난기가 있지만 그 속내는 상냥하고, 마지막 엔딩은 마치 히어로 같은 웅장한 '멋짐'도 느껴진다. 러닝타임 130분.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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