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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결말에도 치밀한 심리 스릴러의 묘미 '앵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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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2-04-19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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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은 다소 맥이 빠지지만, 정교하고 치밀한 심리 묘사로 장르적 특성을 극대화한다.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 영화 '앵커'(감독 정지연)다. 


방송국 간판 앵커 세라(천우희). 그는 9시 뉴스 생방송 5분 전, 자신이 살해당할 거라고 죽음을 예고하는 제보 전화를 받은 뒤 찝찝한 마음을 떨칠 수 없다. 진짜 앵커가 될 기회라는 엄마 소정(이혜영)의 말에 세라는 제보자 미소의 집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미소와 그녀의 딸 시체를 목격한다. 이후 계속해서 악몽과 환영에 시달리고, 후속 취재차 찾은 사건 현장에서 마주친 어딘가 수상한 미소의 주치의 정신과 의사 인호(신하균)를 본 뒤 의심은 깊어진다.  


'앵커'는 완벽했던 앵커 세라의 삶을 뒤흔들 충격적인 진실을 파헤쳐가는 과정을 그린다. 단정하고 지적이며 티끌 한 점 없이 성공한 듯 보이는 완벽한 여성 앵커 이면에 담긴 욕망과 불안의 폭주가 점층적으로 요동치는데 이 심리 묘사가 퍽 리얼하다. 


세라는 누가 봐도 성공한 여성이다. 하지만 빈틈없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오래된 구건물 분장실에서 혼자 연습을 반복하고, 잦은 위통에 시달린다. 기자 출신 앵커가 아니라는 자격지심도 언제나 그를 억압한다. 매번 뉴스를 엄격하게 모니터 하며 "언제까지 앵무새처럼 써준 글만 읽을거냐"고 몰아붙이는 엄마 소정의 존재도 세라의 불안을 자극하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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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세라의 완벽한 외피를 차츰차츰 벗겨내며 그 안에 들끓는 욕망과 불안 심리를 드러내 심리 스릴러 특유의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끌어올린다. 여기에 세라가 직접 목격한 모녀 죽음 사건은 미스터리함을 더하며 그가 보는 환영과 그 주변에 일어나는 기이한 사건들에 납득 가능한 당위성을 준다. 스스로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완벽주의 앵커가 위태롭고 예민하게 변해가는 모습, 이를 통해 느끼는 심리적 혼란과 공포가 섬세하게 묘사돼 몰입도를 높이는 식이다. 또한 정신과 주치의 인호는 시종일관 의심스러운 행동과 말로 일관하며 세라에게도 관객에게도 불안을 고조시킨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어딘가 서늘하고 뒤틀린 모녀 관계다. 사건의 진상에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세라와 이를 부추기는 엄마, 딸과 자신의 삶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못하는 엄마의 존재와 이로 인한 압박감에 짓눌리는 딸의 모습은 시종일관 위태로운 긴장감을 자아낸다. 전통적인 모성에서 벗어난 엄마와 딸 사이의 애증과 집착은 가장 원초적인 모녀 관계에 도사린 심연을 들여다보며 새롭게 허를 찌른다. 


영화는 세라가 사건의 실체에 다가설수록 서서히 변화해 가는 심리, 그 과정에서 느끼는 공포를 섬세하고 집요하게 쫓으며 안심할 수 없는 긴장과 불안을 불어넣는다. 거울과 명암을 활용한 심리 연출도 정밀하다. 긴장으로 곤두선 인물의 예민함에 오롯이 집중한 탓에 장르적 특성이 효과적으로 배가된다.  


하지만 극 후반에 이르러서는 모든 사건을 수습하고 당위성을 주기 위한 과한 설정들이 드러나며 다소 뻔하고 산만한 전개가 이어진다. 이로 인해 팽팽하게 조인 긴장감이 허무하게 맥이 빠지는 격이다. 클리셰로 버무린 동기, 불필요한 신파 요소, 세라에게 위안을 안기는 사려깊은 결말은 과하게 친절해 도리어 거북스럽다. 


완벽한 심리 스릴러의 궤를 좇다가 안타까운 용두사미 결말을 내놓는 '앵커'다. 다만 치밀하고 적나라한 심리 묘사 만큼은 '블랙스완'과 견줘도 손색이 없고, 강요된 모성의 새로운 변주를 다룬 점은 충분히 흥미롭다. 무엇보다 천우희, 이혜영, 신하균의 탁월한 캐스팅이 가장 효과적인 영화다.  러닝타임 111분.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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