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송' 이토록 잘빠진 여성 카체이싱 액션물의 탄생 [리뷰] > 리뷰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특송' 이토록 잘빠진 여성 카체이싱 액션물의 탄생 [리뷰]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예지 기자 댓글 0건 작성일 22-01-12 13:04

본문

cc.jpg

영화 '특송'(감독 박대민)은 익숙한 장르를 새롭게 비틀고 변주하며, 잘 빠진 '한국식' 여성 원톱 카체이싱 범죄 오락 액션의 탄생을 알린다. 스피디하고 감각적이며 독특하고 매력적인 영화다.  


부산항 대교가 한 눈에 들여다보이는, 탁 트인 바다를 배경으로 한 부산의 어느 운치 있는 폐차장. 손가락의 타투와 독특한 머리 색깔이 상당히 튀어 보이는, 앳된 얼굴의 한 여자와 격의 없이 어울리는 화려한 셔츠 패션의 사장,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들. 평범한 듯 보이는 이 공간의 실체는, 불법 특송 배달을 업으로 삼고 있는 비밀스러운 곳이다. 여자는 시작부터 주어진 사람 배송 업무에 착수한다. 어디론가 도주하기 위해 특송을 요청한 험상궂은 외양의 건달은 처음부터 여자라고 무시하기 일쑨데, 여자는 아랑곳 않고 페달을 밟는다. 겉보기엔 초라하기 그지없는 낡은 고물차인데 속도감이 무시무시한 데다, 도심 한복판은 물론 차량 한 대 겨우 지나갈 좁은 골목길과 차량 틈 사이로 드리프트 해 숨어들기까지. 현란한 테크닉을 이용해 뒤쫓는 차량을 보기 좋게 따돌리고 칼같이 임무를 완수한 여자의 시종일관 시크한 표정이란. 그 자체로 넘치게 매력적이다. 영화 '특송'의 강렬한 오프닝이다. 


'특송'은 특송 드라이버 은하(박소담)가 예기치 못한 특송 사고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범죄오락액션 영화다. 여성 원톱 액션 장르물은 종종 있었으나 카체이싱과 결합되니 그 자체로 신선하고 이색적이다. 게다가 기존에 익히 봐왔던 카체이싱 액션과는 확연히 다르다. 할리우드 식의 카체이싱 액션을 표방하지 않고 지극히 한국적인 지형과 조형을 백분 활용하며 고유의 개성을 확립한 까닭이다.  


도심을 내달리고 질주하며 맞부딪히는 고급 차량의 향연이었던 기존 카체이싱 액션과는 달리 '특송'은 비밀스러운 업무 탓에 개조한 국산 고물차, 심지어 주변에 흔히 보이는 차량들을 절취하는 탓에 각종 경차부터 굴러가는 게 신기한 단종 차량까지 골라잡기 나름이다. 또한 거리 사정은 더욱 광범위하다. 비탈길, 좁은 주택 골목가, 주차장, 기찻길 등 너무나 익숙한 일상의 풍경을 배경 삼아 기상천외하게 펼쳐지는 카체이싱 액션은 단연 볼거리다. 때론 질주하고 때론 약 올리듯 숨어버리는 등 속도의 완급 조절과 더불어 현란한 테크닉을 자랑하며 능수능란하게 리듬을 타는데, 이쯤 되면 마치 차가 살아 숨 쉬는 듯한 느낌이다. 


기본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이를 풀어가는 과정은 흥미롭다.  


은하는 여느 때처럼 특송 임무를 맡았다. 성인 남자와 동승자 1명. 그들 각각의 사연은 알 필요도, 알고 싶지도 않다. 그저 주어진 배송만 할뿐. 그러나 예정된 약속 시간이 지났고 불길함을 느낄 때 울며 달려오는 꼬마 아이를 발견한다. 일이 잘못됐음을 직감하고 그냥 떠나려 하지만, 결국 아이를 태우게 된다. 그리고 위험한 상황에 휘말리지만 아이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사투를 벌인다. 


