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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선언' 항공 재난의 현실적 공포감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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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2-08-03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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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상선언'은 재난을 직면한 사람들을 통해 다양한 인간군상을 드러낸다. 이기심과 나약함, 그리고 용기와 희생, 나아가 희망까지. 재난을 소재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고찰을 담아낸 한재림 감독이다.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하와이행 비행기에 탑승한 사람들은 피할 수 없는 재난을 마주한다. 원인불명의 사망자가 나오고,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퍼져 감염자가 속출한다. 탑승 전부터 수상하기 짝이 없던 남자는 혼란과 두려움에 빠진 비행기 속에서 홀로 미소를 짓는다. 미리 유튜브 영상을 통해 테러를 예고하고, 실제 기내에서 생화학 테러를 일으킨 범인이다. 사건을 파악한 정부와 경찰은 다급하게 지상에서 이를 해결하려 하고, 상공의 사람들도 사상 초유의 생화학 테러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비상선언'의 스토리는 재난을 마주한 지상과 상공, 두 공간의 상황과 사람들이 교차되며 진행되는 방식이다. 비행기 재난을 중심으로 지상과 상공의 수많은 공간과 인물들이 긴밀하게 엮여 있음에도 흐름이 빨라 지루할 틈이 없고, 매끄럽고 안정적인 전개가 돋보인다. 핸드헬드와 다큐멘터리 촬영 방식을 차용한 데다 CG와 공간의 교차, 샷, 컷, 그리고 실제 상공의 빛들을 구현하는 등 정교하고 치밀한 완성도로 리얼한 체험형 무비로서의 기능도 수행한다. 


송강호부터 이병헌 전도연 박해준 김소진 등 베테랑 배우들이 대거 포진된 점도 이 영화의 묘미다. 이들은 많은 서사가 할애되지 않았음에도 순간 포착된 상황과 표정 등으로 사건의 긴박함과 더불어 인물의 다채로운 특징과 개성을 드러낸다. 누구도 튀지 않고 어울림의 조화를 완성한다. 


베테랑 형사 팀장 인호 역의 송강호는 콧등에 돋보기를 걸친 모습부터, 소소한 아재 개그와 말맛까지 어디선가 분명 존재할법한 중년 가장이자 형사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는 아내가 테러범과 같은 비행기에 타고 있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더욱 리얼하게 발산되는 그의 절박함과 다급함에 충분한 당위와 몰입을 더한다. 형사로서의 직업적 사명, 이와 더불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아내를 구하기 위한 남편이자 가장의 모습이다. 


국토부 장관 숙희 역의 전도연은 책임과 사명을 다하는 리더의 모습을 구현한다. 특히 "책임을 지는게 공무원이 할 일"이라며 온갖 불가능을 말하는 각개 부처 사람들에 최선의 방안을 찾아내라 지시하는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백미다.  


재혁 역의 이병헌은 공항에서부터 딸과 자신을 쫓아다니며 집요하게 시비를 거는 수상한 남자에 대한 불쾌감과 의심을, 딸을 지키기 위한 평범한 아빠의 마음으로 표현한다. 인물의 전사가 밝혀진 이후에는 공포감과 공황을 딛고 승객을 구출해내고 싶다는 의무감 사이에서 번민하는 인물이다. 


이밖에도 자신의 위치에서 침착함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직업 정신을 보여주는 승무원 사무장 김소진, 차분하고 해사한 얼굴로 분노 조절 장애와 집요한 히스테릭함으로 광기를 발산하는 임시완, 수많은 승객들의 모습까지 누구 하나 깊게 할애되지 않은 서사에도 각자 처해진 상황에 맞는 리얼한 감정 연기로 강력한 사실감을 전한다. 


시각적인 역동성도 빼놓을 수 없다. 지상에서 공범과 제보자를 찾기 위해 현장 일선에서 뛰는 형사 팀의 추격전과 더불어 대형 롤링 짐벌을 활용해 더욱 사실적으로 구현된 비행기 세트는 핸드헬드 촬영기법으로 촬영돼 압도적인 현장감과 사실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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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선 보기 힘들었던 항공 재난물을 이처럼 사실감 있게 그려낸 것은 괄목할만한 성과다. 캐스팅도 신의 한 수다. 다만, 감독이 이 항공 재난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후반부 지나칠 정도로 과도하게 들어간 점이 아쉽다. 호불호가 갈릴 지점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재난을 맞닥뜨린 인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소중한 사람을 지켜내기 위해 애쓰는 모습, 선량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로 인해 뭉클한 공감과 위로를 전한다. 또한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숭고한 선택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도 확실히 전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극단적으로 발현되는 인간의 이기심과 더불어 현 사회를 빼다 놓은 극렬한 양분화 현상까지도 가감 없이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비행기 착륙을 놓고 극렬한 찬반 시위를 벌이고 대립하며 싸우는 사람들의 극단적인 모습은 그렇기에 더욱 착잡하고 심란하다. 애초 '관상' '더 킹' 등의 전작을 통해 남다른 정치적, 사회적 감수성을 녹여왔던 한재림 감독이기에 이 같은 사회적 함의를 담아낸 지점은 여전한 그의 뚝심을 엿보게 하고 반갑기도 하다. 


하지만 이를 지나치게 할애했다. 과도하고 길다. 적절하고 영리했던 감독의 이전 방식과 장르의 효과적 활용에 비교하면 의아할 정도다. 이에 더불어 재난 상황이기에 어쩔 수 없이 슬픔이 강요되는 연출 방식이 맞물리니 더욱 그렇다. 온전히 장르적 재미를 취하고자 했던 관객에겐, 도리어 사유할 것이 많은 영화의 메시지가 꽤 버겁고 피로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러닝타임 140분의 압박감도 무시 못한다.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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