시크하고 감정에 무감각한 은하가 갑작스럽게 떠맡겨진 아이를 밀어내다 결국 받아들여 정을 붙이고 자신을 희생하는 스토리 구도는 단순하고 전형적이다. 하지만 이들을 위협하는 독특한 악인의 설정과 배경은 흥미롭고 이색적이다. 그동안 비리 경찰, 부패경찰은 익히 봐왔어도 직접 깡패 조직을 거느리는 경찰은 본 적 없다. 이 비현실적인 인물은 의외로 현실성을 갖고 두 사람을 집요하게 추격한다. 공권력의 절대적인 힘과 깡패 조직의 무자비한 야만성까지 갖춘 악인의 존재, 게다가 이 인물은 오히려 이 추격전을 흥미롭게 즐길뿐더러 종잡을 수 없는 특성으로 공포심을 자아낸다. 


뒤늦게 밝혀진 은하의 끔찍한 과거는 아이와의 교감에 정서적인 공감을 일으키고, 설렁설렁한 백사장의 범상치않은 반전 과거를 연상케 하는 장면 또한 놀랍게 강렬하다. 이 과거를 거추장스럽게 늘어놓는 것도 아니란 점에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흘리는 대사와 남겨둔 여지로 지레짐작하게 하는 탓에 호기심을 더하면서도 속도감을 유지한다. 이처럼 단선적인 스토리 라인을 흥미로운 캐릭터의 변주와 비틀기로 몰입을 더하는 식이다. 


또한 은은한 유머와 휴머니즘도 흐름에 방해되지 않게 적절히 담아낸다. 처참한 상황에 놓였어도 여전히 순수한 해맑음을 간직한 아이와 무뚝뚝하지만 헌신적인 은하의 교감은 때론 애틋하고 때론 유쾌하고 사랑스럽다. 


cats.jpg

 

백강산업 폐차장에서 펼쳐지는 클라이맥스 액션 신도 수려하다. 백사장(김의성)과 경필(송새벽)이 부딪히는 신은 공간 자체에서 주는 독특한 미장센이 더해져 강렬한 누아르를 연상케 하고, 이어지는 은하의 본격적인 액션 신은 그야말로 유혈 낭자하며 끔찍한 핏빛 액션의 향연임에도 그토록 감각적일 수가 없다. 액션신 전반을 감싸는 리드미컬한 음악과 어우러져 암전을 반복하는 조명은, 잔혹한 액션을 상쇄시키며 도리어 흥분감을 고조시키는 효과적인 방법일뿐더러 마치 잘빠진 팝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하다. 


특히 은하가 전문적인 액션을 배운 인물이 아님을 인지하면서도, 현란한 운전 테크닉만큼 날쌘 몸을 재빠르게 움직여 신체적인 핸디캡을 극복하고 잔인한 악당 무리들과 싸우는 모습은 현실적인 쾌감을 더하는 요소다. 


익숙할 법한 이야기와 장르임에도 이처럼 변형된 설정으로 클리셰를 타파하며 새로운 재미를 주는 '특송'이다. 적재적소 리듬감 넘치는 OST도 조화롭다. 다만 속도감을 강조한 탓에 흥미로운 인물의 활용도를 적극 발휘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박소담은 첫 액션 연기에서 충분한 합격점을 받을만하다. 간혹 무표정한 얼굴이 무장해제되는 순간 드러나는 사랑스러움이 보기 좋다. 송새벽은 명불허전이다. 특유의 어눌함을 그대로 살린 악인 연기는 이제껏 본 적 없는 악역이다. '모세' '예수'를 운운하며 말장난을 하는 능청스러움과는 달리 도무지 감정이 읽히지 않는 날카로운 서늘함이 곳곳에 도사린 비주얼로 공포 심리를 자극한다. 러닝타임 108분. 

한예지 기자 news@movieforest.co.kr
공감 0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label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추천뉴스

게시물이 없습니다.